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더욱 사모해야 할 것/시19:7-11

하나님아들 2014. 3. 15. 00:30

신라시대에 지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너무나 고민한 나머지 몸이 점점 여위어 갔습니다. 어느 날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지귀의 사모하는 이야기를 듣고 지귀를 불렀습니다.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지귀는 탑 아래에서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여왕은 지귀의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에 놓고 갔습니다.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의 금팔찌를 발견하고 더욱 더 사모의 정이 불타올라 화귀로 변하였습니다. 지귀가 화귀가 되어 온 세상을 떠돌아 다니자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덕여왕이 백성들에게 주문을 지어 주어 대문에 붙이게 하니, 그 뒤 백성들은 화재를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왕이 지어준 주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 몸을 태워 화귀가 되었네.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

성경에 보면 ‘사모하다’는 단어가 65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사모하다’는 단어의 의미는 그리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을 말합니다. 사모하다는 표현을 하는 경우는 사람과 물건과 자신이 소망하는 내용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사모하다’는 단어가 첫 번째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남편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입니다. 배우자를 사모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84편1-2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시편73편25절 말씀“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은혜를 사모하기도 하고, 천국을 사모하며, 우리가 받고 싶은 은사도 사모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12장에 보면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셨고, 14장에서는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특히 성도는 남다른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재림하심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사실 세상에 살면서 사모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모해서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우상을 사모하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에스겔20장24절 말씀에 보면 우상을 사모하면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6장 10절 말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사모)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돈을 사모하면 미혹을 받아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사모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부정직한 재물, 배우자 외의 다른 이성, 악한 일, 신앙에 덕이 되지 않는 일 등은 사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모해야 할 여러 가지들을 사모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편107편9절 말씀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사모해야 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보다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금보다, 특히 순금보다도 더욱 사모해야 할 것, 즉 돈보다도, 그 어떤 재물보다도 더욱 사모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말씀인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까?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시편119편 40절 말씀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여호와의 말씀인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의 형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지만 한편으로는 말씀이 완전하여 결국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본래의 인간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회개하게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더욱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인간답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음식처럼 지친 자를 새롭게 하고, 낙심한 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인간의 완악한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는 자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죄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굳은 마음이 깨트려지고 마음에 소원을 품게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신명기8장3절 말씀을 인용하면서까지 말씀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으로나 인간의 윤리의식으로 사람이 소성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하십니다.

시편119편130절 말씀에 보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겸손하고 솔직한 마음,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혜를 얻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들에게 숨기신 것들을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십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계속해서 어리석은 자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회개에 이르게 하고,

그 말씀 안에서 교훈을 받게 합니다. 우리가 회심했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성장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3:15절 말씀,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지식으로 채울 수 없는 지혜까지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읽고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지혜를 주십니다.

매튜 마우리 (Mattew Fontain Maury) 라는 사람이 어느 날 몸이 불편하여 누워 있으면서 그의 장남에게 성경을 읽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시8:8절 말씀,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를 읽자 읽는 것을 멈추게 하고 다시 한 번 더 읽도록 부탁했습니다. 아들이 말씀 읽기를 다하자 그는 그의 아들에게 “하나님이 바다에 길이 있다고 하셨으니 틀림없을거야. 이제 찾으러 가야지.” 하며 외쳤습니다.

