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예화 모음 1
1. 말끝마다 감사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땡큐'(Thank)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의미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다보니, 과보호 속에서 유아독존, 자기중심, 이기심으로 살아온 아이들이 도무지 '감사'라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감사 할 줄 모르는가 하면,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면 유 땡큐' 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감사를 할 줄 모르니까 외국인들이 '너 대신 감사'하고 감사를 대신 해준다는 것이지요. 흐미 부끄럽고 챙피해라... 원래 기독교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땡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원래 기독교인들은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누구 탓하기 전에 기독교인들부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하는 말을 입에 답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용우
2.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유쾌해집니다.
감사하면 몸이 가벼워집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흘러 들어옵니다.
감사하면 적절한 환경이 조성됩니다.
감사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감사하면 돈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사랑과 능력이 생깁니다.
감사하면 건강해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하면 무조건 좋습니다. 좋아요. ⓒ최용우
3.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피고 새 울어야 될 3월에 한파가 몰아치고 흰 눈이 펑펑 오는 날 오돌오돌 떨면서 학교에 갔다 온 밝은이가 저녁식탁에서 대표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밝은이의 기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좋은날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말이 꼭 들어갑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고, 추우면 추워서 좋고, 더우면 더워서 좋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간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짧은 삶을 살면서 이왕이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돈 타령은 그만 하십시오. 행복하게 사는데 돈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돈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을 창조적이고 긍정적이고 밝고 깨끗하고 순수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밝은 빛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고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행복한 삶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요. ⓒ최용우
4. 감사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건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편히 잘 수 있는 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없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물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질이 없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사가 없는 부부들을 생각합니다. 지진 없는 나라에 살아서 감사합니다. 지진이 일어난 나라를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깨진 가정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믿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감사는 언제나 생각과 짝하여 함께 서 있을 때 마치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처럼 넘어지지 않습니다. ⓒ최용우
5. 감사합니다.
공자님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타인의 실패를 기뻐하는 자
둘째: 윗사람을 헐뜯는 자 앞에서는 맞장구치고 뒤에서는 욕하는 자
셋째: 용기는 있으나 예의가 없는 자
넷째: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 곧 감사할 줄 모르는 자인데 그중에서 가장 싫은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기계와 같아서 자주 하면 할수록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에 기름을 치듯 오늘부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20번 이상 해 보십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될 것 입니다.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도 `감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에서.. 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최용우
6.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다. 귀가 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다. 집으로 돌아온 신학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7. 밀턴경의 감사
실락원의 작가 밀턴은 소경이 된 수에 불후의 명작을 집필하였다. 그가 소경이 되었을 때 이렇게 감사를 드렸다. “육의 눈은 어두워 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뜨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그가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한 영감을 얻으므로 실락원과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다.
-김영진, 뛰는 자가 아름답다. P.278
8.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 /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9. 헬렌켈러의 감사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책을 보면 헬렌켈러의 이러한 글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10. 어떤 부자(父子)의 이야기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 속의 길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참 우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이 말에 아버지는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참 감사할 일이구나. 그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우리는 이 부자의 대화를 통해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이 시대를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한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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