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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성전에 둡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다. 시편 84:1-12 /하원식 목사
다음 3 월 첫째 주일이 우리 교회 설립 31 주년이다. 본문의 고라 자손은 노래 내용의 정황으로 볼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중앙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고 다른 지방에서 살다가 절기가 때만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순례자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떠난 그 어떤 곳에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영적으로 곤고함을 견딜 수 없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얼마나 성전에 올라가기를 사모했는지 하나님께 부르짖느라고 마음과 육체가 쇠하여질 정도였다 (2절).
그의 마음에는 항상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으로 가는 대로만 있었다 (5절). 그것은 성전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야 은택을 입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택을 입어야 만족을 얻을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오늘 읽은 구약성경 시편 84편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자기 영혼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고 했다. 하박국 2:20절에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고 했다.
1.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곳인가?
1. 주님이 거하시는 장막이다 1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여기에 "주의 장막"이란 주님이 거하는 장막이란 뜻이다. 여기에 주님이란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망녕되게 생각했으므로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도나이, 주로 불렀다. 여기에 주란 하나님을 뜻한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감탄한 것은 하나님의 장막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크고 웅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장막이라도 그 장막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감탄한 것은 주의 장막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주의 장막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장막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의 장막에 그 누구보다도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주의 장막에 그 누구보다도 모든 것을 다 희생하기 때문이다.
2. 성전은 여호와의 궁정이다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주의 장막은 보잘 것 없는 천 조각으로 된 하나의 천막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눈에는 그것이 보잘 것 없는 천 조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왕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의 왕궁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왕궁으로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장막에는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 때문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아무리 성전이 작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이 세상의 어떤 왕궁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성전에는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 동원해도 그 곳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다. 아마 이 세상의 그 어떤 집으로도 하나님을 모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성전에도 하나님을 모실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전은 얼마나 위대한 집인지 모른다. 성도 여러분, 성전을 볼 때 마다 이 집은 이 세상 어떤 집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위대하고 더 거룩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이다.
3. 성전은 주의 제단이 있는 곳이다 3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라고 했다. 성전의 생명은 바로 제단에 있다. 제단이 없는 것은 하나의 집에 불과하다. 성전에는 제단이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 제단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남의 장소이다. 범죄한 인간은 제단에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단에는 항상 제물이 있어야 한다.
구약시대에 제물은 양이나 짐승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제단에서 한번에 온전히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신약에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이 제단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야 한다. 신약의 제물은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바로 제물이다. 로마서 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다. 제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다. 제물이 없으면 제사가 성립되지 않는다. 여러분, 예배의 제물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무엇인가? 우리의 몸이다 우리의 심령이다 우리의 영혼이다 우리는 이 시간 마치 구약 제사 때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듯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이 받으신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있는 것이다. 제물이 되는 짐승은 깨끗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짐승이 죽어야 한다. 짐승과 제물 차이는 그 짐승이 죽었느냐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짐승이 살아 있으면 제물이 못된다. 짐승이 죽어야 제물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간 나의 몸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이 깨끗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죽어야 한다. 나의 육적인 생각도 죽어야 한다. 나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려야 한다. 나의 정욕도 죽어야 한다. 나의 미움도 죽어야 한다. 나의 욕심도 죽어야 한다. 나의 교만도 죽어야 한다. 나의 이기심도 죽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온전한 제물이 되었는가? 철저하게 죽었는가?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완전히 죽어야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 열납 되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예배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온전히 죽어지지 않고는 하나님께 열납 되는 제사를 드릴 수 없다. 내가 죽어지지 않고는 참 은혜를 받을 수가 없다. 성전의 생명은 제단이다. 다윗은 성전의 제단을 사모했다. 성전의 제단을 사랑했다. 성전의 제단을 사랑했다는 말은 바로 다윗은 자신의 육적인 죄악을 온전히 죽였다는 뜻이다. 자신의 교만을 온전히 죽인 것이다. 자신의 미움을 온전히 죽인 것이다.
2. 왜 그토록 성전을 사랑했는가?
