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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과 우주의 종말.

하나님아들 2024. 3. 19. 22:23

하나님의 심판과 우주의 종말.

 

  하나님의 심판은 2차례에 걸쳐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심판은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이고 두 번째 심판은 우주 만물의 종료 때이다. 따라서 첫 번째 심판은 이미 진행되었고 두 번째 심판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가. 1. 하나님의 첫 번째 심판.

 

  아담이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그를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포하신대로 아담에게 형벌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것은 아담에게만 내려진 심판이 아니라 아담 이래의 모든 인류에게 일률적으로 내려진 심판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심판은 완전한 심판이 아니라 많은 것이 두 번째 심판 <최후의 심판> 때까지 집행 보류되고 집행 유예되는 <징계적, 형벌적, 제한적> 심판이었다.

 

(1) 1).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

 

(1) 육체적 죽음.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하였을 때, 그는 이미 선포되어진 형벌을 받게 되었는바 그 형벌은 곧 죽음이었다<창2:17; 3:19>. 그리고 그가 받은 형벌은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적용되어지게 된다. 이 형벌에 의한 육체적 죽음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육체와 영<靈>의 분리이고, 다른 또 하나는 육체적 기능의 일시적 종료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가 흙으로 지음 받았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선포하신다<창3:19>. 그러나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인간의 육체가 영원히 멸절<annihilation>된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죽어서 땅에 묻히거나 또는 화장<火葬>되어지거나 또는 다른 방법에 의하여 소멸 되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우주적 종말 즉 하나님의 심판 때에 다시 부활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적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으로서 다만 그 기능이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일시적으로 정지 되어지는 것이다.

 

(2) 2) 영적죽음.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여 죽음의 형벌 받았을 때 그의 육체적 죽음은 즉시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적 죽음은 즉시 이루어졌다. 이때에 아담에게 내려진 영적 죽음은 영의 멸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멸절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내려진 영적 죽음의 형벌은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적용되어지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계속하였던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거절당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상태가 되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조치를 내리시지 아니하는 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두절되어진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형벌의 상태를 <막힌 담-엡2:14>으로 증거 한다. 그러나 육체적 죽음과 마찬가지로 영적 죽음도 완전하고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영적 죽음은 2차에 걸쳐서 부활 된다. 1차 부활은 법적, 행정적인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죄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1차적인 영적 부활을 <영적회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1차적인 영적 부활은 법적 행정적으로는 완전한 반면에 현재적, 상태적으로는 완전하지가 않다. 인간은 현세를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영적회복 상태>를 이룰 수 없고 오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완전한 영적회복은 2차 부활로서 그의 개인적 종말 후에 하나님 나라에 입국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직접 뵈옵게 되며 첫 사람 아담이 가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들에게만 적용 되어진다.따라서 인간의 영적 죽음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택함 받은 자들의 영적 죽음은 일시적인 것인 반면에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의 영적 죽음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되는 것이다.

 

(3) 2) 인간에 대한 죽음의 구분.

 

  인간에게 내려진 죽음의 형벌은 집행과 동시에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성도들의 죽음이고 다른 또 하나는 일반인들의 죽음이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사면이 전제된 죽음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죽음의 형벌을 받음과 동시에 사면 받음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어지는 죽음이다. 반면에 일반인들의 죽음은 사면 없는 죽음으로서 죽음과 동시에 지옥으로 옮기어지는 죽음이다.

 

(1) 성도들의 죽음의 의의<意義>

 

  성도들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상 형벌이 아니라 은총이다. 따라서 성도의 죽음은 슬프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강복으로서 기쁘고 감사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어떤 학자들은 성도들의 죽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성도들을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산채로 데려 가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죽음을 거치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지 않는 것에는 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 사이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주권적 의지로 택한 자들을 산 채로 불러 가실 수 있다. 에녹과 엘리야의 경우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증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하시지 않고 성도들이 죽음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현실적인 섭리 역사 때문이다. 만약에 성도들이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고 할 때에 인류의 현세 역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상상한다면 하나님의 그와 같은 섭리의 필연성을 충분히 납득하리라. 반면에 최후의 심판 때는 성도들이 죽음을 거치지 않고 산 채로 휴거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때는 모든 것이 종료됨으로 현세에 대한 어떤 혼란도 고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에녹과 엘리야의 휴거는 최후의 심판 때에 성도들이 휴거 한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이며 보장이다.>

 

(2) 일반인들의 죽음의 의의<意義>

 

  일반인들의 죽음은 형벌의 시작으로서 곧 고통의 시작이다. 일반인들은 현세의 고통이 아무리 혹심하다 할지라도 지옥에서의 삶에는 절대 못 미치기 때문이다.

 

나. 2. 사후의 상태.

 

(1) 1) 성도의 사후 상태.

 

(1) 성도의 사후 상태에 대한 성경의증거들.

 

①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성경은 신자들이 육체적 죽음을 맞은 후에 그들의 영혼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리게 될 아름다운 삶에 대하여 선포한다<욥19:25-27><시16:9-11;17:15;73:23-26>. 뿐만 아니라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초월하여 승천하였다.

 

② 신약성경의 증거.

 

  신약성경은 신자들이 죽은 후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더욱 복된 삶을 누릴 것을 선포한다. 신약 성경의 이러한 선포는 구약이 증거 하는 그것보다 더욱 구체적이며 사실적이다<마13:43; 25:34> <롬2:7,10> <고전15:49> <빌3:21> <딤후4:8> <계214; 22:3-4>.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선포하셨다.

 

③ 의인의 사후 처소에 대한 성경의 증거.

 

* 천부의 집 <요14:1>

* 낙원 <눅23:43> <고후12:4>

* 하늘 <시103:19> <엡4:10> <히7:26>

* 셋째하늘 <고후12:2>

* 광활한 땅 <사33:17>

* 새 하늘과 새 땅 <시102:26> <사51:6; 65:17> <마19:28>

                   <히12:27> <벧후3:12,31> <계21:1>

 

④ 천국의 상태에 대한 성경의 증거.

