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부흥과 성장 행19:1-7
주신 말씀 행19:1-7절을 중심으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란 제목으로 선포되어지는 메시지를 통해 큰 은혜의 시간 되기 원합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AD53-58년까지 6년여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금년에는 교회가 회복되고 내년부터 배가되는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3차 전도여행은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는데 본격적인 성공을 이루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찾아봅니다.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잠간 에베소에 들러 복음을 전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는데 , 그곳에 동역자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남아 복음을 전했고, 아볼로가 예수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3차전도 여행시 바울이 갈라디아와 부르기아를 거쳐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뿐 성령 세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신앙을 가진 상태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니 그때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에베소의 성령강림 사건은 구원은 인간이 만드는 의식이나 역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에 근거한 온전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합시켜 주시는 성령의 세례로만 가능함을 확인시켜 준다 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말씀을 근거로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대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라. (1-3)
아볼로가 에베소를 떠나 고린도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바울은 전도사역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윗 지방을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녀라는 단어 디엘돈타:διελθΌντα 는~을 통하여라는 뜻을 가진 디아(διά)와 걸어가다(έρχομαι)는 두 낱말의 합성어로써 통과하여 지나가다는 뜻으로 어떤 지역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들러 간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촌각을 아끼며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조금도 아낌없이 윗 지방(갈라디아와 브르기아)을 다니며 복음의 씨를 뿌릴 뿐 아니라, 이미 뿌려진 복음의 씨에서 돋아난 싹을 가꾸었던 것입니다.
특히 베자사본에는이 부분을 ‘그러나 바울이 자기 자신의 계획에 따라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했으나 성령이 아시아로 다시 돌아가라 권하므로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이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수도로써 아시아의 로마라 불리 울정도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정치적으로 중요하며 지리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와 서방 아시아의 대륙을 연결하는 해로와 육로가 발달한 도시로써 신전을 중심으로 이교적 우상 숭배가 범람한 곳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 여신의 신전은 넓이48m, 길이 103m, 기둥의 높이가 17m, 기둥수는100개였고 여신상은 7-8파운드 금으로 장식했다 합니다.
에베소인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이교적 우상숭배가 범람했고, 종교의 힘으로 병을 낫게 하는 의료행위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은 약 12명으로써 이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의 세례에 대해 잘 모르는 초기 결신자들이 있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당도하여 그곳의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에베소의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제자들이었지만, 성령으로 충만해 있었던 바울이 보기에 무엇인가 부족함이 보였기 때문에 질문한 것입니다.
에베소의 제자들은 바울의 예상대로 성령의 임재는커녕 성령의 존재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반드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어서 삶에 능력이 없고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주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약하고 겁쟁이 같았던 제자들, 베드로는 주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죽음이 두려워 도망치기에 바빴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에 모두 자기 순교지를 찾아 세상으로 사방팔방 떠나가는 귀한 모습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사람만이 정상적이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 토라지고 화내고 불평하며 책망한다고 지적한다고 경멸하지 않았기에 이들의 신앙은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화가 나지 않겠어요.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해 있습니까?
성령님이 성도님의 생활과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주장하며 인도하십니까?
듣기 껄끄럽고 거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런 도전적인 질문을 했을까요?
바울이 칭찬과 인정에 인색해서가 아닙니다.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미운 마음에 그들의 기를 꺽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로 하여금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하여 연단하신 것입니다.
주마가편이라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지 마구간에 있는 말에 채찍을 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채찍을 드는 것은 더 빨리 더 잘 달리기위해서입니다.
우승하면 특식을 먹고 최고급 대우를 받습니다.
메이저 리스 선수들은 초특급을 받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기가 끝나면 짐도 호텔로 자동 운송되고 초화객실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편안한 휴식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이너 리그 선수들은 자기짐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 방 자기가 청소하고 경기후 뒷정리 다하고 먹는 것도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제공받는다 합니다.
그런데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 일군 선수와 2군 선수의 차이가 난다고 하죠.
일군 선수들은 지게 되면 얼굴에 화가 나있고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채찍질과 패배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2군 선수들은 이긴 자나 진 자나 다 똑같이 [끝났구나!]라는 해방감에 활짝 웃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일군 선수들은 승리라는 목표 자기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의식이 있어 자기 자신이 부지런히 자기 결점을 해결하고 타격감, 투수감을 잊지 않고 업그레이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이고 , 이군선수들은 욕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일류냐 이류냐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에서 목회 하는 분들은 한 명의 성도에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은 너그러워서 성도가 출석을 안 해도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해도 본인이 원하면 그렇게 해야지 하며 아량을 베풉니다.
