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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에서부터 2장 3절까지의 말씀의 주제는 ‘창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로 시작해서 창조를 모두 마치시고 제 칠일에 안식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진정한 안식은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부족함이나 불균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창조질서의 회복은 안식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거룩한 주일을 통하여 창조의 세계로 나아가고 무너진 건강과 사업과 가정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일을 복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 회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중심인 책입니다. 그런데 2장 4절부터 지금까지 설명하고 있던 창조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 1장부터 설명되던 커다란 창조의 파노라마 중에서 한점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 스포트라이트는 은하계도 아니고 빛도 아닌 사람에게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1장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2장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주창조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관심을 갖는 대상은 사람입니다. 물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2장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1장과 2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천지창조는 조금 다릅니다. 혹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초점의 문제입니다. 2장에서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어 새롭게 창조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는 장엄하고 능력있고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을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2장 4절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으로 표현이 달라진 것입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1장에서 천지창조에 대한 설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기에 또 다시 이런 설명이 나왔을까요? 이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 사업가가 공장에 기계설비를 할때 여러가지 기계가 많이 설치됩니다. 그러나 설치되었다고 해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설계사가 원하는대로 모두 설치가 된 후에 가동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계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 두개의 기계가 가동된다고 모두 가동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 하나님께서 1장에서 7일동안 완벽한 창조를 하셨고 이제 운행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운행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바로 이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주인공이 나타나기전까지는 이 우주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들고 하늘에 구름을 만들었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 대기상태였습니다. 바위를 만들고 지구에 흙을 만들어서 산천초목을 만들어 놓았지만 거기에 인간이 없기 때문에 경작할 것도, 초목도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분으로 형성된 안개만 이 지구위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나타나게 되면 그 인간이 모든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창조는 1장과 달리 6일동안의 창조를 모두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인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관리인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책임자로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운행되는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완성되어야만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창조물은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장 27절을 다시한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조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처럼 생각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은 배고프면 마땅히 먹을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관리인으로 살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1장 27절에서 두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인간을 동물취급합니다. 인간을 개나 돼지처럼 죽이고 그 후에도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자식은 부모를 닮았습니다. 누구든지 그 자식을 보면 아버지를 닮은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닮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맞아 저 사람은 하나님의 딸이야’라고 얼굴에 쓰여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임에도 인간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같습니다. 무섭고, 분노하고, 복수하고, 죽이는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사람 창조 두번째,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동일한 성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입니다. 생김새나 기능이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인간은 동성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한 이후 남자와 여자의 성을 혼돈시켰습니다. 마귀는 문화라는 것을 이용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위배하게 합니다. 이것은 무서운 유혹입니다. 요즈음은 ‘유니섹스’의 문화입니다. 남자옷도 여자가 입고 여자옷도 남자가 입습니다. 이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문화가 발전하다보면 결국 동성연애로 흘러 갈 수 있습니다. 동성연애는 죄의 본질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결과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게 됩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남자를 보고 ‘형’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는 ‘오빠’라고 불러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입니다. 남자는 남자가 되어야 하고 여자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문화는 이렇게 성을 바꾸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지 않고 짐승같이 살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장 27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2장 7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부터 창조의 대략을 설명한 후 2장에서는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운행하지 않았으며 온 우주는 인간이 창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구성하셨는지 2장 7절에 나와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인간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흙이란 땅에서 오는 물질입니다. ‘먼지, 티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예가가 흙으로 본을 떠서 만족하게 만들어지면 불에 넣어서 굽듯이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흙이란 인간의 오장육부와 뼈와 피와 살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건강할 때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병이 들고 고통을 받으면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흙으로 된 몸에 우리는 향수도 뿌리고 좋은 옷도 입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인간은 흙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흙에 불어넣어 주셔 욥이 건강할 때는 자신의 육체가 흙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몰랐었지만 고통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을 때 육신이 흙이라는 사실을 묵상합니다. 욥기 14장 19절을 보면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도 눌려죽는 자이거늘’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루살이에 눌려 죽고 죽으면 티끌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욥기 10장 9절을 보면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이 가까우면 이것이 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할 때 모두 다시 새몸을 입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을 보면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예수와 우리의 차이점은 우리는 흙에서 왔고 예수님은 하늘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흙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십시오. 그러나 인간은 흙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흙에 불어 넣어주심으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단순히 흙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흙이므로 세상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자야 합니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은 인간의 육신은 떡으로 살고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세상과 물질을 연결하는 통로라면 생명과 영은 하나님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영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신은 가지고 있고 물질도 알고 쾌락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질에 하나님의 영을 넣어주셔서 하나님이 거할 공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또 한가지 사실은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 졌지만 흙만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있지만 영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흙과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만들어진 존재를 ‘생령’이라고 부릅니다. 생령이 곧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흙으로 만들어진 혼이 ‘사람’입니다. 물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간 것이 생령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완전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외로움이나 고통이나 불완전이 전혀 없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죄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게 되면서 인간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과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육신은 있지만 인간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남은 것은 인간의 육신입니다. 인간의 자아는 외롭고 고독하고 방황합니다. 하늘의 기쁨 맛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소설의 줄거리는 고독한 인간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상실한 사람은 길을 잃어버린 배와 같습니다. 방향이 없고, 목적도 없이 사는 이유를 모르고 동물처럼 살아갑니다. 단순히 동물처럼 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동물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오면 불안해집니다. 자신의 영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회복하는 길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내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구원이 이루어지고, 능력이 임하며 하늘의 기쁨을 갖게 됩니다. 이제까지는 세상의 기쁨을 갖고 살던 사람이 하늘의 기쁨을 맛보게 되고, 죽음만 경험하던 사람이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은 부활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며 성령의 영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태초에 창조되었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고독과 절망과 좌절과 허무를 경험하고 있던 영혼은 구원을 보게 되고 천국을 보게 되며 절망에서 살아나게 되고 병에서 구원을 받고 모든 사단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모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 생명이 없으며 이 아들안에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의 영이 내안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영이 회복이 되어야 나의 육신도 살고 자아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육신은 세상의 통로이며 혼은 하나님과의 통로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으며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이 말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니고데모와 같이 ‘거듭나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나이가 먹어서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라는 말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회복되라는 것입니다. 인격도 육신도 회복되어 온전해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육신만도 아니고 영이나 혼만도 아닙니다. 이 세가지가 온전히 만들어질 때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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