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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강해12.11
새 부대를 준비하십시오
마가복음 2장 18-22절
< 금식의 의미 >
마가복음 2장 13-17절에서는 세리 마태가 부름 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마태는 부르심에 감동하여 많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예수님을 그 잔치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습니다.
그 좋은 일을 바리새인들은 나쁘게 여기고 오히려 예수님을 비판하며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16절) 좋은 일을 나쁜 일로 만들어 정죄하는 것은 바리새적인 신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 앞에 와서 또 말합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쉽게 말하면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니까 그들의 신앙이 예수님를 따르는 제자들의 신앙보다 더 있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 중의 하나가 겉모습으로 신앙을 비교하고, 어느 한 가지로 신앙을 비교하는 일입니다.
금식이 신앙의 기준은 아닙니다. 금식기도는 잘 하는데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있고, 금식기도는 안 해도 책임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 있다면 저는 책임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 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니까 바리새인처럼 외식과 위선으로 스스로 속게 됩니다.
금식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내 의지와 자아를 버리고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한 후에는 절대 자기 공로, 자기 자랑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금식 후에 여기저기 그 금식을 자랑하면 그것은 정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 자랑을 하려고 합니까? 은혜가 없고 신앙의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신앙의 내용이 있는 사람은 별로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항상 ‘척 하는 위선’이 빠지게 됩니다. 그런 ‘척 하는 삶’이 체질화되면 나중에서 그런 삶이 굳어버려서 정말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얼마나 불행인 줄 모릅니다.
< 판단하지 말고 헌신하십시오 >
참된 신앙생활은 금식하고, 요란하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최선의 봉사를 하면서 신랑 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을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자기 율법을 가지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때리고 정죄하는 삶이 아니라 신랑이 되신 주님과 함께 기뻐하면서 주님의 아름다운 삶을 전파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14;17).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하는 것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신앙을 따지지 말고, 의로운 삶이 있고,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삶으로 신앙을 따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밝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처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중에서도 진지한 자기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에는 금식하며 애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입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진지하게 애통하는 심령이 되어야 하고, 우리도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도 승리를 확신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십자가와 부활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율법적 사고를 가진 옛날 부대가 아니라 이해하고 덮어주고 사랑하는 복음적 사고를 가진 새로운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형제와 이웃들을 보면 연약한 부분이 보입니다. 그러면 비판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 형제의 연약한 부분을 감싸 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입보다는 기도하는 입이 아름답습니다. 옛날 습성대로 산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질이 나갈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뜻과 복음의 은총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엽적인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리 내어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면서 서로 용납하고, 연세 드신 분은 찬송가를 부르고, 젊은 분들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서로 용납하고, 어떤 분은 물질을 드리고, 어떤 분은 시간을 드리면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때 바로 그러한 삶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일 것입니다.
< 새로운 부대를 준비하십시오 >
그런 삶을 위해서 우리는 낡은 가죽 부대를 잘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권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낡은 가죽부대는 외식과 위선과 음모, 그리고 이기주의와 미신적 사고, 진실하지 못한 자기중심적인 태도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위협적인 낡은 부대는 무엇입니까? 질적인 것보다 양적인 것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모습도 낡은 가죽부대입니다. 예수님의 생명력과 그 삶은 희미한 상태에서 금식을 보고 신앙을 평가하는 태도! 그런 태도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태도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즉 새 포도주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낡은 부대를 버리고 새로운 부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속에 계시지 않고, 진실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미움 속에 계시지 않고, 사랑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편한 마음속에 계시지 않고 화해하는 마음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망적 생각 속에 계시지 않고 희망적 생각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탐욕스러운 마음속에 계시지 않고 헌신하는 마음속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담을 그릇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은혜를 원하면 사랑과 신뢰와 섬김이라는 새로운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새 포도주’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주님은 ‘새로운 부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새 포도주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 포도주는 언제나 우리 곁에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부대가 준비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깨끗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라는 새로운 부대에 더욱 크신 은총을 담아주실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최선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으시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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