드디어 그는 몇 년 만에 해류를 해도에 기입할 수 가 있었으며, 현대 해양학의 최초 교과서가 된 “The Physical Geography of the sea(1855년)”라는 책을 써 해양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곧 이어 마우리씨는 대서양 해저에 관한 도표를 작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의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예레미야15:16절 말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육의 양식인 음식도 맛이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마음은 기쁩니다. 기쁨을 얻고 싶으면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네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눈을 밝게 합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성경은 훌륭한 안과 의사처럼 슬픔과 죄로 어두워진 눈을 맑고 밝게 해줍니다. 해를 바라보면 눈이 멀게 되지만, 계시의 햇빛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욱 깨우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어두워진 눈에 있는 안경처럼 되어서 우리가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말씀은 영적 안약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눈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영양실조에 걸리며 눈이 어두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말씀의 영양실조가 걸리면 영적 안목이 둔해지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영안이 밝아야 거짓된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안이 밝아야 성령과 사단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래 성결하여서 우리의 눈을 밝게 만들어줍니다. 잠언6장23절 말씀에 보면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시편119편105절 말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밝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밝으면 죄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영적인 눈이 밝으면 죄가 잘 보이기 때문에 쉽게 피할 수 있습니다. 즉 말씀을 깊이 새기면 모든 것이 제대로 보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눈이 밝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밝은 눈에 보인 것은 선악과였고 그것이 먹음직하고 보임직 하고 먹기에 좋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눈은 바로 죄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 영적인 시력이 밝아 죄를 잘 파악하여 죄짓지 않는 경건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씀은 정결해서 영원까지 이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깨끗한 물은 썩지 않습니다. 순수한 정류수,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은 썩지 않습니다. 오래두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물은 금방 썩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씀은 순수합니다. 순결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세속적인 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라져 버리지만 순전한 경외는 영원토록 보존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 말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모세5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사용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레니라”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치게 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적 산물로 간주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도 그대로 이행됩니다. 하나님의 변함이 없으시고 지금도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를 말씀한 곳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신명기 4장2절 말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 말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여섯 번째, 하나님의 말씀은 의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의롭습니다. 질적인 면에서는 율법은 그 기원이 하나님이므로 의롭습니다. 그 목적인 선함으로 의로운 것입니다. 민수기 23장19절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하나님의 말씀은 농담이 없습니다. 한 번 해본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려고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과 일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한 번 하신 말씀은 영원하며 그분의 말씀은 그릇됨이 없습니다. 의롭습니다.

그리고 양적인 면에서 모든 율법의 조항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의로운 것들입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논리정연하고 누구와도 토론할 수 있다고 토론을 좋아하는 대통령은 말에 실수가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조금도 실수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의롭습니다.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새롭게 회복시키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영원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그 어떤 재물보다도 더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119편 123절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고 하셨습니다.

131절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사모하기 위해서는 그 맛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이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습니다. 말씀의 맛이 단맛입니다. 단맛을 느낄 수 있어야 더 사모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3:3말씀에도 보면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사모함이 있어야 말씀을 읽고 싶어집니다. 들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읽고 싶어 해야 하고 듣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1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불순종하면 경고를 받게 되고, 말씀을 순종하면 상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 상이 큽니다.

여호수아 1:7절 말씀에 보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23:7절 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잠언 4:27절 말씀에도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파라 파라 깊이 파라 얕게 파면 너 죽는다. 뿌리도 깊게 팔수록 좋다. 좁은 길이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닫고 깊이 믿으라. 어설프게 파면 의심밖에 남는 것이 없다”

이 말은 1880년 무등산 자락이 길게 늘어진 전남 화순군 등광리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40세에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이 된 한국의 호세아 이세종 선생이 남긴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것을 권유하는 말이요. 스스로 깨달은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낮이면 종일 성경을 읽고 밤이면 암송하고 다른 책을 일체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깊이 팔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깊이 파고 깊이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믿음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설프게 파면 오히려 의심밖에 남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한 젊은 크리스챤이 체계적인 성경공부 하는 일에 너무 게을렀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에 성경책을 되는대로 펼쳐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날의 말씀으로 받기를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조심스럽게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첫 번째 구절은 “유다는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였습니다. 이 말씀이 그날 그를 위해 주시는 말씀으로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펼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그의 눈에 마주친 말씀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성경을 펴기로 했습니다.

성경을 폈을 때 처음 들어온 말씀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요13:27)였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멀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했고 말씀을 가까이할 때 복된 삶이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삽시다. 말씀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명기 8장3절, 마태복음4장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부터 말씀을 읽으십시오.


출처 : 행복†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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