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 강 하 게 살 자
요한삼서 1:2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고 병상에 누워서 죽음의 위기를 느낄 때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건강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내가 살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부러운 것이 없을텐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기까지는 건강의 중요함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며칠 전에 사랑하는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고 한없이 울면서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근검절약해서 집도 크게 장만하고 아이들 방도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다 꾸며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기 전에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가 위암 수술을 받고 이사를 해서 큰 집에 들어갔는데 그 얼굴이 얼마나 초췌한지 항암 주사를 맞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 한없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병든 몸에게는 좋은 집도 귀찮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십년 이런 집을 하나 준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 남은 것은 병 뿐이고 제 마음이 한없이 슬퍼집니다." 그래서 같이 울면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제 마음에 슬픔이 가실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병고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18세 때는 폐병으로 각혈을 했고, 길거리에서 쓰러지기도 했고, 너무 초췌해서 살 소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너무 참담한 시절을 지냈습니다. 그것도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담석증으로 세 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그때 병상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발 나를 살려만 주신다면, 이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만 있다면 주님 이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이런 절망감에서 기도하고 소원했던 그때 그때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재산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은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건강을 잃는 경험을 갖기까지는 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뭐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제일 큰 복입니다.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혹시 병이 들었으면 고쳐야 합니다. 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병 때문에 축복도 받고 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병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고 있다면 큰 복을 받았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병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팔복을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에 즉시 행한 것이 문둥병자를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내쫓아 주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시고, 소경을 눈 뜨게 하셨습니다. 각색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병을 고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병을 고치면서 건강을 구원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할 때 내 영혼이 죄에서, 사망에서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하지만 또 하나 병에서 고침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것도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전인구원이요, 온전한 건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시키러 오셨는데 내 영혼의 구원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 정의로운 사회, 평화로운 나라를 말합니다. 이 전체가 다 어우러져 온전한 상태를 건강이라고 말하고 이 건강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루시려는 구원의 은총을 사도 요한이 가장 명료하게 표현해 준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는 이 세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영혼의 건강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된다"는 말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범사가 잘 되는 것은 모든 인간 관계의 삶 전체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강하게 살고, 인간관계에서 건강하게 살고, 나 자신이 평강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요, 이렇게 사는 것이 최고의 구원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영혼은 믿음으로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 영혼이 건강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이 바로 사는 것이 건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건강한 영혼입니다.
사람들이 병들고, 악하게 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의 영혼이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못 되면 범사가 잘못되고 결국 거기에서 인간의 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말씀으로 조용기 목사님은 3박자 구원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영, 혼, 육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의 참 건강은 건강한 영혼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병들면 하나님을 외면한채 공허와 허무 무의미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이들은 인격에 병든 환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여기 '영혼이 잘 된다'는 말은 속사람이 잘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나눈다면 겉사람은 육체입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형상, 곧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낡아지고 후패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아무리 젊어지려고 맛사지를 하고, 주름을 펴고, 화장을 해도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여기 '속사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εσο υγθρωπουγ'인데 이는 내적인 존재, 즉 '영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혼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속사람이라는 말을 여러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혼의 건강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분명히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살고 이것으로만 우리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하고야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에 육체도 따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Health'입니다. 그런데 이 'Health'라는 단어의 어원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Holy'(거룩함, 신성함)에서 왔습니다. 결국 건강은 경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에게 육체의 건강도 올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다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건강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옛날 왕들의 수명을 집중 연구해 본 결과 인간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지니고 살았던 로마의 황제들의 평균 수명이 35세였고, 중국에서 불로초, 불사약을 먹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중국의 왕의 평균 수명은 39.2세였고 우리나라 조선 왕조 시대의 왕들의 평균 수명은 43세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들은 땅에서 좋은 것 다 먹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은 수명이 짧아진 것입니다. 인간이 좋은 것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고 장수하는 것 아닙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야 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선해야 됩니다.
어떤 분의 조사에 의하면 주일 성수 잘 하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족장들이 장수한 기록을 성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기독교인들의 수명이 세상 사람보다 깁니다. 그 이유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화려한 집이나 값비싼 음식에서 건강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건강을 찾아야 합니다.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영혼에서 비롯됩니다. 건강한 영혼은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려고 하면 그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건강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건강은 육체적으로 병이 없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료할 때 병을 없애는 치료가 있고 환자를 고치는 치료가 있습니다.
