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국민 속인 대통령, ‘썩은 동아줄’ 잡은 추미애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12월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국 혼란에 죄송”하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했다. 언론은 이 발언을 추미애 법무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한 첫 ‘대국민 사과’라고 해석했다. 물론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추미애나 윤석열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추미애의 거취나, 윤석열의 징계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문 대통령은 내일 12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을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방역과 민생에 너나없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 혼란스러운 정국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매우 죄송한 마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말했다. “지금의 혼란이 오래가지 않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마지막 진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법 처리 등 ‘제도적 개혁’을 주문했다. 제도적 개혁이란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 뽑아내지 못하게 확실한 대못을 박아놓고 싶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떤 진통을 겪더라도 공수처 출범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시점도 내일 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켜내려는 윤 총장의 ‘저항’을 ‘진통’이라고 슬쩍 말을 바꾼 것인데, 공수처 출범과 징계위 개최로 ‘윤석열 찍어내기’를 매듭짓겠다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5월의 취임사까지 꺼내들었다. “저는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국민들께 약속했습니다.” “과거처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 대통령이 절대 깨어날 수 없는 착각이 하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정치로부터 독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들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인사에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검찰은 중립을 보장받고 독립성이 담보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 받는다. 대통령이 검찰을 쥐고 흔드는 한, 대통령이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하는 한, 그것이 반복되는 한, 공수처 아니라 ‘공수처 할애비’를 갖다놔도 검찰은 절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서 공수처장을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앉히려는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고, 그래서 출범도 하기 전에 공수처장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고,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대신 자기네 심복을 갖다 심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검찰을 정치에 ‘완전히 종속·예속’시키고 있고, 공수처란 ‘견제장치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대통령의 ‘충견 조직’을 만들고 있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조선일보가 사설에 밝힌 것처럼 “문재인 청와대가 법과 국민 위에 존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상 대통령이 수사·사법 기구를 완전 장악하는 ‘유사 파쇼 전체주의’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히 거꾸로 해석해야 비로소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문 대통령은 이런 일들의 처음 사달이 됐던 사건들, 그러니까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기와 여권 실세의 개입 의혹 사건, 울산시장 선거조작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로 언급하지 않았다. 뿌리가 썩어 있는데, 대통령은 나뭇잎만 바꾸겠다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돌격 명령”이다, “전쟁 개시 선언”이나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이 정치적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 개시 선언이나 다름없다. 검찰총장 징계와 공수처 입법을 반드시 관철하라는 VIP 지시사항이다.”
윤석열 총장은 검사징계법 5조가 “소추와 심판 분리 원칙에 위배돼 있다”면서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에 있다. 징계위원이 7명인데, 당연직 두 명은 추미애 장관과 이용구 차관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추미애 장관이 임명하고 위촉하는 검사 2명, 외부인 3명으로 돼 있어 사실상 징계위원 전원이 추미애 한 사람이나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석열과 추미애가 경기를 하는데 심판 전원을 추미애가 임명하는 것과 똑같다는 지적이다.
그러자 추미애 장관도 윤 총장의 직무 복귀를 결정한 법원의 가처분 인용에 대해 ‘즉시 항고’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나섰다. 이는 민사·형사 소송에서 법원 결정에 대해 일정 기간 내에 제기하는 불복 신청(不服申請)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법원에 다시 판단해달라고 신청한 것이다. 법무부 측은 당초에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 추 장관에 대해서는 어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태는 추 장관의 손을 떠난 것처럼 보인다. 추 장관은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혹시 토사구팽은 아닐까, 아니면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 즉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여러 갈래일 것이다.
어제 12월7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렸다. 정례회의다. 이 자리에서 대검찰청이 만든 ‘판사 문건’에 대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한다는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됐다. 대부분 판사들은 안건 상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반대했지만 회의 참석 판사 120명 중 정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를 비롯한 18명 판사들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판사 문건에 대한 안건은 수위를 낮춰가며 모두 7차례나 표결에 붙였으나 모두 부결됐다. 정말로 살다 살다 7번 표결에 7번 부결이란 기록은 근래에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총장을 징계 청구하면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제시했던 ‘판사 사찰 문건’이라는 것이 문제 삼을 수 없는 문건이라는 점을 대표회의 판사 본인들이 확인해준 것이나 같다. 이른바 ‘윤석열 징계 사유’에 대해 판사들 80%가 반대한 셈이다. 추미애 장관은 또 한 번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이러한 결과는 10일 열리는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법관대표회의에서 대검찰청의 문건을 ‘판사 사찰’로 규정하는 의결안이 통과됐다면 법무부 징계위원들은 윤 총장 해임을 요구하는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거꾸로 윤 총장 측에서 10일 징계위원회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봐도 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이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의견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은 겉으로 봤을 때는 추미애 편도 윤석열 편도 들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상 실질적 내용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어제 12월7일 서울대 교수 10명도 시국선언을 내놓았다. “윤 총장 징계는 권력 전횡이며 헌법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이 모든 통제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은 권력의 전횡을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제어하는 헌법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달영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 역시 추미애 장관에게 뼈아픈 일격을 가하는 선언인 셈이다. 12월7일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추 장관만 사퇴해야’가 44.3%, ‘윤 총장만 사퇴해야’가 30.8%, ‘동반 사퇴해야’는 12.2%로 나와 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있다.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이다. 마속은 서기 3세기 중국 촉한의 장수다. 처음엔 제갈량의 신임을 받았으나 주군의 명령을 거스르고 제 맘대로 전략을 펼치다 지금의 간쑤성에 있는 가정(街亭)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제1차 북벌을 그르친 책임을 져야 했다. 제갈량은 마속의 목을 벴다. 정치 지도자는 아무리 아꼈던 부하라도 자신의 잔꾀만 믿고 보스의 큰 뜻을 그르쳤을 때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로 삼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에 대해 읍참마속의 기회를 놓쳤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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