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가장 훌륭한 표어/스펄전

하나님아들 2013. 1. 24. 11:33

 

 

가장 훌륭한 표어/스펄전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민 23:21)
 
본 절은 모압의 왕과 그의 방백들이 동양인 선지자 발람을 대동하고 울퉁불퉁한 산꼭대기에 올라간 장면을 보여줍니다.

 

저들은 악한 눈으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고 아래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의 장막에 저주가 임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들이 산 정상에서 저 아래 광야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스라엘을 박멸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는 중입니다.

 

 매우 날카롭고 잔인한 눈초리로 그 곳을 쳐다봅니다.

 

 저들의 얼굴에는 간교하고 사악한 모습이 깃들어 있습니다.

 

발락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대 하였습니까? 이들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사 광야로 인도하신 이 백성들 위에 악이 미칠 수 있도록 은밀하게 마법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은 모압인들이 일곱 제단을 쌓고 일곱 송아지와 일곱 수양을 제물로 바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압인들은 이러한 제물의 단을 비스가 꼭대기에 차려 놓았었습니다. 발람은 영감이 자기에게 임할 때까지 물러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감이 임했을 때에 예언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놓고 볼 때 모세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도 이러한 음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골짜기에 있는 각 지파들은 이러한 악행이 수행되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닥칠 불길한 징조를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항상 지켜 주시는 파수꾼인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위기 때에 어떻게 되었을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는 빈틈이 없으십니다. "나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얼마나 귀합니까? 여호와의 눈길은 고용이 된 발람에게 집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볼의 아들 발락에게도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들은 허탄하게 마술을 부려서 기이한 일을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치와 어려운 일만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계획이 완전히 실패되고 자승자박의 결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여호와 삼마"~여호와가 그 곳에 계시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 임재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저들 주위에 계셨고 거기에서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여호와가 저들의 빛이요 구원이었습니다. 저들이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선택에 따라서 남은 백성을 보살펴 주십니다. 이러한 남은 백성은 이리 가운데에 양과 같은 처지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향해서 나아갈 때 우리 주위를 살펴보게 됩니다.

 

그 곳에는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여러 가지 위험물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사탄이 주야로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대는 것같이 사탄은 삼킬 자를 찾아서 이곳 저곳을 다닙니다. 은밀하게 자신의 간교한 음모를 꾸미고 가능한 한 선택한 자를 유혹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어둠의 권세는 대단히 많은 충실한 종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그들의 힘을 빼앗아버리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서 진리를 말소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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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슬픈 일 중의 하나는 진리를 알았던 사람이 그 진리를 떠나는 일입니다. 발람이 그러한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이 선지자는 참된 이스라엘과 대항하는 원수와 동맹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저들과 음모를 꾸미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그 복음을 간수한 교회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편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교회가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였다 하여도 그 일은 원수에게 감사할 일은 못됩니다. 이는 원수는 교회를 매우 신속하게 삼켜버리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 볼 때에는 여러 가지 슬픈 일들이 많이 보입니다. 죄악이 가득하고 세상을 좇는 사람이 많습니다. 허다한 거짓 신들이 이 세상을 배회합니다. 우리를 돕는 자로 알고 의지하였으나 오히려 우리를 해치는 자가 됩니다. 그러할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망을 당해야 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주변이 죄악으로 관영하고 사탄이 득세한다 하여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교회 가운데에 계셨던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하나님이 계실 때에 하나님의 원수가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를 계속 보호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고 지옥의 권세가 그 교회에 대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안전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의 가운데 계시고 어느 것도 교회를 옮길 수가 없으며 주께서 교회를 돕는 가가 되실 때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가 지극히 안전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모든 위험에 대해서 교회가 안전하게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들 중에 있도다."
 
본 절을 중심으로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임하신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그러한 임재의 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셋째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그러한 임재가 계속 우리 가운데 보존되느냐 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드릴 때 성령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Ⅰ. 첫째 대지인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임재는 특수한 임재입니다.

 

 이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곳에서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서부터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하늘에도 계시고 지극히 낮은 지옥에도 계십니다.

 

 여호와의 손은 산언덕 위에도 미치시고 그 능력은 깊은 곳까지 미치고 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하고 기이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도 계십니다. 그러나 특수 임재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기 백성 가운데에 계씬 점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모압인이나 에돔인 가운데에 계신 일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교회 안에 계시나 세상 안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같이 거하시고 그들 가운데서 동행하시겠다는 것은 특수한 언약의 약속입니다.

