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자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유죄 견해를 밝힌 10명의 대법관 탄핵, 대법관 30명으로 증원 등 근대민주주의 국가의 기초원리인 삼권분립마저 뒤흔들고 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비롯된 삼권분립은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는 법치주의를 기본으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지탱하는 문명국가의 3대 축이다. 그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들의 주장을 하나씩 분석해본다.
△정치개입 논란=민주당 진영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정치 개입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정치 개입이 아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대표적인 논리로 이 후보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바뀐 보수논객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은 김영삼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에 대한 검찰 수사를 그만두게 한 사례를 들어 대선 전에 판결을 내린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비교가 잘못됐다. 대선을 앞두고 그야말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사에 착수하는 것과, 이미 수사가 끝나서 1, 2심 재판까지 끝나 최종심 판단이 남은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시작도 하지 않은 검찰 수사를 멈춰 세운 것과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멈추는 것은 다르다. 이미 진행중인 절차를 이행하는 것는 정치 개입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선거를 이유로 재판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정치 개입이다.
이 후보 사건은 언제 재판을 해도 정치 개입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오히려 무죄를 확정하거나 유죄로 파기자판을 하는 경우가 정치 개입이다. 무죄는 이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유죄 파기자판은 이 후보의 출마 자체를 무산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정치 개입 논란을 피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후보 사건이 만약 무죄로 결론이 났다면 대법원은 대선이 끝난 뒤에 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선거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다.
유죄로 결론이 났는데 대선 이후로 미루면 이 자체도 선거 개입이다. 유권자들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감추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파기자판은 사법부가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해 정당의 후보 교체와 유권자의 선택을 박탈하는 결과가 되어 선택할 수 없었다.
유죄 취지 파기환송은 대법원이 정치 개입을 최소화한 결과물이다. 대선 후보 등록일 10일을 기준으로 8일이라는 시간 여유를 두어 민주당이 후보 교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유권자들에게도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정치 개입이 아니라는 것일까?
△사건 기록을 제대로 안봤다?=민주당에서는 6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언제 봤냐며 부실한 재판이라고 비판한다. 엉터리 비판이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다. 사실관계는 이미 1심과 2심을 통해 정리된 상태다. 그 사건 기록을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없다. 본다 하더라도 재판연구관들이 요약 정리한 내용만 보면 된다. 대법원은 법률 논리를 따지는 곳이다.
법률 논리도 1심과 2심에서 이미 다 나와있다. 어느 논리를 채택할 것이냐만 남았다. 10명의 대법관은 1심 논리를, 2명의 대법관은 2심 논리를 채택했다. 부실 재판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다.
만약에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유죄 논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 그나마 부실 재판이라는 비판이 성립된다. 왜냐하면 1,2심에 없던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건 기록을 다시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1,2심에 유죄가 선고되어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경우에도 사건 기록을 다시 봐야 할 것이다. 이 후보 사건은 1심과 2심에서 유죄 논리와 무죄 논리가 이미 다 나와있어서 새삼스럽게 6만 페이지의 기록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수많은 영장실질심사를 보면 이해가 된다. 큰 사건의 경우 기록이 10만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한다. 판사는 그 방대한 기록을 하루나 이틀만에 검토를 마치고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
△대법원 비판하는 현직 판사들 유감=이번 대법원 판결을 놓고 민주당의 비판은 수긍하기는 힘들지만 이해는 간다. 당사자 입장에서야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현직 판사들의 비판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표적으로 송경근 판사가 그렇다. 송 판사는 "'대법원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대법관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재판을 통해 정치를 한다' 등의 국민적 비판이 온라인, 오프라인 할 것 없이 거세지고 있다. 과거에는DJ정치자금 수사와 같이 선거철이 되면 진행 중이던 수사나 재판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중단했다. 도대체 이러한 사법 불신사태를 누가 왜 일으키고 있는지, 사상 초유의 이례적이고 무리한 절차진행이 가져온 이 사태를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선거 후 사법부가 입을 타격이 수습 가능할 것인지 그저 걱정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신속하게 전원합의체로 회부했을 때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대법원이 지난달 23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5월 1일에 선고를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왜 가만히 있었을까?
솔직해지자. 송 판사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이 후보, 민주당 정치인들 모두 대법원의 신속한 선고 기일 지정에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던 것은 무죄를 확신했기 때문이다.이들이 정직했다면 지난달 23일 이후에 이미 부실한 재판이라는 비판을 제기해야 마땅하다. 무죄를 선고하면 부실한 재판이 아니게 된다는 것일까? 정치 개입이 아니게 된다는 것일까?
△이재명 후보의 발언에 정답이 있다=이 후보는 과거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법원 판결을 앞두고 "공직자는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도록 준비해야 한다. 법원 결정으로 만약 유죄가 확정되면 그 점에 대해선 조국 가족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 본인도 법원 결정을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이게 근대민주주의 국가의 법치주의 원칙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법 쿠데타'를 운운하고 김병기 의원은 "한 달만 기다려라"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사법부를 없애자", "삼권분립이 꼭 필요한지 검토할 때가 됐다"는 극단적 발언까지 나왔다. 이들은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내란을 선동하고 있다.
이 후보 본인 역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이라며 비웃었다. 사법부의 결정을 해프닝이라고 비웃은 근저에는 어차피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걸 뒤집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이 후보는 항소심 무죄 판결에 대해서는 "사필귀정"이라며 "사법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결론이 뒤바뀌자 사법부를 비웃고 공격한다. 국가 지도자의 품격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민주당의 시도는 성공할 것인가?=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4일에는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조 대법원장 탄핵을 논의한다고 한다. 대법관을 대폭 증원한다고 한다.
과거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대법원은 루스벨트의 뉴딜 등 많은 사회주의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이 못마땅한 루스벨트는 대법관수를 대폭 늘리려 했다. 미국 국민들은 대통령 권력이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고 판단해 루스벨트에게 등을 돌렸다. 루스벨트는 국민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대법관 증원을 포기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삼권분립이 흔들리는 이 상황을 방치하거나 악화시키는 결정을 할까?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되살리는 결정을 할까? 6월 3일에 모든 게 결정난다.
그런 측면에서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은 정치 개입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과 국민들에게 최종 결정권을 부여한 것이다. 민주당에게는 후보 교체 선택 여부를, 국민들에게는 당선무효가 예정된 대선 후보를 선택할지 말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