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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 6:41-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하나님아들 2013. 6. 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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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41-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 아들 예수가 아니냐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자만 아버지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 가졌나니 내가 생명 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이니 사람이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세상 생명 위한 살이로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저편에서 가버나움까지 자기를 따라왔던 군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한번 유대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만이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나니 이스라엘 지도자들 중에서 강한 반발과 불만이 나왔습니다

 41~42,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수군거렸다는 헬라어로 투덜거리다 불평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수군거린 이유는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직전에 광야에 내렸던 만나에 빗대어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양식이며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주실 수 있으신 분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하며 그들은 분개했습니다.

- 너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 엄마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느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들었어도 사람이 그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논리인데 그것은 주께서 단순한 사람을 능가하는 분이시라는 증거들을 간과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기 16:2 , 8~9, 민수기 11:4 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그들의 조상은 만나를 받기 전에 불평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심지어 만나를 받고도 불평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44~45,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4절 전단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수 없으니라고 하셨습니다. 37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두 절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보다 먼저 36절과 40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36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36절에서는 보고도 못 믿으며, 40절에서는 보고 믿어 영생을 얻는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서 36절에서는 안된 일이 40절에서는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 사이에 뭔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내주시는 자를 살리는 작업이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모든 구원의 메시지와 방법론이 감추어져 있는 곳입니다. 성경은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탁한 영혼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예수님은 어느 누구나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찾지 않는 사람은 억울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찾아온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 것입니다. 언제나 모든 것에 반대가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가난하면 행복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공격하다가 적의 공격이 심하여 잠시 멈춤니다. 병사들이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휘관이 다시 공격명령을 내렸고 이를 듣고 병사들이 공격합니다. 이때 공격에 나선 병사들은 지휘관의 음성을 들은 병사들입니다. 그들이 일어난 것이 그들을 살게 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순서가 그 정반대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듣는 것과 믿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심기워진 하나님의 새 생명이 존재한다는 표지입니다.

 

 

 이제 37절과 44절 전단을 보겠습니다. 이 두 구절의 차이에서 선택교리와 인문주의적 기반에서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 칼빈과 알미니우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가 이 문제로 논쟁했습니다.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경우가 특별히 흥미롭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 의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이끄시되, 당나귀 주인이 고삐를 쥐고 수레를 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끄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끌고 가지만 당나귀의 의지도 명백하게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구원은 먼저 하시지만 사람이 그 구원에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루터가 이를 논증했습니다. “주님이 친히 이끄시는 것보다 더 나은 이끄심이 어디 있겠느냐, 그는 사람들 중에 계셨고, 직접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내면적으로 이끄시고 가르치지 아니하시면 말씀을 듣더라도 경건치 않은 자는 오지 않는다

 

44절에서 보듯이 인간은 완고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끌다라는 표현은 언제나 끄는 힘에 대한 저항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저항하는 힘을 무산시킵니다.

 

모든 사람이 올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올 수 없다. 그런데 오면 자동적인 결과는 부활이다.

 

그리스도는 이 시점에서 자기의 가르침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두가지 요점을 지적하십니다.

 

첫째, 구약을 인용하십니다. 45절에서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를 부분적으로 인용하신 것입니다.

 

둘째, 이 진리가 체험으로도 확증됨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환경이 좋고 복음을 받아도 효과가 없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복잡한 문제들로 쌓여 있고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믿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배웠지만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에 대해 다시 가르치십니다.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은혜가 여러분의 소망이라는 의미에서 이 교리는 여러분에게 해당됩니다. 여러분 자신 속에는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영적인 성취도나 여러분의 능력에도 아무 소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조차 없습니다. 여러분이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니 얼만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걸 보고 힘을 내시고 그에게 나옴으로써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이미 이 일을 하고 계심을 증거하십시오.

 

이제 예수님은 떡을 먹는 비유를 통해 복음을 제시하십니다 


 
48~51,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이니 사람이 이 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은 곧 세상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기존의 선지자들보다 더 나은지를 입증하라고 자주 요청했습니다. 30~31절에서는 모세와 광야에서 공급된 만나를 예수님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셨습니다. 만나는 물질적이고 일시적인 떡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를 먹고 하루를 지탱했습니다. 그러나 매일 만나를 거둘어 들여야 했으며 이 떡은 그들을 죽지 않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역할을 폄훼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하늘로서 온 영적인 떡, 완전한 만족을 주며 영생으로 인도하는 떡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이 떡이 개인에게 효력이 있는 것은 그 떡을 보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떡이 하늘로서 왔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나는 ~이다비유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참 포도나무요이러한 상징적인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자신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되심을 보여주고 계시며 자신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오는 오직 유일한 길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48~51절은, 첫째 문장은 생명의 떡의 근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둘째 문장은 사람이 그 생명의 떡을 먹게 되었을 때에 그 떡이 받아들여지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셋째 문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때문에 어떻게 생명의 떡을 먹을수 있게 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은 생명과 죽음입니다. 덜 행복하고 더 행복하느냐의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사는 것이고 영원토록 사는 것이고,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인간 존재의 과정에서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결론적으로,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셨다고 고백하여야 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것은 내가 온 것이 아니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주께서 이끄시고 역사하셨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아멘

 

2008.1.26.

출처 : 신들의 찻집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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