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식 이야기!!

[스크랩] 복의 개념

하나님아들 2019. 1. 10. 23:36
복의 개념

 

 

 

구약에서 나타나는 복

Ⅰ. 서론

Ⅱ. 본론

1. 복의 어원적 고찰 - 히브리어를 중심으로

2. 구약성서에 나타난 복의 개념

(1) 중복의 의미

(2) 지혜문학적 특징

(3) 복의 분류

(4) 복의 점진성

(5) 복의 선택

3.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의 개념

(1) 아브라함의 소명

(2)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

(3) 소명과 언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Ⅲ. 결론



Ⅰ. 서 론

우리나라의 성장의 요인 중에 하나로 이해되고 있는 기복 신앙이 교회의 성장정체와 함께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교회에서 이 땅에서의 ‘복’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자세들이 교회와 봉사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부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우리가 부인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성장이 정체를 맞이하자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우리의 기복신앙을 비판하면서 결코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강조하지 않고 오직 영적인 ‘복’, 즉 구원과 안식의 부분으로 강조하는 경향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물질의 ‘복’을 구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에 상반되는 천박한 것인 것, 하나님께 잘못 구하는 기도, 잘못된 신앙관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연 구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은 구원의 문제나 영적인 ‘복’의 개념이라는 축소된 개념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수 있는 물질의 개념과 그리고 영적의 ‘복’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렇게 글의 주제를 정해서 성경을 따라 그리고 여러 연구해 놓은 글들을 따라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성경속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실 때 이 두가지-구원과 물질의 ‘복’-이라는 두 가지의 형태로 인간을 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이 함께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모습, 혹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 둘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어떻게 복이 임하고 무슨 복이며, 어떻게 우리가 얻는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 그토록 우리 한국사람들이 강조하고 좋아하는 ‘복’의 개념을 구약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먼저 ‘복’의 단어의 개념정리를 통해서 ‘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적인 뜻을 살펴보고, 구약에서 ‘복’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말씀속에서 복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브라함에 있어서 복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는 형식으로 글을 서술해 나가겠다.

자료를 찾던 중 그다지 많은 사람이 이러한 방향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의하한 생각이 들었다. ‘복’이라는 것이 한국사람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 학적으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관념이 우리 개념의 ‘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라서 그런지 이 주제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의 양이 다른 구약의 내용을 다룬 것에 비해 적었고, 또한 여기에 관한 논문들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Ⅱ. 본 론

1. 복의 어원적 고찰-히브리어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복’이라는 말과 ‘축복’이라는 말의 사용을 잘못 사용하여 왔다고 지적한다.1)

구의재, “민간 신앙의 복과 성서의 복의 개념”, (서울, 석사학위 논문,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신학대학원, 1993), p. .36

 복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복’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축복’이란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비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말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말로 사용하므로 어휘 사용의 혼란을 일으킨다. 따라서 하나님은 복을 줄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복을 달라고 복을 비는 자로까지 오해하게 된다. 흔히 ‘하나님의 복’이라는 뜻을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로도 표현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라 할지라도 듣는이가 ‘하나님의 복’으로 바로 들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2)

위의 논문 p. .36

나채운은 우리말에서 ‘복’과 ‘축복’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이유는 일본어 성경의 영향이라고 한다.3)

나채운, “소위 축도문제에 관한 연구”, 『주기도, 사도신경, 축도』(서울: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88), p. 246

 ‘복’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혜택을 나타내고, ‘축복’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주실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사실 일상 생활에서 이 두 가지가 섞여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기에 ‘복’이라는 단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1) 바라크( %rB )

히브리어로 ‘복’을 표현할 때는 바라크( %rB )라는 어근을 사용한다. ‘바라크’의 기본적인 어의는 제1어근으로서 “무릎을 꿇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사형이 되면 무릎이라는 의미를 가진다.4)

『성서 원어 대전』(한국성서연구원: 브니엘 출판사, 1988), p. 307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는 ‘복’과 관련된 의미를 어원 자체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우기에 이 바라크를 그 용례와 연결해서 의미를 찾아보면 “평안”과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힘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독일학자들은 대개 ‘바라크’의 기본 개념을 하일스크라프트(Heilskraft)라 하는데 'Heil'이라는 것은 “구원, 평안, 건강”이라고 하는 일차적 의미가 있다.5)

김중은, “축복의 성서적 목회적 이해”, 『목회현장과 성서연구』, 연세대학교 유니온 학술자료원, 1988년 제8권, p. 157.