 

성경은 천국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 현세의 모든 것보다 좋은 곳 <마13:44-46>

* 사망과 애통과 눈물이 없는 곳 <계21:4>

*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 <마5:8><고전13:12><고후3:18><계21:3>

* 속됨과 거짓이 없는 곳 <계21:8,27>

* 최고의 아름다운 곳 <계212,8,10-21>

* 어두움이 없는 곳 <계21:23-26>

* 영영히 사는 곳 <마25:46>

* 썩지 않는 곳 <롬2:7>

* 거룩하고 흠이 없는 곳 <엡5:27>

* 상함과 해함이 없는 곳 <사65:25>

* 현세의 삶과는 전혀 다른 곳 <막12:18-27> <눅16:19-31>

*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곳 <요12:26; 14:2,3,18이하, 16:16이하>

              <행7:59> <롬6:8-11; 8:17,29; 14:7-9> <고후4:14; 15:8> <빌1:21-23> <요일2:28; 3:2> <계7:17; 20:4; 21:23-24; 22:3-5>

 

(2) 성도의 사후 상태.

 

  위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은 성도들이 죽음과 동시에 그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약속된 영광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2) 2) 일반인들의 사후 상태.

 

(1) 일반인들의 사후 상태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

 

  성경은 악인의 계속적 존재함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으며<마24:5; 25:30,46><눅16:19-31> 그들의 영원한 처소를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 지옥불 <마13:42>

* 불못 <계20:14-15>

* 옥 <벧전3:19>

* 무저갱 <눅8:31>

* 어두운 구덩이 <벧후2:4>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은 죽음과 동시에 그 영혼이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3) 3) 중간기 상태.

 

  중간기 상태란 인간의 죽음과 부활 <최후의 심판> 사이에 대한 시간적 공간적 개념들을 말한다. 이러한 중간기적 개념들은 사실상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아직 신학적으로 완전할 수 없었던 초대교회 시대의 교부들과 로마 카토릭이 자신들의 어떤 필요성을 채우기 위하여 일반 종교들로부터 유입한 비 진리적인 것이다. 로마 카토릭이 주장하는 중간기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연옥<煉獄-purgatory>

 

  로마 카토릭은 중간기 상태에 대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개념과 이교도들의 연옥교리<특히 아시아 종교의 연옥교리>를 종합하여 연옥교리를 만들어 내었다. 로마교회의 연옥교리에 의하면 현세를 사는 동안 전혀 범죄 하지 아니한 의인들은 죽음과 동시에 즉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영원 복락의 삶을 살게 되지만, 비록 택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현세에 사는 동안 범죄 하여 온전하지 못하고 순전하지 못한 자들은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결의 장소인 연옥에 들어가서 자신의 죄에 합당한 정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천국에 즉시 입성하는 자들은 순교자들을 비롯한 성자들로서 소수에 불과하며 성도들 대부분은 사실상 연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옥은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정결의 장소이다. 그러나 그들은 연옥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을 즉시 뵈옵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지는 아픔을 겪는바 이러한 아픔은 영혼을 괴롭히는 실제적인 고통인 <감각의 형벌>로서 매우 강한 것이다.

  그들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은 그들이 현세에서 범한 죄에 비례한다. 그러나 그들의 연옥생활은 현세에 있는 성도들<특히 친지>들의 기도나 선행 그리고 미사와 헌금 등등에 의하여 경감될 수 있다. 따라서 연옥의 삶은 즉시 끝날 수도 있으나 오히려 최후의 심판 때까지 계속될 수도 있다. 한편 연옥에 대한 사면권은 교황에게 있다. 교황은 연옥에서의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또는 종료하게 할 수 있는 고유한 특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근거는 <마카비 후서12:42-45>이다.

 

(2) 선조<先祖> 림보<The Limbus Patrum>

 

  중세교회 시대에 라틴어의 “림부스”<limbus-가장자리>라는 용어는 지옥의 가장자리, 또는 변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선조 림보-limbus patrum>와 <유아 림보-limbus infantum>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어졌다. 로마 카토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3일 동안 죽음에 머물러 계셨던 이유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데스>에 내려가셨다는 성경의 증거들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림보>교리를 만들어내었다. 로마교회는 구약시대 성도들의 영혼이 죽어서 곧 바로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선조 림보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할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된 후 3일 동안 선조 림보에 가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 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 카토릭의 주장에 의하면 <하데스>는 의인과 악인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두개의 상반된 영역들이며 선조 림보는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해방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곳이다. 저들에 의하면 천국은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십자가의 대속죄제를 이행하기까지는 아무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다.

 

(3) 유아 림보<The Limbus Infantum>

 

  로마 카토릭은 세례를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주장한다. 따라서 세례 받지 못하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주장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로마 카토릭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은 세례를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당연히 구원에서 제외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 영아들의 구원문제가 제기되었다. 이교도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할 기회 없이 죽었을 때에 그들의 영혼은 억울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로마 카토릭 신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고심할 수밖에 없었고 나름대로의 변증들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부모들의 신앙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특별히 파송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더욱 많은 문제점을 수반하였으므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로마 카토릭 신학자들은 드디어  하나의 묘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유아 림보 교리였다. 저들은 세례 받지 못한 유아의 영혼들이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곳 <림보>에서 살게 된다고 함으로서 이 문제로부터 도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로마 카토릭은 유아 림보에 대한 교리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아 림보 교리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 더욱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3. 하나님 나라.

 

(1) 1) 하나님 나라의 구분.

