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처럼
사도행전2:42-47
요절:사도행전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요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행20:28)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가장 귀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 하였으며(엡1:23), 예수님은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몸을 주심같이 하였습니다.(엡5:29) 교회는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우리 예수님께서 자기 몸처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양육하시고 보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요, 교회를 핍박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의 한 지체요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된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지 아니하면 누가 위할 것이요 우리가 교회를 섬기지 아니하면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섬기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른 교회요 축복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성장시키고 부흥시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그래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은 바른 교회요 좋은 교회요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1.성령충만으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장 떠나라 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위로부터 입히는 능력입니다. 이를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예수님은 먼저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성령을 받아야 능력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도들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마가다락방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오순절 날이 이르러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초대교회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모인 무리들에게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을 입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하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때 회개한 성도들의 수가 삼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시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이것을 광야교회시대라고 합니다.(행7:38) 성막을 완성하고 하나님께 첫 제사를 드렸을 때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단 위에 있는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습니다.(레9:24) 이 불은 계속해서 보전되고 성막 안과 번제단에서는 이 거룩한 불만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광야교회의 시작도 여호와의 불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여호와의 불은 신약시대 첫 교회의 탄생시에 성령의 불로 임하였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충만한 사람들이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를 이룹니다. 어떤 목회자 세미나에 갔을 때 강사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으며 참석한 목사님들은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가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오고, 성도가 불이 있어야 불신자가 불구경 온다. 교회의 시작은 불이다.”
우리 광명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2.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이후 어떻게 정비되어 간 것입니까? 42절을 보십시오.“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도들은 계속하여 개종한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사도는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그의 생애를 배우고 체험하고 십자가를 목격하고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입니다.(행1:21,22) 사도들은 예수님을 자세히 가르친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성경선생 되어 주실 때에 사도들은 세밀하게 창세기부터 말씀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에 기초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었고 사도의 가르침 속에서 복음적인 교제를 하였고, 말씀에 기초해서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가르침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교제도 누구의 가르침 속에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자기 중심적인 교제는 파당을 만들고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교회는 나이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장유유서로 가르침을 받는 곳도 아니고,세상 인간의 도덕 경륜으로 가르쳐지는 곳도 아니고,세상 경험과 능력을 중심으로 하여 가르쳐지고 교훈되어지며 운영되는 것도 아니요, 사도의 가르침 속에 복음 중심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성령중심으로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목사를 기름부어 사도적 권위와 사명을 주시고 교회를 섬기도록 세워 주신 것입니다. 담임 목사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는 말씀 공동체였습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무디 목사님께서 집회를 인도했을 때 어떤 교인이 감격하여 말하기를 "이번에 받은 은혜가 일평생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들은 무디목사님은 대답하기를 "부흥회 때에 받은 은혜로 한평생을 보내고자 하는 것은 마치 하루 아침에 먹은 조반으로 한 평생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말씀 듣는 것으로도 사실 부족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매일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말씀은 매일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단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침을 받도록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꼭 시간을 내어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사랑 공동체였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은 성도들은 서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배워 나갔습니다. 신앙생활은 종적으로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횡적으로 성도간의 교제로 이루어 집니다. 성도들이 서로 모여 말씀중심으로 서로 사귀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 자체가 천국입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자 인간상호간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영접하고 죄 문제가 해결된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며 그 증거가 성도간의 사랑회복으로 나타납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니 자연히 성도간의 사랑도 충만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다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습니다.
유무 상통하며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는 삶,이는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인간 세상의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로 여겼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습이 예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을 몰랐기 때문에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나라의 모습은 무산자 계급의 혁명을 통한 총과 칼로 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사랑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사랑으로 욕심과 이기주의를 극복했습니다. 그들은 죄인을 오래 참으신 예수님의 참사랑으로 개인주의를 극복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삶과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니 행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되니 피를 나눈 가족처럼 교회공동체 속에서 서로 돌보며 사랑하고 위하였습니다. 바로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비춰진 모형인 것입니다.