1. 성전을 통해 복을 받기 때문이다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우리는 성전을 통해 복을 받는 것이다. 성경에 성전을 사랑하는 자가 복을 받지 못한 자가 있는가? 없다. 성경에 성전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복을 받은 일이 있는가? 없다. 하나님은 성전을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다. 성전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신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자이고 다윗은 비록 그가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어도 성전을 가장 사랑한 자이다. 다윗이 얼마나 큰복을 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 성경에서 다윗만큼 영적으로 육적으로 은혜와 복을 받은 자는 없을 것이다. 왜 다윗이 이런 복을 받았는가? 성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2. 성전을 통해 힘을 얻기 때문이다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7절에도 "저희가 힘을 얻고 더 얻어"라고 했다. 모든 힘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힘의 근원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힘을 주시는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 해서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자에게 힘을 주신다. 시편 18:1절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육체의 힘도 나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정신적인 힘도 나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도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구세주 힘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육적인 힘도 얻으시기를 바란다. 힘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정신적인 힘도 얻기를 바란다. 힘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얻자.
3. 성전을 통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여러분 예수님은 성전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 이라 하셨다. 그렇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참 신이시다. 어디든지 다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성경에 기도의 응답 받는 자들이 어디에서 기도할 때 응답을 받았는가? 모두 성전에서 기도할 때이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참 신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성전을 중심해서 살아야 하고 기도해야 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3. 성전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했는가
1. 성전을 통해 예배하기를 사모했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곳이었다 (출25;18-22, 왕8;13,29). 고라 자손은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자였다.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때의 감동과 감격과 기쁨의 은혜를 경험한 자였다. 그런데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는 그런 은혜를 경험할 수 없어서 견딜 수 없이 곤고했다. 그래서 그 성전에 가서 예배하기를 사모했다.
얼마나 사모했는지 3-4절에 보면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고 했다.
성전 제단에 집을 짓고 사는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 한 것이다. 왜냐면 그 참새와 제비들은 성전에서 예배할 때에 부르는 찬송을 항상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라 자손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하나님께 자신을 살펴 보아 달라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기도를 들어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8-9절). 마치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사모하여 바벨론 여러 강변에 나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앉아서 울었던 심정이었을 것이다 (시137:1). 우리는 영혼이 살아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 살 수 없는 자들이다. 예배의 감격 없이는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는 자들이다. 혹시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 주시는 치유와 회복과 기쁨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꼭 부(富)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나하게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느껴지는 것이다.
2. 성전에서 봉사하기를 사모했다. 고라 자손은 성전 기구를 맡은 자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맡은 자다. 아마 본문의 고라 자손은 성전 문지기 역할을 맡은 자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는 그 봉사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전 봉사를 떠나 어떤 일을 해도 만족이 없었다. 그래서 성전 봉사를 다시 하고 싶었다. 아무리 미약하고 비천한 일이라도 성전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10-11절에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고 했다.
성전에서 한 날 지내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고, 성전에서 문지기로 일하는 것이 다른 곳에서 고귀한 일을 하는 것 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문지기로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안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벧전2:9, 계1:6), 하나님의 성전에 있어야 할 자들이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참된 행복을 잃어버렸다. 이제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미약한 일이라 해도 주의 일에 동참한다는 기쁨으로 감당해야 한다. 죄악 투성이고 더럽고 추악하고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 데도 쓸데 없는 자를 불러 주의 일을 시켜 주셔서 주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3.성전을 사모하는 자는 복된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1년에 3대 절기를 지키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킨다.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인데 약 한달 가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잔치를 한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데는 며칠이 걸리고 절기를 지키는데 한달 가까이 걸린다. 그리고 돌아오는데 며칠이 걸린다. 또 안식일과 월삭을 지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재미로 살았다. 세상의 천 날보다 성전에서의 하루가 행복하다. 악인의 집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좋다. 성전은 주의 집으로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자기 집이라고 고백했다.
