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성령님의 책임성 엡1: 19

하나님아들 2026. 5. 11. 20:26

성령님의 책임성 엡1: 19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최종적 완성은 성령님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성령의 책임성이라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위대한 능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큰 위대함”이기 때문입니다.
19절에서 능력이 크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네 개의 단어로 강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장 먼저 "힘" "강력" "역사하심" 그리고 "능력" 이렇게 엄청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완전한 능력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 바울은 본문에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힘'으로 번역된 '크라투스' 는 저항과 통제로써 길러진 힘(6:10)을 내재적인 위대한 능력을 뜻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성경 원문에서는 '게브라'(GEBRA)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영양제로 한국에서도 즐겨 복용했던 '게브랄티'라는 종합 비타민이 있었는데, 이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힘이라는 '게브라'에서 나왔습니다.

이 '게브라' 하나님의 힘은 3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성은 '영원한 힘'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재물의 힘, 권력의 힘, 명예의 힘, 과학의 힘, 의학의 힘도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만이 영원한 것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 특성은 '불가능이 없는 힘'입니다.
인간은 불가능한 것이 많아서 요행을 바라고 기적을 바라지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 특성은 '신실한 힘'입니다.
다시 말하면 변덕부리지 않는 힘... 우리 인생들은 변해도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사랑으로 우리의 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히13:8).

그러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영원하신 힘이 되시고, 불가능이 없는 힘이 되시고, 신실한 힘이 되시는 그 하나님... 다윗은 그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더니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2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반석이 되어 주셨고, 요새가 되어 주셨으며, 방패가 되어주셨고, 구원의 뿔과 산성이 되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세상이 주는 힘이 있다. 하나님의 힘은 절대적이요, 인간의 힘은 상대적이다. 하나님의 힘은 무한하고 세상의 힘은 유한하다. 하나님은 사랑을 앞세우는 의로운 힘의 원천이요 사탄은 유혹을 앞세우는 불의한 힘의 원천이다. 이렇게 구별하면 크리스천 리더십은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는 능력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크리스천들이 과연 오직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둘째, '강력'의 헬라어 '이스퀴오스' 는 육체적이며 남성적인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고난 힘을 뜻하는 것으로 행위속에 나타난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 라는 말입니다.
왜 그래요?
롬3:10-12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찿는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하나도 없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볼 때 모든 인간은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긍휼은 의와 는 다른 영역입니다.
긍휼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옥에 갈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33장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애굽으로부터 구원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0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를 가면서 구원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했다 는 말씀입니다 이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강력하심입니다.

17절-바로 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바로에 대해서 살펴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에 바로를 굴복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려 10번의 재앙을 통해서 바로를 굴복시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그 바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거역 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은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영화롭게 하시려고 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처럼 바로를 구원 해야할 아무런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는 한낱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지혜도 창조주로부터 받은 것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창조주께서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을 만드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면 창조주의 지혜는 무한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행위를 불합리하게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은 창조주를 모독하는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조입니다.
그리고 21절에서 토기와 토기장이로 대조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 대조의 의미는 한낱 인간이 하나님을 트집 잡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을 다스릴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구원 할 수 있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정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절대 주권에 따라 인간을 구원하시기도 하시고 버리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인도 구원하시고 유대인도 구원하십니다.
여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항의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셋째, '역사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이안' 은 영향을 끼칠 수 있거나 조절이 가능한 힘을 지칭는 것으로 어떤 사역을 성취시키기 위한 효력있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뜻합니다. 칼빈은 위의 세단어에서 하나님의 팔이 행위 가운데 나타날 때 표명되는 것으로 힘은 뿌리와 같고 강력은 나무와 같으며 역사하심은 열매와 같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환경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역사였다
우리는 환경만 탓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환경을 초월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간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역사였다(본문 5절상).
인간적인 조건과 사회적인 조건을 초월하여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셋째는, 하나님께 굴복되는 역사였다(본문 5절하).


우리에게는 일할 환경과 조건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믿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6)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Ⅲ. 나에게 적용하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은 지금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에 겸손히 순종하는 모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것만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뒤나메오스'(*, '능력')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리킨다(Wood, Barth, Schlier).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일상 속에서 은총을 누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은총은 하나님의 능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 그래서 그분의 은총의 위대성은 언제나 찬양의 주제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미래의 삶에 풍성함을 제공해준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17)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모토가 되었으며, 그 이후의 개신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형성한 구절이 되었다. 이 구절이 없다면 종교개혁은 없고, 그 이후 신학사상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나님의 능력(뒤나미스)을 바울은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려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분의 능력을 선포한다. 하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를 부활시킨 사건이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명백하다(롬 1:4, cf. 빌 2:5~11; 행 2:31~36).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이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시작하는 사건이라는 사실이 바울 복음의 핵심을 구성한다. 즉 약한 자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고독하게 죽어간 예수, 그리고 용맹스럽게 죽음을 극복한 사건인 빈무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다른 곳이 아니라 성서의 본문에 밀착해서 찾아내는 작업이야말로 성서의 모든 독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