앞산 노을 질 때까지 호미자루 벗을 삼아 / 화전 밭 일구시고 흙에 살던 어머니
땀에 찌든 삼베적삼 기워 입고 살으시다 / 소쩍새 울음 따라 하늘가신 어머니
그 모습 그리워서 이 한 밤을 지샙니다
무명치마 졸라매고 새벽이슬 맞으시며 / 한평생 모진 가난 참아내신 어머니
자나 깨나 자식 위해 신령님전 빌고 빌며 /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까
자나 깨나 자식위해 신령님 전 빌고 빌며 /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가신 어머니
이제는 눈물 말고 그 무엇을 바치리
이 노랫말은 태진아가 부른 사모곡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사모함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찰관 남편을 잃고 난 후 일기 쓰듯이 쓴 아내의 남편에 대한 사모곡이 있습니다. 지난2004년11월에 대구 남부경찰서 김상래(당시 36세) 경사가 당시 주택가 연쇄 화재사건 범인 검거를 위해 순찰을 돌다 용의자를 발견하고 추격하다 흉기에 찔려 순직한 김경사의 아내 김 모(35)씨가 2005년 8월에 올린 글 중의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도이 아빠……
도대체 무엇일까…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모래알처럼
많은 인연들 중에서
이렇게 우리 셋 엮어진 인연인데…
그렇게 손놓아 버려진 우리 둘은
모래알처럼 수많은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어떤 집을 짓고 어떤 대문을 달아야 하는 것일까…
더운 여름날도 당신이 당직일 때는
창문 한번 제대로 열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영영 못 열어 보겠네…
도이 아빠…
엄마한테 혼나더니 당신 방에 들어와서
당신 부르면서 왕방울 같은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내가 울어버릴 거 같아 애써 외면했는데….
지금은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네…
빨리 깨었으면 좋겠어…
어디를 가도 당신 가슴에 붙이고 다니던
코알라처럼 붙어 다니던 당신 딸이…
어떻게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물음표뿐이야…
도이 아빠…
당신이 많이 보고 싶다…
이 악몽에서 빨리 깨어나…
당신 빨리 퇴근했으면 좋겠다……
출근하면 퇴근도 있어야지…
당신 좋아하는 겉절이 해 놓고 기다릴 텐데…
겉절이에 된장 한술 떠놓고
맛있게 비벼먹자…
그런 날엔 언제나 당신 비빔그릇에 숟가락
세 개가 바쁘게 왔다 갔다 했는데…
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당신 알지….
한번만… 다시 해봤으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사모하며 살고 있습니까? 돌아가신 부모입니까? 당신의 가슴에 묻어둔 일찍 당신 곁을 떠나버린 자식입니까? 아니면 이제 결혼한 당신입니까?
‘思慕(사모)’라는 단어의 의미는 생각하여 그리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담아 두고서 순간순간 끄집어내어 보면서 생각하는 것을 사모한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는 백성들입니다. 그곳을 그리워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는 사모하는 것이 달라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어머니, 아버지를 사모하고 자식을 사모하고 배우자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말씀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매일 일어나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어라 말씀하실 것인가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받든지, 아니면 자신이 말씀을 읽으면서 받든지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로서 여호와의 율법에 대하여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사모하는데 순금 보다 더 사모한다고 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듣는 말씀의 맛이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송이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히브리어로 ‘노페트 추핌’으로서 ‘추핌’이란 ‘흘러 넘치다’ 또는 ‘벌집’을 의미하는 ‘추프’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직역하면 ‘벌집에서 흘러 넘친’이란 뜻입니다. 송이꿀이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친 덩어리 꿀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달게 다가오는 말씀은 금보다 더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금보다 더 사모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귀중한 물건보다도 더 사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사모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73편 25절말씀에 보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하늘에서도 하나님밖에 없지만 땅에서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만이 사모할 분이라고 아삽이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시편84:2절 말씀에“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이것은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의 고백은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먹는 것이 살이 가지 않아 쇠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궁전인 성전에 무엇입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가 있습니다.
그곳에 예배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교회를 떠나 살면서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해야 합니까? 여기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기도하는 집이요, 모든 것을 주시는 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12장31절 말씀에 보면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의 은사입니다. 고전14:1절 말씀에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여기서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신령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다 쉽게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신령한 것은 곧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부자를 사모하지 말고, 권력자가 되는 것 사모하지 말고, 오직 영적인 것,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 신령한 것, 영적인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귀중한 것보다도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받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119:40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23절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31절“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베드로전서2:2절 말씀,“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성도 여러분,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내게 은혜의 말씀으로 능력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사모하지 않는 자에게는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 설교를 듣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 들어서는 말씀을 보다 더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을 사모하듯이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사모하는 자들에게 채워주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07:9“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할렐루야!
