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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업을 약속 받은자들

하나님아들 2013. 1. 15. 15:50

기업을 약속 받은 자들

히브리서 6:9-12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공한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해서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며칠전에 조성민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고의 야구 선수 조성민, 최고의 인기 배우 최진실과 결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했습니다. 최고로 행복한 결혼을 한 사람이라고 모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혼하고 두 사람 모두 자살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들이 낳은 두 아이의 장래를 모두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조성민은 야구 선수로 성공했습니다. 최진실 역시 최고의 인기 배우로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결과는 매우 불행하게 된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결코 성공이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공해서 행복한 사람 없고 행복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어렸을 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워싱턴은 시골에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마차를 끌고 시장을 가려고 하니까 워싱턴이 아버지를 따라 가고 싶어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아들을 마차에 태워 함께 시장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보려니까 아들 때문에 마음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골목 한 곳에 남겨두고 ‘너 여기 가만히 있어. 아버지가 일을 다 보고 올 때까지 어디 가면 안되, 아빠가 올 때가지 여기 있어야 한다’. 신신당부를 하고 아버지는 일을 보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바쁘게 일을 다 보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깜빡 잊고 아들을 그냥 두고 온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어둔 밤길을 다시 되돌아 아들을 두고 온 곳으로 갔습니다. 아들 워싱턴은 그때까지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워싱턴은 아버지가 온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릴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두운데 왜 여기 있냐. 나와 같이 가자’. 이런 저런 말을 해도 워싱턴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여기 가만히 있으면 데리려 오신다고 했기 때문에 가면 안됩니다.’라고 거절하며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린 것입니다. 워싱턴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기 때문에 아버지를 잊어버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리려 온다는 약속을 믿고 조금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자기가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 부모를 잃은 고아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은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어두워도 꼼작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약속을 믿었기에 부모 잃은 고아가 되지 않고 자라서 미국에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약속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약속은 미래를 바라보는 행복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지금 어려워도 약속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이 없다면 어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 자살을 합니까?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곧 믿음입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면 약속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약속입니다. 성경에 구약과 신약이 있습니다. 구약에 약속한 것이 신약에 성취된 것입니다. 구약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는 약속이 신약에 예수님 탄생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남은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는 약속은 기업을 받는 것입니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1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업으로 받을 약속을 우리는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업’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업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받는 상속인으로 천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기업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약속이란 말은 헬라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일방적인 약속과 상호간에 의논한 약속입니다. 일방적인 약속은 ‘내가 네게 준다’, ‘이렇게 하면 내가 무엇을 줄 것이다’ 이와 같은 약속은 큰 자가 작은 자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약속입니다. 감히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을 할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방적인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유언은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유언을 할 때 의논해서 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약속은 약속받은 사람이 지키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호간에 의논한 약속입니다. 상호간에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서로 약속을 하고 손까락을 걸고 손도장도 찍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 의논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살아보고 이혼을 하기도 합니다.

 

12절에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기로 약속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논해서 한 약속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도는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 받은 자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오래 참음으로 약속된 기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오래 참아야 합니다.

 

‘약속’은 믿음입니다. 약속은 미래 지향적인 것입니다. 약속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후에 성취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지 못하면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약속은 절대적으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약속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약속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을 때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약속을 주신 분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120년 후에 세상을 홍수로 멸할 것이니 너는 방주를 만들어 너의 가족들을 구원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노아에게 의논해서 한 약속이 아닙니다. 이 약속을 노아가 믿고 지키면 홍수 심판을 면할 수 있지만, 믿지 못하고 지키지 않으면 홍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고 120년을 산속에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닌, 일이년도 아닌 백이십년을 온갖 비난의 말을 들으면서 노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홍수로 심판을 하실 때 약속을 믿고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와 그 가족들은 심판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칠십오 세 때 약속하셨습니다. ‘이 땅을 떠나라 내가 네게 약속의 땅을 주겠노라. 그리고 네 자손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을 때 버틸 수가 없어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는 것은 피곤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아야 큰 민족이 될 수 있을 것인데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기까지 기다리는 아브라함은 매우 피곤했습니다. 견디지 못해 변칙을 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해 사고를 몇 번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구십구세가 되던 해에 ‘내년 이맘 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말씀대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 지쳐 몇 번 사고도 쳤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란 말씀처럼 약속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약속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믿고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믿고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약속입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기 위해 중매로 선을 보았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한 두 번 만나 이야기 몇 마디 해 보고 마음에 들면 결혼을 했습니다. 중매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한 번 보고 결정하기 어려워 한 번 더 보자고 했습니다. 두 번 만나보고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보자고 해서 세 번째 다방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총각은 먼저 와서 숨어서 쳐녀가 약속을 얼마나 잘 믿고 기다리는 가를 지켜봅니다. 처녀는 정한 시간에 왔습니다. 그리고 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며 총각을 기다립니다. 총각은 일부러 한 시간이나 늦게 마치 바쁘게 서둘러 오는 것처럼 하면서 ‘갑자기 무슨 일이 있어 늦어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처녀가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반가이 맞아 주더랍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려 주는 사람은 더 이상 볼 것 없이 결혼해서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행복입니다. 조금 늦어도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지 못하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약속은 곧 믿음입니다. 얼마나 믿고 기다리느냐, 기다림 자체가 행복이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약속 받았으니 믿고 천국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려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힘들어도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 받은 기업은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 지라도 너희 중에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얻지 못합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약속대로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9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해 받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들을 가나안에 보내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돌아 왔습니다.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라면 가나안이 얼마나 살기가 좋은 곳인가를 실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 이니라’고 말했습니다(민13:3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믿고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말했습니다(민14:8).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약속을 믿지 못한 그들 모두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장대하여도 우리의 밥이라고 믿은 자들은 약속대로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11절 말씀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이 이르러”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 받은 자로서 그 약속을 믿고 오래 참아 끝까지 풍성한 소망이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들이 되어 기업을 약속대로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허창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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