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하여

하나님아들 2026. 2. 6. 23:04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하여

 

 

십자가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져 왔습니다. 십자가를 사형집행 형구로서 최초로 쓰여진 것은 죄인을 결박하는 단순한 기둥으로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앗수르인,페르사인,페니키아인,애굽인들의 습관이었고 이러한 형틀로 사용된 것이 그리스와 로마에 전하여져 사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둥으로서 사용되었다가  그 모양도 차츰 변하여 예수님 당시에는 X자형,T자형 그리고 십자가형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나무기둥을 사용하여 처형하는 모습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은 아이성을 공격하는데 실패합니다. 물론 실패의 원인은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야할 물건을 손을 대어 감추었기 때문이지만 아간을 아골골짜기에서 처형한 후 다시금 하나님의 뜻대로 아이성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성에 살던 아이 왕을 잡아서 그냥 죽이지 않고 저녁때까지 나무에 메달려 죽이고 저녁때에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버립니다.[수8:29]그러나 이 말씀을 아무리 읽어도 유대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성경기록이 있습니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왕이 기브온을 치려 할 때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있는 나무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라고 외치는 여호수아에 의하여 태양이 멈추고 달도 멈추어서 이스라엘은 승리합니다. 그 후 막게다 굴에 숨었던 다섯 왕들을 잡아다가 나무에 메달려 죽었습니다.[수10:26]

 

이처럼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는 적군의 왕을 잡아 나무에 메달아 죽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서도 길보아 전투에서 패한 사울왕과 그이 아들들의 시체를 벳산 성벽에 목박아 달았으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에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했다는 기록이 삼상31:9~13에서 기록된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고대 근동에서는 나무에 메달아 죽이거나 시체를 높이 메다는 잔인한 형벌을 하였을까요? 그 해답이 신명기 말씀에서 ?을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21:22~23절의 말씀입니다."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아멘

즉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장 무서운 형벌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자가 나무에 메다려 죽는다면 자손 대대로 천벌 받아 죽은 조상으로서 후손들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할려고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나무위에 메달려 죽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그들의 의도대로 예수님께서는 로마의 처형도구로서 십자가에 메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십자가 형은 그 운반도 죄수가 운반하는 것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는 혼자서 운반하는 것은 무겁습니다.십자가형으로서 죄인을 처형할 때는 먼저 죄인이 나무에 못박혀지고 지상에 세우는 방법과 나무를 지상에 세워진후 못 박는 경우입니다.그리고 그 머리위에는 죄인의 이름이든가 죄의 제목을 붙여지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에는 십자가 형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 당시 십자가 형은 노예에 대한 형으로서 치욕과 혐오을 뜻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그 치욕과 혐오는 사도들을 비롯한 성도들에 의해 영예로 바뀌었던 것입니다.[갈6:14]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속량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나의 죄값인 부끄러운과 멸시와 천대 그리고 죽음의 고통을 나무 십자가 위에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내가 그자지에 있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주님께서 내 대신 그자리에서 멸시와 천대와 특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신 것입니다.갈3:13절의 말씀입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을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아멘

이처럼 유대인들은 나무에 메다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여 매우 부끄러워했습니다.그러나 그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주님께서는 오히려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죄 없이 되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모습을 미리 보셨기 때문입니다.그러기에 십자가의 고통속에서도 기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12:2절 말씀입니다."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는 자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 메달려 죽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까지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그들은 전적 타락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면 의에 이르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을 우리는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사도 바울도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자신을 스슷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여 본적이 없어습니다. 그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임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고 정죄하고 심한 경우에는 옥에 가두거나 죽이기도 하였습니다.그러기에 다마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다마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실제로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혀 버린 것입니다.뒤집힌 것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바울의 생각입니다. 인간은 선한 것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있으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완전히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곧 그이 죄 없으심을 증거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죄를 뒤집어 스신 대속죄물이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자신의 죄 없으심과 동시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고전15:7절 말씀입니다."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이처럼 사도바울의 눈에 쒸워?던 율법의 비늘과 수건이 벗겨?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다윗과 같은 정치가이며 장군이었고,이스라엘을 가장 강성하게 하였던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세계를 다스릴 사람이 메시야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메시야는 물론 제사장도 겸하여야 할 것입니다.그래야 그들은 현재 바위사원이 들어선 솔로몬 성전터위에 새로운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금 구약 시대의 제사를 드렸던 것 처럼 다시 하님님께 직접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지금까지도 자칭 수많은 메시야가 등장하였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대단한 설교가도 있었고,성경과 탈무드에 해박한 사람도 있었습니다.위대한 정치가와 동시에 뛰어난 군인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파괴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바르코흐바 있습니다. 그는 주후 130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때입니다.그는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예루살메을 회복하고 성전터를 회복하여 제사도 회복하고 율법에 통달하였으며 율법을 준수한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생각하였던 메시야의 모델로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의 최고 랍비인 아키바도 공식적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메시야라고 공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그가 일으킨 반란은 로마제국에 의하여 진압되고 그는 로마군에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였고 유대인들은 구후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일년에 단 하루가 예루살렘 방문을 허용받은 주인이었던 자리에서 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메시야을 생각할 때 이사야53장을 생각합니다만 유대인들은 똑 같은 말씀을 가지고 메시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은 이스라엘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그들이 디아스포라 이후 많은 민족들에게 학대와 멸시를 받은 것이 바로 죄를 대속한 양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들은 지금도 예수는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단지 신성모독죄를 지고 하나님의 저주로 인하여 나무 십자가에 메달려 죽은 나사렛 예수로서 유대교의 이단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니다.

고전1:23~24절의 말씀입니다."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헤니라."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이스라엘을 성지 순례를 가거나 선교를 한다고 하면 먼저 이스라엘의 문화를 이해하여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먼저 가져야 할 것입니다.

 

령천 교회 중동 선교사

데이비드 김 목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