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주례사 모음
제목: 아름다운 부부 ?로마서16:3-4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로마서16:3-4)
요즘은 학교는 많아도 교육이 없으며, 선생은 많아도 스승이 없으며, 학생은 많아도 제자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보아도 교인은 많아도 성도가 없으며, 목사는 많은데 목자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아도 집은 많은데 가정이 없는 시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정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 대하여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겨우 36%가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저 그렇다’가 무려 52%였습니다. 그리고 11.2%가 불만족을 느낀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름다운 가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룬 가정입니다. 오늘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살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부부입니다.
첫째, 부부 중심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이야기가 모두 다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모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만 나오는 곳은 없습니다. 아굴라만 나오는 곳도 없습니다. 언제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모세 부부, 아브라함 부부, 욥 부부는 모두 떨어져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늘 같이 붙어서 살았습니다. 부부가 떨어져 살면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보다도 부부 중심이어야 합니다. 신랑은 이제부터 밖에 있어도 안에 있는 아내 생각을 하여야 부부 중심의 가정이 됩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유대인 목사 골드 버거 박사님은 아내가 아플 때 학교에 와서 강의를 하다가도 도중에 밖에 나가 전화를 걸고 오는 이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정 중심, 부부 중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미국에서 가정 목회를 잘 하셨던 존 스타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나에게 가장 첫째가는 임무는 남편으로서의 임무이고, 두 번째 임무는 내 자식의 아버지로서의 임무이고, 세 번째 임무는 내 교회의 목사로서의 임무다.”
아름다운 부부란 역시 부부 중심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처럼 말입니다.
둘째, 예수님 중심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이사를 자주 다녔습니다. 성경에는 세 번이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향 본도를 떠나 로마로 이사 간 이유는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서였습니다. 고향 본도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이를 핍박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로마로 이사 간 것입니다. 로마에서 살다가 글라우디오가 예수 믿는 이를 핍박하니까 고린도로 이사하였습니다. 직장 때문에 이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따라 이곳저곳 다니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유명한 에베소 교회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집에서 개척된 교회입니다. 이같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예수님 중심 부부였습니다. 어느 가정을 보면 남편은 예수님을 잘 믿는데 아내가 잘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느 가정은 아내는 믿음이 좋은데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둘 다 똑같이 예수님 중심 부부였습니다.
셋째, 일 중심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같이 장막을 만드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장막을 만들거나 기우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영적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함께 하였습니다. 같이 살고 같이 붙어 다니며 같은 일을 한, 완전한 한 몸이었습니다. 열심히 같은 일을 한, 정말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어느 믿음이 깊은 어머니가 아들을 귀하게 길렀습니다. 그 아들이 자라서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군대란 위험한 곳이란다. 꼭 한번 기도하고 떠나라.” 그 아들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습니다. 그가 긴 항해 길에 오르게 되자, 전날 밤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바다란 너무나 험한 곳이란다. 두 번 기도하고 떠나라.” 이윽고 아들이 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결혼이란 군대보다 위험하고 바다보다 더 험한 것이란다. 세 번 기도하고 결혼해라.”
이제 결혼하면서 신랑과 신부는 세 가지를 기도하고 출발하십시오.
첫째, 부부 중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 예수님 중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셋째, 일 중심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같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룬, 부러운 부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정을 틀림없이 축복하셨습니다.
?제목: 결혼의 3대 원리 ?주례자: 고현봉 목사(부산영락교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18-25)
사람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불행하기를 바라는 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행복의 첩경을 가정에서 찾아야 합니다. 한 지붕 밑에서 자고 깨며 먹고 마시면서 밤낮으로 고락을 같이하는, 혈연적으로 이루어진 사회생활의 기본단위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행복하면 그 사람은 행복하고, 다른 조건과 환경이 다 좋아도 가정이 불행하면 그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정은 온갖 행복의 근원, 곧 행복의 요람입니다.