 

(1) 하나님 섭리적 차원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통치하는 제반영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광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전, 피조세계에 적용되어진다. 우주 만물의 물질적 정신적 사상적 시간적인 영역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지옥까지도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할 때에 <영역>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귀속되지 않는 영역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과 사단의 통치 영역을 구분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영역을 통치하시고 사단은 육<현세>적인 영역을 통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사단의 권세를 <공중권세>라 하여 우주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사단이 하나님과 끊임없는 싸움을 전개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과의 한판 승부를 위하여 강림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사단과의 싸움에 동참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망령된 것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왜곡하는 무식한 것으로서 하나님께 대죄를 범하는 행악이다. 사단의 활동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허용된다<욥1:12>. 사단의 공중권세<空中權勢>를 하늘과 땅 사이의 우주 공간적 권세로 이해하는 것도 신학적 무지에서 발생한 오류이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편만하신 하나님이시며 편재하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 영역과 통치 영역은 전 우주적이라는 표현으로도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존재 영역과 통치 영역은 전혀 제한이 없는 것이다. 사단이 하늘과 땅 사이의 우주 공간적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은 미신적 개념이며 비기독교적 개념이다. 그곳도 당연히 하나님의 존재 영역이며 통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공중 권세라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우주 공간적 영역에 대한 <공중 권세>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허상<虛像>적 권세를 말하는 것이다. 사단의 권세란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언제나 무릎을 꿇게 되어있는 빈약하고 허약한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진리를 <창3:15>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의 종들에게 부여하신 권능을 통하여 증거 한다.

 

(2) 하나님 구속사적 차원의 하나님 나라<천국>.

 

  구속사적 차원에서 통상적으로 언급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권 하에서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현세의 삶을 종료하고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되고 보장된, 완전하고 순전하며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2) 1) 천국의 종류.

 

  과거에도 그러하였지만 현대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중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과 낙원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에 <낙원>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낙원을 로마 카토릭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연옥> 또는 <선조 림보>차원의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와 같은 구분은 성경을 오직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1) 천국.

 

  천국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同義語>로서 <딤후4:18>을 제외하면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사용되어진 용어이다. 후기 유대교는 하나님의 이름 부르기를 매우 주저하여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록된 복음서이다. 마태는 후기 유대교의 이러한 신앙적 정서를 고려하여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 대신에 <하늘>이라는 의미인 <천국>을 사용한 것이다.

 

(2) 낙원.

 

  낙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인 <파라데이스오스>는 고대 페르샤어 <파이리다에자-pairidaeza>에서 온 외래어로 원래는 <울타리를 두른 곳-enclosure>을 의미하였고, 과수<果樹>등을 심은 동산<garden>을 지칭하는 용어였다<느2:8><전2:5><아4:13>. 그러나 그리스어 역 구약성경인 70인 역에서 이 용어가 <에덴동산>에 대한 역어로 사용되어짐으로서 <창2:8> 파라다이스가 낙원을 의미하게 되었다. 묵시문학에서는 파라다이스를 의인의 영혼이 옮겨지는 장소로 표현하고 있으며, 외전<外典>에서는 지상적인 낙원으로 간주한다<에녹서>. 신약 성경에서는 파라다이스가 3회 등장하며<눅23:43> <고후12:2-4> <계2:7>, 낙원으로 의역되고 있다.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2종류의 파라다이스 상<像>이 있는데 하나는 낮은 차원의 것으로서 천국에 대한 준비단계인 것<음부>과, 다른 또 하나는 높은 차원의 것인 <완전한 천국>이었다. 성경에 사용되어진 낙원<눅23:43> <고후12:2-4> <계2:7>들은 모두가 높은 차원의 파라다이스로서, 즉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세째 하늘> <하나님의 나라> <천국> <하늘> 등등을 <파라다이스-낙원>과 동의어<同義語>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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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 중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 등등은 실제적인 표현들이고, <하늘> <낙원> <세째 하늘> 등등은 상징적, 또는 상태적인 표현들이다. 그러나 그 용어들의 의미는 동일하다. 그리고 동일할 수밖에 없다.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이중적이거나 구분되어지거나 차등이 존재하지 않는 단일하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3) 3) 천국의 위치.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과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최대적인 관심사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눅17:21>, 또 어떤 사람들은 현세<신약교회 시대>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장차 지구<地球>가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죽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선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히 현재적, 실재적으로 존재하며 성도들은 죽음과 동시에 즉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분명하고 확실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눅17:20-21>라고 말씀하신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눈으로 보여 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 장소 또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문화적 수준이 제아무리 높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개념으로서 이해할 수 있거나 수납되어 질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저 광활한 우주조차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는 위치를 가르쳐 준들 그것을 이해하고 수납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눅17:20-21>을 통하여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에 연연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신앙 안에 소유하라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명심하여 우리들의 신앙 안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신앙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라. 4.하나님의 두 번째 심판<최후의 심판>

 

(1) 1) 그리스도 재림.

 

(1) 그리스도 재림의 주체.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이때의 그리스도는 중보자 그리스도가 아니라 <로고스-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법-로고스>이시며, <심판주-그리스도>이시며, <만왕의 왕-성자 하나님>이시다.

 

(2) 그리스도 재림의 목적.

 

① 사단의 단죄.

 

  그리스도는 사단을 단죄하기 위해 재림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단과 그의 수하들에 대한 단죄가 있을 것을 선포한다<마13:29-30>. 사단과 모든 악의 세력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한 형벌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들어간다.

 

② 세상의 심판.

 

  그리스도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재림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생, 사 간을 불문하고 현존하는 모든 하나님의 피조는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24:30,31; 25:31,32>.

 

③ 새 천지 건설.

 

  그리스도는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해 재림한다<사65:17; 66:22; 계21:1>. 대자연을 비롯한 우주 전체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 완전히 종료되고 새로운 세계가 건설될 것이다. 따라서 대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사실상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다. 그러나 성경은 새로운 세계의 건설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시를 하지 않고 묵시적인 계시만을 남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를 묵시적 계시로 남기신 것은, 그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으로 계시한다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세계는 우리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임이 분명하다. 반면에 성경은 그 세계를 언급하면서 그것이 새롭게 창조되어 진다는 어떤 암시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 새로운 세계는 이미 창조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그리스도 재림의 시기.

