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94.“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아들 2014. 2. 20. 17:30

 

“믿음의 분량대로”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

       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분량(分量) = 부피나 수효가 많고 적음과 크고 작은 정도.

내게(사도 바울에게=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목사에게) 주신 은혜(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너희(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나라 모든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분량]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이 서로 다릅니다.


학생들도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있듯이, 기독교인들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청년’과 ‘장성한 사람’ 등이 있습니다.

나이가 60살이라도 교회에 처음 나온 초신자는 영적으로 ‘어린아이’며, 나이가 20살이라도 말씀과 기도의 분량이 많고 신앙이 본이 되는 성도라면,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좌우편 강도’(행악자)에 대한 [믿음의 분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

        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비방(誹謗) = 남을 헐뜯어서 욕함.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한 강도’는(성경에는 ‘좌편 강도’라고 하지 않았음) 예수님에게 “네가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가 아니냐.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십자가에서 한번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 보라”고 비방을 하였습니다.


눅23:40-43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

        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

        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상당(相當) = 알맞음. 어지간함.

보응(報應) = 선악이 그 인과에 따라 되갚음이 됨.

다른 ‘한 강도’는(보통 말하기를 ‘우편 강도’라 함) ‘좌편 강도’(구별하기 위해 ‘좌편 강도’라고 함=성경에는 ‘좌편’과 ‘우편’에 대한 깊은 뜻이 있음)를 꾸짖어 가로되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강도짓)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예수님)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다스리시는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가(“‘우편 강도’와 ‘좌편 강도’라는 말이 성경에는 없다.”고 하며 트집 잡기 않기를 바람),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예수님과 복음을 위한 일)은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우편 강도’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와 전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십자가에 못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우편 강도’는 지켜 행하고 싶어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백 보좌 심판하시는 날에 ‘우편 강도’에게 “너는 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복음을 전하라).’는 나의 명령을 행하지 않았느냐?”라고 책망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편 강도’에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다니면서 복음을 왜 전하지 않았느냐?”라고, 책망하시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레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성물(聖物) = 하나님 앞에 구별된 거룩한 물건.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성물이니, 기독교인들은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우편 강도’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칠 수가 없으니, 이 계명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은혜(恩惠) = 베풀어주는 혜택.

고난(苦難) = 괴로움과 어려움.

예수님을 위하여 너희에게(기독교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예수님)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를(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고,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그리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기도 하는(고후11:23-27) 이러한 고난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이러한 고난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는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아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딤전6:18-19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

         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

         을 취하는 것이니라.


부(富) = 넉넉하다. 재산이 많다.

동정(同情) = 남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줌.

선한 일(주의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넉넉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이것이 장래에(죽은 후에) 자기를 위하여 참된 생명(영생)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편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으니,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넉넉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가령 ‘우편 강도’가 재산이 있고 “그 재산을 나누어주고 싶다.”고 해도,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는 나누어줄 수가 없으니,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려고 힘쓰라.”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은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

        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시인(是認) = 옳다고 인정함.

‘우편 강도’가 십자가에 몸은 못 박혀 있을지라도, “예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는 이 계명은 지킬 수가 있습니다.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더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입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이 계명은 지킬 수가 있습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우편 강도’는, 자신의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처하여,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우편 강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은 마음과 입으로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니,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우편 강도’라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

       개시키러 왔노라.


회개(悔改) = 전에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


‘우편 강도’는 몸은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을지라도, 이전에 지은 강도짓과 그 외의 다른 죄들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기도는 드릴 수가 있으니,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지킬 수는 있습니다.


겔18: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

        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찌니라 너희는 돌이

        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

        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기독교인들은)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우편 강도’도(성경에는 ‘우편 강도’라는 말씀이 없지만, 편의상 ‘우편 강도’라고 함)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전에 지은 강도짓과 모든 죄에서 떠나면,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지라도 그 영혼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편 강도’는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지만,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는 있고』 또『주의 이름을 부를 수는 있으며』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도는 드릴 수가 있으니』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자신의 영혼은 구원을 받아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편 강도’와 그리고 오늘날 ‘임종하기 직전에 이불위에 누워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그 [믿음의 분량]이 같은 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임종하기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지은 죄를 중심으로 회개하고 최선을 다하면, ‘우편 강도’처럼 낙원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간교한 마음으로 “임종하기 전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최선을 다하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나는 내 마음대로 이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우편 강도’처럼 낙원에 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간교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간교한 자들에게는, 임종하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간교한 사람들은 교통사고 등의 여러 가지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갑자기 죽게 하여, 임종하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주시지 않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 이런 간교한 생각을 하신 분이 있으시면, 지금 당장 그런 간교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같은 분은 ‘우편 강도’와는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이번에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과 같은 분의 [믿음의 분량]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마19:27-28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

        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여 “우리가(열 두 사도들이) 모든 것(직업과 부친)을 버리고 주(예수님)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사도들은(지금의 목사들은) 모든 것(직업과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말씀=성경말씀)을 좇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사도들의(목사들의) [믿음의 분량]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상급이 있습니다.


보좌(寶座) = 임금이 앉는 자리.

예수님께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예수님께서 재림하여 다스리는 세상이 되어) 인자가(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왕권을 가지고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열 두 사도=지금은 성경적 목사들)도 열 두 보좌에 앉아 백 보좌 심판의 날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지금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목사들과 교인들을) 성경(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리라(요12:48).”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른 상급입니다.


눅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

        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께서 “너희(열 두 사도=성경적 목사들)는 나(예수님)의 모든 시험 중에 나와 항상 함께 한 자들인즉(모든 시험에 함께 할 생각은 하지 않고, ‘환난 전에 공중으로 들림 받는다.’는 간교한 목사들은 자격이 없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예수님께서 재림하여 다스리는 나라)를 내게(예수님에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을=지금은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을)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열 두 사도들은 모든 것(직업과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말씀=성경)을 좇아야 하며, 예수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믿음의 분량]인 것입니다.



만약에 열두 사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우편 강도’와 같은 차원(믿음의 분량)의 신앙을 하였다면,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시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24-30)라고 엄하게 책망하였을 것입니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기독교인들은 각자가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성경 지식)과 ‘믿음’이 자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전  화: (042) 9 3 6 - 7 5 9 9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

출처 : 대언자 블로그
글쓴이 : 전대복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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