1.성전을 사모하는 자는 회복의 복을 받는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5)” 세상에는 낙심되는 일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님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전을 찾아 시온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길을 통과해야만 했다. 시온으로 가는 길은 때로 물도 없고, 위험이 계속되는 사막과 같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모래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눈물의 골짜기”라고 불렸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뛰는가? 왜 돈을 버는가? 그것은 돈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왜 건강 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건강이 체력이 되기 때문이다. 왜 권세를 얻으려고 하는가? 권력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왜 공부를 하는가? 학력이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힘이 무너질 때가 있다. 세상의 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무력해지고 만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힘은 막을 자가 없다. 새 힘을 얻게 된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6)” 거룩한 성전을 사모할 때 은혜의 샘이 솟는다. 목마른 사람에게 생수처럼 낙심과 탈진한 사람에게 생기를 부어 주신다. 우리들에게도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많이 있다. 때로는 실패의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다. 그리고 질병의 눈물의 골짜기, 고통의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다. 때로는 남편이나 부모형제가 눈물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자식까지도 눈물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전을 사모하며 성전에서 기도할 때 시련의 아픈 골짜기에 은혜의 샘물이 솟게 된다. 험악한 인생 길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며 힘을 잃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때마다 성전에서 기도함으로 힘을 얻으시길 바란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볼 때 낙심된다. 악한 자가 잘되는 것을 보면 낙심된다. 그때 기도로 하나님을 볼 때 힘을 얻게 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이런 길이 몇 군데 더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례자들이 이러한 “눈물 골짜기들”을 통행할 때에, 그곳을 샘이 솟아나는 오아시스가 되게 만들어 주신다. 또 하나님은 순례자들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이른 비”를 내려 그들을 축복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시온을 향해 가는 순례자를 위해 모든 역경을 극복하게 해주시고, 역경을 축복의 장소로 만들어 주셨다. 일반적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길을 가면 갈수록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시온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힘을 얻었다. 그러다가 성막에 도착하여 예배하면 그 복은 절정에 달했지요!
우리 인간이 가는 나그네길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이는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사막을 지나던 순례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눈물의 골짜기도 지나야 합니다. 세상은 사막과 같다. 그러나 주께 힘을 얻는 자는 메마른 골짜기, 사막을 지날 때에 생수를 만나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 모세, 요셉, 사도바울 등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항상 기쁨의 샘이 있었고, 생수가 흘러내렸다. 이는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돌보심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어 눈물의 골짜기를 축복의 골짜기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신앙의 비결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주의 전에 나와 주님께 힘을 얻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성전문지기는 하늘의 인도를 받는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주의 궁정이라는 말은 성전이라는 말이고 다른 곳은 세상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성전에서의 한날이 세상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님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문지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문지기는 모든 교인을 잘 안내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호화스럽게 사는 것보다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한다.
이게 다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성전을 자기의 거처, 집, 보금자리로 삼겠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라자손들은 성전에서 살았다. 성전이 처소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성전을 떠나있어도 가고 싶었고,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성전을 향했다. 성전이 그들의 거처, 보금자리였다. 성전이 힘을 얻는 곳이었고, 위로를 받는 곳이었다. 특히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곤고한 인생 길에 성전은 가장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곳이었다. 그들은 성전에 머물기를 즐겨했고, 성전에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줄을 몰랐다. 이것이 그들의 성전사랑이다.
또한 이것이 오늘 우리의 교회사랑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이다. 참새나 제비도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얻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진정한 행복한 삶이 어떤 삶인가? 를 깨닫고 찬양한다. 세상에서 아무리 호화스럽게 사는 것보다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한다. 이게 다 무슨 뜻인가? 한마디로 성전을 자기의 거처, 집, 보금자리로 삼겠다는 말이다.
실제로 고라 자손들은 성전에서 살았다. 성전이 처소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성전을 떠나있어도 가고 싶었고,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성전을 향했다. 성전이 그들의 거처, 보금자리였다. 성전이 힘을 얻는 곳이었고, 위로를 받는 곳이었다. 특히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곤고한 인생 길에 성전은 가장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곳이었다. 그들은 성전에 머물기를 즐겨했고, 성전에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줄을 몰랐다. 성전이 거처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말은 성전이 그만큼 편하고 좋았다는 말일 것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하고, 위로 받고, 섬기며 지냈다.
