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십자가의 길(도)본문: 갈6:14

하나님아들 2025. 4. 12. 21:40

십자가의 길(도)

본문: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故) A.W. 토저 박사에 의하면 한 젊은 신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으로 오래 믿은 신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 성숙한 신자는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세 가지를 뜻합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둘째, 그는 뒤로 후퇴하지 않습니다. 셋째, 그는 자신의 앞으로의 계획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첫째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한꺼번에 두 가지 방향을 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두 마음입니다. 그들은 천국엘 가기 원하면서 세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롯의 부인과 같습니다. 그들은 한 길을 달리고 있으나 또 다른 것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둘째로, 못 박힌 자들은 뒤로 후퇴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그에게 끝입니다. 커텐은 드리워졌습니다. 드라마는 끝났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사건의 종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그의 옛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끝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롬6:6)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셋째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자신의 계획이 없습니다. 그는 더 큰집이나 더 좋은 차를 꿈꾸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끝낸 것입니다. 그의 쇠사슬은 모두 끊어졌고 그 매력도 다 가버렸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 세 가지 면에서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십자가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한 꼬마가 동화 테이프를 즐겨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제목이 붙은 테이프를 가장 즐겨 들었습니다.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실이 하나뿐인 어느 시골 학교에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어린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 학생은 어느 날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학생의 도시락을 훔쳐먹다가 선생님께 들켜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 점심을 도둑질 당한 큰 학생이 점심을 훔친 나이 어린 학생을 대신해서 매를 맞았습니다. 그 일 이후로 어린 학생은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해서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하고 계십니까?
성경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나의 허물과 죄를 대신 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사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 속죄의 제사는 오직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히9:12) 죄로 인해 단절된 구원의 길이 십자가로 인해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지게 되었습니다.(마27:51) 하나님과 막혔던 담이 무너진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구원의 길이요 영생의 길인 것입니다. 특히 십자가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공의입니다.
미국의 어떤 판사의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신나게 달리다가 그만 다른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교통 순경에게 이끌려 재판을 받으러 갔습니다. 법정에 들어와 보니까 담당 판사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흠, 우리 아버지야 나를 용서해 주겠지"하고 자기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본체도 않고 엄숙한 얼굴로 아들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의 이름을 대시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아버지! 나야요 나!"하고 말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하고 "여기는 법정입니다! 사사로운 말은 하지 못합니다. 어서 이름을 대시요"하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예." 죤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피고의 주소는?" "아니 아버지 주소하고 똑같지 않아요" 그랬더니 그 아버지는 다시 호통을 치면서 "어서 주소를 대시요!" 말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소를 다 댔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꾸며서 낭독한 후에 판결을 내렸습니다. "벌금 100만원" 그 때 그 아들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버지의 불공평(?)한 처사에 통곡했습니다. 그 때 어느새 아버지가 법복을 다 벗어버리고 신사복을 갈아입으시고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얘야! 너 얼마나 놀랬니" "나는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될 법관인데 내 아들이라고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어서 법을 어길 수가 있느냐?" 하면서 벌금을 물 수 있도록 l00만원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자, 이것을 가지고 저기에 가서 싸인을 받으면 너는 나갈 수 있다" 그제서야 이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습니다. 법을 살리기 위해서 재판도 아버지가 하고 형벌도 아버지가 내렸습니다. 벌값을 아들이 낼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돈을 털어서 벌값을 치러 주시고 아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죄 값으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공의도 살리시고 사랑도 살리기 위하여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려 뜨거운 피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하나님의 공의를 성취하는 상징입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죄와 불의와 부정과 싸우며 이 땅 위에 공의를 실현합시다.
셋째, 십자가는 용서입니다.
루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터가 심한 병에 걸렸을 때 악마 하나가 그의 병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악마는 루터를 자신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악마는 긴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루터 자신이 그 동안 지었던 모든 죄가 낱낱이 적혀 있었습니다. 루터의 가슴은 점점 움츠려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루터의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소리로 "네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고 평온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천국 문턱에 이르기에 충분할 만큼 높으며 유일한 사다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고 세상의 분쟁과 갈등이 있는 곳에 찾아가 화해시키는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얼마 전 할머니 한 분과 신앙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딸은 정신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모녀가 세든 집에서도 쫓겨나 이젠 오갈 데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내 죄를 파내고 있는데 죄를 파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할머니는 병적인 죄책감에 빠져 잘못된 쾌감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병적인 죄책감에서 놓여나지 않는 한 결국 동정도 받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병적인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고 맙니다.
또한 병적인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따뜻하게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한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편하게 자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병적인 죄책감에 빠져 있을 때는 자학으로 인한 파괴적인 환경을 정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환경이 다가오면, "옳습니다. 마땅합니다."라고 생각하여,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나 속으로는 박수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 영혼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환경의 저주와 병을 짊어지시고 영원한 사망을 철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셔서 의로움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병적인 죄책감에 눌려 생활의 활기를 잃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자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율법의 저주에서의 속량입니다.(갈3:13, 갈4:4,5)
넷째, 십자가는 희생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가보니까 그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는 막 병아리들이 삐악삐악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있었습니다. 농부가 말하기를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이 암탉의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그 놈이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를 움직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멸망 받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공로로 내 죄가 사함 받았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입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 속에서 자기 몫을 희생하는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고전5:7)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4)
다섯째, 십자가는 화목과 평화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18절에“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만드는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원수된 것을 소멸하십니다. 인간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헐어 주었고,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남북 통일을 얘기하지만, 십자가로 남북이 통일되고 동서가 화합하며 원수였던 사람들이 화해할 수 있습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 화해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엡2:16, 골1:20-22)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나, 그리고 나와 이웃을 더해주는 더하기의 표시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원수가 없으며 십자가 앞에서는 전쟁도 불평도 있을 수 없습니다. 21세기라는 도도한 물결 앞에 두 동강난 뱃조각 모양으로 표류하고 있는 이 민족이 구원 얻을 길은 오직 화해의 능력인 십자가뿐입니다.
