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삶의 기도
요한복음 15:7-8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두 가지로 천명했습니다. 첫째,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입었기에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은 나의 삶을 풍성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풍성케 한다는 말은 내 영혼과, 육체와, 범사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족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넘치는 삶이 풍성한 삶입니다.
두 번째,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7-8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기도의 원리와 결과를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것은 기도의 원리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것은 기도의 결과입니다.
첫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기도
우리는 '기도' 하면 구하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저 생각할 것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믿기는 믿되 함께 사는 자가 아닙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호흡'이라는 말입니다. 호흡이라는 말은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산 사람만이 호흡할 수 있습니다. 인격적인 말로 표현하면 교제라고 말하지만 생명의 교제가 호흡입니다. 순간 순간 들어오고 나가는 것, 이것이 호흡인데 이것은 생명의 교제요, 대화라고 말합니다. 대화는 인격적 관계의 교제입니다. 함께 사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대화입니다.
어떤 부부는 한 집에 살지만 서로 대화가 없는 부부가 있습니다. 함께 방 안에 있고 밥도 같이 먹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없습니다. 이것은 함께 있는 것이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노사의 관계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집안에 있어도 시어머니가 대화가 없으면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나와 함께 사는 것인데 이것을 다른말로 말하면 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 곧 교제입니다. 사는 것은 대화가 있을 때 산 것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고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 말하지 않고 한 집에 있는 부부와 같습니다.
'나는 기도하지 않고 예수 믿습니다.' 이 말은 '나는 예수 믿습니다. 그러나 함께 살지는 않습니다.' 그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교인을 집으로 비유한다면 하숙집이 있고 별장이 있고 상주하는 집이 있습니다. 하숙집은 살지는 않습니다. 잠 자고 밥만 먹고 나가면 됩니다. 별장은 며칠 살기는 살지만 1년에 몇 번 가서 삽니다. 상주하는 집은 매일 그 집에서 삽니다.
또 공중에 나는 새들에게 비한다면 철새 교인이 있습니다. 철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교인입니다. 지붕 교인이 있습니다. 집안에 못들어 가고 참새같이 밖에서 재잘리는 교인입니다. 비둘기 교인이 있습니다. 주인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처마밑에 집을 짓고 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철새처럼 보고 가버리고, 참새처럼 지저귀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와 대화가 됩니다. 말이 없는데도 눈동자로 대화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무언의 대화입니다. '우리 아이가 어디 있나, 오늘 잘 있을까' 이것이 대화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만 들어가면 대화를 않습니다. 부모도 '공부해라' 명령만 합니다. 이때 대화가 단절되므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습니다.
지난날 우리 부모님 대에는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자녀를 스트레스 푸는 하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저들을 혼내는 대상으로 삼았고, 조상적부터 받은 상처를 투사하는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대화와 교제는 높은 인격적 관계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존재의 모습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나와 말씀하시고 나도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이것이 대화입니다. 기도는 일방적으로 나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도 내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함께 모여서 통성기도 하는 것도 있지만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 하고 기도하고, 책상 위에 앉아 사무를 보면서도 "주님, 제가 사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됩니까"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어도 책 속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대화하고, 이런 관계가 인격적 관계인데 이 말을 기도의 원리로 설명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한번은 어떤 자매가 그래요. "목사님, 우리는 하루 종일 부부간에 얘기하고 있어요." "무슨 얘기인데요?" "장사하면서 서로 물건 팔고 사는 얘기요" 그것은 업무상 얘기지 대화가 아닙니다. 인격적 대화는 깊은 사랑을 가지고 인생을 얘기하고, 삶을 얘기하고, 서로의 아픔을 얘기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만 예수님과 대화가 시작됩니다. '내 제자가 되리라' 제자가 될 때만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예수의 말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라고 말했습니다. 주와 함께 거하는 것, 함께 사는 것을 너무 원해서 몸을 떠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주님 모시는데 제한을 받으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과 마음껏 거하면서 대화하고 싶은 심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좋은 대화의 벗이 부부입니다. 부부는 서로 대화하면서 안보이면 어디 있나 찾고 그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부 된 자로서 신랑 된 주님에게 "주님, 주님 없이는 못삽니다. 주님 오늘 좋은 일 있습니다. 슬픈 일 있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이렇게 늘 기도로 고백도 하고, 감사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좋아서 웃기도 하면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이것은 풍성한 삶에 대한 얘기입니다. 부부가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돈버는 것은 풍성이 아닙니다. 집안에 좋은 것 많이 사다 놓았다고 풍성이 아닙니다. 그저 둘이만 있어도 서로 대화하면서 살 때 풍성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과 내가 있을 때 그 관계가 풍성해야지 장난감으로 풍성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함께 사는 삶의 자세가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사역의 관계요, 업무의 관계입니다. 일하라고 명령하고 듣고 순종합니다. 순종하면 삯이 나옵니다. 이것이 구약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거기에 순종한 사람이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다윗, 예레미야 등 구약의 선지자입니다. 둘째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말을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말을 다 듣지 않습니다. 자기 기분 좋으면 듣고 안좋으면 안듣습니다. 자기가 아쉬울 때만 부모를 찾습니다. 도움을 바라고, 보호받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이것도 온전한 대화의 관계가 아니고 함께 사는 관계가 아닙니다. 셋째, 부부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일의 관계도 아니요, 보호의 관계도 아니요, 오직 함께 거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부부만이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부부는 "당신은 나만을 사랑해야 돼" 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신부로 사랑하시고 나도 주님을 나의 신랑으로 사랑할 때 대화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공생애가 시작될 때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둘째, 예수 안에서 원하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는 소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고 그 말씀에 따라서 소원을 두고 구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저는 세월이 흐르면서 복이란 소원하는 바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소원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주시는 소원입니다.
