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이름을 알려 주신 하나님

하나님아들 2026. 5. 11. 20:24
이름을 알려주신 하나님

출애굽기 3:13-14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인 김춘수의 시 중에 ‘꽃’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에게 있어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모든 존재로 하여금 의미를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점에서, 불러 줄 이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떤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독특성을 나타내며, 성품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은 ‘이삭’입니다. ‘웃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믿기지 않아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름인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하여 낳은 쌍둥이 아들들의 이름은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 중에서 ‘에서’라
는 이름의 뜻은 ‘붉음’입니다. 훗날에 팥죽과 연결되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마는, 
원래는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라는 뜻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피부가 붉어서, 건강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동생에게는 ‘야곱’이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야곱’은 ‘발꿈치를 잡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쟁심 때문에, 먼저 세상으로 나오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뒤따라 나온 듯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독특성과 성품을 알게 해 줍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완전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그 좋은 예가 됩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을 통해, 야곱이 인간과의 경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사람의 발꿈치를 잡고 경쟁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과 관련된 이러한 이해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 무엇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4장 19절에 보면, 아브람이 소돔을 쳤던 적군을 다 쳐부수고 돌아왔을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축복하면서 하나님을 ‘엘 엘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입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창세기 16장 13절에 보면, 아브람의 집에서 도망친 하갈이 술 길 샘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엘 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자기
처럼 미천한 사람도 ‘살피시는 분’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 무엇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서 직접 알려 주신 ‘여호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새번역성경에는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성서에도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성경과 
공동번역성서에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이유는, 히브리어 원문의 뜻이 ‘나는 나다’이기 때문
입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원문에는 모음이 없습니다. 모두 자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이름
도 히브리 자음 4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에 모음을 붙이면 ‘여호와’ 또는 ‘야웨’ 또는 ‘야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모음을 붙이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 
온 후에는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주’라는 뜻을 가진 ‘아도나이’라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신 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
니다.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생활에 직접 관여하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주신 후에 일어난 출애굽의 여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생활에 직접 관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입니
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낮이나 밤이나 진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습
니다. 
하나님께서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되심을 선언하
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 이름의 뜻은 ‘나는 나다’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곧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역형으로 해석하면, 뜻이 달라집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 ‘나는 스스로 있게 하는 자’가 됩니다. 곧 ‘스스로 존재하도록 만들어 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이름이 됩니다.

 

출애굽기에는 사역형의 의미로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기록이 많습니다. 두 군데만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4장 15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
치리라.”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께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두 구절 모두 사역형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창조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습
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되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셔서, 우리 생활에 직접 관여하시며,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심
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생활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당 가기 위해서만 
필요한 분이 아니시고,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오늘 교독문으로 읽은 시편 139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시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8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니이
다.”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셔서, 우리 생활에 직접 관여하시며, 우리가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 번째 대답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
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의 하나님 체험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가던 중에, 루스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
습니다. 꿈에 보니, 땅에 사닥다리가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그 후 야곱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보호하
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자이십니다. 또한 섭리자이십니다. 
그리고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것을 인정하
며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 3장에 보면, 풀무 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모든 백성에게 그 금 신상에게 절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만약에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과 함께 포로로 잡혀 온 세 친구는 금 신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 끌려
왔고,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불 속에 던져지기 전에, 다니엘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
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하나님만이 자기들의 주인이심을 분명히 밝힌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친구들을 풀무불 속에서 보호하셨습니다.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
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만이 자기들의 주인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세 번째 
대답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고,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우리의 행위를 아시며, 우리의 길을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적극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은 
멀리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두 명의 히브리 산파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애굽 왕이 늘어나는 히브리 사람의 수를 억제하기 위하여, 히브리 산파 두 사람을 불러서 이렇게 명령했습
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16절)
하지만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내아이들도 모두 살렸습니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파들은 왕 앞에 불려가서 야단은 맞았지만, 결코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
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쳤기 때문에, 집안이 번성하게 되는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 삶의 
근거가 되심을 이름으로 알려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펼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올 한해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펼쳐서,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여러분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사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3:13-14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
      에게 말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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