 ‘평안’이라는 말에는 “생식력, 생명력” 이라는 개념을 포함할 수도 있지만 ‘바라크’라는 어휘가 가지는 본래적 의미는 ‘평안과 구원’을 유지시켜 주는 힘 또는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라는 이 “힘(Kraft)"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평안이나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성서의 문맥은 물론이고 우가릿어나 아랍어 같은 셈어의 문맥에서도 힘의 근원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6)

김중은, p. 158-159

그러므로 성서에 있어서 복의 개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실제로 성서의 문맥에서 ‘바라크’ 어근이 제일 많이 사용되고 있는 형태는 피엘(Piel)형 어간으로 대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7)

김중은, p. 158-159

이 어간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여호와 하나님이 평안의 힘, 생명력을 주는 힘을 부여해 주신다고 하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실때는 어떤 복을 주실 것인가 하는 것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문맥에서 이 복의 내용을 살펴보면 건강, 장수, 자손번영, 명예, 재물 등 우리 인간 생활에서 받기를 바라는 모든 좋은 것의 형태로 나타난다.8)

창17:20, 24;35, 49:25, 신7:13, 30:16.

다음으로 ‘바루크’ 형태는 피엘형에서처럼 하나님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히브리어 양식을 보면 “야웨, 바루크 엘로힘” 즉, “여호와는 복되시다, 하나님은 복되시다”라는 양식으로 정착되어서 ‘바루크’가 나타나는데 이 부분도 역시 복을 주시는 힘은 초월적인 것이며, 하나님께 이 복의 힘이 있다면 예배적이며 신앙적인 선언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양식은 하나님께서 복의 힘을 가진 분으로서 주시는 복의 내용을 관계사와 함께 계속해서 연결하는 것이 보통이다. 9)

창24:27, 삼상25:39, 삼하18:28, 왕상 1:48, 8:15,56, 시68:36, 144:1

다음으로 니팔(niphal)형태를 들 수 있다. 이 형태의 ‘바라크’의 쓰임은 “복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 니팔로 사용되었을때의 의미는 이런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바라크’의 명사형이 “브라카”로써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주시는 ‘혜택’을 의미한다. 10)

『성서백과 대사전』(성서교제간행사, 1980), p424.

창28:4, 출32:29, fp25:21, 신28:8, 시128:8

구약에서는 ‘혜택’이라는 말은 ‘샬롬’을 의미한다. 샬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과 정신적 복이 함께 포함한다. 이 복의 문맥 가운데 특히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인간이 “복이 된다”는 복신학적 이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2에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개역성경은 번역하지만 원어을 옮기면 “너는 복이 되라”는 말로 직역된다. 즉 이 문장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뿐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 되시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겠는가? 이는 아브라함의 복은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그분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요8:56)

(2) 아쉬레( rv,a )

‘바라크’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신다는 구조로 이해할 때 ‘아쉬레’는 하나님이 주어가 아닌 인간과 인관 혹은 사물을 주어로 한다. ‘아쉬레’는 인간이 복을 받는 상태가 이웃에게 전달되어 이웃이 그것을 알게된 상태의 복을 지칭할 때 쓰인다. 11)

김중은. p.162.

즉, 수평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쉬레’는 70인역과 신약에서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σ)로 옮겨진다. 신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로 영적인 축복을 받는 상태에서 사용되었다. 12)

『성서원어 대사전』, 5권(브니엘 출판사:1986), p. 596.

주로 하나님 나라의 구속의 은총에 참여할때에 누리는 종교적 기쁨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팔복과 바울의 디모데전서, 야고보서에서 이 말이 사용되었다.13)

마5:3-11, 13-16, 눅1:28, 요20:29, 계시록 14:13, 20:6, 딤전 1:11, 6:15, 약1:12

‘아쉬레’는 “아사”라는 동사, “좋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다고 선언한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온 것으로 명사로는 “에셀”이요, 호격이나 형용사적으로는 “아셀”로 되어 문장의 초두에 서며 이때는 축복의 통보의 활동상태를 가리킨다. 14)

전경연, 『예수의 교훈과 윤리』(서울: 대한 기독교서회,1974), p. 88.