 

 성령의 은사로 인해서 여호와는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러하시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교회와 자기 백성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두십니다. 이러한 관심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말해주고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며 우리와 같이 일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축복에 가장 가까운 곳은 이런 여호와의 임재에 의해서 됩니다.
 
한 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본성 중에서 자기 백성과 같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이는 아버지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측은히 여기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도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측은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 후 필요에 따라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반면 영원토록 우리에 대한 스승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있는 곳에 계십니다.

 

 그들이 슬퍼하는 것을 들으시고 그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보십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하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도 온 세대를 통하여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기 자식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식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쁨을 누립시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오시어 여러분과 같이 거하고 계십니다. 그 뿐 아닙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 아들이 사도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성호를 의지할 때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둘 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나 우리에 대해서 그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과 친교 맺는 일에 힘을 써야 됩니다.

 

 이는 우리의 참된 친교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친교는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인해서 우리는 더욱 가까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가 우리와 같이 거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우리와 같은 주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러한 임재는 성령과도 연관이 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지만 지금도 그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사가"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엘리야에게 말한 데서 잘 드러납니다. 이 시간에 나의 영감이 갑절이나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주시오 스승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에 영감이 배나 받아서 오순절 같은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순절에 임하였던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일어날 수가 있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소생시키시며 위로하시고 훈련시키시며 그들을 위해서 사역도 행하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친히 대언자가 되시고 진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위해서 친히 대언자가 되시고 진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교회가 옳고 건전한 상태에 있을 때 그 교회 가운데 임재 하여 계십니다. 그리하여 원수가 침입치 못하게 지켜 주시고 원수의 군대가 패배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모습이 영광된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유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며 성령과 교통한 교회가 보여주는 영광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축복이 다함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가운데에 삼위일체의 아버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영광중에 임재하신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습니까? 이러한 축복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비하의 임재하심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 가운데 참으로 거하십니다.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을 모실 수가 없는데 그런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 거할 수가 있느냐고 질문을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호에 영광을 돌립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얼마나 기묘한 말씀입니까? 누가 이런 의미의 깊이를 측량할 수가 있습니까? 성육신의 신비도 내재사심의 신비만큼 신비스럽습니다. 성령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된 것 못지않게 기이한 일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유한한 피조물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사실, 이 모두가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정녕히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또한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참된 교회에 놀라움을 가져다줍니다. 여러분께서 어떤 교회를 다니시든지"참으로 아름답다. 교회 건물도 좋고 음악도 청아하며 보수적이며 건축양식도 참으로 좋다."등등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러한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 곳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그 곳에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하였을 때 영혼에게 얼마나 커다란 감회를 끌 수가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거룩한 땅 위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한하신 사랑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오실 때 그 곳은 제사장들이 중보역할을 하기 위해서 서 있을 필요가 있는 솔로몬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침묵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가 생깁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는 야곱의 말이 가장 적당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계시게 될 때 가장 천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될지라도 그 곳은 지극히 엄숙한 경외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할 때 가장 부한 교회나 유명한 교회일지라도 관심을 둘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시지 않을 때 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곳에 거하시게 되면 교회 안에 평안이 깃들게 되고 그 곳에 번영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곳에 계시지 않을 때 여호와의 성호를 말하는 사람에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이는 저들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고 저주 아래에 있는 연고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백성입니다. 저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고 빈손만이 저들에게 선물로 주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교회를 기쁘게 만들고 행복하고 엄숙한 장소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임재가 없을 때 모든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모든 사람의 마음이 무거워지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은혜에 의해서 분명하게 식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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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은 그것을 모른다 할지라도 은혜 받은 사람은 압니다. 내 생각으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도 그것을 느끼기는 하리라고 봅니다. 저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저들이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로 예배에 참석지 아니할 때 단순히 인간적인 말에 의해서 감동을 받은 것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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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외모로 인해서 위압감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들 마음속에 경외심이 생겼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를 잘 압니다. 여호와께서 지도자로 계시는 백성들의 진을 미워하고 그 진에 대해서 배나 적개심을 갖습니다. 허다한 음모를 꾸미고 전력을 다해서 그것을 실행에 옮깁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본부를 잘 알기 때문에 그 본부에 대해서 직접 공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옛날에 발람과 발락이 행한 일과 같습니다.