한가정의 구성은 일남 일녀의 결혼으로 시작됩니다. 결혼을 가리켜 보통 인륜의 대사(大事)라고 합니다만, 사실은 천신(天神)의 대도(大道)입니다. 태초에 하늘의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 남녀가 결합하여 서로 돕고 사랑하며 복되게 살아가도록 정하여 주신,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기피하고 독신생활을 선호하는 일부 현대의 풍조는 이 대도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비록 천도와 인륜에 따라 결혼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행복한가 하면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결혼의 파탄과 불행을 의미하는 이혼율이 높아지고 이혼까지는 안가더라도 마지못해 사는 불행한 가정 또한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의 근본 원리를 잘 모르거나. 그 원리에서 탈선된 데 기인한 인생의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혼에는 세 가지 큰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이 결혼의 3대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할 때 실패와 불행이 없는 참된 행복과 승리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신랑 신부는 이 원리에 대한 주례의 말씀을 잘 듣고, 거기에 입각하여 결혼서약을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는 천정배필(天定配匹)의 원리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오래전부터,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해온 금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서 찾아보아 확인하게 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을 위하여 하와라고 하는 한 여자를 만들어 부부를 짝지어, 인류 최초의 결혼식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례해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마태복음19:6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반역하는 큰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천정배필이라는 말입니다. 결혼의 첫째 원리가 천정배필의 원리입니다.
오늘의 신랑 신부는 물론 두 사람이 서로 좋게 합의하고 양가 부모님들의 허락으로 이루어진 배필이지만, 이들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짝지어 주신 줄 믿고 감사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백년해로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부부 일신(夫婦一身)의 원리입니다.
어머니와 딸이 아무리 가깝고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일신(一身), 한 몸이 될 수 없고, 부자유친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아무리 친하고 소중해도 한 몸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오직 일남 일녀의 이성간이 결합으로 부부가 되었을 때만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신비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마19: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신랑, 신부여, 그대들은 이제 둘이 아니요, 한 육체 한 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요, 남편을 존경하는 것이 나를 존경하는 것이니, 알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일남 일녀(一男一女)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라는 한 남자에게 하와라는 한 여자를 배필로 허락하신 것에서, 일남 일녀의 결혼 원리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슬람교가 일부다처주의를 제도화한 것이나, 일부일처의 국법 하에서도 실제 개인생활에서 일부다처로 살아가는 것은 이 원리에 모순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많은 여자를 맡기지 않으시고 한명만을 지어 주셨을까요?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일남 일녀의 결혼 원리를 잊지 말고 그대로 실천하여, 일평생 변함없이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절을 굳게 지킴으로써, 경건하고 우수한 자녀의 축복을 위시하여 건강과 장수, 물질과 번영 등 필요한 온갖 은혜를 받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무엇보다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교회에 충성되이 봉사하며, 양가 부모님들께 효도하는 동시에 오늘의 하객들을 비롯한 이웃들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께 깊이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행복자가 되는 세 가지 원리” ?주례자: 송 길 원 목사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장 21-25절)
배우는 결혼을 희비극으로 단정했으며, 상인은 위험한 투기로, 군인은 30년 전쟁으로 비유했다고 합니다. 또 의사는 결혼을 고열에서 차차 열이 떨어지는 열병과 같은 것으로, 화학자는 두 개의 무해한 물질이 화합해서 하나의 요소를 만들어 내는 실험으로, 음악가는 소프라노와 알토가 함께 노래하는 합창으로, 일기예보관은 ‘맑고 구름 낌 때로는 천둥 침’이라는 말로, 그리고 약사는 ‘자극적인 알약- 맛이 씀’이라고 풀이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면 수천수만 가지의 괴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을 안 하면 한 가지 기쁨도 누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 기쁨을 얻기 위해 많은 괴로움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결혼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쉽게 갈라섭니다. 점점 이기적으로 변합니다.
