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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능선에 '야생화 천국

하나님아들 2026. 7. 27. 23:11

풀밭 능선에 '야생화 천국' [제주 동검은이오름]

입력2026.07.27. 
 
정상부 초지대는 봄부터 가을까지 천상의 화원으로 바뀐다. 
(왼쪽부터) 달개비, 애기도라지, 꿀풀, 패랭이꽃, 등심붓꽃.
동검은이오름은 제주의 어떤 오름과도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풍광을 지녔다. 층층으로 언덕진 지형이 사방으로 뻗어간 모습이 거미집을 닮아서 예로부터 '거미오름'이라 불렸다. '검은오름'이라고도 했는데, 송당리 서쪽에 있는 '서검은오름', 이 오름을 '동검은오름'이라고 구별했다. 서검은오름은 현재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된 '거문오름'이다.

동쪽 화구벽에서 본 정상부 초지대. 뒤로 돝오름과 둔지봉이 겹친 풍광이 가늠된다.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오솔길

보통 '동검은이오름'이라 부르며, 한자로는 '東巨文岳동거문악', '東巨門岳동거문악', '東巨門伊岳동거문이악' 또는 거미 주자를 쓴 '蛛岳주악'으로 표기한다. 이 오름은 제주시 구좌읍과 서귀포시 성산읍, 표선면의 경계를 이루며 금백조로 북쪽에 우두커니 솟았다.

일반 도로에서 뚝 떨어져 있는 동검은이오름은 찾아가는 게 주저되는 곳 중 하나다. 금백조로에서는 바닥이 좁고 평탄하지 않은 비포장 농로를 따라 1km쯤 들어가야 하고, 중산간동로에서는 '높은오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구좌읍공설공원묘지를 지나 2km 거리에 있다. 이렇다 보니 인적도 뜸하다. 그러나 아래에 목장의 초지대 구릉을 품었고, 역시 초지대인 오름 정상부에서 조망하는 사방 풍광도 멋져서 오름 마니아들이 손꼽는 곳이다.

동검은이오름은 세 개의 굼부리를 가졌다. 무덤 하나가 들어설 만한 얕은 게 있는가 하면, 정상 능선이 품은 굼부리는 아찔할 만큼 깊다. 그 남쪽 아래에도 굼부리가 확인된다. 또 동북쪽으로는 부드러운 초지대를 이룬 알오름이 여럿이다. 이 알오름들은 한 목장의 초지대로 이용되는데, 수십 마리의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광은 동검은이오름의 상징과 같다.

황소가 풀을 뜯는 알오름. 이 초지대 사이로 수줍은 듯 탐방로가 나 있다. 
동검은이오름의 알오름 초지대에 방목 중인 소 떼.
목장길로 들어서는 게 좋다

오름 들머리는 두 곳이다. 서쪽의 문석이오름과 이어지는 고개에서 오르거나, 북쪽의 표석이 서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0.7km 들어선 목장의 초지대에서 알오름 사이의 탐방로를 따라 오르는 것이다. 문석이오름 쪽은 무척 가파르고 주차 공간도 없다. 목장 초지대 쪽이 순하고 풍광도 좋다.

그러나 오름 표석과 안내도가 설치된 위치가 뜬금없다. 보통은 오름 들머리에 세우는데, 동검은이오름의 경우 사람의 발길이 닿지도 않는 곳에, 그것도 숲에 가렸다. 높은오름에서 들어서다가 동검은이오름 자락을 40m쯤 앞에 두고 길이 문석이오름 쪽으로 꺾이는데, 그 자락에 있다.

정상 능선에서 본 정상부 초지대. 덕분에 사방 조망이 끝내준다. 
이 표석과 안내도를 세울 당시는 도로에서 길이 이어지고, 표석 뒤에서 목장 쪽으로 탐방로도 조성했는데, 사람들이 목장으로 들어서는 넓은 찻길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이 길은 수풀에 덮여 지금은 탐방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표석까지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처음 동검은이를 찾은 사람 중 일부는 이 표석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표석을 앞에 두고 동쪽으로 난 길 따라 400m쯤 들어서면 목장의 철문을 만난다. 대부분 열려 있지만 잠겼더라도 요령껏 통과하면 된다. 곧 목장 방목지인 알오름이 나온다. 겨울이 아니면 늘 풀을 뜯는 소 떼를 볼 수 있다.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풀밭 능선이 다랑쉬와 아끈다랑쉬, 손지, 용눈이, 돝오름 등을 배경 삼고 펼쳐진 풍광이 무척 이국적이다.

