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네가 나를....
시편50:14~15
2014년 1월 12일 장안중앙교회 선교헌신주일 최일환 목사 설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설교:
여러분은 오늘 이 시대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계시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2014년 오늘,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어떤분은 평화의 시대라 합니다. 그러나 어떤분은 암흑의 시대라 합니다.
또 어떤분은 번영의 시대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분은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의 세대라 할 것입니다.
어떤시대일까요? 우리나라만 보지 마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인류가 살고 있는 전 지구를 믿음의 시각에서 보세요. 수백 년 후에 우리 후손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겠으나 저는 오늘의 시대를 환난의 시대라고 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저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성경적 시각, 그리고 영적인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재난과 각종 테러와 전쟁사건,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각종의 비윤리적인 현상들은 성경이 말하는 말세징조가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때는 분명 환난의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 환난의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시편 50편은 아삽이라는 사람이 지은 시입니다. 그는 다윗이 법궤 앞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세운 성가대장입니다. 그는 이 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 없는 율법주의적인 예배,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듯한 화법으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말세를 향해 치닫는 이때 우리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까요?
1. 올바른 예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 환난의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올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른바 예배에 대한 성공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실패하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예배가 실패하면 우리 성도의 신앙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배를 예배답게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주님이 원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 하나님이 만족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뭘까요? 오늘 본문 14절을 보세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그렇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올바른 예배는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제물을 많이 드리면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가 드리는 모든 제물은 원래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물을 아무리 많이 드린다고 해도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는 것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레위지파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 중에 아론의 자손은 제사장 가문이 됩니다. 그리고 아론 자손들 중에 아삽 자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 찬양하고 영광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레위지파고 아삽자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원을 완성하신 후로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자격과 의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고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보면 때론 가슴이 아픈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예배의 자리에 있으나 기도도 안하고 찬양도 안 합니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거나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방청객처럼 남이 드리는 예배를 구경을 합니다. 그런 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예배를 관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똑같이 앉아 예배를 드렸어도 그런 자의 예배는 하나님이 안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환난의 때 올바른 예배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환난의 때 우리는
2.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14절 하반부를 보세요.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그렇습니다. “서원”이라고 하고 “맹세”라고도 하는 그것이 자켜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약속 속에서 살아갑니다. 만약에 약속이 없다면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법률도 약속입니다. 나는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몰랐어도 법을 어겼으면 벌을 받게 됩니다.
저는 중국에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슴이 철렁일 때가 몇 번 있습니다. 교통신호를 사람들이 안 지킵니다. 신호등을 무시합니다. 제가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갔을 때 학생들이 빨간 등인데도 건너가는 것입니다. 제가 stop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메이꽌시 메이꽌시” 하고 저를 붙잡고 건너가려 합니다. 안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들이 놀랬습니다. 그리고 파란불이 들어오자 건넜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한 시간을 교육했습니다. 신호등도 약속이다. 그것을 안 지키면 발전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혼인 서약을 기억합니까? 그것 잊어버렸다고 법에 처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혼인 서약은 오직 한 남편, 한 아내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한 서약입니다. 그런데도 그 서약대로 살지 않고 이 여자 저 여자와 자기 맘대로 살려하면 간통죄로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간통죄를 폐지하려는 사람들의 의도가 이상합니다.
여러분은 세례 받을 때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했나요? 기억하시나요?
세례 받을 그때 하나님하고 맺은 약속은 다 잊어 버렸어도 약속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다 잊어 버려도 되나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겠노라고 약속한 그 약속을 어기면 하나님은 그냥 두질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인간이 언약을 맺은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언약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 속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뭘까요? 하나님이 내게 약속한 약속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어떤 것이 있나요? 그 약속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서원을 갚으라” 한 부분을 “Fulfill”이라 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행하다”“채우다”“만족하다”라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맺은 것 이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는 쉽게 하나님과 약속을 합니다.
“나를 고쳐주시면...” “나를 도와주시면...” “나를 승진시켜 주시면...”
이런 것을 보고 “서원기도”라 합니다. 반드시 지키겠노라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그 약속을 금방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나는 잊었어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변함이 없이, 조금 늦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맺은 약속은 꼭 이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 하나님과 맺은 서약을 잊지는 않고 계시나요?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환난의 때 우리는
3. 하나님께 영혼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이 환난의 시대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정말 힘써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금 환난의 때를 살아갑니다. 이 환난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어떤 고통인가요? 물질이 부족하여 고통인가요? 먹고 살기 힘들어 고통인가요?