누군가가 신혼을 가리켜 한 사람은 신나고 한 사람은 혼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들 ‘신’이 나려고 다른 사람을 ‘혼’냅니다. 그러니 그런 결혼은 언제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결혼합니다. 여기에 결혼생활의 비극이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결혼식에다 마음을 쏟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분명히 하십시오. 여태껏 화려한 결혼식이 사랑을 보증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결혼을 보증해 줍니다. 때문에 사랑의 의미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참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합니다. 즉, 배우자의 단점과 장점을 동시에 바라봅니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일도 비하하는 일도 없습니다. 단점 때문에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그 단점이야말로 자신이 보충하고 도와주어야 할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의 행복은 불완전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해 가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성숙을 성숙으로, 차이를 일치로,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에게는 찾아오는 모든 위기가 위험 속의 기회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가 이런 행복을 빚어낼 수 있을까요?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신앙 가문의 경우, 적어도 세 가지를 배우자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저는 그 세 가지야말로 행복한 결혼을 보증해 주는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부부에게 이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영국에서는 배우자를 고를 때 제일 먼저 살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치관이 다르면 삶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도 힘든 세상을 갈등하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는 것입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그때만 해도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가을 운동회는 빅 이벤트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 좋았고 상을 받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끄는 경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달리기였습니다. 달리기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마라톤도 릴레이도 아닌 이인삼각 경기였습니다. 두 사람이 다리를 묶고 함께 뛰는 경기입니다. 이 때 한 사람이 마음이 급해 너무 멀리 뛰거나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힘이 약한 사람이 쓰러져 버립니다.
이래서 예로부터 금실이 좋은 부부를 삼각부부라 불렀습니다. 결혼이란 마치 2인 3각 경기와 같아서입니다.
부부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신앙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돈이 잠깐 동안 부부를 하나로 묶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너무 가난했으나 부부가 진정 하나였습니다. 맞벌이를 하다가 여유가 생기자 아내는 나름대로 시간을 활용하며 교양을 쌓아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취미가 돈 버는 일이었고 특기도 돈 버는 일이었습니다. 조금씩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아내 쪽에서 무식한 남편하고는 못 살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섰습니다.
가문도 문벌도 부부를 하나로 묶어 주지 못합니다. 학벌도 아닙니다. 미모도 아닙니다. 부부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신앙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유머입니다.
유머는 사랑을 살찌웁니다. 유머는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세계관입니다. 링컨은 키가 껑충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깡말랐습니다. 그런 링컨을 사람들은 우스꽝스레 여기며 비아냥대기 일쑤였습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조소했습니다.
“사람의 다리 길이는 어느 정도면 적당할까요?”
그때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리춤에서 발목까지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이래서 웃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습니다. 좌절을 모릅니다. 오히려 웃음으로 희망을 나눕니다. 때로는 웃음은 관계 건축가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집안이 잘되려면 세 가지 소리가 담장 밖으로 흘러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글 읽는 소리이고, 둘째는 일하는 소리이며, 셋째는 웃음소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어려움을 이길 최상의 치료법이 웃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따분해지기 쉬운 결혼 생활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쾌활하게 웃으면 위장과 가슴 근육 그리고 심장과 폐가 운동을 하게 됩니다. 웃는 동안에는 혈압이 올라가고 아드레날린 분비가 늘어나지만, 웃고 난 다음에는 정상치로 돌아오거나 그보다 더 내려가 스트레스를 풀어 줍니다. 그래서 웃음은 명약이라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하시면 하루에 한 번씩 꼭 웃음을 먹고 사십시오. 이제 결혼식을 치르는 두 사람은 주례자를 따라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기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기쁘다.” 이 말을 꼭 명심하십시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DIY입니다.
DIY란 “Do it yourself"를 말하는 것으로 “제 손으로 스스로 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활 수공예를 말하는 것인데 좀 더 의견을 보충하자면 자립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를 확대해서 찰스 스윈돌 목사가 말한 성숙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윈돌 목사는 성숙한 사람의 지표를 다음가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 악이나 위험이 뚜렷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감지한다.
둘째, 지식뿐 아니라 지혜와 이해의 마음을 갖는다.
셋째, 책임감과 면밀성을 가지고 정서를 순화시킨다.
넷째,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보면 사랑으로 참여한다.
다섯째, 할 일을 보면 그 일이 완결될 때 까지 하는 불굴의 정신을 갖는다.
여섯째, 교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기꺼이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는다.
일곱째,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여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사람이 가진 최후의 자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이 가진 최후의 자유는 자신이 행동을 선택할 자유다”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 행복을 선택하는 행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목: “사랑의 ABC” ?주례자: 명 성 훈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마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도 13장 4-7절)
인생은 선택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셨지만 태어난 이후로는 일생동안 우리 자신이 매사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로 우리 인생이 결정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의 하나는 평생 같이 살 배우자롤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제 신랑 신부 두 사람은 서로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두 사람을 부부로 예지, 예정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인간의 선택, 인간의 약속 그 이상의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입니다. 즉 사람과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내 아내와 내 남편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신적인 약속인 것입니다.
