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되
에베소서 1:2
(여는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주일입니다. 올해에 사랑하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그리고 가정이, 일하시는 일터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다,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받으시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새해 아침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캐시미어 산 위로 일출을 보러 올라갔습니다. 가면서 말했습니다. "일출 보면서 소원 빌지는 말아." 해를 우상처럼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 대접할까봐 그런 당부를 했습니다. 해도 피조물이죠. 다만 솟아오르는 새해 첫날의 태양을 보면서, 한 해의 삶을 다짐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좋겠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해를 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새해라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제의 것이 오늘 지속되고, 어제의 환경과 조건이 그대로 있지요. 그렇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고 새로운 결단을 통해 삶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개념을 허락하시고, 새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어떤 다짐을 하셨나요?
우리의 새로운 다짐이 결실을 맺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가운데서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은 복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불, 베개, 밥그릇, 수저, 대문, 기둥 곳곳에 '복'이란 글자를 새겨놓고 복을 빌었습니다. 모든 신들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조상신, 땅신, 나무신, 바위신, 부처에까지 복을 빌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가 전래된 후에 하나님께도 이 복을 빌었습니다.
그 복들이 어떤 것들이었는가 살펴보면 대체로 '오복(五福)'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유교적 전통에 따른 선비들의 오복은 수(壽, 오래 사는 것), 부(富, 풍요로운 재물), 강녕(康寧,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것), 유호덕(攸好德, 이웃에게 덕을 끼치며 사는 것), 고종명(考終命, 탈없이 수명대로 평안히 사는 것) 다섯 가지였습니다. 민초들의 오복은 조금 달랐습니다. 첫째, 치아, 아마 잘 먹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자손, 옛 어른들은 자손이 많아서 대가 끊기지 않는 것을 큰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셋째는 부부해로, 부부가 함께 오래 사는 것, 넷째는 손 대접할 꺼리가 있는 것, 다섯째 명당에 묻히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오복은 어떨까요? 첫째는 건강(健), 둘째는 배우자(妻, 夫.偶) , 셋째는 재물(財), 넷째는 일(事), 다섯째는 벗(朋)이라고 합니다. 이밖에 관복(官福), 문복(文福), 인복(人福), 처복(妻福) 등의 말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대체로 현세에서 누리는 풍요와 평안함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복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복에는 그것 이외에 더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복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 이상의 더욱 보배롭고 가치있는 복까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누리고 이슬처럼 스러지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누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1. 거짓 신앙 - 기복주의
먼저 용어를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축복(祝福)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축복하는 그 대상에게 복을 내려주시기를 하나님께 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강복(降福)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 축복해주세요." 또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하면 말이 틀립니다. "축복"의 "축(祝)"은 "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누구에게 복을 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 "축복해달라" 하는 말은 잘못입니다. 그 집은 "축복 받았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복"입니다. 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랄 때, 강복을 바란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이 단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잘못된 신앙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복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성경 예레미야 6:12~15, 20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지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제사들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부터 제사장까지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상처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저 "평강하다"라고 위로의 말만 합니다. 백성부터 종교지도자들까지 모두 탐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적들에게 다 내어주고 말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심이 가득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나님이 전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제사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단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백성들이 원하는대로만 말합니다. 그저 "평강하다"라고 축복의 말만 합니다. 상처는 심각하여 죽을 지경이 되어가는데, 당장 수술을 하고 그 곪은 곳을 파내지 않으면 곧 죽을 지경인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평강하다"라는 말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가 깊고 심각해서 수술해야된다고 말하면, 곧 회개하고 삶의 태도를 돌이키라고 말하면, 그 백성들이 싫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인기를 위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거짓 신앙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많은 예배가 있고 열심히 헌금을 하지만 그 마음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금을 드리는 이유가 우리가 바라는 어떤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우리의 탐심 때문이라면, 복 받기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경건한 예배나 헌신이나 헌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을 적에게 내어주어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기복신앙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 받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모양은 거룩해도 실상은 욕심 덩어리입니다. 이 복 저 복 하나님께 요구하는 복도 많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고 신앙생활 오래 하여서 인격이 변화되고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욕망을 따라다니며 욕망을 채우는 것에 급급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탐욕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그 교회에 나온지 몇 년 안에 부자가 되지 못하면 신앙생활 잘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돈 많이 벌기 위한 목적에 불과합니다. 많은 경우 돈을 어떻게 버느냐는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관을 운영하든지 술집을 하든지 돈만 많이 벌고, 헌금 많이 하면 복받았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땅투기에 동참하고 복받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물질의 복도 받아야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흔히 합니다. 매우 그럴 듯합니다.
