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피 흘림과 피바름*강문호 목사

하나님아들 2017. 9. 16. 16:24

예수가좋다오

피 흘림과 피바름
출애굽기 12장 5-13절/강문호 목사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피흘림이 없은 즉 구원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피흘림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심으로 죄인된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구약에는 예수님의 예표가 많습니다. 수건벗고 구약을 보면 모두 예수님입니다. 유월절 양은 정확한 예수님 예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였습니다. 바로는 날이 갈 수록 못 살게 굴었습니다. 종은 종처럼 취급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인구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번성하여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 신들을 코를 납작하게 만드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장자를 모두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밀씀이 바로 그 때 상황입니다.

 

“5. 너희의 어린 양은 흠 없는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하며 너희는 그것을 양들이나 염소들에서 골라 내어서 6 같은 달 십사일까지 간수하였다가 이스라엘 회중의 전체 모임에서 저녁 때에 그것을 잡을지니라. 7 그리하여 그들은 그 피를 취하여 자기들이 그것을 먹을 그 집들의 양쪽 문기둥과 문 윗 기둥에다 뿌릴지니라. 8 또 그들은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을지니 불에 구워서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함께 먹을지니라. 9 날것으로 먹거나 절대 물에 삶아서 먹지도 말고 불에 구울지니, 머리와 다리와 그 내장이니라. 10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말지니 아침까지도 남은 것은 불로 태울지니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으라. 허리에 띠를 두르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급히 먹을지니 이것이 주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집트 땅에 있는 첫태생은 다 칠 것이며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도 심판을 행하리라. 나는 주(主)니라. 13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는 너희가 있는 집들 위에서 너희를 위한 한 표가 되리니, 내가 그 피를 보면 너희를 지나칠 것이며 그 재앙이 너희 위에 내려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 12:5-13)

 

-유월절에 양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 피를 발랐습니다. 흐르는 피를 받아 문설주에 바른 집에는 천사가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생겼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약 3500년 된 명절입니다. 양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 양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피흘림 그리고 피 바름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피흘림 예수님의 피를 바름 이것이 천국 백성되는 조건입니다.

 

-피흘림 어린 양이 피를 흘린 것이나 예수님의 피를 흘리신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와 대속입니다. 피흘림은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을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여 달라고 애원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는 너희가 있는 집들 위에서 너희를 위한 한 표가 되리니, 내가 그 피를 보면 너희를 지나칠 것이며 그 재앙이 너희 위에 내려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것이 은혜인 것처럼 어린양이 피를 흘린 것은 은혜입니다. 유월절 양이 죽어서 피를 흘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가 죽지 않았습니다. 피흘림이 없었던 이집트 백성들의 장자는 빠짐없이 죽었습니다. 어린 양이 대신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장자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 죄인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 되었습니다.

 

-피바름 어린 양이 피흘리고 죽었습니다. 그랬다고 저절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을 죽여서 피 바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피를 취하여 자기들이 그것을 먹을 그 집들의 양쪽 문기둥과 문 윗 기둥에다 뿌릴지니라.”(출 12;7) 피흘림은 피바름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피바름은 무엇을 말하나요?

 

