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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람의 창조(창1:26~31)

하나님아들 2013. 7. 26. 16:11

사람의 창조
본문 창 1:26~31

창조의 극치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마지막으로 창조하기 위해 모든 만물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하늘의 별과 해와 달, 그리고 공기, 땅, 물,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이유는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외롭거나 배고프지 않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연과 더불어 완벽한 교제를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자연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처음으로 만들지 않으신 이유는 사람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셨습니다. 

마치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야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 등장하는 것처럼 우주만물과 지구를 만드시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모두 만드신 후에 마지막으로 창조의 꽃인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의 완벽한 드라마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완성이 없습니다. 불균형을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한 균형이요, 완벽한 아름다움이요, 완벽한 충만함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생명의 지구, 하나님의 호흡인 지구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그곳에 인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좋은 집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누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백악관이나 청와대의 건물보다는 백악관에 클린턴이 있고, 청와대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 건물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지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지구안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복받은 창조의 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의 완성이요, 창조의 영광인 것입니다.

교제하기 위해 만든 인간

하나님이 무언가 부족하거나 우리를 어떤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영원한 교제와 축복을 나눌 파트너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남자가 여자를 애기낳는 도구로 쓰기 위하여 혹은 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하여, 집에서 일하는 청소부로 쓰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내를 혹은 남편을 만나는 것은 서로 이용하고 필요해서 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기 위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인간창조입니다. 

인간창조를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해 2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인간의 창조는 창조의 절정이고 모든 피조물들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창조의 방법도 다릅니다. 

첫째날부터 다섯째날까지 창조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하셨습니다. 의논을 하거나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단독적으로 생각하시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인간됨의 가치와 영광이 있습니다. 26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는 하나님이 의논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의논하지 않고 무언가 지시하는 것입니다. ‘왜 나와 의논하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이 말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의논하면 불평하지 않습니다. 싫은 일도 합니다. 아마 그것은 부부관계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하나님끼리 회의를 했습니다. 의논하고 얘기하시고 논쟁하시고 토론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만들까, 어떤 존재로 만들까’를 의논하신 후에 하셨습니다. 

여기에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은 죽으면 끝입니다.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말합니다.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분이십니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세분은 모두 다른 개체요, 인격이요, 기능을 가진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하나로 존재하십니다. 또한 세 인격과 모습으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도 사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사회의 특징은 일치입니다.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을 보내시고 인류를 만드셨는데 만일 인간에게 죄가 없었다면 분열도 없었을 것입니다. 미움과 분쟁과 전쟁과 싸움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되지 못한데서부터 미움이 생기고 분열과 전쟁이 생기고 지옥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되고, 교회가 하나되고, 우리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북통일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질이 하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자녀가 집을 나가고 부모님을 멀리 보내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계획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대로’였습니다. 유물론이나 무신론과 같은 관점에 따라 인간에 대해 해석하는 것이 다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두 문장으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어진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의 성품이 인간 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동물과 동일한 본능이 있지만 신적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당하게 주장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인간들이 동물처럼 살아갑니다. 인간의 선의 본능을 동물처럼 사용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있는 윤리나 도덕을 모두 버리고 동물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인간을 무차별로 죽이게 하고 고문해도 괜찮고 인권을 유린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은 동물일수도 있으며 이용가치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에 불과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고 똑똑하면 존경받을 가치가 있고 좋은 환경에서 먹고 살아도 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들이 나중에 극대화 되면 원자탄을 터트리게 되고 식량전쟁을 하는등 엄청난 재난들이 벌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을 믿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이 엄숙하고 거룩하고 놀라운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다고 해도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내면적인 모습이며 하나님의 모양은 하나님의 외면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물질로 된 사람처럼 키가 얼마이며 무게가 얼마인지 측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형상 회복위해 오신 예수님

그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영원히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모양과 형상이 모두 파괴되어 그저 동물처럼 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시켜 주셔서 인간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나누게 될 성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피와 살을 뜯어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짐승처럼 살지 마십시오. 개띠니, 말띠니, 호랑이띠니 하는 것은 ‘나는 개같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려는 노력보다는 형이하학적이고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저질스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데 익숙합니다. 