동쪽 상공에서 본 동검은이오름. 양쪽 길 사이의 구릉이 목장 방목지다. 저 사이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구릉으로 이뤄진 정상부

소들이 몰려다니는 풀밭 능선 사이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소박하게 느껴지는 길 자체가 예쁘고, 한참 오르다가 뒤돌아보니 오름과 밭의 경계가 아리송한 푸른 제주가 아득히 펼쳐진다. 길은 소나무와 초지대가 섞인 비스듬한 사면을 따라 오른다.

굵은 밧줄을 잘라 양쪽을 땅에 고정한 계단길이다. 잠시 후 닿은 정상부 능선. 작은 굼부리 같기도 한 몇 개의 작은 구릉이 이어간 끝에 건너편으로 정상 화구벽이 우뚝하고, 그 사이 남쪽으로 트인 굼부리 너머로 백약이와 좌보미, 월랑지, 궁대오름이 얼굴을 내민다.

동쪽 화구벽과 정상인 서쪽 화구벽 사이의 초지를 이룬 작은 구릉마다 무덤이 하나씩 들어섰다. 이 초지는 제비꽃과 양지꽃, 무릇, 쑥부쟁이 등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우리 꽃이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동검은이오름 표석과 안내판. 원래는 저 뒤로 탐방로가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수풀에 뒤덮였다.
정상부 능선은 양쪽이 매우 가팔라 칼날 능선을 이룬다. 특히 서쪽 화구벽 능선은 바람이 심할 때 더욱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조망은 최고여서 북쪽으로 높은오름을 시작으로 송당리의 여러 오름이 훤하고, 백약이오름 뒤로 한라산의 품에 안긴 숱한 오름도 가늠된다.

문석이오름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이 꽤 가파르다. 이 길로 오른다면 적잖이 고생이겠다. 내림길 왼쪽으로도 커다란 굼부리가 보인다. 그 뒤로 부드럽게 누운 구릉 같은 문석이오름이 펼쳐지고, 건너편의 백약이오름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예전에는 동검은이오름을 오른 후 바로 이어서 문석이오름까지 탐방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몇 해 전 문석이오름의 탐방이 금지되어서 아쉽다.

Info

교통 내비게이션에 '높은오름' 입력. 높은오름 탐방 들머리인 '구좌읍공설공원묘지'에서 진행방향으로 700m쯤 가면 정면에 표석이 보인다. 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성산항을 오가는 211, 212번 간선버스와 대천환승정류장에서 고성환승정류장을 오가는 721-2번 지선버스가 백약이오름 앞에 선다. '백약이오름' 정류장에서 문석이오름 방향으로 농로를 따라 1km쯤 들어서면 된다.

주변 볼거리

송당리 동화마을 송당리 들머리인 대천교차로 한쪽에 3만 평쯤 넓이의 동화마을이 있다. 넓은 부지엔 수백 년 수령에 멋들어진 수형을 자랑하는 팽나무와 조록나무가 곳곳에서 눈길을 끌고,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자연석 5,000점이 여기저기 아무렇지도 않게 널브러졌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스타벅스 송당R점과 파리바게뜨, 지브리 공식 코리코카페, 제이팜정육식당, 미스터밀크(성이시돌목장), 송당산들네식당 등 제주의 맛으로 가득한 음식점도 입점해 그야말로 제주 종합 쇼핑관광타운 같다. 여름이면 중앙 동산을 감싸며 조성한 연못에 연꽃이 피고 불두화라고도 부르는 '백당수국'도 만발해 더 환상적이다.

스타벅스 송당R점
백당수국
맛집 구좌읍 세화리의 '영희네우럭명가(0507-1355-6706)'는 우럭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큼지막한 우럭 한 마리를 통째 바싹 튀긴 후 특제 소스를 부어 내놓는데, 바삭한 식감과 매콤달콤한 양념 맛의 균형이 기가 막힌다. 우럭튀김정식 1만8,000원. 제주은갈치조림, 우럭조림 각 2만5,000원.

우럭튀김정식.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