저도 성도 여러분이 모두 부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물질의 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질의 복이 결코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없으며, 결코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의 믿음은 철저히 부패하고 타락한 거짓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거짓신앙입니다. 처음 동기는 어떻더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무엇인지 알아가면 달라져야 합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복
그러면 기독교는 복과 상관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복의 종교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이 땅에 살게된 가장 큰 은혜는 바로 복음, 복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며, 이 땅에 계속 살게 된 이유도 복음, 복된 소리를 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것이 8복, 여덟 가지 복입니다.
복(福)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후에 첫번째로 하신 일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창 1:28) 노아의 홍수 이후 재창조시에도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창 9:1)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마음이십니다.(렘 29:11)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누리게 됩니까? 신명기 30:19~20입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길을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생명의 길이면 복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면 저주의 길입니다.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는 각각 같은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의 길 복의 길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생명이십니다.
지난번 수련회에서도 보았듯이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생명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시면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떠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기서 생명과 복이 같은 개념이므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복이 있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복도 떠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오시고 우리가 복된 삶을 살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축복하는 말로 "God bless you!" 또는 "May God be with you!"라고 인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게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복의 개념입니다.
역대하 15:2입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게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런 말씀은 성경에 수도 없이 나와 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생명 되시고, 복이 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4:6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5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삶에서 겪는 모든 이지러진 상황이 회복되고 평안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2~14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을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복은 신명기 28:1~14에 나오는 모든 복,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테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한 그 모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아래 에베소서 1:4~6까지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복,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복,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릴 어떤 것도 하나님의 선택받아 하나님 아들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세상의 복을 목적으로 신앙생활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참된 신앙인이 됩니다. 그렇게 인간의 탐욕을 떠나게 될 때, 결과적으로 물질의 다과, 지위의 고저,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풍성하게 누리며 모든 삶에 감사를 알게 됩니다.
마음에 드는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 가 진짜 복입니다.
요한복음 15:7~8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기도에 응답이 있고 능력이 있으며, 우리 삶에 과실(果實), 곧 성품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3. 복 받은 자 복의 통로가 되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런 복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것은 그 복을 이웃에게 전하는 통로,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창세기 12:2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출애굽기 19:6입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도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사장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선민이므로 하나님은 자기들만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을 자기들만 독점하는데 만족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다시 뉴스를 채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온 세상에 흩어졌지만 각 나라에서 많은 영향력을 확보하였습니다. 지난 105년동안 노벨상을 시상하는 가운데 유대인이 빠진 적이 없으며, 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문학상 등 다방면에서 150명 이상의 유대인이 노벨상을 탔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600만명,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구 1500만명에 불과한 유대인이 전세계의 두뇌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미국 정치·경제의 실제적 실력자는 모두 유대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께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도 버림받은 상태에서 회개하여 건짐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자녀 삼으시고 모든 풍성한 복,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십니다. 신약시대의 이스라엘로 삼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의 통로, 근원이 되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우리가 복 받았으면 이웃에게 많이 베풀어서 전도해야 된다"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시편 1:1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예수 믿어 복 받은 사람은 죄악을 길에서 비켜나야 합니다. 겸손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로 인하여 이 사회가 깨끗해지고 맑아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5:3~10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를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복 있는 자가, 마음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남을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욕심이 없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우며, 의를 위하여 헌신하고, 평화를 만듭니다. 복 있는 사람으로 인하여 사람 사이에 사랑이 넘쳐나고, 이웃이 평안해지고 복을 누립니다.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
복 받은 우리가, 곧 우리 안에 계신 생명이요 복이신 하나님을 모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풍요,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배가 우리 삶 속에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을 누리는 삶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 세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삶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9년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풍성한 복 있는 우리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하여 역경 가운데서 남심하지 않고, 형통함 가운데 교만하지 않으며 인색하지 않고,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평화를 얻고 모든 왜곡과 질병에서 치유받고 회복을 얻습니다. 그 복된 세상의 주인공, 복된 사람들의 멋진 한 해 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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