이상에서와 같이 구약에서 나타나는 복이란 용어를 살펴볼 때 ‘바루크’는 족장들의 손과 같이 매개를 통해서 실현되는 복으로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복주실 때 쓰여진 말이며, 또 받은 복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사용되어 졌다고 본다. ‘아쉬레’는 복받은 자에게 매개없이 선어되는 것을 말하며 “매우 복되다”, “매우 행복하다”는 뜻으로 평안함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바른 관계를 가지는 신앙이 복임을 의미한다.15)

박영지, “비교종교”,『성별』제3호, 제4호, 1975년 3, p25.

어원적인 복의 의미를 살펴볼 때 구약에서는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함께 포함되어 있고, 궁극적으로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구원의 은총에 참여하게 된 것이 구약에서 말하는 복임을 알 수 있다.

2. 구약성서에 나타난 복의 개념

(1) 중복의 의미

성서의 처음에 있는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명령으로 처음 나타난다. 그리고 이 자손번영의 축복은 아브라함에 이르러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가질 것”을 예언한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 자녀번창은 동시에 사업번창을 수반한 것으로 축복이 나타난다. 구약의 성도들은 밭의 농사, 들의 짐승들이 많은 생산을 할때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함께 하심으로 깨달았다. 후에 축복은 적을 무찌르게 하심(창24:60, 27:29)에서 나타나고 가나안땅의 정복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구약에 나타나는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관련되어 이어져 나간다. 16)

김의환, “성경적 축복관”, 『신학지남』, 1981년 봄호, 통권 제190호. p51-52.

어떤 면에서 구약의 복은 보다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물질적인 복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서는 이 둘을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지혜 문학적 특징

구약에서 ‘복’은 대부분 지혜문학적이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지혜는 인간의 세속적 삶과 윤리적 결단에 관심을 가진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참된 복이 아니라, 지혜를 얻고 세상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 축복이다. 하나님은 지혜자의 원형으로 능력과 지혜를 행사하신다. 17)

욥 12:13

복은 바로 이 지혜의 하나님이 사람의 심령에 자신을 계시하셔서 그것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18)

잠3:14, 18

이와같이 참된 지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므로 의로운 자의 길을 걷는 것이 복을 받는 자의 길이다. 여기서 복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인에게 함께하는 복을 말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약의 많은 ‘토라시’가 축복 문학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19)

시1장, 24장, 32장, 37장 41장, 119장 등

의인은 그리스도와 죄인과의 새로운 관계 때문에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역전된 것을 의미한다. 의인은 법정적인 행위로, 용서받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義)의 전가로 말미암아 은혜에로 회복되는 회복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형벌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다. 의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다. 여기서 의인의 복은 물질적인 복만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3) 복의 분류

코호(k.koch)는 구약의 복을 문학 형식에 따라 두가지 형태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지혜서에 나타나는 이 세상적 형통이며, 둘째는 묵시 문학적(Apocalyptic) 축복으로 분류하였다. 20)

구의재, “민간 신앙의 복과 성서의 복의 개념”, (서울, 석사학위 논문,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신학대학원, 1993), p. 43 재인용

여기에 비해 정영관은 세가지로 분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첫째, 제의직 축복(cuitic blessing), 둘째, 지혜 교훈으로서 축복, 셋째, 묵시 문학적 축복(Apocalyptic Blessing)으로 나누었다.21)

정영관, “산상설교의 축복연구”, (석사학위 논문,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교, 1971), p22-24.

그런가 하면 김기복은 축복의 종류를 세자기로 대별하면서 제의적 축복, 물질적 축복, 정신적 축복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22)

김기복, “기독교 축복사상과 한국무교의 기복사상연구” (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981), p.11.

그러나 구약 학자 폰 라이(Von Rad)는 구약 전체를 통해 축복을 구속의 개념 밑에 예속된 것으로 보았다. 23)

Westermannm, p.43.