잠시 동안 발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발람의 행위가 칭찬받을 만한 일은 못되지만 그를 살펴 볼 때 우리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황금을 받고 자신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영감을 받아서 말을 한 그러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고 삯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저주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발람의 계획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계시기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발람을 평가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라."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고 그러한 하나님은 불변의 하나님이시고 참 하나님이시며 약속을 행하시되 그것을 잊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실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진실하시며 변역치 않으시고 변화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시고 그렇게 행하겠다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고 기쁘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기대에 부응되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이 세세무궁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죽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이 하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교회가 실패하였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어떤 교회가 실패한 모습을 볼 때마다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실패가 있는 곳마다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곳에 계신다면 그러한 실패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인입니다. 마을 사람의 거의 전부가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러나 영적 생활은 우리에게 진전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지 않고 오락시간이 예배시간보다 더욱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세상보다도 더욱 특출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들었을 때 그 교회가 실패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증거는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흔한 일입니다. 교회가 직면한 가장 무서운 범죄 중의 하나는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상태입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상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과 열심히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고통을 줍니다. 이러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실 수가 없고 그로 인하여 그의 교회가 생명력이 상실됩니다. 이는 교회가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여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계속 열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열기의 원인인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해야 됩니다.
 
Ⅱ. 둘째 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말씀을 드릴 것은 이러한 신적 임재하심의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 중의 몇 가지가 본문 말씀 가운데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라는 말씀입니다.

 

 훌륭한 학자들은 본 절에 대해서 다른 독구를 줍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실 때 저들을 인도하시어 그로 하여금 놀라운 은혜를 체험케 하셨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우리에게도 찬송을 가져 오게 만듭니다. "그가 나를 인도하시도다. 그가 나를 인도하시도다." 이러한 감격스러운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잔잔한 시냇가로 나를 인도하시도다"라고 읊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했을 때 교회에서 다른 지도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눈과 팔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교회가 인간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와 못지않게 인간적인 방편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교회가 한 두 사람이나 아니면 이십 명 정도의 세력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교회를 지배하는 능력은 여호와 자신에게 있어야 됩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핵심적인 인물이 하나님이 되시고 성령의 사역으로 올바르게 인도될 때 교회는 부흥이 됩니다. 이러한 교회는 연합할 목적을 갖지 아니해도 뭉치게 되어 있고 소문내지 않아도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운동은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될 때 되고 성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재중일 때 최상의 방법을 동원한다 하여도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교회의 조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나는 종종 쯔빙글리의 말이 생각납니다. "성 삼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하사"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에서 자유롭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모든 사람은 옳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각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처신을 하게 될 때 그 곳에는 규칙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대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물질의 원자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같이 각개 신자들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계셔서 그 교회를 인도하실 때 그 교회는 올바르게 인도가 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사역을 앙망하시되 방해하지 않도록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을 영접하시고 그를 통해서 영적 능력을 힘입어 놀라운 발전이 있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실 바 있고 바다에 인도되었을 때에도 마른 땅을 주시어 그 곳을 지나가게 만드셨습니다. 광야에 인도되었을 때도 그들을 먹이셨고 건조한 지역에 이르렀을 때에도 반석에서 나오는 많을 물로 저들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된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축복은 힘이 됩니다.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라는 말씀이 그것을 말해 줍니다. 여기에서 말한 들소는 멸종된 돌일 들소(urus)나 황소의 일종으로 대부분 오늘날에는 물소(buffalo)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하나님이 교회에 계실 때 무서운 힘, 놀라운 힘, 저항할 수 없는 힘이 그 곳에 있게 됩니다.

 

 이러한 힘은 누구나 대항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이 들소를 이용하실 때 어느 사람의 밭이라도 힘들이지 않고 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들소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활방법이 있고 자기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교회에 계실 때에는 교회의 힘이 숫자가 급증한다고 해서 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돈을 주시기는 하지만 돈에 있는 것도 아니며 그 힘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력은 저항할 수 없고 막을 수도 없으며 정복할 수도 없습니다. 힘과 능력이 여호와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교회를 분석하여 보십시오. 여러분의 몸을 분석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몸은 거대하나 힘줄이 약합니다. 보기 좋은 모습이지만 영혼, 근육, 기골이 부족합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나 속이 빈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그 곳에 있어야 생명력이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오순절의 성도들에게 임하였을 때 그들은 놀라운 힘으로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핍박을 받을지라도 굴복치 아니했습니다. 어떠한 고초도 그들의 입을 막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저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들의 힘은 들소의 힘과 같다고 할 때에 과히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이 힘은 제어할 수도 없고 정복하기도 불가능합니다.
 
