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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섯 번째(돌림병) 재앙

하나님아들 2013. 8. 23. 15:49

다섯 번째(돌림병) 재앙
본 문 : 출9: 1 - 7 2013/08/04주일 낮

한국의 기독교는 비약적인 놀라운 성장을 해 왔지만, 반면에 오늘처럼 교회에 대해서 거센 비판과 도전이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교회는 커져가고 성도들은 많아지는데, 세상이 교회를 항해서 오히려 손가락질과 비판을 쏟아 냅니다. 초대교회는 비록 미약한 가운데 출발했지만,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사도행전 2장은 증언합니다. (행2:47)

바로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는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4번의 재앙을 내렸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섯 번째 재앙인 돌림병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이는 당시의 바로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삶의 방식, 바로와 같은 교만함과 사악함을 버리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교회,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라는 사실입니다.

첫째,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돌림병 재앙은 지금까지 있었던 4차례의 재앙과는 달리 생명을 거두는 재앙입니다. 첫 번째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 두 번째 개구리 재앙, 세 번째 이 재앙, 네 번째 파리 재앙 모두 생명을 죽이는 재앙은 아니었습니다. 삶에 불편을 주고 자연환경의 변화에 의해 고통을 주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재앙은 무서운 돌림병을 통해 가축의 생명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재앙의 강도를 높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생명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생사여탈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 주지 않으면 바로 네 생명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가축이 죽는 재앙을 통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바로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태양과 하늘의 신 호루스의 후계자이며 태양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성한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신이 주신 질서를 수호할 임무가 있었고 고위 관리들은 바로를 도와 그가 우주의 조화와 정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좌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영역을 소유하고 백성의 삶을 지배하며, 사방의 적들을 물리치는 전능한 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이 백성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교만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나라도 달라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생축을 일시에 죽이는 재앙을 통해 바로 네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내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화와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신처럼 군림하는 것은 그의 군사력과 경제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순간에 그것들을 거두어 버립니다. 가축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재산입니다. 말은 전쟁용으로 사용되는 것이고 나귀는 단 거리 수송용, 약대는 장거리 수송용으로 이용되는 교통수단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 바로는 권력을 유지하고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순간에 군사력과 경제력, 교통에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전국에 있는 가축이 다 죽으면 우연한 질병 때문에 그랬다고 할까봐 애굽의 가축만 죽이고 이스라엘의 가축은 살려 놓으십니다. 이는 화도 복도 모두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히 애굽인들은 황소의 신 아피스가 힘과 풍요를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황소를 죽이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를 상징하는 암소의 여신 하토르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가축들을 여지없이 죽이십니다. 그것들이 풍요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140년 만에 최악의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지진과 폭우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자연재해를 통해 엄청난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예견합니다. 부와 생명과 명예라는 것, 별것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마치 겉은 천사인데 속은 바로와 같은 모습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얼마나 미약하고 무상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뭐라고 인생을 정의했습니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모세는 120세 되어 인생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이렇게 대언했습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신32:39)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상하게도 하고 낫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고 억울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낳은 한나가 어떻게 고백합니까?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6-7)

인생에 복 받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시편 128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수고한대로 먹습니다. 형통합니다. 가족이 잘됩니다. 시온에서 복을 받으며 평생 예루살렘의 번영을 볼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지 못해도, 비록 가난하여도, 비록 인기가 없고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복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듭해서 바로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만이 살길이라고 네 차례의 재앙을 통해 보여 주셨음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은 완강했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또다시 다섯 번째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이때는 지금까지의 네 가지 재앙과는 달리 정확하게 기간을 정하여 말씀하시는데, 5절을 보시면, 내일 행하신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하루의 시간적 여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어떻게 합니까? 여전히 보내지 않습니다. 사탄에게는 하나님은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어떤 악한 사람일지라도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인간은 다 부족합니다. 쉽게 변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면 됩니다. 탕자처럼 타락할 수 있지만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넓은 가슴으로 품어 주십니다.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테일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임스라는 청년이 찾아와 일거리를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는 그 청년에게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청년은 건초 저장 창고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서 아주 열심히 일을 합니다. 체격도 건장하고 인품도 있고 정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인집 딸이 그 청년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덧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딸을 설득했지만 딸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불쌍해서 도와주었더니 감히 내 딸하고 연애를 하다니.....” 괘씸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을 쫓아냈습니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흘러서 테일러는 옛날 그 청년이 일하던 건초 창고를 깨끗이 드러내고 청소를 하던 중 기둥에 아주 오래 전에 새겨진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제임스 가필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제임스 가필드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테일러는 대통령이 될 사람을 사위로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창조주 아버지로 영접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지나간 후에 후회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 거부가 될 수 있는 기회,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는 기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 승진할 수 있는 기회, 좋은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기회, 봉사할 수 있는 기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 사랑할 수 있는 기회, 용서할 수 있는 기회, 헌신할 수 있는 기회,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기회 등등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붙잡는 것은 성도의 선택입니다.

셋째, 구속의 증거를 주실 때 그 증거를 통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정한 시간이 되니까 애굽의 가축들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어떻게 합니까? 7절에 보면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 보내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축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를 확인합니다.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죠. 하나님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가축이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를 확실히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간섭하고 계시고, 자신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증거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여전히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교만하고 완고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자신 백성들 가정에서 소중한 재산을 잃어버리고 곡하는 소리를 외면합니다.
동물 애호가들은 이렇게 동물에게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을 보십시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물을 실험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실험용으로 쥐, 토끼, 개, 고양이, 사슴, 말, 염소, 양, 소, 돼지,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곤충 등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최소 6억 3천만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 해 국내에서 실험대에 오르는 동물은 한국실험동물학회 추산치로 약 500백만 마리입니다. 쥐는 일 년에 미국과 일본에서만 5천만마리 사용되고 있고요. 음식과 알레르기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알레르겐을 함유한 음식을 투여, 생후 14주 된 강아지들이 설사와 탈모, 가려움증에 시달리다가 사망합니다. 심각한 체중 변화가 간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서 멀쩡한 고양이들의 난소를 제거 한 후 즉시 고칼로리 음식을 강제 급여, 과체중을 만든 후 또다시 급격한 체중 저하를 유도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기본 칼로리의 25%만 급여하여서 7, 8개월을 굶주리게 합니다. 또한 인간이 충격에 얼마나 견디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 돼지에게 5만 볼트 전기 충격을 주어 쓰러지게 합니다. 이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실험을 인간들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왜 동물들을 잔인하게 다루며 실험용으로 죽이는 것입니까?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약품 안전테스트하고, 화장품 독성 테스트를 하고, 노화테스트, 각종 질병 테스트, 심지어는 심리테스트를 위해서, 즉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축 돌림병 재앙을 통하여 바로에게 “가축이 죽음으로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증거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주님께서 돌아가셨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이 궁극적으로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10번째 재앙은 어린양이 죽음으로 장자를 살리는 것 아닙니까? 그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증거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 어린양을 통해서만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라고 외쳤습니다. 죄를 용서받고 살 수 있는 길은 어린양의 대속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길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를 길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 길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사화복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창조주 아버지로 고백하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사랑의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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