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복음}피할 수 없는 것*정인택 목사

하나님아들 2018. 4. 5. 23:06

예수가좋다오

{복음}피할 수 없는 것

히브리서 9장25-29절 / 정인택목사


"25. 또 그분께서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26. 그랬더라면 그분께서 반드시 세상의 창건 이래로 자주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께서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 9:25-29)


1. 어느 왕의 진리 탐구


옛날 어느 나라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단순히 보좌에 앉아서 자기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는 왕이었습니다. 이토록 부지런할 뿐 아니라 그 왕은 또한 인생의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에 있어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비록 왕으로서 명예와 권력과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인생에 있어 변치 않는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고에서 엄청난 경비를 들여서는 당대에 이름을 날리는 모든 학자들을 모아서 <인생에 있어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가, 변치 않는 심오한 진리는 무엇인가>하는 주제로 연구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나랏일을 돌보았습니다.


 그후 10년이 지난 뒤에 드디어 학자들은 연구결과를 제출하였는데, 그것은 수레 하나에 가득 실을 수 있는 분량의 자료들이었습니다. 나랏일로 바쁜 왕이 그 많은 자료를 다 살펴볼 수 있습니까? 왕은 학자들을 불러서 그 내용을 다시 압축해서 보고하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10년 후에 학자들은 그 내용을 요약하여 두 팔로 한 아름 안을 만큼 압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왕으로서는 너무 많은 내용이어서 좀 더 요약해 오도록 요구했습니다.


학자들은 10년 후에 그 방대한 내용을 줄여서 책 한 권으로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제 쇠약하여 침상에 누워있는데 눈이 침침해지고 집중력도 흐려져서 그 책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학자들에게 더 줄이고 줄여 오도록 했습니다. 우리말로 농축만 뽑아 오라고 한 거지요. 3년 후에 시름시름 앓던 왕은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죽기 전에 학자들을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학자들이 왕께 나아와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보고하는데 왕은 이제 숨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복잡하게 설명하지 말고, 한마디로 인생에 있어 변치 않는 궁극적인 진리를 말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답을 듣지 못하고 꼴깍하고 숨이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한 학자가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바로 그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변치 않는 사실, 궁극적인 진리는 바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


 이것이 우스개 소리로만 들립니까? 그러나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가 아닙니까? 세상에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 아닙니까? 왕의 학자들이 30년간 연구한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이 진리는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지요.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아침 저는 죽음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야말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니까요. 작년 한해에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평균 678명이 사망했습니다. 지금 이 설교가 시작되어 끝이 나는 동안에 약20명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헬스를 시작한지 3개월이 되어가는데요. 헬스장에 가면 근육질을 자랑하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겨우 30kg 가지고 끙끙대는데 그런 사람들은 60kg-70kg을 번쩍번쩍 들어 올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젊음과 건강을 자랑한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병철씨를 가리켜 사람들은 돈병철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워낙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나서 붙인 별명이겠지요. 그러나 그도 죽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부를 과시하던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배고파 굶주리던 보리고개 시절에 새마을 운동으로 잘 살아보세 하고 외치던 대통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때 독재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니까 요즘은 그분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지금은 민주화로 언론과 자유가 많이 보장되었지만 그분이 통치하던 시대는 감히 정치에 대해 뭐라고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한순간 비명에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을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많이 권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고 인생과 권력의 허무함을 안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로초를 구하려고 사신을 보낸 진시황의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불로장생을 꿈꾸던 사람이 몇 살까지 살았는지 아십니까? 13세에 보위에 올라 36년간 통치하고 49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최고 권력자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니 어찌 죽고 싶은 생각이 들겠습니까마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보려고 온갖 귀한 약초를 다 달여 먹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편 49절 1-3, 10-12, 16-17절입니다. “1. 너희 모든 백성들아, 이것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거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이라. 2.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함께 들을지어다. 3. 내 입이 지혜를 말하리니 내 마음의 묵상은 깨달음에서 나리로다.” “10. 지혜로운 자들이 죽고 어리석은 자와 짐승 같은 자도 그와 같이 멸망하여 자기 재물을 남들에게 남기는 것을 그가 보도다. 11. 그들은 속으로 자기들의 집은 영원히 지속되며 자기들의 거처는 모든 세대에 이를 줄로 생각하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따라 자기들의 땅을 부르도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귀함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계속 머무르지 못하나니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16. 사람이 부하게 되고 그의 집의 영광이 늘어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17. 그가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리라.”


