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이 좋은 성도를 만든다. 삼상2:12-17, 눅22:39-43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면서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예수와 가룟 유다의 모델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의 모델로 피에트로 반디네리라는 한 성가대원을 발견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피에트로는 예수의 모델이 된 후, 로마로 음악 공부를 하러 가서 나쁜 친구의 꼬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한편 예수의 모델을 구해 큰 성과를 보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 장벽에 부딪쳤습니다.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의 얼굴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 빈치는 마침내 유다의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델은 다름아닌 예수의 모델이 되었던 피에트로였습니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어떤 생을 사느냐에 따라 예수도 되고 유다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가지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지만 나뿐 습관을 가지고 살면 결국 실패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에게 습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성공과 축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반대로 나쁜 습관은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고 패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녀 교육의 핵심은 좋은 습관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만들어주면 자녀는 좋은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좋은 습관이 좋은 성도를 만든다.”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좋은 습관은 거룩한 습관입니다.
1)성도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살전 4:3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거룩함을 명령하셨습니다. 레 11:45에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기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거룩하게 보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 재림하시면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좌 앞에 서야 하는데 그 때 거룩하여 흠 없는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살전 5:23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바라보는 것, 추구하는 것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이 구별되어야 하고, 말하는 것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또한 행동도 구별되어야 하고, 상황에 대한 반응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2)성도가 거룩함을 버리면 하나님께도 버림을 받습니다.
오늘 구약 본문에서 소개하는 엘리 가정은 거룩함의 실패가 주는 교훈입니다. 엘리는 사사시대 말기의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 되고 사사가 되려면 그만한 자질과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엘리는 젊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면서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영육이 혼미한 상태에서 살면서 하나님 보다는 자녀를 더 사랑했습니다. 자녀들이 거룩함을 버리고 죄의 길로 빠지는 것을 보고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보다는 현실 중심의 삶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 가정과 국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에스겔 18:24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했습니다.
이 일은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신앙을 버리고 세속적인 죄에 빠지게 될 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 숭배에 대한 습관을 버리지 못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였습니다.(고전8:7) 또 규모 없이 행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책망하였습니다(살후3:6)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는 습관을 책망하였습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렘22:21)했습니다.
3)성도는 거룩한 습관을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오늘 신약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쫓아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종종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항상 좋은 습관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눅2:42절 전례에 따라 성전에 올라가셨고, 눅22:23절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고, 막10:1절 전례대로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행10장에는 고넬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10장2절 말씀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기록된 말씀을 보아서 고넬료는 구제와 기도를 습관적으로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3:1절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이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6: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했습니다. 고넬료, 베드로, 요한, 다니엘 모두가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봉사하고, 교제하는 것, 구제하는 것 등의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면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됩니다. 사도행전2:46-47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습관이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에게는 어떤 습관이 있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습관에 열심히 있는지 아니면 나뿐 습관이나 게으름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거룩한 습관을 회복하는 성도가 됩시다.
2.좋은 습관은 성령의 인도 받는 습관입니다.
1)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도를 거룩하게 합니다. 육의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고 멀리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짖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성령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터치를 경험하는 사람은 거룩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사무엘 선지자를 만납니다. 사무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성령으로 충만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때 사울도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울에게 신비로운 체험이 나타납니다. 삼상 10:6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이 체험할 것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사울이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구약에 보면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름입니다. 종이를 물속에 넣으면 종이 속에 물이 스며들어 부풀거나 헤어져 못쓰게 만듭니다. 그런데 기름 바른 종이는 물속에 들어가도 물이 기름 때문에 종이 속에 스며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세상 속에 살기 때문에 세상 것들이 사람 속으로 들어와서 사람을 세속화 시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름과 같은 성령의 역사 때문에 사람이 세속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거룩한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불로 표현합니다. 불은 우리 안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 성결하게 합니다.