그 다음의 결과는 안전입니다
.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라는 말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조용하게 악마의 모든 계획을 좌절시킵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이 교회를 유의하여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극히 크신 은혜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참석한 우리들은 확신 있게 그것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와서 질문을 합니다

 

. "당신은 종종 오늘날의 회의주의에 대해서 해답을 주고 있습니까?"나는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저들이 이곳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기 때문에 이곳에 온 이후로는 회의주의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내가 그들에게 한 답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니 담대한 영적 생활이 병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은혜스러운 분위기가 현대의 회의주의와 부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악에 빠질 때 그러한 분위기에서 사니까 그렇게 됩니다. 때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지혜를 과시하고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불신, 소시니안주의, 그리고 근대의 사상 등이 영적 사역이 진행되는 곳에 침투할 수는 없습니다.

 

사술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시행될 수가 없었고 복술이 야곱을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진리를 지키고 하나님을 모시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될 때 이리 가운데 있는 양떼가 해를 당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실 때 거짓 교리뿐 아니라 그의 모든 이단도 여러분이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단은 항상 교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계실 때도 그 안에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사도 시대에도 이단자들이 있어서 사도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이단은 항상 교회 가운데 있으면서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람이 전혀 없을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보다도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교회가 가장 안전한 상태는 신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조를 범한 사람을 추방하는 일에 있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임재하심만이 간교한 이러한 원수의 공격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할 수가 있는 일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사술이나 복술을 믿는 사람이 아직도 세상에 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여러분께서 여호와를 사랑하신다면 그러한 가소로운 것은 바람에 날려 버리십시오. 여러분께서는 이 사람은 행운에 있고 저 사람은 행운이 없다는 말을 듣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도 이방인의 자세이고 비기독교적인 자세입니다. 그러한 넌센스를 결코 얘기하지 마십시오. 사술이나 복술이 있고 어떤 집이 마귀로 꽉 차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일진대 그러한 사술이나 복술이 우리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실진대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다른 축복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역사하시어 저들을 놀라게 만드셨고, 외부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이한 것을 질문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해서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매우 단순합니다.

 

 본 장에 보면 발람은 일곱 제단을 쌓고 일곱 수송아지와 일곱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또한 발락이라는 인물도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몇 가지의 가증스러운 악행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영감을 얻을 때에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가 아니라 이전보다도 더 많은 축복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보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인간이 행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질 때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라는 탄사가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이나 야곱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기이해서 외칩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나는 이러한 역사가 여러분에게 더 크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승리하고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 방백과 같이 담대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실 때 그들에게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게 됩니다. 여러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 백성이 암사자같이 일어나고 수사자같이 일어나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창 힘이 왕성한 사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말씀도 그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계씰 때 그 교회에 대해서 영적 악과 싸울 수 있는 매우 놀랍고 귀한 능력을 주시게 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잘못된 것을 없이하고 악을 산산조각 냅니다. 영국이 식민지에서 노예 매매를 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언제 이러한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까? 윌버포스가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고 그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투쟁을 전개하였을 때 이러한 악행이 중단케 된 것입니다. 나는 노예 해방령이 의회를 통과한 후에 윌버포스가 한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 문제가 일단락되었을 때 그는 한 친구에게 "우리가 폐지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하였습니다

 

. 이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교회는 투쟁을 전개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이 나라에 있는 악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데 있었습니다. 인간을 송두리째 삼키려는 악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유명한 형제들이 이러한 악을 대적키 위해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감사해야 될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행을 근절키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온 교회가 그것에 대적해서 일어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강한 사자가 일어났을 때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게 됩니다.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라는 말씀이 그것을 입증하여 줍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그로 인하여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 계신다면 교회가 정복하지 못한 악은 없습니다.

 

 오늘날 런던에는 허다한 죄악이 넘치고 있습니다. 빈민촌에는 갖가지 죄악이 창궐하고 있고 사람들은 신앙에 무관심하며 무신론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될 대 그 일로 인하여 악과 싸울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힘으로 일어나야 되고 악이 멸망을 당하기 전에는 눕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실 일이 하나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시키는 것은 남녀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조직을 송두리째 분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일을 하시도록 교회를 도우시고 그 교회 가운데 계시게 됩니다.
 
다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신 결과는 본문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볼 수가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가 친히 경험한 바이고 더욱 더 경험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계실 때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에는 거룩한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어린애 같은 신뢰가 있고 소망이 있으며 지속적인 용기와 기쁨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실 때 하나님의 집의 모든 것이 잘 진행되어 갑니다.

