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믿음(히11:7절)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 않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끝 날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의 징조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노아의 시대를 바로 아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 마24:37~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 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일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사람들에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은 결코 죄는 아닙니다. 사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분석해 보면 인간의 노력이 기껏해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지만 그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일상생활보다는 하나님, 신앙, 교회 등 영적인 일들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노아의 시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얽메여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 무관심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증거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일에 대한 무관심은 가장 무서운 신앙의 병입니다. 현대의학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 질병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입니다. 병명이 ‘엥글리뉴로파티’라는 병입니다. 증상이 있으면 질병의 원인을 빨리 찾아낼 수 있고 빨리 치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증상을 느끼지 못하면 병이 깊어져서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자신의 질병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 무관심, 무감각해 지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에게 무관심해 지기 시작하면 서로에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업가가 사업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무관심해지기 시작하면 그 사업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영적인 일에 무관심해지면 신앙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본문의 시대적 배경인 창세기서 6장에서 노아의 시대의 시대상을 몇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노아의 시대 사람들이 육체적이었다고 말씀합니다.(창6:1~4절) ‘육체적’이라는 말은 ‘믿음’, 혹은 ‘신앙적’, ‘영적’이라는 말과 대조적인 의미입니다. 노아의 시대 사람들의 관심은 육적인데 있었습니다. 창6:1~4절에서 당시 사람들이 아내를 맞아들이는 기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결혼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의 기준이 외모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뜻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들은 감각적인 눈으로 육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육체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내면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육체만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의 잘못된 욕망이 문제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적인 만족만을 추구했습니다.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이 그만큼 육체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체적인 사람들은 항상 육신의 일만을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며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체적인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의 일(갈5:19)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육신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합니다. 성도들에게도 육신의 생각과 영적인 생각이 공존합니다.(롬7:21~25절) 성도들도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창6:5~8절) ‘세상에 죄가 관영했다’는 것은 죄악이 홍수와 같이 걷잡을 수없이 범람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죄악의 홍수가양심과 말씀의 뚝을 허물어 버리고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 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도 않고 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도 없었고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죄악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깨뜨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재를 깨뜨립니다. 죄는 인간관계에도 균열을 가져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질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질서, 교회의 질서, 사회의 질서, 국가의 질서, 인간관계의 질서 등을 세우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깨뜨려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죄악은 ‘상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근심시킵니다. 창6:5~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고했습니다. 죄악은 ‘쓸모없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때로 사람을 질그릇에 비유합니다.(딤후2:22,21절) 그릇의 재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릇은 깨끗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릇은 더러우면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악은 마치 그릇을 더럽게 하는 것과 같아서 죄악은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악은 ‘빗나가게 하다’ 또는 ‘못 미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롬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했습니다. 죄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빗나가거나 못 미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존재 목적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죄악이란 인간의 존재 목적대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노아의 시대와 같은 때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번성했습니다.(창6:1절) 온갖 죄악과 도덕적 타락이 세상에 관영합니다. 폭력이 난무합니다.(창6:11,12절) 사람들은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었고, 당세에 완전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6:8절) 히브리 기자는 노아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힘은 위대합니다. 믿음은 죄인을 의인이 되게 합니다. 허물이 많은 자를 완전한 자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난 자를 불러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증조부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노아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그 가족과 더불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히브리11:7절은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①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롬1:17절) 본문에서 ‘하나님의 경고하심’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는 일, 즉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홍수 심판은 노아에게 있어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일은 언제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노아는 볼 수없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출발인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의 근거는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의 근거가 된 하나님의 말씀인 창6:13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가 홍수로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라. 그러니 너는 방주를 만들어 홍수 시 네 가정 8식구와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씩 이끌어 그 방 주안으로 들어가게 하라 그리하면 방주에 들어가는 모든 생물들은 살게 될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노아는 낮에는 강렬하게 내리 쬐는 해살을 보았고, 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달빛과 별빛을 보았습니다. 노아의 생각에는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노아 한 사람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에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 한사람만이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믿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들었으나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내 눈에 보이지 낳고,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치 않고 믿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기독교는 보고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종교입니다. 그때 보는 것 이상으로 깨닫게 되고 알아지게 되며, 생명력 있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주관적인 감정을 근거로 한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건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②노아의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방주를 짓는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적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행동(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 집니다.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생 라합의 믿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참 믿음은 순종을 초래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배하였습니다. 경외함이란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헛되이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중심에 새기고 순종했습니다. 참 믿음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멀지 않아 물로 땅을 심판할 것이니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120년 동안 쉬지 않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해가 뜨고 지는 평화로운 날들이 연속되었습니다. 홍수에 대한 어떠한 조짐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노아는 어느 하루도 방주 만드는 일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웃어도 결코 의심하거나 낙담하여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③노아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믿음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그것을 짓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하심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말로만 아니라 실제 방주를 짓는 생활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증거했습니다. 본문 7절에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로 말미암아’란 말은 그가 방주를 지은 믿음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가 방주를 지음을 통하여 세상의 죄를 정죄했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세상을 정죄했던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를 지으면서 심판의 날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사는 의로운 행위인 소극적인 방법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경고하심 데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외치는 적극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 둘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전도의 양면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점점 가까운 말세지 말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도 죄악을 멀리하고 경건하게 사는 삶의 모습을 통하여 전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죄악의 길을 돌이켜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노아는 가만히 앉아서 방주만 짓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외쳤다는 사실입니다.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외쳤고, 찾아다니면서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해서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신앙이 노아의 신앙이었고, 이런 신앙이 진정한 신앙인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 사람 뿐 아니라 가족까지 구원을 받습니다.(행16:31절, 눅19:9절)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노아의 믿음으로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구원을 얻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믿음이 가족들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의 믿음은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전파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간절한 믿음은 그 딸의 병을 고쳤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그 종을 고쳤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그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나 한 사람의 믿음이 씨앗이 되어 가족과 사회와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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