여섯째,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하며 제자된 자의 의무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마26:37, 38, 히12:2)
한 미국인 부부가 독일의 오베라머가우에서 유명한 수난극을 관람했습니다. 공연 후에 그들은 예수역을 한 배우를 만나려고 무대 뒤로 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남편은 배우가 극중에서 지고 갔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사업가인 그 남편은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찍어 줘요."
그는 등을 구부리고는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려 했으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에 땀을 흘리며 낙담하여 그는 배우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속이 빈 것 인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무겁죠?" 배우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은 당하려 하지 않고 그분의 옆에 앉게 해 달라고 바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헌신적인 크리스천을 만나게 되면 나는 내가 속이 빈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
"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과 섬김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는가?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영국의 선교사이며 탐험가인 리빙스턴 박사가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리빙스턴의 고향친구 몇몇이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있는 그를 위해 후원할 것을 결정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네의 아프리카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하네. 이번에 몇 교회에서 자원한 청년들을 보내줄 테니 그곳까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이 자원은 했지만 아프리카라는 지역적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당시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교통편은 불편했고 그곳까지 가는 것은 큰 모험이었으며 또한 아프리카 선교의 후원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의 편지를 받은 리빙스턴은 이런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쉽게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들을 원하네"
길이 없어도 가겠다는 사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며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며 헌신되고 훈련된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좋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갈1:10)
십자가의 길은 때로 험하지만 영광이 있는 길입니다. 너무 쉬운 길, 미래가 보장된 길만을 고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결정이 아닙니다.
오늘도 성전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일곱째, 십자가는 대속의 죽음을 상징하며 십자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마귀와 죽음을 이긴 승리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속에는‘승리'‘축복'‘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새 생명과 새 능력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여덟째, 십자가는 희망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현실에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우리는 태어나서 죽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무의미해 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성취하고자 애쓴 모든 것을 결국에는 빼앗길 것입니다. 인생을 위해 바치는 모든 시간이 낭비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아 어떤 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훌륭한 사람이 왜 처형당해야만 합니까? 그와 같은 사람을 죽인다면 남은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절망의 상징인 십자가는 희망의 상징으로 변해 버립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곳에 희망을 가져오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자신의 피조물들을 충만한 성숙함과 순전함에 이르도록 회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와 권능을 상징합니다. 죽음은 가장 강력한 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나머지 세력들도 곧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이제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하는가? 아닙니다. 고통을 상징하는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고통의 세상 한가운데 있는 희망을 상징하는가? 그렇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니 그 이상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없어질 것이고, 영생의 소망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아홉째, 십자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입니다.
핀란드에 왕자가 없는 훌륭한 왕이 있었습니다.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된 그는 왕위를 물려줄 훌륭한 사위를 뽑기 위해 방을 붙였습니다. 수천 명의 지원자 가운데 무예가 뛰어난 20명을 1차로 뽑은 왕은 두 번째로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100일 동안에 하늘과 땅을 잇고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나무를 구해 오너라”고 명했습니다. 청년들은 하늘과 땅, 이웃과 이웃을 연결할 큰 나무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 20 명중에는 수녀원에서 고아로 자란 존 페로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찾다가 지친 페로는 어느날 수녀원 성당에 들어가 현명한 왕이 되어 세상의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오던 그의 눈에 나무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렇다, 그것은 나무로 된 십자가”라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 후 페로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열 번째,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
나, 우리 민족, 온 세계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그 분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유일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열한 번째, 구약 예언의 성취입니다.(눅24:44, 요19:30, 요19:36, 37)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눅18:31-33)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요. 우리 신앙의 중심도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모든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모든 것이 그분의 십자가 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의 도를 깨닫기 전에 예수님을 안다는 소리를 하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깊이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 받게 되면, 그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십자가의 죽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진수요, 본질이요, 기본입니다. 성도 여러분께서 확실히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의 도를 끝까지 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예수님! 나의 모든 허물과 연약함을 싸매주시고 대속해주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무겁고 힘들지라도 주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히려 기뻐하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십자가가 말해주는 교훈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십자가는 축복의 방해물이 아니라 축복의 촉매제입니다. 빠른 지름길에는 평탄한 대로보다 잡초도 많고 돌멩이도 많은 것처럼 인생길에 잡초와 돌멩이가 많으면 하나님의 축복 받는 길에 들어섰다고 보십시오.
둘째, 십자가는 영적 부요함의 원천입니다. 수고가 많이 들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영적 체험을 깊어집니다. 삶에 십자가가 있거든 나를 쓰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성공은 몸은 편하게 해도 삶의 보람은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주실 때 값지게 주시기를 원하시기에 가끔 고난의 십자가도 허락하십니다.
넷째, 십자가는 죄와 관련 없이 선한 인생에게도 찾아옵니다. 악인에게 항상 나쁜 일만 생기지 않듯이 성도에게 항상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고민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일을 모색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다섯째, 십자가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고, 성도가 극복하지 못할 십자가는 없습니다. 삶은 고난보다 소중하고,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는 십자가의 고난보다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는 인생과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고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 중간에는 더욱 함께 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외롭고 서러운 길이지만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왜 새벽마다 기도합니까? 금과 은으로 상징되는 축복을 얻으려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다급한 기도제목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제목의 응답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탄력성과 활기를 주는 십자가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금과 은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지식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낙심과 좌절에 빠져 설 기운마저 다 잃어버렸을 때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부끄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은혜의 복음을 주는 것이 바로 교회와 목자의 가장 큰 일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가슴에 빨대를 들이 대고 꿀을 빨아먹는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나의 행복이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 잠시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명을 발견하고 그 소명을 위해 십자가의 부담을 흔쾌히 지는 것을 말합니다.

