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시는 기도(살전5:12~28)

하나님아들 2013. 7. 26. 16:04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2-28

제목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시는 기도.


12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13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14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15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19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20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21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22여러 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하십시오. 23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주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고 완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4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이 일을 또한 이?

營!

?것입니다. 25형제자매 ㈆??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26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자매에게 문안해 주십시오. 27나는 주님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명합니다. 모든 형제자매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십시오. 2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 부모님께선 가끔 두 분이서만 여행을 떠나실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면, "사랑하는 지나․강훈 보거라!"하는 말로 시작되는 어머님의 메모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거기엔 우리들이 해야 할 목록이 쭉 적혀 있는데, 맨 마지막엔 꼭 "강훈이는 누나 말 잘 듣고,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하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 형제는 둘인데도, 어머님은 누이를 지도자로 세운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둘만 되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회상해보면, 아무도 지도자로 세운 일이 없지만, 거기에는 꼭 골목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를 따르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둘 이상만 되도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없는 사회는, 아무리 유능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더라도, 그 모임은 오합지졸이요, 각자의 힘을 낭비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있는 사회는, 비록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였다 하더라도, 그 단결된 에너지가 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 사회가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저의 어머님과 똑같은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12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13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첫째로 지도자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고, 둘째로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모님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일까요? 바울은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보십시오" 했습니다. 희랍어로는 아주 간단한 말입니다. 그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지도하고 훈계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임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지도하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저런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건 힘들지만 꼭 해야 한다. 저런 일은 하고 싶어도 삼가야 한다..."--뭐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건 목회자가 다른 성도들보다 특별히 더 지혜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지혜롭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누군가를 지도한다는 것, 누군가를 훈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그 말을 꼭 해주어야만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약은 입에 쓰나,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처럼, 귀한 교훈은 삼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우나, 삶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분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을 알아주라"고, "그들의 노고를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또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라"고 쓰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 할수록,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이 하고 있으니, 참..."하고 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신학 공부만 10년 넘게 하고, 목회 실습만 6년 넘게 하고, 담임 목회만도 11년 가까이 해왔는데도, 아직도 자신이 없는 게, 이 목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정도 교육받고, 이 정도 훈련받고, 이 정도 실경험을 쌓았으면, 뭔가 자신이 있어야 하질 않습니까? 그만큼 제가 무능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정말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더 많이 도와주세요!"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꼭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목회는 무릎으로 하는 것이구나! 목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구나!"하는 사실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냥 "존경하라!" 그러면 될 텐데, 여기서 바울은 "극진히 존경하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여기서 "지도자들을 존경하라!"고 하면서도, 누구에게 도움이 되라고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지도자들 좋으라고 그랬겠습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을 존경해서 누가 이득을 봅니까? 존경하는 사람들 자신입니다. 여기서 "극진히 존경하라!"는 말은, 이 세상의 어떤 영웅이나 위인보다도, 목회자를 제일 존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제일 존경합니까?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약 아버지와 랍비가 동시에 물에 빠졌다고 가정해보자. 누굴 먼저 구해야 할까? 이때 유대인들은 랍비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버지를 여의고서는 살 수 있어도, 랍비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랍비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그러기에 유대인들은 1900년 간 나라 없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3b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십시오"라는 말로 이웃에 대한 권면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 화목하게 지낸다는 게 뭡니까? 어떻게 해야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까? 그 대답이 14-15절에 나와 있습니다. "14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십시오. 15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먼저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을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이란,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으면서 세상일을 그만두고 일하지 않으면서 남의 덕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화목하게 지낸다고 해서, 잘못된 일을 그냥 놔두는 것은, 주님이 바라시는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란 악과 불의와 부정의에 대해 눈감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악과 불의와 부정의를 시정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한 사람"이란 "마음이 여린 사람"을 가리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은 사랑이 없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끼리끼리만 나눈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친숙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 주라" 그랬습니다. 누가 힘이 없는 사람일까? 몸이 허약한 사람일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까? 명확한 단서는 없지만, 아마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 나온다는 것이, 그분께 자기 삶을 헌신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더러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많이 도와주라고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과 습관과 성격을 바꾸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자기는 자기가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고쳐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은 "아무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도리어 서로에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당하면 갚아주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됩니다. 당사자에게 못 갚으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화풀이를 해야 속이 풀립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교회에 속 풀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내 속을 푸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서로에 대해, 모든 사람에 대해 항상 좋은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12-13a절에서 지도자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말하고, 13b-15절에서 성도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언급했던 바울은, 이제 16-18절에서 하나님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생활이 뭐냐?"하는 것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그건 아마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게 뭐냐?"하고 물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16항상 기뻐하십시오. 17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먼저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그랬습니다. 인생에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데...도대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말씀입니다. 좋을 때야, 기뻐하지 말라고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나쁠 때는, 아무리 웃으려고 애를 써도, 쓴웃음밖에는 나오질 않는 법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사도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2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3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면 왜 기뻐해야 합니까? 성숙한 사람이 될 절호의 기회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차를 타고 가다가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얘기인데요] 어떤 기관에서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10년 뒤에 설문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성공하려면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하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관계"라고 답변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출신이라면, 최고의 학식을 가진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성공하려면, 좋은 학식보다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 것입니다.