결혼은 요술이 아닙니다. 결혼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예술입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행위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결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주일성수 하시고, 십계명을 지키시고, 십일조를 빠짐없이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을 낳아서도 꼭 예수님을 믿도록 하고 교회에 나가도록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행복하고 축복된 가정은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성경에도 이 땅에서 형통하는 비결이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지만 육신의 부모가 없었다면 오늘의 신랑 신부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랑은 신부의 부모까지, 신부는 신랑의 부모까지 자신의 부모로 생각하고 공경하십시오. 위하여 기도해 드리고, 자주 연락드리고, 필요하다면 경제적으로 부모를 섬기십시오.
셋째로,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오늘의 시대는 가정이 깨지고 상처받는 시대입니다. 신랑 신부의 새로운 가정으로 수많은 불행한 가정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존재하는 목적은 당사자들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 단위입니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사회를 만듭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가정이 될 때 하나님께도 영광이요, 부모에게도 영화로움이요, 본인 자신들에게도 축복이 될 것입니다.
넷째로,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십시오.
사랑할 때 행복하고, 행복할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두 분이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 이상입니다. 지금은 그저 좋아서 모든 것이 좋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의지가 담긴 결심이 필요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요?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것은 ‘자기중심’이고,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 중심’입니다. 내가 싫어도, 손해가 나더라도 상대방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합니다. 공부하고 애쓰고 훈련해야 합니다.
사랑의 ABCDE를 기억하십시오.
사랑의 A는 Accept,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본질적으로 똑같지 않습니다. 남편은 화성인이고, 아내는 금성인입니다. 결혼이란 화성인과 금성인이 지구에서 만나 함께 지구인이 되는 것이라고 미국의 가정심리학자 존 그레이 박사가 말했습니다.
사랑의 B는 Believe, “믿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고, 아내는 남편을 믿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C는 Care, “돌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과 혀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입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와 가족을 경제적으로 돌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가정을 보살펴야 합니다.
사랑의 D는 Desire, “기대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 볼일 없지만 앞으로 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소원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잘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E,는 Erase, “지워 버리는 것, 즉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를 용납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용서하는 자세라면 어떠한 문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사랑의 다섯 가지 본질을 삶으로 체득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부모님이 기뻐하시고, 이웃이 존경하는, 한없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 ?주례자: 김 의 환 (전 총신대 학장)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18-24절)
결혼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친히 짝을 지어 주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적을 베푸셔서 축하하였습니다. 결혼과 관련하여 창세기 2장은 깊은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결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이 말씀에서 독처생활, 즉 홀로 사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게 여기셨다고 했고 결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배필을 친히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요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아셔야 합니다.
둘째로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심으로써 이룩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22) 하나님은 아담에게로 여자를 이끌어 오심으로써 친히 짝을 지어 주시는 주역을 담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동시에 섭리주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오늘 결혼하게 된 두 분이 어떤 과정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아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례자로서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분이 결혼을 결심하게 하여 이 자리까지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앞으로 험한 인생살이를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두 분 사이의 금실을 상하게 하여 결혼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두 분을 결혼상대의 최적자로 아시고 친히 짝지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확신이 있는 동안 어떠한 어려움도 다 감내하고 서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셋째로 결혼은 하나님이 두 몸을 한 몸으로 만드신 일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이 말씀은 결혼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신 하나님의 결혼 주례사입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니라 ‘일’이 되는 성경적 결혼 공식을 발표하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둘’이면서 ‘하나’입니다. 영어에서 부부간에 상대방을 부를 때, 서로 자신보다 나은 반쪽, 즉 ‘Better half'란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더 나은 게 아니고 양쪽이 똑같이 ’반쪽‘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결혼의 성경적 원리를 명심하고 결혼 생활을 한다면 두 분의 앞날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목: “처음 고백을 따라서” ?주례자: 김 남 준 목사(열린 교회)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장 23-24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인간은 누구든지 이 땅에 태어나서 한 번씩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령한 결혼이 있는 것처럼 거룩한 독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녀가 만나 한 몸을 이룸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기에 온전한 사람들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두 사람을 혼인을 통하여 부부의 결합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갖고 계신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인간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이래 오늘날까지 문학작품과 수많은 예술 활동의 소재가 되었던 그 흔한 사랑 이야기는 오늘 이 혼인 예배에서 우리가 읽은 창세기 2장으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아담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영혼을 창조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영혼을 주신 것은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하고 교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배려와 특별한 계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긍휼히 보신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영적으로 교제하고 육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모두 동시에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는 존재가 서로 기대어 살며 상대방의 결함을 메꾸어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의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며, 그러한 피조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남녀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시려는 듯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의 신체 일부로부터 한 여인을 만드시고 그들이 한 가정을 이루도록 하시기에 앞서 먼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십시오.