 

  예수 그리스도는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의 재림을 선포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촉구하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선포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그리고 불시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직전에 일어날 대사건들에 대한 언급 때문에 어떤 사건들 <예를 들면 큰 지진이나 기근, 또는 거짓 선지자들의 범람과 신앙적 탄압과 박해 등등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닥쳐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로부터 2천 여 년이 가까워 오도록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언급한 재림 직전의 사건들이 아직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근래에는 이루어지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재림을 그렇게 선포했을까? 그리스도께서 매우 다급한 어조로 자신의 재림을 선포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림에 대비하게 한 것은 성도 개인의 종말에 대한 준비를 촉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과 관계없이 성도 개인의 종말은 예측불허의 순간에 닥치기도 한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에게 그것을 준비시킨 것이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재림과 함께 전개되어지는 우주적인 심판의 때를 묵시적으로 선포하였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라고 선포하심으로서 그것이 전혀 예측불허의 사건으로 닥쳐 올 것을 묵시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그것이 분명하게 선포되어짐에 따르는 모든 가능성을 일체 배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준비의 촉구와 묵시적인 선포의 의미를 지혜롭게 받아들여 우주적인 심판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언제 닥치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과 심판이 바로 목전에 있다는 신학적, 신앙적 개념에 의한 삶을 살아야 한다.

 

(4) 그리스도 재림의 방식.

 

① 실제적 강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천사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이와 같은 성경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제적인 재림이 될 것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② 육체적 강림.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는 성경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제적인 재림임과 동시에 육체적인 재림이 될 것임을 증거 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논증한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은 실재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육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강림하신다고 할 때에, 그의 육체가 십자가의 대속죄제를 드리기 이전과 같은 <인성을 소유한> 육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소유하고 계셨던 <인성이 포함된 육체>는 대속제물로서의 필연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로고스-성자 하나님>께서 취하신 것이었고, 그가 십자가의 대속죄제의 사역을 완수하고 부활승천 하실 때에 이제는 더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므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재림하실 그리스도는<중보자-로고스-그리스도>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고스-메시야>로서의 직함<職銜>이다. 반면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메시야-로고스-그리스도>가 아니라 <심판주-로고스-그리스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육체로 재림하시는 것은 두 가지의 특별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심판주-그리스도-로고스-성자 하나님>이 만왕의 왕과 심판주의 영광을 획득하신 것은 메시야로서의 직무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에 메시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모습으로 재림하시는 것이며, 다른 또 하나는 그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신바 된 모습이며, 따라서 우리가 보고 알고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또는 어떤 미래에 재림하시는 주님이 과연 마리아를 통하여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인가를 확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당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실재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식언을 하시지 않으시며 약속을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약속하신 그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재림에 대하여 당시의 성도들 <천국에 있는>이 증인이 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재림을 <로고스-성자 하나님>의 재림으로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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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때의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를 정립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할 때에 예수의 승천은 불가하므로 예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그리스도만 승천하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재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재림한다면 그때의 예수는 어떤 예수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립한다.

 

  심판주로서의 그리스도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곧 만왕의 왕 성자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는 인성을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로 재림하지 않는다. 반면에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재림하는 것은 성경이 약속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재림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재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성을 가진 예수가 아니며 현현<顯現>적 예수도 아니다. 이때의 예수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인류세계에 강림하실 때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던 것과 같은 차원의 예수다. 즉, 이때의 예수는 필요에 따라 다시 <취해진> 실제적 예수이지만 인성을 가진 예수나 현현<顯現>적 예수가 아닌 형이상학적 차원의 예수인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요1018>고 선포하신다.

 

③ 가시적 강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행1:11>이 증거 하는 바대로 실재적인 것이며 또한 육체적인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는 가시적인 재림이 될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많은 곳에서 증거한다<마24:30;26:64><막13:26><눅21:27><행1:11><골3:4><딛2:13><히9:28><계1;7>.

 

④ 돌연적 강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재림을 예측할 수 있는 대사건들이 재림 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증거 하면서 또한 자신의 재림이 전혀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불시에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한다<마24:37-44; 25:1-12><막13:33-37><살전5:2-3><계3:3; 16:15>.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선언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진의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그와 같은 선포는 이중적인 것이거나 모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적용하고 있다.    언제나 깨어있는 신앙적 삶을 사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하여 그의 재림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중요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깨어있는 신앙적 삶을 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삶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은 깨어 있는 신앙적 삶을 살지 못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삶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함에 따라 주님의 재림은 결국 갑작스러운 것이며 당황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준비되고 예비 되어있는 자들과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상급과 심판으로 적용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돌연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섭리에 지극히 합당한 것이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의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에 의하여 그것을 이미 알고 준비한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반면에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은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한다. 따라서 <마25:1-12>의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깨어있는 신앙적 삶을 사는 자들>은 택함 받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기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미련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⑤ 영광과 승리적 강림.

 

  이미 앞에서 논증한바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재림이 아니라 심판주 <로고스-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재림이시다. 따라서 그의 재림은 마굿간 말구유의 초라한 비하<卑下>적 강림이 아니라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만왕의왕, 심판주로서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의 강림이 되시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 주님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은 그 누구도 보거나 알거나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한, 그야말로 상상을 불허하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하늘의 구름들이 우리 주님의 마차가 될 것이며<마24:30>, 천군천사들이 우리 주님의 근위병이 될 것이며<살후1:7>, 천사장들은 우리 주님의 전령들이 될 것이며<살전4:16>, 하나님의 성도들이 우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수행원이 될 것이다<살전3:13><살후1:10>.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이 우리 주님의 발아래 엎디어 떨 것이며<고전15:25><계19:11-16>,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2) 2) 그리스도의 심판.

 

(1)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인류 역사상 존재하다가 죽은 모든 자들이 일제히 부활한다. 이때의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다. 한편 인류 역사상 존재하였던 모든 자들의 육체들이 부활할 때에 그때까지 천국과 지옥에서 살고 있던 그들의 영혼들이 각각의 육체와 결합한다. 이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생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최고, 최상의 아름다운 모습과 상태로 변화되어 부활한다. 즉 천국에서의 삶에 적합한 상태로 변화되어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반대로 형벌을 받기에 적합한 형태와 상태로 변화되어 부활한다.

 

(2) 공중휴거<空中携擧>.

 

  그리스도의 심판이 진행되기 이전에 먼저 당시에 살아있는 자들의 공중 들림<휴거>가 있다<살전4:17>.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때까지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산채로 들림<휴거>받는다. 이때의 휴거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적용되며, 그들은 현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최고, 최상의 아름다운 모습과 상태로 변화되어 휴거된다. 즉 천국에서의 삶에 적합한 상태로 변화되어 휴거되는 것이다.