이러한 구속적인 축복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전반적인 흐름이 있음을 누구나 동의를 하고 있다. 구약에 나타난 축복은 순간적인 횡재나 성공보다는 먼 미래를 향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길을 계속해서 가는 복의 의미가 있다. 이렇게 구약의 축복은 점진적이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전형적인 이스라엘의 구원관에서 오는 것으로 그 구원관이 역사, 신학적, 종말론적이기 때문에 종말론적 축복이 된다. 24)

구의재, “민간 신앙의 복과 성서의 복의 개념”, (서울, 석사학위 논문, 아세아 연합신학대학 신학대학원, 1993), p. 43.

그러므로 구약에 있어서 축복은 참 지혜를 얻는 것이며, 율법을 사모하는 생과 관련 되어있다.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와 맺은 계약을 떠나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시편 1:1, 2:12 등)

(4) 복의 점진성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 ‘신령한 복’을 인간에게 주시려고 작정하셨다(엡 1:3-5). 그 신령한 복을 주심에 있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다.25)

김의환, 『성경적 축복관』(서울:성광문화사, 1990), p.132.

구약은 하나님의 이러한 축복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사실을 기록한 책이며, 신약은 완성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26)

김의환, 위의 책, p.133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창1:22, 28)”는 명령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축복은 인간을 포함하여 그의 피조물에게 창조주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것이다. 인간에게 수여하신 축복은 자손번창의 축복이다. 이러한 자손 번창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확실히 약속되고, 야곱을 통해 12지파로 번창되고, 그 후에 한 민족을 이룸으로 이루어진다. 자손의 축복은 이어서 사업이 번창되는 축복으로 나타난다. 창세기 30장 43절에서 “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가 많았다”고 말하고 있고, 신명기 28장 2-6절에도 밭의 농사와 들의 짐승들의 번창을 약속하고 있다. 이러한 축복의 개념은 전(全) 구약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후에 축복의 개념은 전쟁에서의 승리로 나타나고27)

출애굽기 14:26-31

‘가나안 땅’의 점령으로 일단락된다. 그 후에는 축복의 개념은 위에 나타난 자손 번창의 축복, 사업번창의 축복, 전쟁에서의 승리의 축복개념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연관되어져서 반복되어 나타나면서 정신적으로, 영적인 축복의 개념으로 발전되어 간다.28)

김의환, 위의 책, p137.

(5) 복이 선택

하나님의 축복과 선택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29)

김의환, 위의 책, p139.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모든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기사가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나오고 있다. 선택하신 목적은 그에게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하려 하심이다. 즉, 축복을 위한 선택인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야곱과 에서’ 가운데 ‘야곱’을 선택하셨다.30)

창세기 25:23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축복하려 하심이다. 즉 타의나 공로에 의한 축복의 원인이 대상에 있기보다는 하나님안에 하나님의 자신의 뜻에 따라서 그의 복을 전개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심도 바로 축복을 위한 선택이다.31)

김의환, 위의 책, p139.

 선택의 결과는 자손과 사업의 번창, 전쟁에서의 승리로 나타났으나, 선택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사람의 축복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는데로 귀결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위한 선택’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로서의 선택이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또한 인간편에서의 응답이 요청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나 그에 대한 응답은 인간편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응답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구약의 축복은 민족적 차원에서는 가나안땅의 정복, 개인적 차원에서는 물질과 번창으로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보이는 증거요, 영적축복의 구약적 표현이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오는 것이었다.32)

김의환, 위의 책, p135.

3.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의 개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 약속은 뒤에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이 언약은 그 자손들의 번창할 것과 그 후손들이 차지하게 될 땅에 대한 것이며, 그리고 그의 씨로 말미암아 세계열방에 미치는 복,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인에게 이르게 될 복인 것이다. 이러하 축복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 받은 것과 같이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든 사람이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서만 받을 수 있다.

