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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9:22 '이틀이든지 한 달 이든지 일년 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더니'
훈련이란 어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술을 연마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믿음의 세계도 동일한 원리를 적용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훈련을 잘 받아야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틀 한달 일년 씩 유진하면서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성막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구름이 떠오르면 진행'했습니다. 그러면 이틀 한달 일년씩 유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성경은 그들이 머물러 있는 동안 무엇을 했다고 기록해 놓지는 않았습니다. 유진하고 있다가 진행했다는 내용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속에는 아주 귀한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진했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유진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훈련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워야 했습니다.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들이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온전히 경외하는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이상으로 살펴볼 때 우리가 무엇을 깨달 을 수 있습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훈련입니다.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기 위해서 유진해 있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은 속도를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뒤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진행해야 따라갈 수 있는데 이틀 한달 일년씩 전진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앞질러 갈 수 있는데 정보와 동떨어진 가운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감수하면서 훈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머무르고 있는 동안 남들은 보란드시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하는데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받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틀 한달 일년 수년씩 머무르며 훈련을 받을 지라도 인간적으로 성공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면야 얼마든지 훈련을 받을 수 있지만 인간적인 성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보니 포기하고 뛰쳐 나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훈련을 받다가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어도 유진해 있으면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다가 빈떨떨이가 되고 뒤떨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다가는 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유진하면서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들이 사라지고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유진 하면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시대에 뒤떨어지고 시대에 맞지 않은 아날로그식 방법을 고수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까요. 시대의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법을 사수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실패자가 되기 위해서 고집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틀 한달 일년 수년씩 유진시키면서 훈련을 시키시는 목적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인간은 이틀 한달 일년 수년씩 훈련의 단계를 밟지 않고 단시일내에 무엇을 성취할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남보다 빨리 성취할려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빨리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체 성취하는 것은 위험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를 오랫동안 빚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과 기도의 사람은 훈련을 통해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의해 훈련을 진행하십니다.
조각가는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작업을 합니다. 조각하는 사람이 급하게 하다보면 걸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졸작이 나오고 맙니다. 또한 조각가는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아까워 하지 않고 뜯어 낼 것은 뜯어 내시고 없이 해야 할 것은 없이 합니다. 아깝다고 그냥 놔두고 조각하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도려 낼것은 도려내고 잘라 낼것은 잘라내야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시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투자 하시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1차 2차 3차 계획안을 세워 놓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1차가 다르고 2차가 다르게 훈련을 시키십니다. 1단계에서는 한 부분을 작업하시고 2단계에서는 다른 부분을 작업을 하십니다. 이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시는 과정 속에 하나님께 불필요한 요소들을 그냥 놔두지 않으시고 뜯어 낼 것은 뜯어 내시고 없이 할 것은 없이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조각하는 과정속에서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섭섭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삐지고 토라지면 안됩니다.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 지금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시는 구나 생각하고 의엿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것을 모르고 움직이다가는 실수하고 그릇치기 안성마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의해 변화받아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부인과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자기 부인이란 곡식을 탈곡할 때 겪는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곡식을 탈곡할 때 어떻게 합니까. 뒤죽박죽 뒤섞인체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면서 겹질은 벗겨지고 알곡만 부대에 담겨 집니다. 부딪치고 깨어지고 부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알곡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수 많은 단계를 걸쳐야만 알곡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는 우리 인간의 육적인 요소들을 부수고 깨뜨리시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붙어 있는 허물을 뜯어 내시고 불의를 도려 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타고난 성품 즉 모난 성격, 거친 성격들을 과감히 탈곡하여 뜯어 내시고 도려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서 변화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1:12 절 말씀처럼 '내가 잊어 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는 마치 하나님께 잊어 버린바 된 것 같은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은 처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체험한 자만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자는 이것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피하지 말고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11)절 말씀은 참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모든 훈련의 목적은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고 인내하기 위해서 입니다. 오래 참음의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피해갈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고난이란 피해간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갈 수록 고난은 우리를 더욱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 의지만 가지고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셔야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리쳐 주셔야 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을 받는 것도 고난과 시련을 이기기 위한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적은 시련만 와도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은 성숙한 믿음이 아닙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진 훈련을 잘 이겨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그릇으로 빚어질 때 까지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훈련의 냉혹함을 견디어 내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훈련의 냉혹함을 이겨내는 자가 강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째 구름이 떠오르면 그 때 출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움직일 때 음성을 들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유진하고 있을 때 영적인 비빌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도 들려 주시고 음성도 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진하고 있지 아니하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고 음성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데서나 비밀의 보따리를 열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해 주신 곳에서 축복의 보따리를 열어 주십니다. 주님의 지시가 없는데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지시를 하지도 않았는데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주님의 지시도 없이 쏘다녔습니다. 주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쏘다닌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쏘다닌 것입니다. 엉뚱한 짖을 하면서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님의 뜻을 망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명예를 실축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움직이지 않고 이틀, 한달, 일년, 수년씩 머물러 있는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당장 움직이면 엄청난 유익이 보장되는데 그것을 보고도 한발 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진하고 있으면서 아무리 큰 손해를 보더라도 유진하며 안 움직이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성공의 기회들이 다 사라져도 끝까지 머물러 있는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성공의 기회들이 다 끝났지만 머물고 있다보면 이상한 징조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상한 사건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때 주님의 지시가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호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때는 아무리 머무르고 싶어도 머무룰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떠밀려 가든지 아니면 사람을 통해서 떠밀러 가든지 아무튼 출발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의 때에 움직여야 가장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때 출발을 해야 우리의 길이 형통하여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진하면서 영적인 훈련을 잘 받다 보면 하늘 위에서 아름다운 구름이 뭉실 떠오르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앞으로 힘차게 전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름이 떠 올랐는데도 멍청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털털 떨어 버리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진행할 때에는 뒤를 돌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뒤에 있는 성공의 공든탑, 출세의 공든탑, 명예의 공든탑을 아까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얼마나 성공을 했느냐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성공은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떠날 때는 인간적인 성공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머무는 것 보다 떠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때는 뒤에 있는 보화와 보물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은 것인데 그것을 뒤로 다 내팽게 치고 떠난단 말인가 안되지 난 갈 수 없어 움켜 잡고 있을거야. 그렇습니다. 유진하고 있다가 떠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뒤에 있는 것이 아름답고 고귀하여도 이것 때문에 전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보면 성경에 나오는 롯의 처처럼 소금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인생의 일곱 색깔 무지개가 아련 거려도 진행할 때는 미련없이 버리고 앞으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과거를 끊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는 나쁜 과거든, 좋은 과거든 잊어 버리고 주님이 지시한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머뭇 거리다 보면 망하는 것입니다. 망설이다 보면 소금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출발을 할 때에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동안 구름 때문에 길도 보이지 않고 하늘 문도 닫혀서 보이지 않았는데 구름이 걷히면 가리워 졌던 하늘 보이고 길도 보이는 것입니다. 하늘 문도 열리고 길도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시면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열리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여시면 열려 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 같았습니다. 억류된 몸으로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한해 두해가 가도 로마의 길은 좀처럼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꽉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로마로 가는 길을 여시고 있었습니다. 로마 선교에 길을 다 예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사람들을 움직여서 바울을 로마로 까지 인도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좀 어리석은 방법 같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방벙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로마 선교의 꿈을 이루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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