 

(3) 일반인들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현세의 삶을 사는 동안의 선악적 공적을 근거로 하는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천국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공적은 천국에 가기 위한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옥에 가는 근거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공의적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살게 되는 형벌을 받으므로 악한 행위가 크고 많을수록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며, 선한 행위가 많을수록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매우 선하여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의 지옥 삶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는 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고통스럽다.

 

(4)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자녀들도 현세적 삶의 공적을 근거로 하는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현세적 삶의 공적에 대한 것은 심판의 근거가 되지만 죄과에 대한 것은 전혀 거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죄는 영원히 사함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세적 삶의 공적에 따라 이미 예비된 상급과 면류관을 받게 된다. 성경은 그것을 흰 보좌<백보좌> 심판이라고 선포한다<계20:11>. 이때에 그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보상적 심판을 받게 된다.

 

① 자녀로서의 보상.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녀의 신분으로서 최후의 심판 때에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선한 행적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이때의 선한 행적이란 도덕적, 윤리적, 준법적, 등등의 일반적인 선행적 삶을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 삶을 살은 자들은 그에 따르는 상급을 받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들은 <생명의 면류관>만 받을 것이다.

 

② 종으로서의 보상.

 

  택함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 종의 신분으로 선한 행적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이때의 선한 행적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이루는 삶>을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자녀들이 받는 기본적인 상급의 차원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등등이다. 저들은 직분에 관계없이, 그리고 사명현장의 규모와 시간에 관계없이, 오직 그의 사명적 삶의 질<質>에 근거하여 상급과 면류관을 받는다. 초대형 교회에서 수십 년 동안 목회를 한 목사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섭리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명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 면류관도 받지 못할 것이요 농어촌의 작은 교회에서 말없이 충성 봉사한 집사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섭리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명을 이행하였다면 그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마. 5. 최후의 상태.

 

(1) 1) 일반인들의 최후 상태.

 

(1) 일반인들의 영원한 처소.

 

  현대신학은 종말론에서 영원한 형벌의 개념을 분명히 배제하고 있다. 특히 재림파와 천년여명론자<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제7일 안식일 교단 등등의 종파들이 대표하는 영혼멸절설자들<Annihilationists>과 조건적 영혼불멸성을 지지하는 자들은 악인의 지속적 존재를 부정함으로서 영원한 형벌의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 <지옥>이라는 용어는 지상에서 겪을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고통들에 대한 상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이 장차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한다<마25:40><눅16:19-31>. 뿐만 아니라 성경은 악인들이 영원히 거하게 될 처소에 대하여도 분명하게 선포한다. 성경은 악인들이 거하게 될 고통의 장소를 <게헨나-γὲεννα>라고 선포하는데 이 명칭은 히브리어<게-יג-땅, 혹은 골짜기>와 <힌놈-מנה> 또는<뻬네힌놈-מנה ינב-힌놈의 아들들>에서 유래되어진 말이다. 이 명칭은 원래 예루살렘의 서남 골짜기에 붙여진 명칭이었다. 이 장소에서 악한 우상숭배자들은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로 통과하게 함으로서 <몰록>에게 제사를 드렸었다. 따라서 그곳은 매우 불결하고 악한 곳으로 간주되었으며, 나중에는 <도벳-침의 골짜기>라는, 전적으로 멸시받는 지역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그곳은 예루살렘의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되었으며, 쓰레기들을 태우기 위하여 언제나 불이 타고 있었고 구더기가 들끓었으며 쓰레기 타는 냄새와 쓰레기 썪는 냄새로 악취가 만연하였다. 결과적으로 그곳은 악인들이 장차 거하게 될 영원한 고통의 장소를 상징하게 되었다. <마18:9>은 <텐 게엔난 투 푸로스-τὴν γὲεναν του πυρος-불의 게헨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이 강력한 표현은 앞 구절에 있는 <토 푸르 토 아이온니온-τὸ πὺρ τὸ αὶωνιον-영원한  불>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성경은 역시 <풀무불-마13:42>과 <불 못-계20:14,15>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계4:6>와 대조를 이룬다. 이 밖에도 <옥-벧전3:19> <무저갱-눅8:31> <어두운구덩이-벧후2:4> 등등이 지옥에 대한 용어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이 성경의 증거에 사용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지옥이 실제적<장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곳의 상태가 지극히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또한 선포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옥이 여화와의 증인들이나 제7일 안식일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다만 상징적인 것으로서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면 성경이 그곳을 그렇게 분명하게 선포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결코 공의로운 하나님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악한 자들의 존재가 죽음이라는 것으로 완전히 종료되기 때문이며, 그들의 존재가 완전히 종료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악행에 대한 면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옥이 여화와의 증인들이나 제7일 안식일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다만 상징적인 것으로서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더욱 악하게 살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악한 사람들이 <어차피 한 세상 사는 것으로 끝나는 인생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 보고 끝내자>라고 생각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물론이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 하다.

따라서 성경이 증거하고 선포하는 대로 악인들이 장차 거하게 될 영원한 처소인 지옥은 실제적 <장소적>으로 분명히 존재하며 지옥은 또한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비참한 곳임이 분명하다.

 

(2) 일반인들의 영원한 상태.

 

  성경은 일반인들의 영원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 하나님의 은총의 완전한 결여

* 죄가 완전히 지배하는 것에서 발생하는 생활의 무궁한 혼란.

* 육신과 영혼의 극심한 고통과 고난.

* 양심의 가책, 고뇌, 절망, 비통, 이를 갊, 등등의 주관적 형벌.

<마8:12; 13:50><막9:43, 44, 47, 48><눅16:23, 28><계14:10; 21:8>

 

(3) 영벌의 등급.