(1)아브라함의 소명

성경에 나타나 있는 수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아브라함은 특히 신앙의 최고 모범인 인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신앙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축복을 받은 이 후, 그의 삶을 마칠 때까지 신앙으로 살아간 위대한 인물이다. 아브라함의 소명기사는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나타난다. 그가 소명받은 곳은 하란으로, 이 곳은 물질적인 번성을 본질로 하는 의식에 매인 고장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셔서 세계의 기초가 될 이상적인 국가의 초석이 되기를 원하셨다.33)

C.K.Keil and F.Delitzch, 「창세기」, 고영민 역(서울:기독교 문화출판사, 1983), p.202.

따라서 그의 소명에는 우상을 숭배하고 조물주를 피조물같이 여기는 그 땅에서 나와서 그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는 명령이 필수적인 것이다.

가. 떠나야 할 장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지시하는 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34)

창세기 12장1절-3절

하나님이 지시할 땅은 미래의 땅이며 미지의 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와같이 명하셨는데 이 말씀은 분리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35)

J.P.Milton,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이군호 역(서울:컨콜디아사, 1982), p.57.

떠나가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요구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전폭적으로 그에게 자신을 위임하고, 의탁하라는 요구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났다. 먼저 그에게 고향은 하란이었는데, 이곳은 ‘달의 신’을 섬기는 고장이요, 많은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우상의 땅이었다. 그러므로 고향땅을 떠난다는 것은 친적이 있는 땅을 벗어난다는 의미보다는 이교적인 풍습의 땅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36)

J.P.Milton,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 이군호 역(서울:컨콜디아사, 1982), p.57.

그는 또한 당시의 대가족 단위속에서 친척과 이웃을 버리고 떠나야 하였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하였다. 당시의 부족사회에서 아버지의 집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지요, 삶의 보장을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보호를 받을 곳을 상실하는 것이요, 생의 안전한 장소를 읽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 길을 떠났다.

나. 가야할 장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그 지시할 땅은 아직 아브라함이 한번도 보지 못한 땅이다. 그렇기에 그곳에 대한 그의 지식은 전무한 상태이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붙들고 가기에는 무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땅은 하나님이 그에게 분명히 보여준 땅이다. 아브라함은 보지못한 땅이지만 본것처럼 떠나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란 말씀과 같이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땅, 즉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행동을 펴실 땅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땅이다. 또한 약속의 땅이요, 먼 장래에는 그리스도가 오실 땅으로, 오직 신앙과 성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얻어지는 땅이다.

(2)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

창세기 12장 1절-3절에서의 소명에 이어서 창세기 15장 17절, 22장의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은 노아와 맺은 언약-노아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나님 편에서 일방적으로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한 당사자간의 동등 계약이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카라트 베리트”( )로서 “카라트”( )는 “자른다, 공평하게 쪼갠다”, “벤다”는 뜻이다. 창세기 15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동물을 정확히 한 가운데로 쪼개고, 당사자가 그 가운데 지나간다. 계약을 파괴하면 쪼개진 동물과 같이 영원히 합치될 수 없는 남남이라는 계약이다.38)

이병렬, 위의 책, p.175.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은 조건적인 계약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스스로 약속의 대상화 되어서 아브라함과 동등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을 체결하고 그 약속을 지킬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면 그와 같이 될 것을 아브라함에게 확신시켜 주셨다.

가. 창세기 15장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은 자손의 번창과 그 자손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약”은 양자간의 동등계약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언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인간편에서의 믿음의 응답이 요청되는 것이다. 본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라야 그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손의 번창의 축복을 확실히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소명시에 약속한 것이 점점 구체적으로 되어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나. 창세기 17장

창세기 17장에서의 언약은 “내가 내 언약을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17:7)”로 요약된다. 여기에 사용된 “언약을 세운다”는 뜻은 창세기 15장에서 사용된 뜻과 동일하다. 다만 약속에 있어서 총괄적이다. 여기에서 그의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뀐다. 이는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것이다. 한 민족의 육신적 조상에서 일약 열방의 아비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영적인 축복이다. 이는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소명시에 그에게 말씀하신대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해서 복을 받는다는 약속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언약에 나타나는 특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의 유형적 표식으로 “할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이다. 할례란, 이 언약에 참여하는 증표요,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하다는 표징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백성과 함께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약은 그 성격상 일방적인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조건은 그 후손들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39)

William Dyrness, 『주제별로 본 구약 신학』, 김지찬 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4), p.134.

