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하나님아들 2025. 8. 18. 23:43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 마태복음 13장 1~23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가장 밝히 비춰진 부분은 복음서입니다. 성경을 하나의 유기체에 비교하여 한 몸이라고 한다면 복음서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골고루 다 보아야 되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복음서인 만큼 복음서를 많이 읽고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방대한 로마서를 썼다 하더라도 복음서에 비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로마서가 중요한 것이지 로마서가 결코 복음서보다 먼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의 세계성을 설명하는 책이며, 로마서를 비롯한 서신들은 복음에 대한 변증서입니다. 이처럼 복음서를 통하여 성경 전체를 종합해 볼 수 있는 까닭에 복음서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서 중에서도 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복음서 모두가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적이나 치유보다도 “예수 말씀하시기를”이라는 말씀입니다. 다 중요한 가운데서도 역시 더욱 중요함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의 몸에 비유한다면 손가락 하나를 다쳐도 고통스럽고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도 아파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몸 어느 한 부분도 중요치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오른손을 자를 수도 있고 중요하지만 다리를 끊을 수도 있습니다. 자르고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은 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은 자를 수가 없습니다. 목을 자르면 숨이 끊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곧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비유로 말씀하셨고 천국에 대한 설명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비유는 가장 중요한 말씀 중의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13장34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라는 방법을 통하여 말씀하셨을까요?

 

첫째로,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안한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되기 위해서는 말하는 자는 듣는 자의 편에서 해야 하고 듣는 자는 말하는 자의 편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 세계, 자기가 경험한 세계 외의 이야기는 전혀 통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에 땅의 이야기를 들어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비유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것, 평범한 것, 아주 평범한 것, 바로 그것들을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꽃을 보면 “자, 꽃을 보라!”, 새를 보면 “자, 새를 보라!”, 들녘을 향해서는 “자, 저 씨 뿌리는 것을 보라!” 바로 그것입니다. 알게 하기 위해서, 보다 잘 알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알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또 모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14절을 보면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는 알게 하고 마음이 완악한 자에게는 모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여우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여우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비유입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봅니다. 헤롯왕의 별명이 여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우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헤롯왕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면 정치적인 문제에 걸리게 됩니다. 따라서 시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여우에게 가서 말하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그럼에도 책잡을 수가 없습니다. 비유란 이처럼 언제나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알아듣고자 하는 자에게는 알게 하기 위함이고, 마음이 삐뚤어지고 완악한 자에게는 모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16∼17절에서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비유는 모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이란 역시 재미가 좀 있어야 합니다. 설교를 하더라도 우선 졸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나 가르치는 사람은 일단은 듣도록 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미있게 말하여 우선 관심을 갖도록 해야함이 중요합니다. 관심이 있고 매력에 끌려야 듣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듣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재미있게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는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선명하고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친절하고 재미있게 구사해 나갈 때 듣는 사람은 그림의 손길처럼 따라가면서 흥미 있게 듣게 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재미있게 천국의 복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번째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비유는 잊어버리지를 않습니다. “아멘”하면서 받아들인 설교는 다 잊어버려도, 비유로 말한 예화들은 잊어버리지를 않습니다. 예화는 오래 오래 기억이 되기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씨 뿌리는 비유

 

   오늘 성경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에 가장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 있고 열매를 맺는 밭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4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길가의 마음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라고 합니다. ‘길가’는 밭과 밭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말씀을 듣고도 거부하는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을 말합니다. 길가의 마음을 갖은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마치 길가의 땅과 같이 마음이 굳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당에 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을 믿지 못하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길가의 마음을 갖은 사람들은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의 이성과 배움과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받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문제는 새가 와서 씨를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은 4장에 보면 예수님은 이 새를 “사탄”이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사탄이 말씀을 그냥 즉시로 먹어버린다고 합니다. 즉 사탄이 와서 말씀을 거두어간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John Bunyan)은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마음에 아무런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고,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왜 내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존 번연은 <씨 뿌리는 비유> 말씀을 읽다가 갑자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 마음이 길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구나. 내 마음에 떨어진 말씀의 씨를 사단이 빼앗아 갔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그는 사단을 물리치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길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격을 끼치는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둘째 돌밭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의 문제는 흙이 얇습니다. 깊지 않는 흙 때문에 해가 돋은후에 싹이 타서 말라지는 경우입니다.

 20절과 21절의 해석을 보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13:20~21)라고 말합니다.

 

‘돌밭 같은 마음’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환란과 핍박이 닥치면 곧 포기하고 넘어지는 마음입니다.

  왜 그럴까요?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없으니까 자라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하고, 말씀을 듣지만 교회를 떠나고 나면 떠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믿음도 없어지고, 소망도 없어지고, 기쁨도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오늘날 돌밭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설교시간에 은혜도 받습니다. 또 은혜를 나눌 줄도 압니다. 깨달음도 있습니다. 부흥회 때에는 눈물도 흘리고 감격해서 그 심령이 뜨겁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마를 견디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주일날은 생기가 돌다가 벌써 월요일 오후가 되면 벌써 말씀의 기운이 떨어져버립니다.

 

마음이 돌밭같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말씀으로 인하여 오는 환난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사람들은 육신에 고통이 오면 육신 때문에 말씀을 포기합니다. 길가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마귀라면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육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편한 것을 추구합니다. 육신을 고생스럽게 하는 것, 힘들게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쉽게 편안하게 안락하게 사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과 환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신앙상태가 돌밭 같은 마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위기가 와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의 뿌리가 있는 믿음의 사람은 위기가 기회가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두운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하면서 말씀을 앞에 세우고 그 빛에 인도를 받아서 그 위기를 통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캄캄한 밤에 있어도 밝은 빛과 함께 있으면 통과할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달과 별도 없는 칠흑같은 어둠일지라도 밝은 불만 있으면 길을 가는데 불편함은 있어도 문제는 없습니다.

 

구약 욥기에 나오는 욥을 보십시오!

 고난이 올 때 욥은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삶에 환난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 말씀을 붙들고 그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7절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22절에서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13:2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 마음의 가장 큰 문제는 세상 염려가 많은 마음입니다. 재물의 유혹을 받는 마음입니다. 길가는 마귀, 돌짝밭이 육신이라면, 가시떨기 밭은 세상입니다. 세상 자랑, 세상 욕심 그것은 바로 물질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처럼 가시떨기 마음의 사람에게 문제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어서 염려하고 돈에 대하여 집착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믿음도 있습니다. 때로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충성도 합니다. 나름대로 교육과 훈련도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주인은 주님이 아시고 세상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돈입니다. 이 분들은 마귀도 통과하고 핍박도 통과했는데 돈에서 걸리고 맙니다.

 

주님은 돈에 대해서 굉장한 강조를 합니다. 주님과 동격으로 돈의 위력을 강조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고 합니다.

 

네 번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진 것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8장에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15절)고 합니다.

 

 누가 옥토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인내로서 지키는 자입니다.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첫째 열려있는 마음,

둘째 준비되어 있는 마음,

셋째 이해력 있는 마음,

넷째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넬료처럼 “주여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내 삶속에 들어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땅에 떨어져야만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들으십시오.

 깨달아 인내로서 지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재물의 축복, 자녀의 축복, 영적인 축복을 백배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