 

  악인의 영벌에는 분명한 등급이 있다. 성경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의 행위에 따른 차등적인 형벌을 부여하실 것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는<고라신><벳세다><가버나움>의 형벌이 다른 성<城>들의 그것과 다른 것임을 선포하셨고<마11:22-24>, 종들의 형벌과 서기관들의 판결에 차등이 있을 것임을 선포하셨다.<눅12:47-48; 20:47>

  악인들의 형벌에 어떤 차등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근거한 것인 반면에, 또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악행의 과다<過多> 또는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동일한 형벌이 주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허락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비록 악인들의 선행일지라도 그것을 귀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4) 일반인들의 형벌의 기간.

 

  성경은 악인들의 형벌기간이 일시적이거나 유한적인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으로서 영원한 것임을 선포한다<마18:8;25:46> <막9:43,48> <눅16:26> <요10:23> <계14:10-11; 19:20; 20:10-11; 21:8>.

 

(2) 2) 의인의 최후상태.

 

(1) 의인들의 영원한 처소.

 

  지옥이 실재적이며 현재적인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나라> 역시 분명히 현재적이며 실제적인 장소로서 존재한다. 성경은 그곳을 많은 처소들을 가진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증거하고 있으며<요14:1>, 성도들이 그 안에 존재한다고 증거하고 있고<마22:12-13; 25:10-12> 도처에서 그곳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선포하고 있다.

 

(2) 의인들의 영원한 상태.

 

  우리가 증거 받은 바에 의하면 그곳은 영원무궁한 곳이며 현세에서와 같은 삶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곳 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사실을 <마6:20 > <마13:44-45> <눅16:19-31> 등등을 통하여 소개한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들의 천국적 삶에 대하여 보다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설명을 삼간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어떤 체험을 근거로 한 천국을 신바람 나게 소개하기도 한다. 저들의 소개에 의하면 천국의 삶에도 빈부의 격차가 있으며 직분의 서열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 하는 천국은 그러한 곳이 아니다. <마20장>을 비롯한 많은 구절들은 천국의 보편성과 평등성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

  이러한 성경의 증거들을 통하여 우리가 확인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우리의 상식과 지식과 지혜 같은 것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자유와 평화와 풍요로움 등등의 원형이요 극치요 본질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시는 것은, 사실대로 설명해 주셔도 우리들의 유한성에 의하여 오히려 천국의 본질이 축소되고 제한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왜곡되고 오류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상급과 면류관.

 

  성경은 최후의 심판 때에 의인들이 상급과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딤후2;5><약1:12><벧전5:4><계2:10>.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그것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딤후4:7-8>. 반면에 성경은 의인들이 받을 상급과 면류관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여 여러 가지 낭설을 유포하기도 한다. 특히 일부몰지각한 부흥사들이나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목사와 성도들이 가는 천국이 다르고 받는 상급과 면류관도 다르다고 주장하는가하면 목사들 사이에도 천국의 삶과 상급과 면류관에 차등이 있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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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주장들에 반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도 어긋나거니와 성경이 증거 하는 바에 의하면 천국에서의 삶은 공평하고 보편적이며 또한 하나님의 상급과 면류관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많이 신앙생활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일을 했느냐에 근거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으로 했으며 누구를 위하여 했으며, 어떠한 자세로 했느냐 하는 것에 근거하여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최후의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상급과 면류관을 하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떠한 상급과 면류관을 예비하셨는가? 하는 것에 연연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세가 아니다.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는 차원에서 신앙적 삶을 산다거나 또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유익을 위한 신앙적 삶이나 사명적 삶은 오히려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야 하며, 심지어는 사명에 대한 욕심까지도 당연히 버리는 신앙적 사명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과 면류관에 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언급을 생략하신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것에 연연하여 하나님 앞에 불경을 범하지 않게 하시려는 배려이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 것을 최고의 상급으로 알아야하며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또한 최고의 면류관으로 알아야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더 바랄 것 없는 영광으로 아는 신학적, 신앙적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3) 3) 천국과 지옥의 위치.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복락의 장소는 그들이 올려다보는 하늘에 있다. 과거의 기독교 성도들 <특히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중세시대의 성도들까지>도 이러한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현대의 성도들조차도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개념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는 최고의 존재를 <하늘님> 또는 <하느님>이라고 호칭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로마카토릭 까지도 같은 형편에 속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가시적으로 이루어 질 때에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올라가심은 하늘로 올라가심이 아니라 다만 장소적인 이동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적용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분명 올라가심이 아니라 내려가심이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하늘이라는 것은 사실상 어떠한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광활한 공간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하늘나라>라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것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천국의 현 위치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이 그곳의 현 위치를 우리에게 명시하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곳의 위치를 명시하여 주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의 위치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옥에 대한 개념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신학이 정립되지 않고 문명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 지옥은 지구의 땅속 지하였다. 그러나 지옥은 지구의 땅속 지하가 아니다. 우리는 성경이 지옥의 현 위치를 우리에게 명시하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의 현 위치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할 수 없다. 그러나 천국과 마찬가지로 성경이 그곳의 위치를 명시하여 주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의 위치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 6. 재림 이전의 대사건<大事件>들.

 

(1) 1)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발생하는 사건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

 

(1) 복음의 완전 전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복음이 인류 세계 전 지역에 완전히 전파될 것이다<마24:14> <막13:10> <롬11:25>.현재 세계전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 같지만 아직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많으며 복음이 전파되었던 지역들 중에 복음이 거부된 지역도 많다. 복음의 완전 전파는 과거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복음이 전파된 지역이라 할지라도 현재 복음이 거부되어져 있다면 그곳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으로 간주해야 한다.

 

(2) 이스라엘의 회심.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으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은 성경과 구약시대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며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가 그것을 증명한다<슥12:10; 13:1><롬11:25-26>.

 

(2) 2) 인류사회의 문명적 발전에 의하여 발생하는 사건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인류 문명의 지나친 발전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각종 사건들이 발생할 것이다.

 

(1) 국가적 전쟁 및 기근과 지진의 발생.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국가적 전쟁과 기근, 지진, 화산폭발, 등등의 자연적인 재앙들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지금까지도 무수하게 반복되었지만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전쟁과 각종 재난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지금까지 인류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마24:7-8><막13:8><눅21:10-11>.