2. 묵상 및 토의
0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이 마음의 명패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0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을 위한 눈물이 나에게는 있습니까?
0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는 저마다 져야 할 자기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0 나는 십자가 용사로 살아가는가?
0 나는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당한 적이 있는가?
0 나는 세상적인 부요보다 주를 위한 능욕을 기뻐할 수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실천해야 할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최후는 최초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밤에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서 각양각색의 십자가가 진열된 전시관에 갔다. “이 중 하나를 지고 가십시오.” 천사의 말에 그는 ‘가장 가벼워보이고 편해보이는’ 십자가 하나를 골라 짊어졌다. 그러나 보기와는 딴판으로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다른 걸로 바꾸면 안될까요?” 그가 사정하자 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했다. 그는 더 간편해보이는 십자가를 골랐다. 그러나 두번째 십자가는 더욱 힘들었다. 그는 다시 간청했고 천사가 허락했다. 결과는 마찬가지. 그는 다시 바꾸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차례. 그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제발 바꿔주세요”라며 애원하고 최후의 선택을 했다. 그러자 그 십자가를 본 천사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결국 처음에 택한 십자가를 지셨네요. 이제는 바꾸지 않겠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 예화(2): 십자가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를 빼버리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겠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각 사람에게 맞는 적당한 십자가를 정해두고 계십니다. 이미 져야될 십자가는 정해져 있고 누가 대신 져주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라는 것은 말 안 해도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사단은 교회에서 고난의 십자가를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평안하고 안일하고 재미있게 놀기 좋은 세상 유흥 놀이시설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게 하는 작전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교회를 바라보며 십자가의 고난을 더 이상 연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고난이기에 생각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함과 만족함이 그 속에 있습니다. 벗어놓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의 십자가를 다시 찾아 등에 맵시다. 잃어버린 십자가를 되찾아야 합니다. 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로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천국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4. 찬송(1) :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 영화 모두 잃어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복을 얻겠네
2.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뵈시면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려할 것 없도다
3. 내가 핍박 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할 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할 것 뿐일세
아멘