1. 피바름은 표적입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집트 땅에 있는 첫태생은 다 칠 것이며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도 심판을 행하리라. 나는 주니라. 13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는 너희가 있는 집들 위에서 너희를 위한 한 표가 되리니, 내가 그 피를 보면 너희를 지나칠 것이며 그 재앙이 너희 위에 내려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 12-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 피를 바른 것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천사들이 그 집은 들어가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흘림을 믿고 받아 드리면 표적이 되어 마귀는 덤벼들지 못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성경에는 빨간 칠을 하였었습니다. 라합이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릴 때 자기 집에는 붉은 줄을 달아 내렸습니다. 표적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라합의 가정 식구들은 모두 살렸습니다. 오늘 외치십시오. “예수님의 피를 내 영에 바릅니다. 표적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피바름은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양을 잡았습니다. 문설주와 문인방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렇게 하면 집안에 장자 죽음이 없을 것을 믿었습니다.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언제나 100%로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양을 잡아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지는 않았을 것같습니다. 그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양을 잡아 피를 바른다고 장자가 안 죽고, 안 바른다고 장자가 죽나?” 그리고 양을 안 잡은 가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집은 모두 장자가 죽었을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날 밤에 어느 가정에서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대화를 꾸며 보았습니다. 아들 ; 아버지! 옆 집에서는 장자를 죽이지 않게 하려고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뿌리느라고 야단들입니다. 우리는 왜 안 하세요? 아버지 ; 부질없는 짓이다. 양을 잡아 피를 바른다고 네가 살고, 안 바른다고 네가 죽겠니? 미친 짓이다. 그런 말 믿지도 말아라. 아들 :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인 데 순종해야지요. 아버지 : 그런 쓸데 없는 말은 안 들어도 된다. 아들 ; 그래도 아버지! 다른 집은 다 하는 데 우리도 믿져야 본전인데 하시지요? 아버지 : 걱정말고 자거라.

 

그리고 양을 잡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들은 싸늘한 시체로 남아 있었습니다.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바르면 장자를 죽이지 않고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 약속을 받아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약속이 없는 데 무조건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의 첫째는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이 아니고 생명이며,즉, 하나님의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믿음은 말씀의 결론입니다.

 

3. 피바름은 순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것은 순종입니다. 비록 믿어지지 않아도 순종하였습니다. 장자들이 모두 살았습니다. 다른 집 대화도 상상으로 꾸며 보았습니다. 아들 : 아버지! 우리 집 문설주에도 양 피를 바르셨나요? 아버지 : 그렇다. 혹시 천사가 캄캄한 밤이라 보지 못 하고 들어오면 네가 죽을 것같아서 바르고 또 발랐다. 누가 보아도 확실하게 보이도록 진하게 발랐다. 죽음의 천사가 오더라도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아들 : 감사합니다. 아버지 : 안심하고 자거라.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다. 이튿날 온 천지가 울부짖는 소리로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평안하였습니다. 순종하는 가정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피바름은 생명입니다.

 

순종은 생명입니다. 성경은 엉뚱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야기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신앙 훈련 생활하면서 아직 광야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만나만 먹기 가 싫었습니다. 텐트에서 날마나 지내는 것이 지겨웠습니다. 물도 흡족하지 못 하였습니다. 어디를 보나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불평하였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에서 죽게 하나이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으니, 우리 혼이 이 보잘것없는 음식을 싫어하나이다." 하였더니”(민 21;5)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망과 불평을 불편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 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불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습니다. 불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죽으면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말하기를 "우리가 주와 당신을 거역하여 말함으로 죄를 지었나이다. 주께 기도하여 그 뱀들을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하소서." 하니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더라”(민 21;7) 모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불뱀 한 마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놓으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시니”(민 21;8) 모세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보는 이들은 다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까짓 것을 본다고 무슨 병이 낫느냐고 믿지 않고 보지 않았던 이들은 다 죽었습니다. 놋뱀이 달린 장대는 바로 십자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본다고 나을까? 하면서 불순종한 이들은 모두 죽었지만 순종한 이들은 모두 생명을 얻었습니다. 엉뚱한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살았습니다. 사막지대입니다. 물이 전혀 없는 곳이었습니다. 200만명이 물없이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죽이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강을 쳤던 네 막대기를 손에 잡고 가라”(출 17;5) 물이 없어서 기도할 때 반석을 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쳤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샘이 터진 것이 아닙니다.

 

우물을 파는 상식이 아닙니다. 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반석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엉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호수아가 해를 멈추라고 한 것은 얼마나 엉뚱합니까?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것은 얼마나 엉뚱입니까? 모세가 반석을 친 것은 얼마나 엉뚱입니까? 그러나 순종은 기적이었습니다.