교회를 사랑하면 바로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신앙의 거처로 삼고 터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때마다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우리가 여기에 머물며 평안을 누리고, 모여서 기도하고,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현장이어야 한다. 교회창립31년을 맞으며 이렇게 교회를 거처로 삼고 평생 교회를 사랑하며 섬긴 사람들이 생각난다. 젊어서 교회에 들어와 이젠 노인이 되신 분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두 처소를 주셨다. 하나는 가정이다. 가정은 우리의 육신의 평안을 누리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귀하게 여긴다. 나를 받아 주는 곳도 가정이다. 내 집이 없으면 세상을 방황하게 된다. 내 집이 없으면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내 집이 없으면 떠돌이가 되어 정함이 없다. 그래서 인간은 주안에서 가정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이 가정만으로 우리 인간은 참 평안을 얻지 못한다. 참 평안은 영혼의 평안이다. 따라서 참 평안은 바로 교회를 통하여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다(요 14:7).
3, 자기 자신의 문제를 간구하고 해결을 받는다. 본문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의 사정을 아뢰고 해결을 받는 것이다. 성전은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곳이다.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는 구도의 얼굴, 이는 마치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이라 하겠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전, 자식을 달라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를 하였는데 얼마나 그 소원이 간절하고 뜨거웠으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알았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기도의 대화를 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다.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우리는 주의 집에 거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예배하는 시간으로 이 집을 채우십시오. 은혜와 감사로 하늘 보화를 채우십시오. 여호와의 한 시간이 세상의 천 시간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세상의 악한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인도해 주신다. 이러한 신앙으로 천 배의 보람과 행복으로 사시길 바란다.
그럼 우리가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는가? 저는 교회 와서 은혜 받는 모습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시집 간 딸이 친정에 와서 시집살이 고달픈 이야기 시어머니 구박 이야기, 시누이 미운 이야기 시동생 말성 피우는 이야기 고주알, 미주알 밤새도록 친정 엄마에게 일러바친다. 그러면 엄마가 딸을 위로한다. 시집살이 다 그런거야, 참고 살아야지 딸은 다시는 시집에 안 갈 것 같이 흉을 보고는 그 다음날 보따리, 보따리 챙겨서 헤헤 하며 시집으로 떠나간다. 그래야 시댁가서 어깨펴며 살거든요. 그래요, 교회는 신앙의 친정집이 되어야 한다. 세상살이 가정생활 고달팠던 것 다 주님께 일러바치세요. 그리고 이 보따리 저 보따리 많은 은혜의 보따리 담아 웃으며 일어서세요. 교회 와서 은혜의 봇따리 잔뜩 담아 일어서시기 바란다. 그래서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시기 바란다.
문지기 정신은 바로 봉사하는 삶을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증거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리는 증거가 무엇이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지배하고 섬김을 받는 삶이 최고의 복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섬김의 삶이요 봉사하는 삶인 것이다. 오늘 교회 안에 하나님 문지기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의 전인 교회를 지키려고 하는 문지기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한번 올라가는 것이 그들이 사는 이유였다. 그래서 성전에 한번 나가는 것을 순례의 길이라고 했다. 그것은 기쁨이었다. 그들은 성전에 한번 올라가기 위해 긴 여행을 해야만 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추위를 이기며 노숙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으로 들어갈 때는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던지, 성전을 들어가면서 순례자들이 행복에 겨워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 노래가 시편 84편이다.
시인의 눈으로 볼 때에 주의 성전 곳곳에 참새나 제비들이 집을 짓고 사는데 하나님 백성인 내가 여기서 위로를 받을 수 없단 말인가?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는데 어찌 내가 마음의 고향을 얻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이 복된 삶이다. 사람들은 정말 귀중한 것은 귀중한 줄 모르다가 잃어보면 그제서야 알게 된다. 건강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물이 그렇듯이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은혜 받는 집이에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집이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집이에요. 또 주의 전에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있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집을 만난다는 것이 큰 축복인데 하나님을 나의 집으로 삼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 최대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집은 쉬는 곳이다. 집은 평안을 누리는 곳이다. 하나님을 집으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얻는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27절) 밤이 오면 들어가 쉬는 곳,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피하는 곳, 그리고 독수리가 하늘을 날면서 참새를 낚아채려고 할 때 숨어들어 안전을 피하는 곳, 이것이 바로 제 집이다. 하나님을 자기 집으로 삼는 사람은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그는 안식을 얻을 수가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성도들이여, 이곳에 와서 안식을 얻으시기 바란다.