 귀천빈부를 물론하고 들어야할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지혜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자도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존귀한 존재이나 장구치 못합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는 존귀한 사람도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16. 사람이 부하게 되고 그의 집의 영광이 늘어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17. 그가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며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하리라.” 저가 죽으니 가져가는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세상에서 자랑하던 그 어느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3.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


 종종 나름대로 선한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분들은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재물과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기적인 사회에서 등불같이 빛나는 보배와 같은 존재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살면 다 되는 줄 압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선행을 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열심히 살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선행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에게 선하게 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 바르게 살아라. 하는 윤리도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책이므로 인생의 변함없는 사실인 죽음에 대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요일 2:25)


 교회에 나오면서 단순히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병 낫고 착하게 사는 윤리 도덕을 배우려 한다면 이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교회에서는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가르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나름대로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할지라도 그것이 죽음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음 앞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치병을 선고받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시한부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예측할 수 없는 죽음


그러면 사람은 언제 죽을까요? 나는 언제 죽게 될까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자기하고 아직은 무관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자는 사업에 성공하여 산더미 같은 곡식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에 보시면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짓고는 ➤“19. 또 내 혼에게 말하기를,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하리라, 하였느니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는 이와 같으니라, 하시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노인들은 최소한 앞으로 10년은 더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젊은이들은 최소한 50년은 더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지금이라도 세상 일손을 놓고 떠나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내 영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아무리 젊고 건강하며 학식과 재물을 자랑해도 꼼짝없이 가야합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질병과 사고로 너무도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게 됩니다. 몇주전에도 저는 고3학생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한창 꽃같이 피어날 나이에 한순간 그 젊음이 꺽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난 장면을 종종 봅니다. 가벼운 접촉사고도 있지만 차가 종이곽처럼 구겨진 것도 봅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상대방이 중앙선을 밀고 들어오면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1993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에서 있었던 테러 사건도 이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그런 곳에서 사고로 죽을 것을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어느 순간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에 우리는 가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5.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처럼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언제 나에게 그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죽음에 대하여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요? 만약 내가 그 테러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화염이 섬광처럼 치솟아 오르고 그 뜨거운 열기에 온 몸에 불이 붙고 구름같이 연기가 몰려오는 현장에 있다면 어떠할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아마도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겠지요. 그러나 그 순간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과연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즐거움과 현실의 문제에 매여서 살아가다보니 미처 죽음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 애곡하는 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라. 살아 있는 자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두리라.”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애곡하는 집에 있으나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희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7: 2, 4)


 우리는 잔치 집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초상집에 가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현실을 가장 가치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현실에만 급급해서 눈앞의 이득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6.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현실을 충실하게 살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 다음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렇게 심각할 이유도 없습니다. 죽음 다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히9:27) 이것이야말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두 번째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사실은 죽음이요, 두 번째 사실은 그 후의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더 살고 싶은 미련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이 슬퍼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심판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죽음 다음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통해서 끊임없이 경고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7. 심판의 이유와 결과


왜 심판을 받는가요?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왜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또 사람들은 왜 심판을 두려워합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도 없다면 두려워할 이유도 없겠지요. 그리고 더 두려운 것은 심판 자체가 아니라 심판에 따라 죄의 대가를 치뤄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요? 심판의 결과는 지옥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죄인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양심의 경고를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양심을 통해 계속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빨간 불을 켜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억지로 모르는 척합니다.