 

-두 집이 나란히 살고 있었습니다. 두 가정 다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비슷하였습니다. 어느 날 두 아버지가 앉아서 아들 자랑을 하다가 서로 자기 아들이 효성스럽고 순종하는 아들이라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두 아버지는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둘이 똑같은 문제를 내기로 하였습니다. 두 아버지가 한 집에 갔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소를 끌고 지붕위로 올라 가거라"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소리하지 말아요? 소를 끌고 어떻게 지붕위로 올라가요?" 그리고 콧방귀도 뀌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옆집으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소를 끌고 지붕위로 올라 가거라" 그 아들은 아버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를 끌고 집앞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지붕위로 어떻게 올라 갈까를 이리저리 궁리하며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조건 들으려고 하는 아들을 확인하였습니다. 순종이 있고 서로 이해가 있고 사랑이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바름은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 충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바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바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4. 피바름은 맡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새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 지 지켜 본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맡겼습니다. 그리고 푹 잤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상상해 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은 단지 꾸민 이야기입니다. 아들 : 아버지! 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피를 뿌렸나요? 아버지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였다. 아들 ; 제가 나가서 확인하여 보아도 되나요? 아버지 : 아들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틀림없이 했으니 맡기자. 아들 ; 오늘 밤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요. 잠자지 말고 확인하여 볼까요? 아버지 ; 아들아! 그것은 불신앙이란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안심하고 잠에 들거라.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바울에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 2:20)

 

-폭설이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주말 여행을 마친 어느 여자가 밤 길을 혼자 걸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긴장하였습니다.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도 걸음이 빨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그 여자는 긴장하였습니다. 집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아 있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그 남자가 바짝 다가 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험상 궂었습니다. 그 여자는 뒤로 보며 자기가 들고 있던 짐을 내밀면서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시겠어요? 여행갔다 오는 길인 데 가방이 무거워요. 선생님. 아주 무거워요.”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 여자의 짐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란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여자가 팁을 주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저으며 말하였습니다. “부인, 나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사실 나는 당신의 핸드백을 날치기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을 따라 왔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맡겨 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이 믿고 맡겨준 가방을 가지고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맡김은 감동입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한 수도사가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여기 어린 사과나무가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비를 내려 주세요.” 주님은 부드러운 소나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사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무에게 햇볕이 필요합니다. 태양을 비춰 주세요.” 주님은 구름 사이로 따뜻한 햇볕을 쬐여 주셨습니다. 수도사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제 서리를 내려 주세요. 세포를 지탱하려면 서리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서리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린 나무는 차가운 서리를 맞고 죽어버렸습니다. 수도사는 선배 수도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과나무를 심고 기도를 했더니 주님이 기도를 다 들어주셨는 데 사과나무가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선배 수도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도 작은 사과나무를 심었지. 보게나 이렇게 잘 자라서 해마다 맛있는 사과를 따먹는다네.” “이렇게 사과나무를 잘 키운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는 사과나무를 주님께 맡겼네. 주님이 나무를 창조하신 분이시니 이 나무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아시지 않으시겠나? 그래서 나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조건도 달지 않고, 방법이나 수단도 정하지 않고 ‘주님, 이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보내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네.”

 

이 얘기는 딜로우(Linda Dillow)의 ‘만족'(Calm my Anxious Heart)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기도는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 지시려고 고난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피흘리심은 우리의 피뿌림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 해 동안 늙고 병들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랫 동안 그 여인을 정성껏 돌봐준 간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고 먼 친척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여인은 자기 재산을 먼 친척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원에게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만 주었습니다. 간호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간호원은 실망해서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병원 한 구석에 치워놓았습니다. 그것은 별로 귀한 나무로 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 데도 쓸데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간호원을 십자가를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과거 돌보던 여인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반짝이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파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 아주 비싼 각종 보석들이 수없이 들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속에 보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속에는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스펄지온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 땅에서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저 하늘에서 면류관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피를 흘리신 보혈을 믿음으로 받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고 믿음이 더욱 강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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