* 찬송(2) : (496장) 십자가로 가까이

1.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
2. 십자가에 가까이 내가 떨고 섰네 거기 있는 새벽별 내게 비추시네
3. 십자가로 가까이 행케 하옵소서 몸소 받은 고생도 알게 하옵소서
4.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서서 게서 천국 가도록 항상 머물겠네

[후렴]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아멘

5. 십자가에 관한 금언

0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0 예수의 십자가는 세계 역사의 중심이다.(루사후오도)
0 십자가는 천국 문턱에 이르기에 충분할 만큼 높으며 유일한 사다리다.(죠지 다나 보드맨)
0 참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져라. 그리하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너를 져줄 것이다.(토마스 아 켐퍼스)
0 모든 일은 십자가 위에 있다. 매일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는 생명과 평화를 얻을 수 없다.(겜비스)
0 십자가 없는 신앙은 결빙되리라(루사오 오도)
0 십자가 없는 종교는 헛것이다.(롱손)
0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마르틴 루터)
0 십자가는 끌고 가는 것보다 지는 것이 가볍다(오우구스)
0 십자가의 신학은 빛의 신학이다.(마르틴 루터)
0 아! 희생의 사랑 없이 어찌 십자가의 섭리가 이뤄질 수 있을까.(성 어거스틴)
0 중생한 성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난자이다.(제임스 클럭 막스웰)
0 예수를 아주 없애버리려던 십자가는 도리어 모든 사람을 그에게로 이끄는 자석이 되었다.
0 십자가는 억지로 마지못해 지는 자에게는 너무 무거워 지기 힘이 드나, 기쁜 마음과 신앙으로 지는 자에게는 매우 가볍다.(사무엘 루터포드)
0 십자가는 호도와 같다. 십자가의 거죽은 못이 가득한 듯 하나 그 속에는 큰 축복이 숨어 있다.
0 고통이 없다면, 승리도 없고 가시관이 없다면, 왕좌도 없고 신포도주가 없다면, 영광도 없고 십자가가 없다면, 면류관도 없다.
0 십자가 없는 믿음은 곧 얼어버린다.(사무엘 루더포드)
0 새에게 그 날개는 무거운 것이나 그것 때문이 날아가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간다. 신자는 그 십자가가 짐이 되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여 전진케 하는 것이다.(S. 러더프드)

* 교회의 머리(대장)되신 예수님을 따라 기드온의 300명 용사(사사기 7장)처럼 이 어두운 세상에 횃불을 높이들 십자가의 군병(성도)들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한국교회 갱신의 모델교회를 창설하여 복음과 사랑의 빛을 비추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당신은 할 수 없고, 당신이 하는 일을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하면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자는 성도여! 이제 깨어 일어납시다. 주의 일에 전심코자 하는 형제여 함께 모입시다. 작은 물방울처럼 모여 예수의 큰 강을 이룹시다.
1. 하나교회는 초대교회(사도행전2:42-47)와 같이 모든 성도가 서로 사랑과 교제와 나눔이 있는 교회입니다. 즉 하나님도 한 분, 지구도 하나, 진리도 하나,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4: 32)
2. 매일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히브리서 10:25, 행17:11) 그러나 모든 성도가 매일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주일 중 자유롭게 선택하여 1 일 이상을 참석하여 예배드리면 됩니다.
3. 모든 성도가 영육간에 주림이 없는 풍요로운 삶과 꿈(비전)을 보장하는 교회입니다.
4. 모든 성도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헌신, 충성하는 교회입니다.(막8:35)
5. 교회 예산(선교, 구제비)을 헌금(십일조)에만 의존하지 않고 교회 직영의 사업체를 두어 성도(신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고 자아실현의 기회를 주는 교회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진리와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땅끝까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전하며 당신을 믿음의 형제, 자매로 모시고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저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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