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에베소서 강해5> 하늘의 복 주신 주를 찬양하라(엡1:3)

하나님아들 2014. 1. 11. 13:50

<에베소서 강해5>

하늘의 복 주신 주를 찬양하라(엡1:3)

 

  하늘에서 온 편지를 쓰면서 1~2절에서 축복의 인사를 끝낸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진리를 전해주기 위해 비로소 입을 뗍니다. 대개 처음 입을 뗄 때 하는 말에 큰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역시 3절 이하에서 이 에베소서의 대주제에 해당하는 진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서론 부분에 해당하는 본문에서 오래 머무는 것을 이해하시고, 진지하게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라고 한 말씀은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형적인 찬양구입니다. 너무너무 좋은 일이 있어 감격했을 때 그 일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감탄사를 발하게 되는데 찬송하리로다가 바로 그런 감탄사입니다. 너무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 있을 때 말은 안 나오고 감탄사만 계속 나오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찬송하리로다.” 다음에 이어지는 얘기는 아주 대단한 내용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찬송과 관련하여 몇 가지를 알아보고 그 대단한 진리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기독교는 체험적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체험이고 하나는 지식입니다. 순서적으로 보면 체험을 먼저 주시고 지식을 후에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를 먼저 경험시켜 주시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찾아오셔서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셔서 찾아오신 분,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체험적입니다. 그러나 체험만 중요시해서는 안 됩니다. 체험은 지식으로 검증이 되어야 하고 입증이 되어야 합니다. 체험과 지식이 서로를 보완해 주어야 올바른 체험이고 올바른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둘 다 추구함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찬송은 은혜의 경험 후에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찬송은 저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 찬송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 받은 마리아의 Magnificat을 보십시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을 보십시오. 유달리 많은 은혜를 경험한 바울의 서신들을 보십시오. 그의 서신들은 감탄사가 아주 많습니다. 찬송은 이렇게 은혜의 경험 뒤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에서 찬송을 은혜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감정을 흥분시키고, 심지어는 엑스타시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것은 은혜를 조작하려는 불건전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묵상하는 일을 먼저 하십시오. 은혜와 진리를 경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그 경험 후에 터져 나오는 찬양으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주시는 목적은 찬송을 받기 위함입니다. 사도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주시는 목적이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엡1:6). 이 말씀은 여러 의미를 내포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찬양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구원받은 성도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할 때 가장 하나님 자녀답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천국 문을 열어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때 영광스러운 빛과 고조된 찬양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열면 찬송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입을 열면 찬송이 흘러나오고, 여러분의 방문을 열면 찬송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집회용 찬양만 부르지 말고 은혜의 영광을 늘, 항상 감격적으로 찬미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사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역시 그 복을 우리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 그 복을 받은 자의 찬양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곧 ‘구원’이라고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를 가진 우리들은 복하면 육신이 잘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땅에 속한 신령하지 못한 복”입니다. 육신적이고, 물질적이고,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추구하지만 사실 이런 복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암에 걸려 죽게 된 사람은 돈 벌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습니다. 돈을 다 써서라도 살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인간은 죄에 매여 있고, 사망에 매여 있다고 말씀합니다(롬3:23, 6:23).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죄와 사망과 저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초청을 받고도 머뭇거리고, 거절합니다. 죽을 몸을 이끌고 돈 벌러 나가고, 남자 여자 만나러가고, 인기 구하고 성공을 구하기 위해서 나돌아 다닙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부르짖었던 예루살렘의 군중들처럼(행2:37) 그렇게 부르짖으며 구원의 길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길을 알고 그 길을 걸으며 주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놀랍게 격상된 우리의 신분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하늘은 구름이 떠다니는 대기권입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를,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셋째 하늘의 소속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엡2:6, 빌3:20).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지라도 내 영혼 저 하늘을 디디며 사네.”라고 노래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생각, 하늘의 가치관, 하늘의 사고방식, 하늘의 행동방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지식을 새롭게 하고(골3:10), 그 지식으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엡4:23, 24). 그럴 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복은 가지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성삼위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전편 설교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는 원천적 공급자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본본 3절도 바로 그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이는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 주신다,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하는 자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와 연합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성삼위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이미 주신 완전한 복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복이 완전 충족된 구원, 부족할 것이 없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은혜가 모든 걱정거리를 해결하고, 모든 부족을 충족으로, 모든 싸움을 종식시켜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한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은 완전충족, 완전무결, 영원무궁한 구원이고, 이미 다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겨우 살아갈 정도로 구원을 주고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오면 나머지를 주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신 것입니다. 이를 아는 성도들은 복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즘 복 받으려면 기도하라, 봉사하라, 헌신하라, 헌금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미 다 주신 구원의 복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주를 믿고 구원받고도 뭔가 부족한 것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는 것은 정말 한심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이 무지의 재앙입니다. 이 시대는 환경재앙보다 더 무서운 무지의 재앙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나십시오. 이 세상 신이 살포한 거짓된 교훈에 빠져 혼미케 된 여러분을 깨울 복음의 영광스런 광채를 구하십시오(고후4:4). 복음의 영광, 은혜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경험하여 찬송과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 행복한 글밭 / 책읽기 운동본부
글쓴이 : 작은 사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