남자인 아담이 자신을 돕는 배필로 새로이 창조된 여자 하와를 향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히브리 문학의 맥락에서 보면 “무엇 중의 무엇”이라는 표현은 ‘최고’ 또는 ‘최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기 전에 먼저 결혼이라는 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 결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모든 결혼은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 아닙니다. 물론 남녀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이 곧 그 결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혼이라면 반드시 서로의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으로 확증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두 사람이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동시에 우리 모두 함께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위하여 축복을 빌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로 하는 사랑의 고백은 한 순간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한 순간의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의 사랑의 고백이 끊임없이 두 사람의 인생 속에서 삶으로, 생활로, 행동으로 실연(實演)될 때에 서로가 진정한 부부의 대의를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더욱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을 따라 살기를 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이제 이 혼인을 통하여 남편이 되는 형제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시되 남자의 머리뼈를 취하거나, 발바닥의 뼈를 취하거나 엉덩이의 뼈를 취해서 만들지 아니하시고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지으셨습니다. 남자를 지배하면서 살도록 남자의 머리뼈에서 취하지도 않고, 남자에게 지배를 받으며 살도록 발의 뼈에서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남자의 사랑을 받도록 심장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깨지기 쉬운 그릇과 같은 육체가 남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그의 품에서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결혼하는 형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아내가 될 자매를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의 지체요, 동반자로 알고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혼인을 통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자매에게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남녀를 만들어 한 가정을 이루실 때에 질서도 함께 세우셨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 있지 아니하지만 순종하는 질서와 사랑하는 애정의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가 어떻게 변하든지 이것은 혼인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자의 사랑만 가지고도 살 수 있지만 남편은 아내의 사랑만으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는 사랑과 함께 존경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내가 되는 자매는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의 대의가 성취될 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고이고이 품어서 지금까지 길러주신 양가의 부모님들께 삼가 권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 예식을 통하여 가정을 이루는 이 두 사람은 여러분들의 품에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이제 두 사람은 여러분들의 품에 있는 어린 아니가 아닙니다. 이제 두 사람은 독립된 개체로서 부모님들과 같은 또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부모님들과 같은 또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두 사람은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독립된 작은 가정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제껏 이들을 키워 주신 부모님들은 이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교훈과 사랑, 그리고 기도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기쁜 결혼식을 통하여 두 사람이 결합함으로써 환란과 풍파가 많고 죄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각기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복된 가정을 이루기를 우리 모두 기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을 무척 사랑하십니다. 저 역시 이들을 사랑합니다. 두 사람을 여기까지 이르게 하시기까지 어떠한 사랑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으시고 돌보아 주셨는지 알기에 이 결혼에 대한 축하의 마음이 남다릅니다.
두 사람의 시작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이제껏 함께 해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두 부부의 결합이 많은 사람들과 교회에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을 마음껏 축복하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이들을 위하여 잊지 말고 기도해 줍시다.
?제목: “변함없는 사랑” ?주례자: 박 조 준 목사(갈보리교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5장22-33절)
조금 전에 읽은 말씀은 기독교 역사상 유명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교회로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정에 대해서 사랑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짝지어 한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물론 사람 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 배후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가정을 신성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정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는 ‘천정배필’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부부란 하늘이 정해 주신 짝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인륜지대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 안에서 이루어진 가정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고 그 사명 또한 중차대합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하면서 가정생활에 대하여 몇 가지 권면을 했습니다.
첫째로, 가정생활의 원리입니다.
