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자가의 고통

하나님아들 2017. 7. 27. 23:10

예수님은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는가?




1. 피가 된 땀방울


♦ 겟세마네 동산(감람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심 (누가복음 22:39~45)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4)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면서 다음 날 닥쳐올 십자가의 고난을 예상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에 고민하고 슬퍼 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서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7~39).


예수님은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습니다.

그때 땀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그것은 너무 지나친 나머지 잘못 쓴 것이 아닌가? 그것은 복음서 기자들의 정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 아닌가?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 혈한증(血汗症)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경우에 일어납니다.

사람이 심하게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시키는 화학물질이 나와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가게 되어 땀을 흘릴 때에 피가 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혈한증이 일어나면 피부가 극도로 민감해져 바늘이 살을 찌르는 듯 한 심한 고통을 수반하는데 예수님은 다음 날 이와 같은 상태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으로 맞으셨던 것입니다.








2. 빌라도 법정에서 로마 군인들로부터 태형을 당하심(마27:23~26)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27:22-26)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3번 사실(심리)하였으나 제사장들이 고소한 내용에 대하여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놓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더욱 소리를 지르면서 민란을 일으키려 했고 그래서 빌라도는 로마의 태형으로 충분히 때리면 이들이 마음이 풀릴 줄 알았습니다.

   


  로마의 태형은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형벌로 채찍은 보통 39가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채찍은 땋은 가죽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둥근 쇠구슬과 날카로운 양의 뼈 조각이 박혀 있습니다.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쇠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나 멍이 생기고 상처 난 곳이 벌어집니다. 또한 채찍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뼛조각들 때문에 살이 심하게 찢겨져 나갑니다.


로마의 태형을 연구한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뼈에 붙은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 된 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뼈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일부 사람들은 태형만으로도 사망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죽지는 않았더라도, 희생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저혈량성 쇼크상태에 빠집니다.

 저혈량성 쇼크란 어떤 사람이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피를 많이 흘리게 되면

1) 심장이 더 이상 피를 온몸으로 보내지 못한다.

2) 혈압이 떨어져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하게 된다.

3) 콩팥은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변 만드는 일을 중단한다.

4)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매우 목이 마르게 된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있는 상태에서 “내가 목마르다(요19:28)”고 호소하셨습니다.

 

 

 

 

 

 

3. 십자가 상의 고통



♦ 해골(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누가복음 23:33)



  로마 시민은 오직 극단적인 국가 반역죄를 행했을 때에만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형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영어“excruciating(견딜 수 없이 괴로운)”이란 단어가 "crucifixions(그리스도의 처형)"의 끔찍한 고통에서 유래된 말이었을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로마의 관행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눅23:26-49).


이 때 예수님이 진 십자가는 34~57kg 정도의 횡목(십자가의 가로 들보)이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또 학자들은 예수님에게 사용된 못은 길이 12.7~17.8cm, 지름 1cm 정도의 끝이 날카로운 철 대못으로 예수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로마의 십자가형이 있기도 전인 예수님 탄생 1000년 전에 시편22:16절의“악한 무리들이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는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당시의 언어는 손바닥과 손목을 구별하지 않았고, 손목도 손바닥에 속했습니다.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된 예수님시대의 유골들에서 이런 흔적이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의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수직기둥 정면에 고정되었고, 못은 발 중앙의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꽂혔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양손과 발의 말초신경들이 끊기는 또한 잡아 비트는 고통, 즉 손과 발이 잘리는 듯 한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욱이 십자가형에 앞서 받은 채찍질로 인한 출혈과 쇼크, 혈압저하 현상, 못을 박기 위해 땅에 눕혀졌을 때 채찍질당한 등이 다시 찢겨지는 아픔, 십자가 위에서 숨을 쉴 때마다 찢겨진 등이 거친 나무기둥과 부딪치며 생기는 고통 등 예수님은 매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학자들은 예수님이 이보다는 호흡곤란 상태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면 질식하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됩니다.

질식하게 되는 이유는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격막이 가슴뼈 상태를 숨이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 발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숨을 제대로 내쉬기 위해서는 발을 밀어올리고 팔꿈치를 구부리면서 어깨도 함께 들어 몸을 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동작은 못 박힌 발에 몸무게 전체를 싣게 되므로 심한 고통을 주게 됩니다.


더욱이 팔꿈치를 구부리는 동작은 못에 박힌 손목을 돌리게 하고 팔의 신경을 손상시키게 되므로 고통이 가중되어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매번 호흡할 때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치명적인 산소 부족(질식)을 경험했을 것이라는게 의학자들의 설명입니다.


호흡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희생자는 소위 호흡산독증(혈액 속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하는 것)에 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심장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되고 심장이 멈추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미국의학협회지에 실렸던 이러한 내용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의 원인을 현대의 의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생생하게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마27:34)



  쓸개 탄 포도주는 시편 69:21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渴)할 때에 초(酢)로 마시웠으니”


본문의‘쓸개’란 진짜‘쓸개’나 ‘담즙’을 뜻하기보다 쓴 맛이 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말로 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매우 센 독주(毒酒)로서 취기가 속히 들고 마취 성분이 강한 술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유대 전승(傳承)에 따르면 이 쓰디쓴 포도주를 사형당하는 죄수에게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서는

(1)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들에게 순간적으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거나, 그 고통을 참아낼 힘을 주려했기 때문인 동시에,

(2) 술로 인해서 거의 마취되다시피 한 죄수들은 사형 집행관들이 손쉽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제공되었다는 것입니다.


쓸개 탄 포도주는 십자가상에서 극한 고통 가운데 있는 죄수에게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기 위해 주는 일종의 진통마취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을 덜어 주는 마취제를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극한 고통을 잠시라도 덜기 위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기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처벌받으시는 예수님이 그 처벌을 약간이라도 감하지 않고 온전히 받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벧전2:24).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당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모든 고통을 받으신 것입니다.

 

 

 

 

 

 

ps

   어딘가에서 퍼온 글을 제 싸이홈에 올린 것인데..

   문득 기억나서 공유하고자 올립니다...아마 읽으신분도 분명히 있겠죠? ^^

 

출처 : 모세 지팡이
글쓴이 : 아타아도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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