복받을 사람은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소원이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복이지 소원도 안했는데 저절로 된 것은 큰 기쁨이 없습니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세운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성공학자인 폴 마이어는 "모든 것을 송공시키고 달성시키는 열쇠는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목적없이 가장 바쁘게 사는 존재가 하루살이입니다. 하루살이가 도는 속도가 자동차 100Km이상의 속도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앙리 파브르가 날벌레를 연구하다가 그들의 우매함을 발견했는데 아무 목적도 없이 앞의 것이 나니까 자기도 같이 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없이 예수 밖에서 남들이 하는 삶의 방식대로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 세속의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 행하다가 인생 끝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소원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는 믿지만 예수님과 대화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는 소원도 없고 내 소원도 예수님이 받지도 않고 그저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그런 관계로 일생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소원을 가지십시오.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쓴 A.J 크로닌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희망찬 포부를 가지고 병원을 개업하면서 큰 돈을 벌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였을 때 그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크로닌아,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로 환자를 사랑해라 환자에게서 돈을 보지 말고 환자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하늘이 파송한 사람처럼 그들을 섬겨라"
크로닌은 무릎을 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는 환자들을 사랑으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가 환자들에게 건강을 주려고 최선을 다할 때 좋은 병원으로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결국 그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그 돈을 선교비로 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소원을 가지고 구하는 자에게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는 지금도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도하지 않으므로 많은 것을 구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주께서 주시고자 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이 교문을 졸업하고 나가는 동문 중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루는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졸업한 지 20년 후에 그 소원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더 큰 소원을 가지고 기도했어야 되는데 그것을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구하지 않았기에 얻지 못했고, 찾지 않았기에 찾지 못했고, 문을 두드리지 않으므로 아예 열리지 않았습니다.
셋째, 기도하는 자에게 기적이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면 우리 생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구하면 이루고 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올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강림하시면서 하늘로부터 소리 있어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땅의 문이 열려도 기적인데 하늘문이 열렸으니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하늘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신 28:12-13)
하늘문이 열려지는 것이 기적인데 기도하면 그 기도의 열쇠가 하늘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하늘문이 열려야 꾸어주고, 위에 있고, 머리가 됩니다.
기도는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를 살립니다. 가정을 살립니다. 남편을 살립니다. 민족을 살립니다. 기도는 내 영혼을 살립니다. 지혜를 살립니다. 정신을 살립니다. 죽을 병도 살립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이 들었을 때 기도하므로 살아났습니다.
기도는 인생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기도는 인생 문제의 백과사전입니다.
우리 민족이 오늘 여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누가 정치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새벽마다, 밤마다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이 민족을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조국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우시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가셔서 물건 팔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거늘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탄식하셨습니다.
빌리그레함 목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카나다에서 숲속의 새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일본에 와서는 자동차의 엔진소리에 잠을 깼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에 기도하는 나라 한국은 분명 미래 세계의 희망이다."
기도하는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있는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많이 기도하면 많이 이루어지고 적게 기도하면 적게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많이 할수록 장엄하고 큰 폭포에 물이 쏟아지듯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를 높이 올리면 내가 높아집니다. 기도의 줄을 길게 하면 은혜가 길어지고 기도가 짧으면 은혜가 짧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는 일마다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일입니다.
오래전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가 제한되던 때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설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무려 12년동안의 감옥 생활 중에 아내 메리가 죽었습니다. 소경이었기 때문에 거지로 살던 아내가 죽자 나머지 세 자녀도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고아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감옥에서 어느날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서 제가 아직 할 일이 있을까요?" 만약 제가 해야 할 일 그 일만 볼 수 있다면 저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때 주께서 마음속에 자꾸만 이런 감동을 주십니다. "너는 글을 써라 나는 너에게 글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다." 기도하면서 주 앞에 엎드린 그에게 환상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존 번연이며 이 사람이 쓴 책이 "천로역정"입니다.
공부도 안한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서 "주님, 제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할 때 글을 쓰라는 응답을 받고 기독교 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베스트 셀러인「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썼던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난하십니까, 병들어 있습니까,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안에 거하라 내 말이 네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이룰 것이고, 네가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너는 나와 함께 대화하는 제자가 될 것이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기도할 때마다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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