한마디로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소중한 말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의 관계로 말하면서, 먼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범사에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에게 순종하며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 영위될 때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세상을 살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요소를 제거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 분은 서로 사랑하셔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가정생활의 기초입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기초공사를 위해서 많은 시간과 경비를 소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초가 견고해야 건축물이 든든히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초가 없거나 혹은 기초가 약해도 집을 지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은 얼마 가지 못해서 기울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초는 견고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변함이 없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 세상은 모두가 변합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다.”고 말씀했고 “그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아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부딪쳐도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반석위에 세운 연고요”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 위에 세워진 가정은 세상이 변하고 흔들리는 한이 있어도 변함도 없고 흔들림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루어지는 두 분의 가정은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든든하게 세워지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가정생활의 목적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 최고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사회에 유익하고 교회에 덕이 되며 개인으로는 행복과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이루어지는 두 분의 가정은 사랑을 원리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펴나가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제목: “삼각형 가정, 삼각형 행복” ?주례자: 김 학 중 목사(레포츠 교회)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전도서 9장9절
결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은 상황에 따라 연기될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약속을 ‘약간씩 속이고 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결혼을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가문과 가문 사이의 약속 정도로만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조만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결혼식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툭하면 서로 싸우고 마음대로 별거하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언약이란 사람의 마음과 감정대로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자식이 못나고 속을 썩인다 해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또 아무리 부보가 오랜 지병으로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해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배우자에게 아무리 심한 실망과 모욕감을 맛본다 해도 그 관계를 쉽사리 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언약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의 엄숙한 서약이고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결혼이란 제도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독처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창1:28) 그리고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거행된 결혼 예식이었고 최초의 주례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선 신랑과 신부도 이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이라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 선 신랑과 신부는 그 동안 서로 사귀면서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함께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토록 어려운 결혼 준비를 마쳤을 테지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행복하게 살려면 이렇게 저렇게 살라는 충고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주례를 맡은 저도 신랑 신부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간단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그 내용은 모두 성경에서 제가 배운 사실입니다.
먼저 신랑에게 묻겠습니다. 결혼한 남편의 행동 강령 1순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남자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간, 쓸개까지 다 빼내어 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태도가 180도 달라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여자들은 가슴을 치며 “속았다”고 한숨을 내숩니다.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소리 같지만 꼭 명심해 두십시오. 아내에게서 “내가 속았지”라는 말을 듣는 남편은 이미 인생이 가장 큰 영역에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대문호 세익스피어도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남자들은 구혼할 때는 4월이지만 결혼할 때는 12월”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이 되십시오. 제가 하는 한 목회자는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내를 꼭 껴안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 기도를 해준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하면 집안이 평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신을 위해 아침마다 기도해 주는 남편의 아내치고 남편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는 아내는 없습니다.
얼마 전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가장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우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대답이 1등으로 나왔을까요? 신랑이 한번 맞춰보세요. 맞습니다. 부인들은 남편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가 바로 남편이 기도할 때였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결혼하는 신랑 O O O 군은 기도를 많이 하는 남편이라는 칭찬을 아내한테 받길 바랍니다.
끝으로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아내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결혼 후에는 한쪽 눈을 감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넓은 마음에 약합니다. 한문으로 남자를 일컫는 사내 남(男)자는 밭(田)에서 힘쓰는(力)사람을 뜻합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입(?) 열(十)개는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열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으려면 남자는 심지가 굳어야 하고 아량이 넓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신부에게 묻겠습니다. 아내의 행동 강령 1순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내의 행동 강령 1순위는 ‘남편 세워주기’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손바닥에 한문으로 지아비 부(夫)라는 글자를 한 번 써보십시오. 맞습니다. 지아비 부(夫)자는 하늘 천(天)자 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을 하늘처럼 섬겨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남편을 섬기려면 하늘보다 더 높게 섬겨야 합니다. 한문에 나와 있는 그대로입니다.
유대인들의 보물창고인 탈무드에도 비슷한 글이 나와 있습니다. “딸아, 네가 만일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룰 것이다.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워줄 것이다.”