2)성령의 충만함이란 신전의식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사람 앞에 서 있다는 사실 보다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신전의식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보지 않는 집 안에서 동침을 하자고 유혹했으나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요셉은 그 현장에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에게 이런 신전의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으로 충만하고 거룩한 행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시골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불신자였지만, 아들은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는 도중인데 무밭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목이 말라 안 되겠다. 무 한 개 뽑아 먹어야겠다. 너 여기서 누가 오는지 잘 보고 있어라” 하고 무 밭에 들어가 다리통만한 무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쿠, 큰일 났구나’ 싶어 빨리 밭에서 나와서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이놈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남자가 간이 커야지.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고 다시 무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뽑으려다가 뽑지 못한 그 무를 다시 뽑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밭에서 급히 나와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이놈아. 누가 본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에 달과 별이 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며 다시 무밭으로 들어가서 그 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정말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번에도 헐레벌떡 나와서 “자꾸 누가 본다고 그래?”라고 말하자, 아들은 “하나님이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쯤 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무를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고 그렇게 할 때 거룩한 행실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성령의 충만함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생활입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기를 원하시지만 문제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그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생활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거룩한 행실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데 가장 강력한 방해요소는 우리의 육신입니다. 육신은 내 생각과 내 감정 그리고 내 의지를 통해서 성령의 인도에 반항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고, 성령으로 거룩한 행실을 가지려면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아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습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노라”고 했습니다. 롬8:5-8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육신을 부인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좋은 습관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1)나뿐 습관의 결과가 가져오는 파장의 심각성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모습에 대해 삼상3:1-2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단절되면 대제사장으로는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단절이 되었다면 그는 성도가 아닙니다. 모든 분별력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행할 때 삶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영적으로 잘못되었을 때 회막에는 질서가 없어집니다. 나라는 힘을 잃어 갔습니다. 가정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가장이 하나님께 바로서면 그 가정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엘리는 가장이지만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삼상2:12에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가출한 자녀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모태 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오래 동안 신앙생활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긍정하시겠습니까? 엘리의 아들이 불량하다는 말은 도덕적인 것 보다는 영적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이 불량하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지 못하고 긍휼과 용서가 없이 교만한 것이며, 이런 요소를 가진 목사나 장로 등 누구든지 간에 불량한 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가 불량한 자입니다. 성경에 살인, 강도 윤락여성 등 큰 죄를 범한 자를 보고도 불량하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 입으면 용서 받고 구원 받는다고 했습니다. 법궤를 알지 못하면 불량한 자입니다. 법궤의 뜻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스스로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자가 불량한 자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법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죽고, 엘리 제사장도 충격으로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도 아이를 낳고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고 이름을 짓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악한 습관을 고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2)행실의 거룩함도 거룩한 습관에서 옵니다.
눅4:16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평소의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예배생활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몸에 익숙해진 습관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행실의 거룩함이 습관에서 오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거룩한 습관의 훈련입니다. 거룩한 행실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거룩한 습관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초신 자는 세속적인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그 세속적인 습관을 거룩한 습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필요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습관을 거룩한 습관으로 변화시키는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몇 년을 다녀도 변화가 없고, 직분을 받아도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습관은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래된 습관일수록 바꾸기가 더 어렵습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는 쉽게 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은 지 1년 정도 지난 나무는 뿌리 때문에 쉽게 뽑을 수 없습니다. 심은 지 이미 오래된 나무는 힘만으로는 뽑아낼 수 없습니다. 습관이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선이든 악이든 습관을 들인 후, 그것이 오래되어 타성에 졌어버리면 그 만큼 바꾸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습관을 바꾸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은 바꿔야 합니다. 바꾸지 않으면 거룩한 삶이 불가능합니다. 거룩한 삶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3)거룩한 습관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노력으로 됩니다.
성도는 무엇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에 대한 분별력을 주고 속된 것을 버리게 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는 시간 그리고 설교를 듣는 시간 또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에 성도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 17:17에서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엡 5:26,27을 보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 본문의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딤전 4:5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말씀을 양식으로 먹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처럼 기도도 기도하는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빛이 나옵니다. 그 빛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으로 봉사하고 섬기며 구제하고 전도하는 선한 일에 힘쓸 때 거룩한 습관이 생기게 되고, 그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장래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습관이 좋은 성도를 만듭니다. 성도가 믿음의 거룩한 습관을 가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엘리의 가정처럼 됩니다. 거룩한 습관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안입니다. 거룩한 습관을 생명처럼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경건의 연습에 힘씀으로 거룩한 습관이 체질화 되어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으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영광중에 맞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 9. 1.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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