여러분, 
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욕할만한 인격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입에서 기도와 찬양이 나오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 더러운 것을 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짐승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받은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진주를 개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석중에 보석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진주를 돼지우리에 넣어 짓이겨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짐승처럼 살게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자기와 동일하게 생긴 아이를 낳습니다. 자기의 형상이 그 아이에게 있습니다. 형상은 사진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나에게 사진찍듯이 찍어 놓은 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러므로 내 얼굴에는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보면 하나님을 본 것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본자는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얼굴에서 마귀가 보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얼굴에서 개가 보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 예수님을 발견하고 천국이 생각나는 축복이 여러분의 얼굴 속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유전인자가 계속 세대에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유전인자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왕은 왕같이 살아야 합니다. 왕이 거지같이 살면 안됩니다. 기품이 있는 사람들은 걸음걸이부터 다릅니다. 교회를 걸어나가실 때는 모두 그렇게 걸어나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고민은 홀로 다 지고 자살할 것같이 걷지 마시고 어깨와 가슴을 펴고 하늘나라의 왕자와 공주같이 미소를 짓고 멋있고 고상하게 걸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사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모양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잘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분의 형상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통해 알수 있는 하나님 모습

또 한가지 방법은 ‘나’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도덕적 성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도덕적인 하나님인 것을 알 수 있고 내 마음에 사랑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사랑이 있고 내가 진리를 사모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거룩을 사모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이런 도덕적 성품들은 짐승에게는 없습니다. 동물은 상상력이 없습니다. 인간만이 무한한 상상력을 갖습니다. 인간은 미와 예술을 추구합니다. 동물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자기가 아름다워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상상력과 아름다움과 예술을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언어가 있습니다. 동물은 자기의 의사소통의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원시적입니다. 인간은 고도의 언어로 의사전달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에게 없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존재인 것은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하갈이 도망을 갈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듣고 계신 분입니다. 시편 94편 9절말씀을 보면 「귀를 만드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며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동일한 눈을 가지지 않았을지라도 보고 계시며 우리와 같은 귀를 가지지 않았어도 들으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모양대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냄새도 맡으십니다. 노아가 홍수가 다 끝난 후에 하나님께 번제물을 태워 제사를 드렸을 때 「향기를 흠향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제의 냄새도, 기도의 향도 맡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의 힘줄을 쳤다는 말이 창세기 32장에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오셔서 치시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십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눈을 만지면 눈을 뜨고 죽은 자에게 손을 대면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지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안수하십니다. 안수하실 때 손이 펴지기도 하고 상한 마음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바로 그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을 까요?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하면서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우리를 관리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분이나 하수에 오물을 마구 버리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지구의 관리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의 환경법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때문이며 우리는 동물을 양육하고 세상을 잘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육축과 동물과 지구의 모든 것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사명입니다. 인간이 그저 애기낳고 돈벌고 잘 살고 쾌락을 느끼며 동물같이 살라고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 지구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지구관리는 못하더라도 집관리라도 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지기로 부름받은 인간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는데 히브리말로 ‘아담’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남자와 여자를 의미합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여자를 학대하고 때리고 애기낳는 도구로 생각하고 성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물질의 도구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왜 짐승처럼 생각할까요? 왜 여자를 때릴까요? 저는 우리 교회에 여자를 때리는 남자가 하나도 없기 바랍니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인간입니다. 남자없는 여자없고, 여자없는 남자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이며 원칙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죄를 지은 인간들이 얼마나 이 원칙을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제일 나쁜 것은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바꾼 것입니다. ‘호모’와 ‘레즈비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입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는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여자는 그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입니다. 인간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원리와 질서대로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가정을 만들어야 하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과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은 사명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그저 놀고 먹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도 일하십시오. 인간은 돈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인간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가에 대해 28절에 나와 있습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그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지구는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있고 살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는 것은 땅을 잘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표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식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동물도 인간을 위한 음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환경보호가 지나쳐서 우상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지금까지 그저 ‘좋았더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완성이기도 했고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으신 모습 그대로 회복되어 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영어성경 영어찬양/ 은혜교회
글쓴이 : sulej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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