뭐 때문에 고통인가요?
시81:7절에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느냔 말입니다. 그것은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려는 사람이 당하는 고난이 있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 고난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또 하나, 우리가 이 환난의 때 부르짖어 구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뭔지를 알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셨나요?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우리를 먼저 불러 주셨나요? 그 깊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게 먼저 주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 하나님은 나를 먼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주신 사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 15절을 보세요.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저는 이 구절을 3주를 묵상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신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왜 하나님께 부르짖을까요? 그것은 영혼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 하면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그 환난에서 구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수많은 곳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죄에서 구원해 주셨고 수많은 질병의 위기와 고난 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나를 그렇게 구원해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방법, 그것이 뭘까요?
내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이 영화롭게 될까요?
아주 많지만 새해를 맞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은 이것입니다.
1) 구원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격도 없고 행함도 없는 나를 먼저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인 되어 마땅히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의 빚을 졌습니다. 그 은혜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1: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했습니다.
이 빚은 바울이 헬라인이나 유대인들에게 진 빚이 아닙니다. 바울이 하나님에게 진 빚입니다.
과거 그가 하나님께 얼마나 악하게 했습니까?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찾아와 주셨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그 빚을 갚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빚진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었는데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오늘날 몸된 교회에 일꾼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은혜의 빚을 아는 사람은 갚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 하반부를 보세요.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여기 서원이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빚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선교헌신주일로 주님 앞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저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 전도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과 같은 대 명령이 선교입니다. 마28장 마지막 부분을 보세요.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장 마지막 부분도 보세요.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할렐루야!
여기뿐만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곳에서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선교인 것을 언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선교와 전도는 빚을 갚는 방법입니다.
지난주에도 어느 선교사에게 후원 요청 메일이 왔습니다.
매달 3만원만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한 학생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3만원은 작은 것이나 그들에게 3만원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2)내게 붙여주신 자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믿는 사람은 몇 사람인가요?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며 몇 사람이나 되나요? 가족 중에, 친구 중에, 그리고 직장 동료 중에 과연 몇 명이 믿고 몇 명이 안 믿고 있나요?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은 뇌두세요.
믿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여러분에게 붙여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을 왜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내게 붙여주셨나요? 그것을 눈치 채야합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여러분 옆에 붙여 주신 것은 그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빚을 갚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주변 사람만 붙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내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사를 보내고 신학교를 세워서 일꾼을 길러 내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마28: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했습니다. 가서 전해야 합니다. 그게 주님의 명령입니다.
또 막16:15절에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가만히 앉아서가 아닙니다. 다니며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 가면 좋지만 못갑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택한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파송했듯이 우리 교회도 인도에 양재일 선교사를 보냈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도금수 선교사를 보냈고, Z국에 신학교를 세워서 일꾼을 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최목사의 일만이 아니고 여러분의 일입니다.
제게는 두아들과 한딸 외에 여러분이 모르는 또한 딸이 있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사브라나 하마드 무웅와나”입니다. 그냥 사브리나 라고 부릅니다.
제가 7년 전에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통해 탄자니아에 5세된 아이를 양녀로 삼고 매월 3만5천원씩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 후원으로 13살 된 지금까지 건강하게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에 쓰임 받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몇몇 분들에게 좀 서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는 사역이 저 혼자의 사역인줄 알고 관심도 안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구경만 하십니다. 아닙니다.
제가 교회에서 목사로서 하는 사역 전부는 교회가 하는 사역이고 그 사역은 여러분이 돕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사역인 것입니다.
제가 교단 총회선교회에서 하는 사역은 장안중앙교회가 하는 사역입니다.
제가 Z국에서 신학교를 교장으로 섬기는 것은 여러분의 사역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 사역을 통해 엄청난 일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3) 상이 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셨고 그 명령에 충성을 다하면 상을 주신다고 성경에 수없이 많은 곳에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고전 3:8절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또 고전9:24절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빌3: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은 수많은 곳에서 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해 놓고 상이 없다면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리고 그 상은 어떤 것일까요? 그 상은 이세상의 상과는 달리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상을 받는 우리도 기쁘지만 상을 주시는 하나님도 기쁜 것입니다.
자식이 상을 받아오면 받는 자식도 기쁘지만 그 상 받는 자식 부모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 환난의 시대에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건저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가 없었다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사명을 위해 목숨 걸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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