폴 트루니에는 "질병을 치료하기 보다는 환자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환자를 섬긴다"고 했습니다. 건강이란 병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온전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병만 고치는 것은 병원입니다. 하나님은 병을 고칠뿐만 아니라 환자의 인간됨을 고칩니다. 예수님에게서 병 고침 받고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고 병을 고치면서 인간됨을 고쳐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건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의 병에서 놓이는 건강이 있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서 그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육체의 병이 들어서 사경을 헤맸지만 그 폐결핵에서 고침을 받으면서 내 영혼도 건강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둘째, 네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혼의 건강에 이어서 중요한 건강이 범사의 건강인데 범사가 잘 된다는 말은 모든 인간 관계가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상담 학자인 하워드 크라인벨은 전인건강을 일곱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오는 교제의 즐거움과 행복감
마음속에 내재하는 기쁨과, 감격과, 평안함
몸에서 활기찬 생동감을 날마다 살아가는 것
인간관계에서 친밀한 우정으로 평화롭게 사는 것
하고 있는 일에서 만족감을 얻고 보람을 느끼는 삶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웃음과 휴식을 주는 놀이
사회의 정의 실현에 공헌하며 이 세계의 자연을 보존하며 회복하는데 참여하는 것
이상 일곱가지가 온전할 때 전인건강을 유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삶은 전 삶의 영역을 온전케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유명한 폴 틸리히는 "인간의 전인건강을 유지하는 힘이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인생의 삶과 건강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사랑이고, 모든 인간 관계도 사랑이고, 일하는 것도 사랑이고, 놀이도 사랑이고 모든 관계의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지구를 사랑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그리고 이 세계의 자연을 보존하면서 자연 만물에게까지 사랑의 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건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정립하여야 합니다.
탈무드에 "하나님을 웃기기 위해서는 고아와 과부를 웃겨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내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더니 예수님이 문 입구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있더랍니다. "너는 헐벗은 자에게 입혀 주었구나 들오가라" "너는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구나 들어가라" "너는 목자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었구나 들어가라" "너는 나그네를 영접했구나 들어가라" "너는 감옥에 있을 때에 방문해 주었구나 들어가라" 이 분이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자기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라" 하더니 그러더랍니다. "너는 먹을 것을 준 일도 없고, 옷을 준 일도 없지만 고아원에 찾아가서 고아들 한번 웃겨 주었으니 천당에 들어가라" 하셨다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셋째,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장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요, 웃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일입니다. 웃는 남편은 착한 남편입니다. 웃는 아내는 가정을 행복하게 합니다. 웃는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아비야의 성녀 테레사는 수녀원에서 수련 수녀를 선발할 때에 선발 기준을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선발하였다고 합니다. 잘 웃는 사람이 어려운 시험도 이길 수 있고, 또 남을 위로할 수 있고, 또 건강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웃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젊어서는 많이 울었습니다. 그 운 것도 거저 운 것이 아니고 은혜로 울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별세의 은혜를 받으면서 이제는 부활의 은혜가 다시 임하니까 눈물을 흘리는 것도 웃음을 담고 눈물을 흘리게 되고 계속해서 웃으면서 사는 은혜로 바꾸어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처지가 어떻든 내게 주어진 문제가 무엇이든간에 거기에서 능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삶을 웃음의 현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나 자신에 대해서 끝까지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혼의 건강이요, 사랑은 이웃과의 모든 관계에서부터 자연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사의 건강입니다. 집안에 있는 나무 한 그루도 사랑할 때 건강합니다. 자녀도 사랑할 때 건강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할 때 일의 성취의 건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육체가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셨으니 내가 잘 살아야지' 하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려는 의욕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인정하면서 소망을 갖는 것이 바로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의 유명한 황제 알렉산더가 있습니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그가 바라던 것처럼 아버지보다 훨씬 넓은 땅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는 이웃한 나라 이란을 정복한 후 멀리 인도까지 원정하였으며 매 정복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알렉산드리아'란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인도 원정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바벨론에 들러 정복지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싼 많은 백성들과 신하들과 나누는 술자리는 몇 날 몇 일씩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석양녘까지 술을 마시고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술을 마시고 하는 생활을 거듭하던 알렉산더 왕은 그만 열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가 많이 위독해져 임종을 앞두었을 때 즈음 한 신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대왕께서 죽으신 후에는 누구에게 이 나라를 맡기시려 하십니까?" 알렉산더는 대답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강하고, 무엇보다 가장 건강한 자에게 이 나라를 맡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행복도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축복도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천국도 건강한 자의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면 천국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건강한 자의 선물입니다. 심령이 병들면 아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병들면 권력도, 명예도, 영광도 소용이 없습니다. 병들면 진수성찬도 소용이 없고, 아름다운 별장도 내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http://cafe.daum.net/khc2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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