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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골3:1-11)

하나님아들 2013. 8. 2. 17:52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골로새서3:1-4

 

독일의 유명한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에릭 사우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시작하여 우리 성도의 부활로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부활절 사이에 살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4절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명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을 말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면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평생 모아놓은 것이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내 생명이 있을 때 내 소유가 내 것이 되는 것이지 내 생명이 떠나면 세상의 아무리 귀한 것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그 말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생명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그 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은 오늘 우리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만유의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그 분이 모든 것을 주장하십니다.

그 분에게 생명과 죽음과 축복과 저주가 다 달려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그리스도이심을 의미합니다.

예수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귀한 분은 없고 그 분만이 우리의 삶의 목표요 삶의 보람이요 삶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음악이 그의 인생의 전부다, 미술이 그의 삶의 전부다, 그 사람에게는 일이 전부다 이런 말을 쓰기도 하도 듣기도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전부요 나의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척 스윈돌 목사의 설교에 나오는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정성을 다하여 작은 배를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정성을 다해 만들었기에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배였습니다.

그 배를 호숫가에 띄우면서 물위로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해하던 이 소년이 어느 날 잔잔한 호수가에 다시 이 배를 띄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돌풍이 불어 소년이 들고 있던 줄을 낚아채 가버렸고 배도 멀리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그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채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수개월이 흐른 어느 날, 소년이 장난감 가게를 지나는데, 무언가가 그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정말일까?

더 가까이에 가서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진열장에 있는 배는 수개월 전에 호수가에서 잃어버린 자기가 만든 그 배였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소년은 가게 주인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면서 이 배는 내가 만든 내 배이니 나에게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은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 것이니 네가 갖고 싶으면 돈을 갖고 와서 사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소년은 그 가게를 나와 열심히 돈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그 배를 삽니다.

그 배를 가슴에 안으면서 소년은 그 배에게 말을 합니다.

너는 내 꺼야, 두 번 내 꺼야. 내가 너를 만들었기에 내 것이고 내가 너를 샀기 때문에 너는 내 꺼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종노릇하는 우리를 다시 십자가의 공로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 되었기에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삶은 주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과 우리의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적인 관계를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너희가 죽었고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주님과 함께 옛 사람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도 못 박힌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도 죽은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우리는 죽었습니다.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 가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 는 것입니다.

1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하고 단서를 붙였는데 이것은 그러니까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부활한 것이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감추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합니까?

누가 칭찬하기를 합니까?

누가 인정하기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도 아무런 보상이나 상급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어서 사람이 못 보는 것뿐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드러내실 것이고 거기에 합당한 축복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는, 재림 시에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것이 드러날 때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입니다.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때 주님은 분명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수고했다. 내 사랑하는 종아, 내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라고 우리를 칭찬하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과 인생은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행복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의 정신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위의 것을 찾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어떤 것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찾을 것인가? 돈을 찾는 사람은 돈의 인생, 돈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를 찾는 사람은 진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과학의 법칙을 찾는 사람은 과학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 살지만 그러나 이 땅의 것을 찾는 자가 아니라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다 상급을 쌓는 삶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큰 자로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교 역사에 윌리엄 보덴 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부모가 대부호여서, 그는 고교 졸업 후에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일주 여행을 다녔고 세계 여행 중에 아주 불쌍하고 가난하며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면서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 라는 결심을 합니다.

이런 결심을 하면서 그는 성경 안에 당시 자기 심정을 잘 표현하는 글을 한 문장 남기는데, ‘No Reserve! 지체할 수 없다!’ 는 말입니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였지만 모든 기회를 마다하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진학하여 선교를 준비합니다.

그 때 그는 다시 성경 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No Retreat! 절대 후퇴할 수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는 그 유산을 모두 이슬람 선교를 위해 헌금으로 드리고 자기는 선교지로 떠납니다.

그런데 가서 넉 달 밖에 안 되었는데 척수뇌막염에 걸리고 그리고 한 달이 안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선교를 시작한지 다섯 달 만에, 그의 나이 겨우 26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이 한 마디씩 이렇게들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거야...’ ‘헛된 일을 했구먼..’

그러나 그는 마지막 유언에 또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No Regret! 절대 후회 없음

그의 묘지에 이런 비문이 적혔다고 합니다.

윌리엄 보덴, 1887~191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실패한 삶, 버려진 삶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선 가장 성공한 삶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 받으시는 삶입니다.

그는 실제 자기가 직접 살아서 전도한 것보다 죽어서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선교사로 헌신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 생각하면 가장 바보스럽고 가장 미련한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삶을 아시고 마지막에 큰 자로 축복해 주실 것을 믿기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장 성공한 삶입니다.

윌리암 보덴이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면서 살았다면 그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에 위의 것을 찾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 큰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것을 찾는 것과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삶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생각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대한 사무엘 스마일스의 말은 아주 유명합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사람의 운명 곧 그 사람의 삶의 내용과 결과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 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2)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의 모범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섬기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모범답안입니다.

예수님처럼 살면 인생은 가장 성공된 인생이 되고 가장 행복한 인생이 되고 가장 보람된 인생이 되고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고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로서 과연 누구를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지난 주간에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하나병원에 들렸습니다.

그 때가 저녁 830, 40분 정도 되었는데요.

요즘 날이 더우니까 다 병실 문을 열어 놓았더라구요.

그런데 모든 방마다 텔레비존이 전부 한 채널만 틀어져 있었습니다.

유명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실에서 다 그 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은 좀 덜하겠습니다만 예전에는 드라마에 대한 지식이 없이 대화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혹시나 못 보면 친구에게 그 둘 사이가 어떻게 되었어?? 물어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느냐?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지만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합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예수님의 삶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고, 예수님의 정신을 깊이 생각하여 주님의 뒤를 좇아가는 부활의 삶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5절에 보면,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땅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땅에서 살면서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적극적으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위의 것을 찾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한 쪽에 몰입하면 다른 것이 틈을 타지 못하게 됩니다.

아울러 땅의 지체를 죽이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땅의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땅의 지체를 죽이고 새롭게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옛사람은 죽었고 새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옛사람을 죽일 수 있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 부활의 능력으로 옛 사람, 땅의 지체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땅의 지체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래 동안 살면서 우리는 땅의 지체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하고 익숙해졌습니다.

그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하나씩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 있는 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만이 우리 삶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위해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실 뿐 아니라 언제가 얼마 있지 않아서 이 땅에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barnaba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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