아무리 진화론을 주장하고 이론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해도 사실 그 사람의 내면에서도 양심의 소리는 울리고 있습니다. "결국은 너도 죽음과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죄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이라" 그러나 억지로 억지로 내면의 소리를 누르려고 하지요.


어린 시절에는 죄를 지으면, 예를 들어 물건이 탐이 나서 훔치거나 혹은 거짓말을 하면 양심이 뜨끔뜨끔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양심이 점점 무감각해지기 시작합니다. 계속 양심을 억누르다 보니 양심은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은 바닷물이 빠져나간 것처럼 공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은 양심이 뜨끔뜨끔하게 반응한다면, 어른이 되면 허무감으로 반응합니다. 인생에 대한 허무감이 몰려오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을 떠난 것에 대한 양심의 반응인 것입니다. 그것은 술로도 마약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8. 나는 어떤가요?


오늘날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온갖 더러운 것들 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나의 마음은 과연 깨끗한가요? 내 상태는 과연 거룩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나는 과연 조금도 부끄러움 없이 당당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이 자기 혀로 속임수를 쓰나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쓴 것으로 가득하며 15.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므로 16. 파멸과 고통이 그들의 길에 있어 17.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죄 가운데 있는 나의 상태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진실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죄인이라고 하면 형무소에 있는 도둑이나 살인자들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들보다 내가 조금도 나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것만이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도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이 가득한데도 자기는 깨끗하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품은 생각도 꿰뚫어 보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요일3:15)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미워한 것이 살인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들이 악한 생각만 품어도 그것이 무서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추악한 자들입니까?


9.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죄에 대하여는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죄인들은 재판하여 형무소로 보냅니다. 죽음 다음의 심판에서는 지옥으로 갑니다. 그곳은 영원한 형무소입니다.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옥에 대하여 무디어져 있습니다. 지옥에 대하여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역할은 교회에서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옥에 대한 분명한 경고가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시중에 나온 신앙서적을 보면 지옥에 대해 경고하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교자들도 그러합니다. 저는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설교를 들어봅니다. 인생을 적극적으로 열심히, 또 선하게 살라는 도덕적인 설교와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를 가르칩니다. 모두들 훌륭한 설교자들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하여 강력하게 경고하는 설교를 듣기는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43)


➤“47.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48.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막9: 47-49)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 타는 곳입니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하는 곳입니다. 죄를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셔서 구원받지 않으면 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결과입니다.


10. 최후의 심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성경은 최후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1.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그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13.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14.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니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계20:11-15)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지 못하면 행위대로 심판이 임합니다. 나의 행위는 거룩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면할 만큼 깨끗하냐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직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영생을 얻습니다.


11. 어린양의 생명책


 오늘 저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 죽음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 말씀을 보니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생명책은 어떤 책인가요? 어떻게 그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을까요?


 “더럽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또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을 이루게 하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도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되어있군요. 성경에서 말하는 어린양은 피로 깨끗하게 하여서 죄를 대속하는 양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제사장 앞에 어린양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 양의 머리에 손을 얹어서 자신이 지은 죄를 양에게 덮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양을 죽입니다. 그리하여 그 양은 죄 지은 사람을 대신하여 피 흘리며 죽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사람은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어린양이 대신 짊어지고 죽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어린양은 단순히 짐승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하고 외칩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뒤집어 씌워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값을 대신 갚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갚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죄인들에게 들려진 복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 값을, 나를 대신해서 목숨 값을 갚으셨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죄인들은 죽음, 심판, 지옥의 절차를 밟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건지시고자 자기가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고 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길 잃은 양 같았으나 지금은 너희 혼의 [목자]요 [감독]이신 분에게로 돌아왔느니라.”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저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나의 모습이 어떤 자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 혹은 내가 얼마나 선한가, 악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교회에 다니든지 절에 다니든지 하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심판에 대한 대비책이 있습니까? 지옥에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구원받았습니까?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죽음 앞에 선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요? 바로 나의 죄를 위하여서지요. 이제 나의 모든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나의 모든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를 하나님은 이제 거룩하다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마음속에 모셔 들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일어서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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