신부가 신랑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섬기기 시작하면 신랑도 신부를 아껴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남편을 웃기고 매일 한 번씩 남편을 칭찬해 보십시오. 남편을 다른 남자와 절대로 비교하지 말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고 자녀들과 함께 남편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남편을 왕처럼 섬기는 아내는 모두 왕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내세워 남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한다면 그 가정은 곧 싸움판으로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제 신랑 신부 두 사람 모두에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성공적인 결혼은 항상 삼각형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남자와 남편을 진정으로 세워주는 여자, 그리고 하나님, 이 세 가지가 있어야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삼각형 가정이고 삼각형 행복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부부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인생의 이중창” ?주례자: 소 강 석 목사(새에덴 교회)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5장22-33절
사랑하는 두 젊은이의 결혼을 축하드리며, 이 시간 저는 오늘 읽은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새 출발을 하는 두 사람에게 몇 가지 권면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창조하신 가장 신성한 제도입니다.
결혼이 없으면 인생은 너무도 삭막할 것입니다. 마치 얼음과 같은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결혼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결혼을 인생의 이중창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결코 인생의 독창이 아니고 이중창입니다. 독창이란 혼자 내 마음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자가 좀 틀리고 소리가 좀 튀어나와도 거기에 개성미와 창조적인 구색만 맞추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중창이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해도 어느 한 소리가 일방적으로 툭 튀어나오면 안 됩니다.
이중창이란 철저하게 하모니를 이루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랑의 테너(베이스)소리와 신부의 소프라노(알토)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의 멋을 이룰 때, 거기에서 진정한 이중창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한 부부의 행복과 보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 신부의 부단한 노력과 정성으로 행복의 공든 탑이 쌓이고 보람의 꽃이 조화 있게 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신랑 신부가 서로 아름다운 인생의 이중창을 부르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 두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이중창을 잘 불러야 합니다.
결혼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혼자서는 불완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정 제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육체가 한 몸이 되고 마음과 정신이 한 몸이 되고 신앙으로 한 몸이 되어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가정을 대대로 자손만대까지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결혼을 하는 두 분은 이제부터 하나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서로 사랑의 이중창을 잘 불러야 합니다.
신랑 신부가 아름다운 행복의 이중창을 부르기 위해서는 서로 다음과 같은 의무를 실천해야 합니다.
남편의 의무는 아내를 무조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희생했듯이 그런 희생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 한국에서는 희생은 남편보다 아내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셨듯이 신랑은 신부를 위해 모든 희생과 모든 사랑을 다 주어야 합니다. 부모보다 자식보다 그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고 희생하며 보호해 줘야 합니다.
또한 남편은 자기 몸처럼 아내를 돌봐야 합니다. 아내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아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아내의 기쁨과 아내의 보람을 함께 나누는 남편! 이런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여인은 꽃을 다루듯 섬세하게 돌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신랑은 신부에게 한 송이의 아름다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정성으로 부단한 애정의 햇빛을 주고 자상한 관심의 비료를 주며 변함없는 신뢰의 물을 주십시오.
그리고 이기심이라는 잡초를 뽑고 독선의 벌레도 잡으며 무관심의 질병도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내 몸처럼 아내를 사랑해 보세요. 바로 그때 행복의 이중창이 가정 안에서 메아리칠 것입니다.
한편, 신부의 의무는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남편을 올라타거나 바가지를 긁으면 안 됩니다. 오직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모하고 그의 재림을 고대하듯이, 신부도 오직 남편만을 사모하고 그 품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남편이 없는 아내는 머리 없는 몸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남자가 내 남편이요 가장 사모해야 할 자가 내 남편입니다.
셋째, 부모님께 효도하는 이중창을 잘 불러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역시 한 사람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마음이 하나가 되고 뜻이 하나가 되어 효도를 할 때 진정한 효도가 되고 완전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신랑은 시댁만 생각하고 신부는 친정만 생각하는 것! 이것은 불완전한 효도입니다.
