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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학 2:1-9)

하나님아들 2017. 8. 3. 22:39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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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

2:1-9

 

2: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가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교회가 좋은 줄 모르겠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어졌을 때, 교회가 어려움과 혼란에 빠졌을 때, 비로소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게 교회의 영광을 보는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눈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곧 하나님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하여 성전이 무너졌을 때, 충격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것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가장 먼저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위 나라의 모함으로 14년 동안이나 성전 공사는 중단되었는데, 그 기간 이스라엘에는 여러 가지 자연재해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였습니다. 여건이 어렵다 탓하지 말고 성전을 속히 재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건축하는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가 안 되게 초라합니다. 에스라 3:12에 보면 당시 노인들이 자기들이 짓고 있는 성전의 초라한 모습을 탄식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솔로몬 성전의 모습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가 진동하고 모든 나라가 진동하고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를 것이다’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고 웅장한 성전은 건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건물의 크기나 화려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정말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가 진동하고 모든 나라가 진동하고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를 것이다’ ‘이전 영광 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요 왕으로 임하여 계십니다.

학개 선지자는 성전을 재건하다가 너무나 힘들어 포기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하신 예언으로 그들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된 때에 살고 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였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햇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그 때 주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한 번도 예수님을 핍박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을 핍박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교회와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요,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 거룩한 구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왕상 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그러면 나중 영광이 더 크다고 했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일을 주목하면 됩니다.

지금 이 시간도 성령께서는 역사하십니다. 회심의 역사도 일어나고 회개의 역사도 일어나고 감사와 찬양, 사랑과 기쁨, 평안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겉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교회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임하신 성령께서 성도들을 모이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 때, 그들은 모이면 죽는데 모이고 또 모였습니다.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을 알고 나면 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다투고 분열된 것에 대하여 탄식하는 마음을 썼습니다.

고전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육신에 속한 자로다라는 말은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무서운 책망입니다. 교회 안에서 분열하고 다투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 할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을 찢는 일이고 예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하는 이 시간,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또한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볼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들이 모이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이기에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는 분, 헌금이 기쁜 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분들은 꼭 순종해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저녁에 참석하라는 마음을 주신 이들입니다. 제발, 체면 때문에, 사람의 이목 때문에 오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지는 교회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드러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면 어려움 때문에 교회는 더욱 분열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어려움 중에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허물을 대신 지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남편의 아내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남편도 아내의 허물을 대신 져야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울 때, 그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너무나 어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단히 고통스러웠고 끝난 줄 알았습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잊고 싶었습니다. 건축비를 빨리 상환하여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영성은 2003년 그 어려웠던 때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죽을 것 같은 위기감, 끝날 것 같은 절박함, 그 상황에서 주님을 애타게 갈망하던 그 마음, 그 기도, 오직 예수님이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며, 흩어지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하나 되고, 서로 잘나고 못난 것을 상관하지 않고 함께 있어줌에 감사했던 그 시절, 그 때가 위기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 때가 우리에겐 말할 수 없는 은혜의 때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유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의 사랑과 헌신이 식어졌습니다. 당시 교인 수가 지금 같았다면 빚 없이 건축을 마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이집트의 노예였음을 상기시켜줍니다. 부끄러울 수 있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교절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가 천막에서 잠을 잡니다. 무교병, 정말 맛없는 딱딱한 빵을 먹습니다. 온 집에 누룩을 제거하느라, 대청소도 그런 대청소가 없을 정도로 청소를 합니다. 호텔 식당도 문을 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치스런 노예시절을 기억하라, 어떻게 애굽에서 떠났던 것인지 기억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커지고 여유로워지면서 우리도 유월절과 같은 의미의 교회 절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건축이 중단되었던 그 당시를 기억하라 그 때 심정으로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왜 아직까지 부채를 남겨 두셨나?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사랑 기도의 밤을 갖기로 했습니다. 건축비 부채를 갚기 위한 헌금 시간만 아닙니다. 부채를 다 갚고도 교회사랑 기도의 밤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계속 변해갑니다. 10년 전 교회가 다르고 지금 교회가 다르고 10년 뒤 교회가 다릅니다.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크고 은혜가 있는 것 같아서 모인 교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금방 침체하고 맙니다.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며 주님이 왕 되신 교회를 세우려고 모인 교회는 성전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날, 우리 교회의 고난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간절함과 겸손함을 되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당 건축 부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영이 충만한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은 그냥 가득 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머리되신 예수님께 순종할 때, 영광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른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한국 초대교회에 부흥이 일어난 배경에는 그들의 회개가 보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회 중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집회 후에 바로 자신이 잘못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갚지 않았던 돈을 갚았습니다. 손해를 끼쳤으면 배상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있던 마을이 뒤집어졌습니다. 교인들이 회개한 것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습니다. 그러한 회개의 역사가 너무나 궁금하여 불신자들이 교회를 찾아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 초대교회 부흥이었습니다.

우리도 매번 예배 때마다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무슨 회개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순종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눅 6:46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들의 씨앗]이란 책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의 쉬벌즈라는 동네에 두 개의 교회가 있었다. <쉬벌즈 감리교회>와 이웃에 있는 <쉬벌즈 침례교회>는 모든 점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어느 해 여름 쉬벌즈 감리교회의 학생들은 여름 성경학교 때 요 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내용에 관해 배웠습니다.

담임목사인 스톤은 학생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 섬김과 봉사를 실천에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각각 자기들이 사는 동네로 흩어졌습니다.

얼마 후 학생들은 자신들이 실천에 옮긴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한 그룹은 어떤 노인의 집을 청소해 주었고, 다른 그룹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교회에 나오는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배달했고, 세 번째 그룹은 교회 신자 중에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찾아가 위문카드를 전달했고, 또 다른 그룹은 양로원에 가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러 주었는데, 8월 중순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물했더니, 한 노인은 그것이 자기 생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그룹이 일어나 자신들이 한 일을 발표하자 모두가 우~ 하고 야유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라이벌 관계에 있는 <쉬벌즈 침례교회>에 찾아가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가 물었던 것입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정원 손질이 필요한 어떤 할머니의 집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두 시간에 걸쳐 잔디를 깎고, 마당을 쓸고, 울타리를 손질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쯤 그 집 할머니가 그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학생들이 없으면 난 살아갈 수 없을 거야. 쉬벌즈 침례교회 학생들은 이렇게 언제나 많은 도움을 주거든.”

이 말을 듣고 있던 스톤 목사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너희를 침례교회라고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너희는 그 할머니에게 너희가 쉬벌즈 <감리교회>에서 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드렸겠지?”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를 못 느꼈어요. 예수님에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교회의 영광은 오직 예수님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철저한 순종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함께 해주기 바랍니다.

 

제가 선한목자교회를 목회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나 생각하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주님은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 지원비를 보내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교단 부담금을 정직하게 납부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순종하려다 보니 어느 해인가 교역자들의 사례비를 제 때 지불하지 못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께 순종하려 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받아 주셨을 것이라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만 명의 출석교인도 아니고 1,000명의 선교사 파송도 아닙니다. 오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임재하심이 더욱 분명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성전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저녁,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왕 되신 교회, 철저히 주님께 순종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이 함께 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샘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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