 

 성만찬과 세례가 우리 주님의 장사됨과 부활을 상징하는 일에 유효적절하게 사용됩니다. 그 뿐 아니라 말씀의 전파도 마른 땅의 단비와 아침의 이슬같이 은혜스럽게 됩니다.

 

기도회의 모임도 새롭고 그리고 불이 붙습니다. 수 시간을 거듭해서 그러한 모임에 남고 싶습니다. 참으로 복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가 모이는 그 기도처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서 같이 계시는 그 곳을 사랑합니다. 이는 그러한 곳에서만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평안하게 진행이 되고 그 뿐만 아니라 기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급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저들과 같이 있을 때에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결과도 좋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도 기쁨이 되고 더 나아가서 어떤 종류의 고난도 쉽게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온 교회에 기도가 풍성하게 됩니다. 개인 기도가 그렇고 공중 기도가 그렇습니다.

 

이어서 생명이 약동합니다. 가장 연약한 자가 다윗같이 강한 자가 되고 다윗과 같은 자는 여호와의 천사와 같이 됩니다. 이어 그러한 교회는 사랑이 불붙습니다. 통일성이 유지되고 진리가 존귀함을 받으며, 이 세상 생활에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서 동류가 됩니다. 그리고 노력이 성공합니다. 교인은 장막의 범위를 넓혀야 되고 좌우로 영역을 확정해야 됩니다. 교회의 후손들이 이방인을 기업으로 삼고 폐허지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 곳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한 능력을 주시어서 그 능력으로 열방을 정복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교회와 같이 계실 대에 그 교회는 덤불 속에 있는 숯불덩어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원수를 모조리 태워버립니다.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모습이 하나님께서 좌정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다시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우리는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왕을 부르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위대한 하나님께서 진 가운데 알려지셨을 때 백성의 기쁨이 고조되어 그들 가운데 함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소리를 칩니다. 이 세상에서도 왕이 시찰할 때에는 주변에 함성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소리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백성이 저들의 지도자를 환영하는 표시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실 때 "왕이 친히 가까이 오시도다!"라고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저들의 왕을 보기 위해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병이 들었거나 어떠한 특수한 일로 출입을 못하는 사람뿐입니다.

 

어린 아이까지도 어머니의 팔에 안긴 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왕이 오신다!"라고 소리를 치게 됩니다. 왕의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크롬웰이 지나갈 때 어떤 분위기가 조성되었는지 아십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도자가 지나갈 때 그를 보려고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주 예수께서 교회에 계실 때 교회가 보여주는 열렬한 모습과 유사한 일입니다. 왕이 온 다음에는 저들이 그 왕을 열렬히 환영해서 맞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왕이 소리칩니다.

 

 "자 싸울 시간이다." 이 소리가 왕의 입에서 발하게 되면 많은 병사들이 싸움에 나갑니다. 지휘관이 높은 곳에 서서 앞에 오는 적을 관찰하고 사자같이 자기 백성을 호령하며 적에 대해서 싸울 것을 지시합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우리는 강하고 열의가 대단하며 결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 받는 명령은 단호합니다.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갖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을 대 어느 누구도 마음에 약함을 갖지 않습니다.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담대하고 남자답게 강건하여라."하나님의 백성이 보여주는 용맹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는 저들의 왕의 눈이 저들로 하여금 용감하게 만들고, 그리고 그 왕이 있을 때 저들에게는 승리가 보장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간구합시다. 우리 가운데 계시도록 간구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주일 학교에서, 여러분의 선교 본부에서, 여러분의 거리 전도에서, 그리고 여러분의 자선 사업에서 그러한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를 간구해야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가 여러분에게 해야 될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이만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실 때 우리 가운데에서는 왕을 부르는 소리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을 때 우리는 나약해집니다.
 