다. 창세기 22장

본 22장에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스스로에게 맹세하시기까지 지킬 것을 확증하고 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세기 22:16-18)

하나님이 본장에서 약속하시는 언약은 바로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하나님사이에 세운 언약의 재확신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씨로 크게 성하고, 또한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확언하심으로 이삭이 아브라함의 축복의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이는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오게될 ‘메시야’에 대한 언약이기도 하다. 40)

갈라디아서 3:16

아브라함의 소명과 언약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순종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응답을 하였다. 소명시에 약속된 축복도, 그와 세운 언약도 다 믿음의 순종의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그가 순종하여 부르심에 응답하였을 때, 그에게 약속된 축복의 언약은 하나님에 의하여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발전되었고, 이삭을 드리기까지 순종하였을 때, 그와 세운 언약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심으로 보증하셨다. “믿음의 응답이 요청되는 언약”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세운 언약인 것이다.

(3) 소명과 언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가. 소명에 나타난 복의 개념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소명을 잘 살펴보면 복이 동시에 나타난다. 41)

이병렬, 위의 책, p.240.

소명과 관련하여 “복”(hk'r'B.))))이 다섯 번 나타나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소명은 곧 축복을 위한 부르심임을 강력히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복”이란 단어는 “베라카”(hk'r'B.))))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복을 말한다. 즉, 아브라함의 소명시에 약속한 복은 하나님 자신이 내리시는 복인 것이다.

1)“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창세기 12장2절 上)

“복을 주어”는 히브리어로 “아바레크카”(^k.r,b'a)))로 “피엘형”이다. 즉 복을 수여하는 주체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능동적이며,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확실하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는 아브라함의 이름이 높아지며 그의 백성이 번창한다는 내용이다.42)

이병렬, 위의 책, p.241.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야 그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이로부터 한 민족의 조상이란 이름이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성경의 인물로 불리우게 되는 것이었다.

2)“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장2절 下)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기 위하여 소명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43)

J.P.Milton, 위의 책, p.76.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히브리어로 “예흐예 베라카”(hk'r'B. hyEh.w<) 로 직역하면 “너는 복이 될 것이다”이다. 이는 명령문으로 이러한 명령문의 사용은 아브라함을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이 곧 “복”이요 “복된 존재”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복의 존재요, 그의 신앙의 삶은 곧 복된 삶인 것이다. 44)

이병렬, 위의 책, p.241.

복은 추상적인 막연하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개념이다.

3)“너를 저주하는 자”는 “메바레케카”( ^yk,r>b'm ) 로 “너에게 복을 비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복의 존재인 아브라함에게 복을 비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복을 준다”할 때, “준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레카”( ^k.r,b'a] ) 로 능동강조형이다. 이는 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는 히브리어로 “메칼르레카”( ^l.L,q;m.W ) 로 “저주하다”는 동사 “칼랄” ( ll;q) 은 “감소하다”, “쇠진하다”, “약화하다”, “사라져 없어지다”란 뜻이다. 이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지라고 없어지라고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저주하신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행위는 복을 수여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볼 때, 아브라함은 그의 하나님을 향하여 모든 사람의 태도를 시험하게 될 시금석이었다. 즉,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축복함으로써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4)“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 12장3절 下)

땅의 모든 열방은 곧 세계의 열방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하심은 그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고백안에서 각자가 복을 받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은 그의 믿음의 응답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신 사실 그 자체가 축복인 것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나 이에 응답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편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외롭고 고독한 출발로 인하여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같았으나 “복의 존재”로서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에게 약속된 복은 실제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의 탈ㅊㄹ로 나타났고,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전수에서 이루어졌고, 그 복의 증거로 가나안 땅 입주후 그 땅 분배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현실로 나타났다. 45)

이병렬,『후일에 네 자손이 묻거든』, p.32.

그리고 그의 후손에서 메시야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심으로 그의 복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되었다.

