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하나님의 성전 (고린도후서 6:11-18)
한 나라에서 가장 귀한 집은 대통령이 사는 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사는 곳을 미국은 ‘백악관’이라고 하고, 우리나라는 ‘청와대’라고 합니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통수권자가 거하고 있는 집이기에 많은 병력이 보초를 서고, 그 나라의 귀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항상 청와대에 있습니다.
그 분이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 또는 다음 청와대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온 국민의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이런 한 국가의 통치자에 대한 관심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이 청와대보다는 천국에 있고, 이명박 대통령에게보다는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가리켜 ‘천국’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국’이라 말을 할 때는 이 세상과는 구별된 특별한 장소를 일컫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 주위에 천군 천사들이 있고, 환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에게 있어 삶의 귀한 문제는 “어디에서 사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천국의 개념도 그렇습니다.
주위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서 천국인 것입니다.
성전도 같은 개념입니다.
겉으로 웅장해 보이고 깨끗해서 성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곳에 계시기 때문에 성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 길에 누구와 함께 살고 싶습니까?
잠깐 스쳐지나 가는 인연이 아니라 함께 오래 오래 살고 싶은 분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 부부의 만남이 가장 긴 만남인데, 이것도 잠깐 스쳐지나 가는 것처럼 가버립니다.
우리 중에도 남편 없이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은 불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분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 분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런 분과 함께 동거동락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성경 말씀은 성도들과 불신자들과의 사이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아시아와 유럽의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는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여 많은 부를 누렸습니다.
돈이 많다 보니 사치와 향락 그리고 유흥과 퇴폐가 성행하여 자연히 방탕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당대에 가장 퇴폐적이고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가 그렇게 된 것은 그 도시의 종교 역할이 큰데, 고린도에서는 사랑의 여신, 방종스러운 정력의 여신 비너스를 섬겼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자신들의 사업의 성공을 도와달라고 사랑의 여신 비너스에게 아름다운 여성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먼 나라에 처녀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파송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사랑의 여신의 제단 앞에는 아름다운 1,000여명의 여성들이 신전의 창기로 일을 하였습니다.
외국인 상인들이 자신들의 많은 돈을 이 창기들에게 날리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고린도의 상황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동일한 것 같습니다.
온갖 죄악이 발전된 도시 속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죄를 짓는데 컴퓨터까지 가세합니다.
이처럼 죄가 관영한 도시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2장 10절의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마리의 짐승에게 한 멍에를 지우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지 않는 자와는 아예 상종조차 말라는 것입니까?
그들과 담을 쌓고 지내라는 것입니까?
사업상으로라도 동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무인도로 가거나 교회를 무인도처럼 만들고 그 안에서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믿는 자들끼리만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멍에’는 두 마리의 소가 쟁기질을 하는데 어깨에 걸친 긴 나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멍에를 멘 소는 한 목적을 향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는 소와 소가 멍에를 메는 것을 말하지 않고, 서로 다른 동물이 한 멍에를 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와 불신자 사이에는 차이점이 너무 커서 서로 함께 관계를 갖는 것이 합당치 않습니다.
믿는 신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한 멍에를 메고 한 목적으로 한 방향으로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목적과 불신자들의 삶의 목적이 다르며, 성도들의 삶의 방식과 불신자의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믿는 자들끼리만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성경은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있느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사귈 수 있느냐?”,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될 수 있느냐?”라고 아주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귄다’, ‘조화되다’, ‘상관하다’, ‘일치하다’ 등의 단어는 ‘동의, 일치, 조화, 한 몸’이라는 의미로서 어떤 분은 이것을 남녀간의 깊은 관계를 의미하는 말로 보고서 이 말씀을 남녀간의 문제나 성도의 불신결혼을 금지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도가 불신자들과 이리저리 얽히고 설키며 살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과 삶의 깊은 부분이나 영적인 부분에서까지 하나가 되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그냥 만나고 함께 일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들과 내면으로나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당시 고린도인들의 생활은 거의 100% 우상 신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집안의 대소사도 신전에서의 예배로부터, 마을이나 어떤 단체의 모임도 신전에서의 예배로부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거래도 신전에서의 예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린도 교인들의 일상 역시 우상숭배와 거의 모든 것에서 맞물려 있었습니다.
심지어 시장에서 파는 육류 등 대부분의 상품도 우상 신전을 거쳐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고린도 성도들의 삶은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성도가 이 세상의 죄악 가운데 거하는 것이나 불신자들과 어울려 구분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이것을 좀 더 구체화하여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과 같다”고 증거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우상이 세워지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불신자들과 깊이 관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성전모독죄와 같은 것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결론적으로 말씀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성도는 거룩한 백성, 구별된 백성입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또 주님과의 관계 때문에 세상의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구별된 성도는 구별되지 못한 사람과 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우리들은 의롭게 사는 삶이고, 불신자들의 삶의 방식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서 살므로 불법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새 백성들을 향하여 ‘빛’이라 하시고, 불신자들을 가리켜서 ‘어두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왕은 그리스도이신 데, 불신자들의 왕은 귀신의 왕인 벨리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성전인데 비해, 그들은 우상과 함께 살아가는 사당입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성도와 불신자들은 결코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영이 다릅니다. 목표가 다릅니다.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이에 우리 성도들은 그들과 멍에를 함께 멜 수 없고, 함께 동행 할 수 없으며, 함께 사귈 수도 없고, 서로 조화 될 수도 없으며,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리고 결코 일치될 수가 없습니다.
이에 오늘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다 부정한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은 인터넷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른들은 실감이 나지 않아도 청소년들에게는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음란 싸이트가 무려 11만 5천 4백 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각 가정에 설치된 개인용 컴퓨터에서 3개월에 35회 정도 그런 음란 사이트에 접속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이 메일에도 음란 싸이트가 올라와 있습니다.
가끔 교회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민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이들만 그렇습니까?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어떻습니까?
향락 산업이 얼마나 번창하고 있습니까?
그 중에 묻지마 관광은 이제 그 도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가정 주부들까지 윤락을 행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세상입니다.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육신의 정욕에 빠지면 겉잡을 수 없이 내려갑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눈길을 의식해야 합니다.
눈을 만드신 분이 보시며, 귀를 만드신 분이 들으시며, 마지막에 심판하실 분이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연합하여 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삶은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이므로 그리스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에 따라서 심판을 베푸십니다.
이미 우리들이 회개한 죄에 대해서는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또 다시 그리스도를 욕보인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우리들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전도서 11장 9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말들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슨 행동을 하든지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거룩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는 길은 성령을 좇아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라서 살면 가장 거룩한 삶이 유지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성도들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풍성하면 그의 삶에 거룩함이 풍성하고 말씀이 없으면 세상의 윤리대로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죄를 이기는 힘을 주십니다.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 자신들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 거룩함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와 동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들은 늘 연약합니다.
어제까지 믿음으로 살았다가도 오늘 넘어집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와 함께 동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교제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불신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목적으로 함께 죄를 범하는 데로 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함께 정욕을 따라서 행하는 길로 동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뇌물에 함께 연루되어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좁은 길과 그들이 가는 넓은 길은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주님을 알기 전의 여러 관계들에 매여서 주님과의 관계에 소홀했고, 그러다보니 거룩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모습으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잘못 되고 어리석은 짓입니까?
세상 모든 관계의 줄을 놓을지라도 결코 놓아서는 안 되는 관계가 주님과의 관계인데, 여러분들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으로 여기고, 그 관계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이런 복을 얻었습니다.
세상과 우리들은 사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돌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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