Ⅲ. 셋째 대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드릴 말씀은 매우 중요하고 또한 실제적인 문제가 되겠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온전케 하고 보존키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됩니까? 이 문제를 원만히 전개하기 위해서는 대여섯 차례의 설교 시간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간략하게 취급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관대하십니다. 그리고 자기의 종들이 많은 잘못을 범하더라도 저들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교회가 성서의 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자신의 길을 이탈치 아니할 때 하나님은 그 교회에 대해서 축복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그러한 잘못된 것이 약한 것의 근원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계획에 따라 세워진 집을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는 인간의 권위에 기초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산 자이건 죽은 자이건 구별은 없습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에 따르기보다도 다른 것을 좇을 때 그러한 조직은 결국에 가서 실패하게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칠링워드(Chillingworth)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성경, 성경만이 개신교들의 신앙 원리이다."그러나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를 취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견해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이는 저들이 로마교회화 되어가는 저들의 교회를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조금씩 천주교화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그러한 상태로 될 것입니다. 집안 한쪽 구석에 나무가 썩어갈 때에는 일찍 되든지 늦게 되든지 재목 전체에 그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터에 교회를 세우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떻게 그 위에 교회를 세울지에 대해서 주의를 해야 됩니다. 기초가 좋다고 하여도 흙과 짚단으로 건물을 세웠을 때 불이 나면 집이 완전히 타버리게 됩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풍성한 교회에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죽은 교회에 거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중생한 사람만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가 잇는 것입니다. 교회에 반드시 중생한 사람만 있다고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밀 가운데 가라지도 있다는 사실이 말해 줍니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를 주관하게 될 때 그 교회는 생명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탄식하시고 우리의 곁을 떠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으시고 벽돌이나 석조 건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산 영혼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죽었을 때 그 교회에 거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영혼이 죽었을 때 그 속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다른 말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은 중생치 아니한 백성들로 구성된 교회에는 거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서는 중생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는 믿음이 충만해야 됩니다. 불신은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이러한 불신은 예수님의 힘도 약화시킵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신이 역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줍니다. 한편 하나님의 신께서는 친히 그러한 믿음을 만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시종여일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그러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적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믿습니까? 여러분에게 참된 하나님이 되시고 그 말씀이 매일의 여러분의 생활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됩니까? 그러시다면 여호와께서 성전인 여러분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믿음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터전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곡한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숨결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도가 없는 교회에 오랫동안 계시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기도회가 있고 가정의 기도가 있으며 사적인 기도가 있으며 여러 형태의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나, 그렇지 아니할 때에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약한 상태에 그대로 두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을 때 교회가 절름발이가 되며 연약해지며 기력이 쇠해집니다. 기도는 교회의 기둥과 같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없을 때 아무리 강한 교회라도 서서히 쇠퇴하여 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무능한 교회로 전략됩니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를 원하고 우리 주위를 계속 보살펴 주시기를 바란다면 기도를 합시다. 불행한 일을 당해서 주님을 붙잡고 간구한 과부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기도합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해야 됩니다. 뜨거운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이러한 기도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성결의 생활입니다. 사탄이 발람을 권하였지만 그가 그 백성을 저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에게 용모가 아름다움 모압 여인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여인들은 미모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저들을 우상잔치에 초대하였습니다. 이 의식은 탐욕으로 꽉 찬 의식이었습니다. 그 때에 음탕한 일을 자행하고 그것이 여호와께 근심을 끼치며 그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떠난 후에 모압을 치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제대로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비느하스가 잘못된 짓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가 미쳤던 일이 이번에는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마가 이 사람은 방탕에 빠지게 하고, 저 사람은 술 취하게 만들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거짓되게, 또 다른 사람은 속화되게 만들어서 교회를 혼란케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에 마귀의 사슬에 걸려 범죄를 행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렇게 부정한 교회에 거하시지 않게 됩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정욕에 의해서 더렵혀진 그러한 교회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가 거룩하신 것같이 거룩하셔야 됩니다. 세상의 부에 대해서 현혹되지 마시고 자기 의에 대해서 미혹되지 마십시오. 참된 거룩함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그것을 찾으시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 결코 자랑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의를 말할 수는 있으나 여러분의 입술은 감히 "보아라, 내가 얼마나 거룩한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된 경건성은 겸손한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만이 그러한 거룩함을 열망하게 됩니다. 거룩하고, 의롭고, 정당하고, 곧고, 진리와 순결과 사랑과 헌신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행하도록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 가운데서 이러한 일을 행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생활에 이르렀을 때 실제적인 헌신생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집에는 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몸과 혼과 영혼을 바치신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를 위해서 살고 죽을 용의가 있습니까?

 

그리스도께 여러분이 소유한 모든 재능과 능력과 재산과 시간과 생애 그 자체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까? 헌신된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교회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 곳에서 지상의 천국을 만드시고 그 곳에서 왕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곳에서 그의 능력이 드러나고 그의 영광이 높은 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예수로 인하여 이 일을 하시도록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아멘, 아멘.
 

 

 

 

 

 

출처 : 신들의 찻집
글쓴이 : 벤자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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