좋은 차 생겼다고, 좋은 집 장만했다고, 높은 학위를 취득했다고, 돈 많이 벌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볼 일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여기고,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 만드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그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목사 탓하고, 교인 탓하고, 맨 남 탓하다가 교회를 떠납니다. 문제를 만나서 남을 탓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될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는 사람입니다.


한샘이와 하늘이는 늘 티격태격 싸웁니다. "너희들 왜 싸웠니?"하고 물어보면,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립니다. 잠시 후 둘 다 무릎을 꿇고 벌을 섭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샘이가 "사실 제가 이렇게 잘못했어요"하고 고백을 하면, "역시 한샘이가 형아구나!"하고 속으로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그리곤 "다시는 싸우지 말아라!"하는 권면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닙니다. 교회 오래 다닌다고 어른 되는 게 아닙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남 탓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개선해 나가는 사람이 참 어른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것은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서양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네가 누구인지 하나님에 의해 발견되어라!"입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걸 모르니까,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고민 끝, 행복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복음"이라, "복된 소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애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기도란 내 요구를 하나님께 늘어놓는 시간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분의 평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을 귀담아 듣는 시간인 것입니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수많은 세월 동안 기도해도, 잘 변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없습니다. 인간은 듣기보다 말하길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을 가만 보면, 하나님께 말하는 시간은 길어도,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짧습니다. 이건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가 경험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을까?


데살로니가 1:6에서 바울은 이렇게 쓴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곧 기도다"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일 만 마디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은 설교가 될 수도 있고, 묵상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돌아보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귀를 열어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시는 은혜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 번째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 그랬습니다.


저는 언젠가 "내 11년의 목회 가운데 가장 진실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었나?"하고 돌이켜 본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진실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건강이 좋은 사람도, 사업이 잘 되는 사람도, 출세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그들이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남겨두셨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손해로 생각지 아니하고 흑자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건 "모든 일에 억지로 감사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시련이 닥쳐와도, "아, 하나님이 나 사람 만들려고 그러시는구나!"하고 깨닫고 기뻐하고, 내 요구 조건을 늘어놓는 기도보다도 하나님의 평가와 계획을 받아들이는 기도를 계속해 나가다보면,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비결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25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신앙생활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그들이 잘 나가는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신앙적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별 볼 일 없는 기도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훌륭하거나 그 기도가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를 두고 단언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은 유능한 사람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과만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유능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능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 찾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내 백성을 구해라" 그러셨을 때, "난 그런 일 할 위인이 못 됩니다" 그랬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칼과 창을 들고 나오지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빽으로 나온다" 그랬습니다. 한때 예수쟁이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은, "나는 죄인 가운데 우두머리요, 지극히 작은 성도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능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여러분이 신앙적으로 별 볼 일 없다고 생각되거든, 여러분의 기도가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되거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자의 기도를 꼭 들으십니다!




출처 : 영어성경 영어찬양/ 은혜교회
글쓴이 : sulej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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