사모하는 영혼, 배고파하는 영혼, 먹어도먹어도 먹고 싶어 하는 아이, 먹어도 돌라서면 배고픔을 느끼는 그 아이는 분명히 많이 먹을 것입니다. 많이 먹는 것은 곧 많이 성장합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읽어도 그것이 더 듣고 싶고 읽고 싶어지는 것은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새해 들어서 우리가 심령부흥회를 내일부터 시작됩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면서 기다리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교인들이 이곳에 와서 자리 채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잔칫집은 외부손님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흥회는 우리교회 교우들이 은혜 받고자 하여 갖는 성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이런 기간에는 비상체제로 들어가셔서 다부지게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부흥회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무관심하게 보내는 성도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여성 성도 여러분!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준비하여 차려놓았는데 남편이나 자녀들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별로 많이 먹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세수하고 옷 입고 책가방 메고 나가버리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거기다가 모처럼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늘 상 그렇게는 먹을 수 없고 해서 특별히 요리를 잘하는 친구나 동네 아주머니를 불러서 요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가족들이 밖에서 많이 먹어서 그것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목사가 주일마다, 오후찬양예배 마다, 수요예배마다 말씀의 밥을 지어 상체 차려놓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면, 목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목사가 아무리 맛있는 말씀을 차린다 하더라도 때로는 별미가 필요할 것 같아 좋은 말씀의 요리사인 강사님을 모셔서 말씀의 상을 차려놓고 참여하라고 하였는데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실망이 커겠습니까?
아내가,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은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적인 사랑이요, 예의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흥회를 개최할 때는 억지로라도 참여하셔서 말씀을 받아먹어야 목사도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겠습니다.
금번 부흥회에 온 성도가 세상의 그 어떤 귀중한 물건보다도 더 많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부흥회에 참여하여 놀라운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말씀을 사모해야 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가?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속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말씀을 사모할 수밖에 없는가?
첫 번째 이유는 영혼을 소성시키기 때문입니다.
7절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밥이 육신의 생명을 소성케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새롭게 일으켜 줍니다. 죄악이 충만한 세상 속에 살다보면 우리의 영혼이 시들해지거나 곤고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시편23:3에도 보면 목자 되신 여호와는“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배가 심하게 고프면 눈일 쑥 들어가고 힘이 없어서 움직이기 싫습니다. 그런데 물이라도 배가 부르도록 마시고 나면 눈이 번쩍 뜨이고 힘이 솟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영혼이 지칩니다. 6일동안 세상에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영혼이 상하거나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에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통해 힘을 얻어 다시 신령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나태하거나 스스로 생각할 때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자가진단이 있다면 내일 새벽부터 시작하는 부흥회에 참석하셔서 말씀을 통해 새롭게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여호와 말씀은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7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원리와 가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알면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됩니다. 가장 고상한 지식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기 위해서는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3장15절 말씀에 보면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119:130절 말씀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부족한 우리들은 항상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어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8절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도 보면 말씀이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5장16절 말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왜냐하면 말씀은 곧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닫거나 발견한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우리의 눈을 밝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면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세상의 것을 볼 수 없듯이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영의 세계를 불별할 수 없습니다. 성령과 사단의 영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에 충만해야 해서 영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속습니다. 사단의 장난도 성령님의 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 상반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무궁토록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나를 떠나거나 내가 떠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있습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보면 여호와의 언약, 여호와의 규례 등을 말할 때 영원한 언약이요, 규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나와 함께 할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충만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섯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고 의롭기 때문입니다.
9절 하반절에 보면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진실함이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인간을 빼고는 진실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정직합니다. 의롭습니다. 불의함이 없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보다도 더 사모해야 할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깨달은 후에 그것을 지키면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3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13-17절 말씀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말씀을 잘 받으면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진주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사모하는 모든 것 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장수와 부귀를 허락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새해벽두부터 말씀을 사모하며 마음에 말씀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잘 지켜 행하는 삶이 되십시다. 큰 상을 받으시는 삶이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 내일부터 부흥회를 가집니다. 훌륭한 목사님을 감사로 모셨습니다. 말씀을 뜨겁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셔서 말씀을 충만히 받아 말씀으로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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