나. 언약에 나타난 복의 개념

아브라함의 소명과 그 언약은 분리될 수 없다. 이는 둘리 아니요, 하나이다. 그의 소명과 동시에 축복의 약속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 약속(창12:1-3)은 창세기 15장, 17장, 22장에서 구체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소명시에 약속된 축복은 그와 세운 언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땅에 대한 약속”, “씨에 대한 약속”, 그리고 “축복의 약속”의 내용이다. 그러나 “땅”과 “씨”에 대한 약속은 한가지로 축복의 내용이므로 이 세가지를 모두 “축복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땅에 대한 약속”은 15장7절과 8-21절에서 자세히 나타난다. 이는 그의 소명시에 이미 약속된 것이다. 이 땅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믿음을 가진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요, 신앙으로 살아가야할 땅인 것이다.

둘째, “씨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소명시에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15장 7절-8절과 22낭 17절-18절에 나타난다. 소명시에는 이에 대하여 암시적으로 언급되었을 뿐이다. 소명시에 그에게 약속된 것은 그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먼저 그의 씨에 대한 축복으로 나타났고(창15장), 그의 씨를 통하여 온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에 이르게된다(창22장). 먼저는 그의 씨가 번창할 것이라는 약속이요, 다음이 그의 씨로 인하여 만민에게 이르는 복이다. 그의 씨가 번창하여 최종적으로 거할 곳은 가나안 땅이요, 이 땅에 그의 후손이 정착할 때에 땅에 대한 언약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씨의 약속”의 초점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르는 “축복”이다. 46)

J.P.Milton, 위의 책, p.136.

아브라함의 씨는 먼저 이삭으로 나타났고,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을 받게 된 것이며47)

사도행전 3장25절-26절, 갈라디아서 3장 8절, 에베소서 1장3절

 또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라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48)

갈라디아서 3장14, 로마서 4장18절

셋째로 “축복의 약속”은 위의 두 가지 약속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소명시에 약속하신 축복이 하나님의 은혜이나 그의 믿음의 응답이 요청되었듯이 구체적이며 반복적인 축복의 언약에 있어서도 믿음의 응답이 요구된다. 그 언약은 믿음의 응답, 반응을 통해서만 현실로 나타난다.

따라서, “땅에 대한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계명에 순종하였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감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광야에서 불순종한 자들은 중도에서 멸망당함으로 그 언약에서 제외되었다.49)

시편 95장 7절-11절

그의 씨로 인하여 온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씨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50)

갈라디아서 3장 16절

이는 독자라도 바치기까지한 그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다. 한 사람을 택하시고, 한 민족을 택하신 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나 그 약속은 보편적인 것이다. 그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믿음의 응답이 필요하다. 인간의 불응답으로 인하여 그 약속이 변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의 응답으로 그 약속에 참여하게 되고, 불응답으로 그 약속에서 떨어진 자가 된다.

Ⅲ. 결 론

우리가 위에서 살펴보아 왔듯이 복이라는 것은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편에서 먼저 무엇을 하기 때문에 가져지는 결과물, 부산물로서의 복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분의 입장에서 그분의 임으로 자기의 원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근데 이러한 복에도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의 응답이다. 그리고 이 복의 개념이 영적인 구원이나 혹은 물질적 축복의 단편적인 의미의 복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함께 복을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임도 살펴보았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줄로 안다. 우리 한국교회는 어느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 복은 또한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또한 그 대상도 점진적으로 크지는 것을 보았다. 또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언약의 체결과 성취가 어떻게 복으로 이루어지는가도 살펴보았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오염된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본토, 고향, 친척집을 떠난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이 땅에 죄악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우리의 복을 찾을 수 있고 나아가 이 복이 우리의 삶 속에서 물질의 축복으로 허락하신 근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의 복이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확대되지만 우리의 후손들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이 우리에게 동일한 복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믿음의 반응으로 ‘제가 여기있습니다’라고 말하고 그 앞에 엎드릴 수 있는 복을 누리고 또한 이 땅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물질의 복 또한 누리는 균형있는 복의 소유자가 바로 하나님앞에서 복을 받은 자인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과 이 땅에서의 복을 풍족히 누리는 삶이 우리의 삶이어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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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Dyrness. 『주제별로 본 구약 신학』, 김지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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