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아들 2018. 1. 24. 01:27

“이렇게 기도하라.”

(누가복음 11장 1~13절)

 

  오늘 본문 내용 중에 특이한 점은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셨으면서도 제자들에게는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기도의 필요성을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은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제자들도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역시 우리가 믿는 주님은 모든 것을 인격적으로 처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제자들에게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기도를 가르쳐주거나 기도를 강요하지는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중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지 않자 제자들이 먼저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에 자신들도 주님처럼 기도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요구를 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군침이 돌면서 먹고 싶어지는 것과 같이 제자들은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에 반하여 기도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며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때 주님은 엄청나게 신이 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주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주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과 긴밀히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한 분이 주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친한 사람과 교제하면 기분이 좋듯이 주님은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한 교제를 즐기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입니까? 기도하라고 하면 고작해야 5분이나 10분을 해놓고 힘들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기도하는 것에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지 못하고 친하지 못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그 대화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인사말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그 다음은 할 말이 없어서 금방 지루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아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대화는 누가 옆에서 끊어도 계속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과 대화하면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은 몇 시간이 지나도 전혀 지루함을 모를 것이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지”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서 그런지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에서 나신분이시기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아십니다. 그러니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고상한 지식이 주님으로 하여금 기도에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시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주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것을 근거로 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것도 그냥 아버지가 아닌 친근한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항상 하나님을 다정다감하게 부르시며 기도에 열중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항상 임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간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이 항상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 달라고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고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입만 벌리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방인과 같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그것을 토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상달될 것이며, 분명히 응답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강청하고 매달리며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5~8절 말씀입니다. 주님은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빌려 주라. 내 벗이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내게 왔는데 나에게는 먹을 것이 없노라.’고 말하면, 저가 안에서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도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고 말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는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밤중에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갑자기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것을 좋게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귀찮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미 잠을 자고 있었으면 왜 귀찮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벗됨을 인하여는 먹을 것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때는 친구고 뭐고 생각하지 말고 끈질기게 강청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다고 말하며 줄 때까지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그 강청함 때문에, 그 매달리는 끈질긴 요구 때문에, 반드시 문을 열고 먹을 것을 줄 것입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엎드려서 강청을 하는 것입니다. 줄 때까지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담대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간절히 청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매달려야 하는데 차라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창피하더라도 매달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은 절대로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 사람에게 매달리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서서도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9,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만 말씀하셔도 되는데 주님은 세 번씩이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며 기도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기도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여 기도의 단계적인 의미로 볼 때, 여기서 “구한다”는 것은 조용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기도해서 응답이 안되면, 소리 내어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통성기도입니다. 통성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되면 금식하며 두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두드린다”는 것은 금식기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을 향해 닫혀 있는 자신의 마음문을 두드리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제 문자적인 의미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하라.”는 것은 “필요한 뭔가를 요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조건 주님께 달려가서 요청해야 합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요청해야 합니다. “찾으라.”는 것은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길을 찾으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길이 안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길을 찾으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여러 가지 장애를 만나게 되는데 그 때에는 그 장애가 없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려고 하면 장애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해야 장애가 사라지고 앞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어려움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많은 수비수들을 뚫고 골을 넣은 것과 같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성 베네딕트는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1~13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준단 말입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것입니다. 설령 악한 아버지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만큼은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구하는 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안겨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기도해야 할 것이며, 강청하고 매달리며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것이며,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끝까지 기도해야 할 것이며, 구하는 자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출처 : 프레이즈랜드
글쓴이 : 뉴질랜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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