사람은 한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산다. 사람이 사는 집을 "거처"라고 말한다면, 학교는 배움의 집이요, 직장은 일하는 집이다. 우리가 가야할 천당은 하늘 집이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집이 천당이다. 성전이라는 말은 거룩한 집이라는 뜻이다. 가정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다. 그래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부른다. 식구라는 말은 '함께 먹는다'는 말이고, 집사람은 집이 되어 준다는 말이다. 우리가 일생동안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큰복이 아닐 수 없다. 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곳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곧 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의 안식처가 되고 삶이 되고, 쉼이 되고, 보화가 되기 때문에 항상 그곳으로 찾아간다. 집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사는 곳, 쉬는 곳, 사랑하는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거기에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고, 쉼이 있는데, 이런 집을 만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하나님을 자기 집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집으로 삼고 그 안에서 쉬고, 사랑하며 사는 삶은 영적으로 충만한 삶이다.
4. 힘을 얻는다. 성경은 말한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6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 골짜기를 지나간다. 사막 땅을 지나간다. 메마른 땅에 물 한 모금 없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를 내리시면 샘에서 물이 솟아올라 그 물을 마시고 가는 은혜를 입을 때가 있다. 이 시인은 이 때를 회상하면서 이런 시를 쓰고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많이 있다. 어떤 때는 실패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질병의 골짜기를 지나서 병상에 누워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자식이 속 썩이면서 눈물의 골짜기가 되어버린다. 어떤 때는 남편이 가슴에 멍들게 해서 눈물의 골짜기가 되는 때도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수 없는 눈물의 골짜기를 우리가 지날 때가 있다. 그때 그곳으로 샘의 곳이 되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솟아오른다. 하나님의 말씀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힘을 얻게 한다. 악인의 장막에서 호화로이 연락하는 것보다 내 하나님 집에서 문지기라도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 내게 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예배하는 자의 행복을 얻어야 된다.
유명한 나폴레옹이 전 세계를 정복해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정신으로 살았다. 그런 그에게도 실패가 있었다. 그가 전쟁에서 패배해서 저 대서양 센티에르나 조그만한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한 기자가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폐하여, 폐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말씀해 보십시오." 그때 나폴레옹은 눈을 지그시 감고 옛날을 회상하는 듯 두 눈가에 눈물을 적시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수십년 전 알프스 산맥을 넘어 전투가 치열할 때 어느 주일날 아침에 종소리가 들려 나는 그 종소리를 따라 갔노라 갔는데 마침 조그만한 시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에 나도 철모를 벗고 예배를 드렸다. 그때 나는 성가대의 찬양소리를 들으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비한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노라 그 순간이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감격과 환희와 행복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이 진정 사모해야 할 대상은 교회다. 주의 전을 제일로 여기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고 수단으로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신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주님이 자기 피 값을 지불하고 세우신 교회다. 이 교회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섬기라고 하셨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가장 많이 사는 곳이 집이다. 그래서 날마다 잠을 자고 생활하는 집을 주택이라고 하고 배우는 집을 학교라 하고 일하는 집을 직장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생 동안 집에서 살다가 집에서 그 인생을 마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집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집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우리는 집을 건물로 생각하고 살지만 사실은 건물이 집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품이 나의 집이 된다. 그래서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집의 변화를 경험한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집이 되고 아내가 집이 된다. 그래서 남편들이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남편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할지라도 의지할 수 있는 품이 되어 주지 못하면 아내의 마음은 떠난다. 아무리 미모가 뛰어나더라도 아내가 남편에게 집이 되어 주시 못하면 남편이 떠난다. 그런데 세상 집은 변한다. 부모도 떠난다. 남편도 아내도 언젠가 떠난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집이 되고 안식처가 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시편 기자는 4절 [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 라고 고백한다.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자의 특징이다. 교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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