부흥하는 교회 성도는 한 사람이라도 자기 교회로 데려오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는데 미자립교회 성도들은 [그래 큰 교회에 가야 결혼도 잘하고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다고 가는 걸 어떻게 말려]하며 방임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도록 나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더 바르게 더 빨리 달려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 말을 사랑하는 마부의 마음입니다.이러한 마부의 마음과 같은 예수님의 마음, 사도와 목회자의 마음을 바로 아시고 부족에 대한 지적과 책망을 받을 때 결코 낙심하지 마시고 자신의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삼는 지혜 있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부흥 성장하는 교회를 이루게 되리라고 확실히 믿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로 지도자가 먼저 성장하여 본이 되어야 합니다.(2-3)
성령 충만은 사모하는 자의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반드시 믿는 자에게만 임하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라고 다 성령을 자동적으로 충만히 받는 것이 아니라 , 성령을 받기 위해 전혀 기도에 힘쓴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히 받기를 열렬히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직 성령 충만 하게 받아 주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순수하게 기도할 때 성령은 충만하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문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 충만 받아 주의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먼저 지도자가 성장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아볼로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가르쳤지만, 이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가르쳤기에 이들의 영적 수준은 초등학문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숙하려면 먼저 가르치는 교사가 성숙해야하고, 한 나라가 성장하려면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말씀이나 영적인 면에서 뜨겁고 성숙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하고 부흥하려면 먼저 지도자들이 말씀과 영적인 모든 면에서 올바로 서야 합니다.
즉 교회 학교가 부흥하려면 교사들이 뜨거워야 하고, 구역이 성장하려면 구역장이 열심히 있어야 하고, 교회가 부흥하려면 목회자와 중직자들이 말씀 안에 바로 서고 열심과 사랑이 넘쳐야 됩니다.
고전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자 되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결코 떠나지 않으며 먼저 모범을 삶을 살 때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줄 믿습니다.
금년 한해 모든 제자들과 성도들이 말씀과 사랑 속에 올바로 성장함으로써 교회 전체가 부흥되는 기쁨의 열매를 맺기 원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로 순종이 빨라야 응답도 빠른 법입니다.(4-6)
4절에서는 예수와 인간 성인 사이에는 뛰어 넘을 수 없는 절대 간극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구약 성경에서 가장 큰 선지자 엘리야와 닮아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온 백성이 바알 숭배로 돌아섰을 때 홀연히 나타나 여호와 제일 신앙을 부르짖은 인물로써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불려 간 선지자 입니다.
이러한 선지자 엘리야보다 더 나은 인물이 세례요한이라고 주님은 증거하십니다.
눅7:26“...선지자보다 훌륭한 자니라, ..28..여자가 낳은 자중에 요한 보다 큰 자가 없도다” 합니다.
세례요한이 인간 성인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아닌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세례가 생명을 주는 구원에 이르는 세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은 자신이 위대한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입니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마호멧등을 예수님과 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인이고 피조물이고 한계가 있는 인간이며 이 땅에 무덤이 있는 인간에 불과하나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5절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즉각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를 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즉시 응답하자 하나님께서 즉시 성령을 보내시며 능력의 은사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에베소의 제자들이 사도 바울의 증거를 듣고도 [이는 처음 듣는 얘긴데 우리 선생 아볼로에게 물어보고 중론을 들어 결정하겠다]고 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속히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 주셨을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신중한 것도 좋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확신을 갖고 즉각 삶에 추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은 그들의 신속하게 결단하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신속한 응답과 은혜를 받기 원하신다면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뒤로 미루어선 안 됩니다.
세상일은 급히 서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미루지는 않으시는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감동주시면 결코 지체 하지 마시고 머뭇거리지 마시고 신속하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성도의 순종보다 더 빠르게 은혜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만일 즉각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진다면 이는 더 좋은 때를 위함인 줄 알고 소망을 안고 오래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지금 당장 베푸시는 은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놀라운 축복으로 기도와 순종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6절은 에베소의 성령강림사건 혹은 에베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베소의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믿자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심으로 그들이 방언도하고 예언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진실로 믿게 될 때 성령을 받고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게 됩니다.
방언이나 예언은 성령강림사건의 한 표징에 불과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갈5:22-23절의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다시 말하면 삶으로 증거를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삶 가운데 열매 맺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내 믿음이 참 믿음인지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형식적인 믿음,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내용은 없는 모습은 아닌지요?
우리 모두 성령의 임재의 표징을 가지시고 그로 인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녀 되었음을 확신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라. (1-3)
둘째로 지도자가 먼저 성장하여 본이 되어야 합니다.(2-3)
셋째로 순종이 빨라야 응답도 빠른 법입니다.(4-6)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과거의 죄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함으로써 새 삶을 살게되는 상징적 의식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 성령으로 충만하고 먼저 본이 되고 즉시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즉각 응답받아 교회가 부흥하고 믿음이 성숙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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