 

(2) 성도들에 대한 신앙적 박해.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로마 제국의 박해나 또는 일본이나 공산주의자들의 박해와 비교가 안 되는 박해일 것이다. 이러한 박해는 기독교에 대한 타종교의 박해, 정치적 이유에 의한 박해, 민족적 갈등, 문화적 갈등, 등등의 요소들을 포함할 것이다<마24:9><막13:13><눅21:17>.

 

(3) 인류사회에 만연되는 증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인류 사회에 미움과 증오가 만연될 것이다. 인류 사회에 미움과 증오가 만연되는 이유는 종교, 정치, 국가적 경쟁, 민족적 갈등, 문화적 갈등, 등등의 요소들 때문이다<마24:10> <막13:12> <눅21:16>.

 

(4) 불법의 만연과 사랑의 소멸.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인류사회에는 극도로 발전된 개인주의 사상들로 인하여 각종 편법, 위법, 탈법, 등등의 불법들이 난무할 것이며 그로 인한 무질서와 혼란이 가중되어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게 될 것이고 사랑과 자비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은 잊혀지고 사라질 것이다<마24:12>.

 

(3) 3) 사단의 흉계에 의하여 발생하는 사건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심판을 눈치 챈 사단은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며 그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각종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다.

 

(1) 거짓 선지자들의 범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사단의 수하들이 인류사회 전체에 범람하여 선지자 행세를 하면서 각종 비 진리와 오류의 이단 사설들을 만연시키면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을 미혹하고 유혹할 것이다<마24:11> <막13:6> <눅21:8>.

 

(2) 대 배교와 대 환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사단의 흉계로 인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배교와 이탈이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하여 기독교는 심한 혼란 속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을 끝까지 책임지실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배교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마24:21> <막13:9> <눅21:22-24>.

 

(3) 적그리스도의 출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드디어 적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사단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각종 비 진리와 오류의 이단사설들을 만연시키면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을 미혹하고 유혹하면서 그들의 배교와 이탈을 획책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실패하자 드디어 직접 나타나 휘하 졸개들을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단의 마지막이다. 사단의 최후 발악이 시작되면서 드디어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마24:24> <막13:6> <눅21:8>.

 

사. 7.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오류적 주장들.

 

  기독교 역사에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오류적 주장들이 수없이 등장하였는바 그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1) 7년 대 환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종말론에 있어서 <7년 대 환란>이라는 사건에 대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 7년 대 환란은 다시 <전 3년 반>과 <후 3년 반>으로 구분되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7년 대 환란이나 전 3년 반, 또는 후 3년 반의 사건들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러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는가? 그것은 <단9:24>에 나오는 <70주>와 <단9:27>에 나오는 <한 이레-7일>과 <한 이레의 절반>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단9:24>에 나오는 <70주>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시 한번 허락되는 은혜의 시간에 대한 상징적인 기간이며, <단9:27>의 <한이레>와 <한이레의 절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과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막을 내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신앙적 종료의 기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종말론에 적용하여 <70주> 또는 <한이레-7일>을 7년으로 간주하여 7년 대 환란이라는 등식을 설정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등식이 성립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겠으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것을 로마 카토릭의 술수를 개혁주의자들이 분별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로마 카토릭에 의하여 전개되어진 비 진리적인 역사를 소개한다.

 

  중세시대에 이르기까지 로마 카토릭은 일반 성도들에게 성경을 금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면죄부 제도> <연옥교리> <미사제도> <성직제도> <유물숭배 및 성자숭배와 성상예배> <고백성사와 고행 및 헌금을 통한 속죄> <마리아의 중보>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헌금> <성찬에서의 미신적인 화체설> <마녀사냥을 빙자한 각종의 잔인무도한 종교재판> 등등의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로마 카토릭의 이러한 만행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항하는 사단적인 악행임을 깨달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 <개혁주의자>들은 로마 카토릭에 대항하여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하였고 특히 로마 카토릭의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여 강력하게 공격하였다. 자신들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들어나게 된 로마 카토릭은 당황하게 되었으며, 특히 로마 카토릭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이 적그리스도로 간주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1540년에 조직된 예수회<the Jesuits>와 이탈리아 출신의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회의가 1545년 트렌트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트렌트 종교회의-the Council of Trent>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에 대항하는 각종 방법론들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로마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이 일은 주로 <예수회> 소속의 신학자들에게 맡겨졌는데 그들은 이 일을 위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노력하였다. <미래주의 해석자>로 대변되는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소속 신학자인 리베라<Francisco Ribera-1537-1591>는 1590년에 500페이지 분량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출판하여 교황이 결코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하였고, <과거주의 해석자>로 대변되는 또 다른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소속 신학자인 알카자<Luis De Alcazar-1554-1613>는 40년에 걸친 연구 노력 끝에 900페이지 분량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통하여 교황을 변호하였다. 리베라는 요한계시록에 예고된 사건들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기 때문에 교황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교황을  변호하였고, 알카자는 요한계시록에 예고된 사건들이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사건들이라고 주장하여 또한 교황을 변호하였다.

 

  이러한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 방법들이 세대주의자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인용되었다.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의 역사를 <7세대주의>로 나누어 분류하였고 신약시대의 교회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역사적 도구로 보지 않고 배신한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기까지의 과도적인 존재<세대>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시온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천년 왕국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세대주의자들의 비성경적인 주장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에 슬그머니 도입되었고 어느 사이엔가 7년 대환란 설이 개혁주의 종말론에 본격적인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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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러한 7년 대 환란설에 반대한다. 그것은 7년 대 환란에 대한 성경의 증거가 없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7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성도들에게나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게나 부여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증거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최후의 심판은 불시에 닥치면서도 다급하고 단호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7년과 같은 유예기간 같은 것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은 다만 환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대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전에 전개되어진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2) 2) 천년왕국론.