오늘날 메마른 도시 생활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 적인 사회 생활을 출산해 내었습니다. 네떡 네가 먹고 내떡 내가 먹는 다는 식의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일에 바쁘다 보니 서로에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잠깐 나와서 예배 참석하고 필요한 모임만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가진다고 하면서 성도간의 교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인데 이는 단순히 사귄다는 말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나눈다”란 뜻입니다. 받은 바 은혜를 서로 나누고 받은 바 축복을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또 초대교회는 헌금을 코이노니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물질을 모두 교회에 헌금하여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까지 우리와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초대교회는 매일 저녁에 모여 애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매일 저녁에 모일 수가 없게 되자 한 주일에 한번 씩 모여 애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자주 떡을 떼며 함께 먹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사랑의 사귐이 오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와 같이 사랑 공동체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부리나케 나가지 마시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형제 자매들이니 함께 오찬을 나누며 교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아버지 한번 보고 형제들은 보지도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좀 여유를 가지고 서로 형편도 돌아보며 교회 구석 구석도 살펴보고 봉사할 곳도 찾고 애경사도 나누며 그렇게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4.기도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42)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자들은 이제 육신을 의지하여 사는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살아 있다는 것은 영적 삶이 살아 있다는 것이고 기도가 죽어있다는 것은 영적 삶이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는 성령이 역사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하는 분위기가 넘쳤습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집에서 지붕에서 길에서 감옥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전도의 문이 열리게 해 달라고,담대히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모든 닥치는 문제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내 힘을 의지하는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실 해본 사람만이 그 참 맛을 압니다. 기도는 광풍이 이는 바다 위에서의 항구요, 물에 빠진 자의 생명 줄이요,소경거지의 눈이요,가난한 자가 발견한 금광입니다. 기도는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주는 의원이요,건강을 지켜 주는 보약이요,축복을 담보해주는 창고요, 환란의 구름을 제거해주는 동풍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할 일이 있었지만 늘 시간을 쪼개어 틈나는 대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처럼 쉬운 것이 없으면 서도 기도처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힘써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불 속에서 누워서 하는 기도는 성전에서 하는 것보다 힘쓰지 않는 기도입니다. 시간 있을 때 하는 기도는 시간 없을 때 하는 것보다 힘쓰지 않는 기도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한 기도보다 얍복강 가에서 밤 새도록 씨름하며 한 기도가 힘쓴 기도였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기도를 힘써서 하였습니다.
가을 21일 작정 기도가 끝난후 지금은 새로 임명받은 목자들이 목원들과 함께 목장 부흥을 위해 작정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에 각 목장마다 2명의 새가족 전도를 위해 기도하는데 꼭 응답되어지길 축원합니다.
5.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성전중심의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모였으며 마음을 같이하여 모였습니다. 매일 모이자는데 그들은 다른 의견을 내거나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자주 모여야 됩니다. 피를 나눈 것이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이후 영적 가족관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가복음3;31-35)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겼던 것입니다. 가족은 한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육신의 가족은 범죄한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부모의 피를 받았지만 영적인 가족은 죄없는 깨끗한 예수님의 피를 함께 나눈 형제입니다. 죄의 본성이 있기에 형제끼리는 싸우지만 죄없는 예수피로 하나가 된 형제는 싸우지 않고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있어야 됩니다. 하루라도 안보면 걱정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형제들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매일 모였으며 매일 함께 먹었던 것입니다. 네것 내것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가족마다 보금자리인 집이 있듯이 영적인 가족들의 집은 성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 성전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고 사람들이 와서 안식을 누리고 편히 쉬고 자꾸 들어오고 쉬고 싶을 마음이 들도록 정성스럽게 단장을 해 놓았습니다.
가정은 따뜻해야 됩니다. 포근해야 됩니다. 아늑해야 됩니다. 위로가 있고 사랑이 있어야 하고,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전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 광명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매일 모여 기도하고 함께 떡을 떼는 것은 정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개중에 모이기를 힘쓰지 않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바쁜 세상에 어찌 매일 교회에 올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것도 힘들어 합니다. 교회에 자주 오는 사람은 오히려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10:25에 "모이기를 패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하였습니다. 잘 모이는 교회에 주님은 함께 하며(마18:20) 그런 교회를 부흥시켜 주십니다.
무디목사님에게 한 사람이 와서 묻기를 "혼자 마음속으로도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을 터인데 왜 교회와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에 무디목사님은 아무 말 없이 난로에서 석탄 한 덩이를 끄집어 내어 보여 주었습니다. 얼마 안되어 그 석탄 덩이는 불이 꺼져 검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그는 성도가 믿는 자들의 모임에서 이탈하면 이렇게 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성도가 교회를 가까지 하지 않으면 난로에서 떨어져 나간 석탄과 같이 곧 신앙이 식어지고 마귀의 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광명교회 성도들은 초대교회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쓸 수 있길 축원합니다.
6.찬송이 있는 교회요 사람에게 칭송받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속에서도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늘 감사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불신자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광명교회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이 뜨거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아니라 지역사회에 덕을 끼치고 칭송받는 교회로 성장해야 되겠습니다.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일 때 교회는 지역주민들에게 인정을 받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는 성령공동체,말씀공동체,사랑공동체,기도공동체,성정공동체,찬양공동체였습니다. 우리교회가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 받아 주님이 원하시는 기뻐하는 교회요,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길 축원합니다. 또한 교회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헌당을 위해서 함께 수고하고 헌신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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