오히려 신랑은 처가댁을, 그리고 신부는 시댁을 더 생각하는 마음, 그래서 이 두 마음이 한 마음이 되어서 양가의 부모님들을 받드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효도입니까? 바로 이런 가정에서 하나님은 행복과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셨으니, 오늘 두 분은 아름다운 효도를 하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두 남녀의 결혼식은 인생의 이중창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인생이 달고 쓴 경험을 같이 나누며 험난한 파도를 함께 뛰어넘고 높은 산을 같이 기어오르며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을 손을 맞잡고 가다가 나중에는 영생의 기억까지 같이 나누게 될 영광스러운 이중창이 이제 막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결혼하는 두 사람은 서로 성이 다르고 고향이 다르며 성격과 개성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귀한 가정에서 부부가 한 몸이 되어 멋진 이중창을 불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정을 만드십시오. 부모님께 효도하는 가정을 만드십시오. 서로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루세요. 평생 이런 복된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제목: “결혼의 목적” ?주례자: 전 병 욱 목사(삼일교회)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에베소서 5장22-33절)
일부일처의 가정 제도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제도입니다. 이 땅에서 남자와 여자가 진정으로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제도를 무시하고 인간의 뜻대로 방종한 삶을 산다면, 반드시 멸망이 찾아옵니다. 18세기 에드워드 기번이라는 역사학자가 쓴 《로마 제국 패망사》를 보면, ‘로마 제국이 왜 망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도대체 왜 영원한 제국이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로마 제국이 무너졌는가? 기번은 가장 큰 멸망의 요인으로 ’가정의 파괴‘를 들고 있습니다. 즉 가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만다는 뜻입니다.
한자를 보면, 평안할 안(安)자가 있습니다. 이 글자에는 갓머리에 계집 녀 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무슨 뜻입니까? ‘평안하다’는 것은 ‘집 안에 여자가 한 명 있어야 한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발생한 불화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 불화는 두 아내 사라와 하갈의 다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산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은 여러 아내들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선 남편 될 OOO형제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분 에베소서 5장 22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고 나와 있습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을 교회와 그리스도와 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를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라” 는 말씀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받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의 능력의 100% 이상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면, 아무리 돈과 명예, 힘이 있다 할지라도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여자의 속성입니다. 27절을 보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사실은 자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보통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고 아내를 내팽개치고 아내를 버려둡니다. 그러면 묘하게도 그 사람 자신이 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무너지면서, 자신도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사람이 아무리 친구를 사랑해도,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 ‘내 몸 사랑’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 사랑하는 것이 ‘내 몸 사랑’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아내 사랑만이 제 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음은 아내가 될 OOO 자매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남자는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서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남편에게 아내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도 자기 아내한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 뒤에 여자 있고, 성공 뒤에 여자 있다” 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도 있고 나쁜 영향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자매가 주의해야 할 것은 결혼 생활 중에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남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가정에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항상 남편에게 투정을 합니다. “제대로 입을 옷이 없다.” “제대로 치장할 액세서리가 없다.” 고 항상 투정을 합니다. 그러고는 홧김에 남편에게 “어디 가서 도둑질이라도 해서 아내에게 보란 듯이 밍크코트 한 번 입혀 봐요!” 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진짜 백화점에서 옷을 훔치다가 구속이 되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냥 한번 해본 말인데!”
반면에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격려의 말, 믿음의 말 한마디가 모든 역경을 이기는 힘이 되곤 합니다. 아내가 하는 격려의 한마디는 산삼보다도 더 큰 효력이 있습니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청량제 역할을 합니다. 아무쪼록 자매는 지혜로운 아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혼의 목적은 ‘사명’ 에 있습니다. 각 가정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가정에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신혼부부에게 결혼 후의 ‘목표’ 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이 한심합니다. “5년 안에 내 집 마련” 이라고 대답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성도에게 있어서는 “내 집 마련” 이 지상목표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가정의 목표는 ‘단순한 행복’ 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 의를 이루는 것’ 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내는 명심하십시오. 남편이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자꾸 집에만 관심을 쏟으면 ‘우리 남편은 참 가정적인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안 되고 ‘참 안 될 사람이구나. 소인배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하면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람이라면 ’참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참 크게 될 사람이구나‘ 하고 확신을 가져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낭비하지 않는 결혼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두 사람은 구제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모든 수입에서 제일 먼저 십일조를 떼어 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제하십시오. 10분의 1을 이웃에게 보태어, 그들을 향해 사랑의 창문을 여는 삶을 사십시오. 구제하는 삶은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삶입니다. 남을 돕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을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자손을 많이 낳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과 번성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가정의 목적 중 한 가지는 경건한 자손을 많이 낳는 것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낳으십시오. 우리 교회에서는 네 명 낳으면, 주일학교 부흥에 혁혁한 공로가 있다고 하여 그 공로로 하와이 여행 동반 티켓을 끊어 줍니다. 이 제도의 첫 번째 테이프를 끊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부모 순종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시작된 가정이니, 예배함으로 끝마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이 부부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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