 

  천년왕국론은 요한계시록 20장 2,4,7절을 기초로 하여 유추되어진 신학사상이다. 일단의 신학자들은 <계20:2,4,7>을 근거로 하여 세계의 종말 때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세상을 지배할 것이며 사단은 하나님에 의하여 천년 동안 결박당한 채 무저갱에 갇힐 것이라는 신학사상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천년왕국론은 통일된 것이 아니었다. 천년왕국론은 <전천년왕국론><후천년왕국론><무천년왕국론> 등등의 여러 가지 견해로 나뉘어 주장되어졌고 나중에는 세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또 다른 차원의 천년왕국론이 주장되어지기도 하였다.

 

(1) 전천년왕국론.

 

전천년왕국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있은 후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신학사상이다. 전천년왕국론은 주후 2세기의 기독교 지도자였던 이레네우스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그의 전천년왕국론은 초대교회 시대의 전천년왕국 신학사상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천년왕국론의 확고부동한 신학사상이 되었는바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 세계는 창조의 6일에 해당하는 6천년간 지속될 것이며 이 시기의 종말에 이르러 성도들의 고난과 신앙적 박해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사단이 적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등장하여 선한 세상을 파괴하고 악하게 만들은 후에 무례하게도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시 재림하시어 사단을 패퇴시킬 것이며,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이 이루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천년동안 함께 즐기고 누리는 (천년 지상 왕국)이 시작될 것이다. 천년기 후에 사단이 무저갱에서 나와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이 때에 모든 악인들의 심판이 또한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새로운 창조세계가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질 것이며,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 새로운 창조세계에서 영원복락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2) 후천년왕국론.

 

  후천년왕국론은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성도들이 천년동안 현세를 지배한다는 개념이다. 후천년왕국론은 기독교의 복음이 왕성한 현재를 천년왕국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현재의 기독교 시대가 앞으로 얼마동안 계속된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후천년설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천년왕국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영향력을 통하여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또 하나는 그것이 자연적 진보과정을 거쳐서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3) 무천년왕국론.

 

  무천년왕국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한 천년왕국의 존재를 거부하는 신학사상이다. 그러나 무천년 주의자들의 이러한 신학사상을 오해하여 그들이 요한계시록의 증거들을 부인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후한 천년왕국을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전<全>기간을 천년왕국으로 보는 것이다.

 

(3) 3) 세대주의자들의 종말론.

 

  현대 세대주의자들의 종말론은 대체적으로 전천년왕국론을 기초로 한다. 현대 세대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이중적인 임재사이를 구별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대사건<大事件>의 서로 다른 두 국면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개념의 통일성을 보존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저들의 종말론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일차적 재림은 지상 재림이 아니라 공중 재림이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잠자던 성도들과 살아 존재하던 성도들이 함께 들림 받아<휴거>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이때의 휴거를 <은밀한 휴거-secret rapture>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 사건이 전혀 아무런 징조나 예고 없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지 않다.> 불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후에 7년 동안의 공백이 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세상이 완전히 복음화 되고<마24:14> 이스라엘이 회심하고 기독교에 귀의하며<롬11;26>, 대 환란이 일어나고<마24:21-22>,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크게 활동한다.<살후2:8-10> 7년 대 환란이 끝난 후에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어<살전3:13> 모든 열국을 심판하며 그때로부터 천년 동안 지상을 다스리게 된다. 그리고 천년의 다스림이 끝난 후에 마지막 심판이 있게 되고 그 심판이 끝난 후에 새 하늘 새 땅이 건설되어 진다.

 

이 부분에 있어서 세대주의자들 간에 의견이 다르다. 어떤 자들은 천년왕국 자체를 천상적인 것으로 주장하여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을 거부하는가 하면 또 어떤 자들은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을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심판을 3중적인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세대주의자들의 종말론을 근거로 하여 이미 앞장에서 소개한 <현대적 전천년왕국론>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4) 4) 새 하늘과 새 땅.

 

  성경은 최후의 심판 후에 도래하게 될 새로운 세계를 선포한다. <마19:28>은 그것을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으로 증거하고 있고 <행3:2>은 <만유를 회복하실 것>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히12:27>은 <만든 것들의 변동>으로 <벧후3:12-13>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증거 한다. 특히 <계21:1>은 환상 중에 본 <신천지>를 선포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한 언급을 생략한다. 때문에 루터파 신학자들은 <벧후3:7-13><계20:11; 21:1>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창조에 의한 새로운 세계를 주장하며 개혁주의자들은 <시102:26-27> <히12:26-28>을 근거로 하여 현재의 세계가 다듬어져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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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최후의 심판 후에 도래하게 될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함부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한다. 하나님께서 묵시적으로 덮어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펼쳐 주시기까지 함부로 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한다면 현재의 세계가 다듬어지는 <신천지> 보다는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신천지>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능성을 고려할 때에 오히려 그것이 참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신천지>는 이미 하나님의 우주창조 때에 창조 하셨으리라 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 하시며 완전무결하시기 때문이다.

 

(5) 5) 6. 6. 6.

 

  한국기독교에 한때 <666> 에 대한 괴이한 주장이 전개 되어 졌었다. <666> 에 대한주장은 매우 다양 하였으나 그 중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후의 심판 전에 사단이 현세적인 모든 권세를 장악 할 것 이며, 모든 사람은 이마 또는 팔에 짐승 (사단)의 숫자인 (666)의 표를 받는다. 이 숫자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의,식,주)를 전혀 해결 할 수 없으며 전혀 어떤 활동을 할 수 없고 드디어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성도들은 (666)의 숫자를 받는 배교행위를 하거나 아니면 사단에게 죽임을 당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성도의 수난은 전 후 각각 3년 반씩 7년간 있게 되며, 7년 대 환란이 끝난 후에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심판이 있게 된다.>

 

  당시에 <666> 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순식간에 한국 전역에 퍼져나갔고 더욱 구체적인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상품의 일련번호나 심지어는 전화번호에 이르기까지 <6>자리로 된 숫자들은 모두 <666>과 연관된 숫자로 인정 되었고 따라서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666>에 대한 주장의 최초 적 근원지가 과연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666>에 대한 주장은 <계13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조직신학에 어두운 자들에게 있어서 <계13장>은 사실상 그와 같은 빌미를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신학을 아는 사람들은 <계13장>을 그런 식으로 해석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