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살전5:16-24)

하나님아들 2018. 1. 3. 15:34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신앙(살전5:16-24)

 

본문처럼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 그 대안은 십자가 지시고 부활 승천하셨던 주님이 약속하신대로 재림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모든 고난의 극복과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나는 생명의 완성은 주님의 부활과 재림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재림은 아직 오지 않고 현실의 고난과 죄와 죽음의 현존은 인간의 실존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대교회 역시 주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신앙이 흔들리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특히 박해가 심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핍박 때문에 바울이 오래 있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사도바울은 믿음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믿음이 흐트러지고 핍박에 교회를 떠나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님의 재림 신앙으로 성도들을 다시 한 번 권면하는 것이 데살로니가 전서이다.

 

예수를 믿는 우리 기독교인에게도 주님의 재림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안했고 언제 임할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주님을 믿는 신앙인의 디렘마도 역시 주님의 재림신앙에 있다. 우리는 성서가 말하는 재림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의 근본도 무너지고 만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주후 50년경 신약성서가운데 가장 먼저 쓴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이 재림신앙이다. 본문도 재림 신앙이 핵심이지만 그전 1-4장까지의 핵심이 주님의 재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각장 결론 부분에 재림을 말하고 있다(살전1:10, 살전2:19, 살전3:13, 살전4:16-18).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에게 주님의 강림, 재림이 아니면 현실의 고난과 죽음을 이길 힘이 없다.


재림은 성서의 종말론이다. 부활신앙이다. 성서의 결론이요 주님의 복음의 완성이다. 이 재림을 성서를 통해 수용하고 믿지 못하면 기독교는 의미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재림을 강조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7-18).”

 

세상의 모든 관심은 이 세상의 성공과 행복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듯이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요 십자가와 부활이며 그분이 약속하신 재림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나 지금도 사람들에게 재림은 오지 않고 십자가는 얼마나 걸림돌이 되고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는가? 부활역시 얼마나 믿기 어려운 황당한 말씀인가?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 재림은 믿음의 핵심인데 이 핵심을 믿지 못하면 기독교는 헛것이 되고 마는데 말이다.

 

데살로니가의 교회의 디렘마 역시 부활승천하시고 재림하신다는 재림신앙이었다. 고난의 현장에서 기다리는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의 갈등도 여기에 있다. 현실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따지고 보면 오직 재림신앙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재림신앙을어떻게 가질 것인가? 주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순교를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던가? 그 부활과 재림 신앙은 어떤 것이었나?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논증할 수가 없다. 그런데 주님을 십자가 앞에서 부인 했던 사도들이 성령이 임하고 난 후 이 재림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았다. 이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기독교는 이 사도성에 집중하고 그 신앙의 신비를 경험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기독교가 그 이외에 어떤 열심 있는 신앙생활이나 기타 세상의 복을 받으려는 수단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결국 다른 사이비 종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림은 주님도 모르신다고 하셨다(24:36). 사도들도 알 수 없어서 주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은 주님이 부활하시고 승천 후에 사도들은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을 때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주님의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대로 재림을 기다리며 고난 속에 기쁨과 감사로 순교의 길을 갔다. 이 절대적인 믿음, 소망, 사랑, 이에 따른 항상 기쁨과 범사에 감사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제자들의 이런 신앙여정은 재림신앙을 확신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런데 이 신앙을 갖는 길은 우리에게는 없다.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밖에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고 기도하고 사는 길 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있고 기도의 의미가 있고 기쁨과 감사가 있고 온전해지는 길이 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 항상 기쁨과 범사에 감사의 근거가 있을 수 있는가? 세상의 그 무엇으로 우리의 생명이 온전해 지는 길이 있는가? 우리가 목매는 세상의 것은 이룬다 해도 다 없어질 것들이고 여전히 인간은 죄와 죽음으로 끝이 날 존재들인데 거기에는 이런 길이 없다.

 

우리는 성서가 말하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여기에 집중하고 사도들처럼 성령을 통해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든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허무한 인생을 살든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길이 있다. 주님과 사도들과 기독교역사의 신앙의 선배들을 보라. 이 신앙에 집중했을 때 권능을 받고 예수의 증인으로 살지 안했는가?

 

그런데 세상을 보라. 세간의 의혹으로는 전 대통령의 잘못된 신념, 사상, 종교, 정치로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것이 다 허물어지고 말았지 않은가? 그 승리, 영광, 기쁨이 들풀과 같지 않은가? 혹 인정을 받고 위인이라 추앙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결국 죄와 죽음으로 끝이 날 인생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집중하고 그 길을 알고 믿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어 예수님이 온전하시듯,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시듯, 우리도 그 길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을 찾으려는 시도가 관상기도가운데 영적 독서,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이고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이다. 또한 전존재를 그분께 맡기는 기도가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이며 예수기도(Jesus Prayer)이다.

 

이 기도들은 우리의 능력과 방법으로 불가능하다 철저히 성령의 도움을 믿으며 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주님의 재림 약속을 성령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으로 하는 기도이다. 기독교전통에서 성서가 말하는 재림과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해 시도 되었던 기도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런 인간 실존 속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했다. 현실을 보면 불가능한 일인데, 바울은 그 길을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고 있다. 본문을 살펴보자.

 

* 16절부터 19절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 전서 45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진다.’ 하였다. 즉 이 말씀은 주님의 복음의 말씀과 재림의 약속을 확신하고 대망하면서 항상 말씀에 집중하며 기도할 때 주님이 가지셨던 그 기쁨과 평강의 신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19절부터 22절까지는 우리가 취할 태도이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절대 소망이다. 그런 상태를 가지려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19-22절을 보자.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이다. 성령하나님만이 깨닫게 하시고 권능을 주신다.

 

이 영적 세계는 우리의 능력으로 깨달을 수도 갈 수도 없는 길이다. 철저하게 성령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또한 주님께서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의 말씀을 믿고 집중하고 여기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한다. 항상 좋은 것, 선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면 기쁨도 감사도 없다. 또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악은 이 길을 가지 못하게 한다. 악은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세상적인 관심과 욕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6:9).” 죄란 주님의 이 십자가와 부활, 재림으로 이루실 구원, 새 생명 사건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심령, 사상, 종교는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가? 살펴야 한다. 깨어있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 23절부터 24절에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이다. 같이 읽겠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그때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하고 거룩하게 하신다. 이런 영성으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한다.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님은 미쁘시니 그가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24). 이것이 성서의 약속이다. 사도들이 경험하고 우리에게 전하고 우리가 믿고 가야할 영적 여정이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이다. 자유다. 그러나 성경에 성삼위 하나님의 뜻이 있고 길이 있고 그 뜻을 이루신 선배들이 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길 가운데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관상기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관상기도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영적 독서, 영신 수련 같은 기도는 말씀에 집중하는 기도요 예수기도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관상기도이다. 이런 관상기도를 잘 깨달아 말씀에 집중하고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관상상태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아무튼 이 재림신앙에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허무해진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이 재림 신앙으로 항상 기쁘고 범사에 감사하고 그 영원하고 궁극적인 기쁨과 감사를 누리고 살 수 있다. 관상기도는 이 본문처럼 그렇게 되게 하실 것을 믿고 하는 기도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예영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