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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일을 멋대로 하는 세대

하나님아들 2017. 1. 22. 21:52

예수가좋다오

주일을 멋대로 하는 세대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고 하면 마치 유대주의 자들이 안식일을 외식 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지키던 것처럼 여기고 비아냥거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나마 그런 주일 성수란 말도 이젠 들어 보기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볼 때 오늘날 교회들에서 주일은 어렵게 되었고 저들 좋은 대로 되어 버렸고 복잡하고 요란하고 바쁜 시대에 향락적 문화까지 넘쳐 교회들에게 있어 주일은 겨우 이름뿐 실제 교회가 가져야할 마땅한 주일의 거룩한 모습이나 참된 의미는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표현보다 더 확실한 표현을 빌자면 거룩함은 없고 세속화 쪽으로 가는 자멸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이들이 구원의 주를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 가기위해 필요한 예배와 은혜의 거룩한 날을 우리 멋대로 지워가고 있으니 세상의 모습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일의 거룩함이 없다는 것은 결국 주일은 형식에 불과 하던가 아니면 주일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라고 우리가 칭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거룩한 날은 없고 구원의 기쁨이 사라져서 세상의 날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들은 정확히 꼬집어서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과 다수의 교인들의 형편과 원함에 따라 주일을 지워버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주일의 의미를 지워가고 주일을 거룩한 한 날이 아니라 불과 몇 시간 예배하는 시간으로만 남기고 지워버렸고 각자 사사로운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나마 남은 두 번 정도의 예배 시간마저 시대적 흐름의 세파와 각자 형편과 거기다 맞추어 주는 인본주의 신앙으로 인해 밀어 내기 식으로 지워져 겨우 한 번 남아 있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것도 골라잡아 예배하게 했고 빨리하고 알아서 하게 1부로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아예 주일에 예배를 못할 자를 위해 금요일, 토요일에도 할 수 있게 사정을 봐주는 아량이 큰(?) 교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말이 주일 이지 겨우 예배하는 그 시간을 빼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일요일이 휴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을 구별하여 지켜야 하는 마땅한 믿음의 의지가 없습니다. 교회에만 주어진 구원의 날로서의 주일이 교회로 인해 그것을 지켜 주어야 할 지도자들로 인해 애매모호한 날이 되었습니다. 주일도 아니고 세상 날도 아닌 어중간한 날이 되었고 더 문제는 이런 상태 속에서 온전한 주일로서의 방향으로 가야함에 대해 누구하나 외치는 자 없다는 점이고 오히려 서로 남은 부분까지 편리와 자유를 위해 지워 없애려는 쪽으로 대세적인 합의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니라. 안식일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적이 되리니 이것은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인 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손들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될 내 법규 안에서 걷지 아니하며 내 판단의 법도를 지켜 행하지도 아니하고 내 안식일을 더럽히므로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격노를 부으며 그들에게 내 분노를 이루리라, 하였노라.”고 말씀했습니다.(겔 20:20-21).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것은 그날을 구별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보냈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아 그들의 삶 자체가 거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구원의 안식이 주어진 날이요 그것을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 경배하고 또한 삶 전체를 안식으로 이루어감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주일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주일을 바로 알고 지키며 더욱 온전히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안식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기쁨을 예배로 구별하여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신날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으니 죽음에서 해방 된 기쁨을 걍배하는 날입니다.


히브리서 3장 18절~4장 11절에 안식과 안식일의 관계와 안식일이 언제부터 어떻게 주어졌는가? 그리고 주일까지 관계를 단계적으로 잘 증거 해 줌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안식이나 아담 때의 안식과 이스라엘에 주어진 회복된 안식과 복음을 통한 안식을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안식은 주님이 구원하여 주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 18. 또 그분께서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들이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느냐, 오직 믿지 아니한 자들이 아니냐? 19.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믿지 아니하여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아노라.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의 어떤 사람이 거기에 이르지 못할까 염려하노라. 2.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으나 선포된 그 말씀이 그것을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3. 이미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4. 그분께서는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떤 곳에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셨으며 5. 또 다시 이 대목에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반드시 그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남아 있는 줄을 알거니와 처음에 복음 선포를 받은 그들은 믿지 아니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또 다시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분께서 다윗의 글에서 오늘이라 말씀하시며 어떤 날을 한정하시나니 그것은 곧,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하고 말씀하신 바와 같도다. 8. 만일 예수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분께서 그 뒤에 다른 날을 말씀하려 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도다. 10.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 같이 이미 자기 일들을 그쳤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쓸지니 이것은 아무도 그 믿지 아니하던 동일한 본을 따라 넘어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범죄이전의 안식으로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4-5절을 보면 범죄 이전 아담에게 주어진 안식일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볼 것 같으면 “4. 그분께서는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떤 곳에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셨으며 5. 또 다시 이 대목에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의 근거가 되는 창세기 2장 1-3절을 보면 “1.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 되니라. 2.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만든 자신의 일을 마치시고 친히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일을 안 하시는 쉼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창조된 후 하나님의 안식이 아담이 거하는 에덴동산을 은혜의 낙원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이 마치는 일곱째 날부터 하나님의 안식이 시작되었고 안식의 날로 아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 안식은 행위 언약 안에서 계속되는 여부가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안식이 없는 세상으로 쫓김을 입었고 죽음과 수고와 슬픔뿐이고 환경은 가시와 엉겅퀴가 있는 형편에서 영원히 형벌의 삶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잠시적인 육신의 휴식과 쉼만 있을 뿐 하나님의 영원한 평안의 안식은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회복으로 주어진 안식으로서 안식일≽


히브리서 3장 17절~4장 1-3, 8절을 참조해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범죄 한 자들에게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광야에서 죽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을 여호수아는 증거 하기를 “이제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안식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수 2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아담의 범죄 이후 잃어버린 하나님의 안식을 오실 메시야 안에서 회복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다시 안식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4계명을 보면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거하는 네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엿새 동안에 {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출 20:8-11).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렇게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안식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안식일은 처음부터 지은 낙원 적이며 하나님 나라가 되는 안식이 그들에게 오실 메시야 안에서 구원의 은혜로 다시 시작된 날이요 이 날은 창조주의 안식일로 그의 뜻대로 거룩히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을 통해 그들은 언약의 땅에서 안식의 삶을 이루어 가야 했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이고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도 하나님 백성으로서 그것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이 회복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증거가 안식일이요 또한 하나님의 안식이 그들에게 시작되었다는 날이 안식일이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구원의 안식을 감사하여 경배로 기억하는 날이 안식일이며 그 날을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안식의 삶을 실현 시켜갈 수 있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13.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것은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 14. 그러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하니라.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다 반드시 죽일지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면 그 혼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안식하는 안식일이니 {주}께 거룩하니라. 누구든지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키되 그들의 대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여 영속하는 언약으로 삼을 것이니라. 17.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1:13-17).


여기서 분명한 것은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로서 백성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성일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죄로 버림받아 형벌된 삶을 살아가는 일시적인 세상의 날 중에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이 성도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제 칠일을 하나님의 성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날을 성일로 지키지 않고 평일처럼 멋대로 보내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죽일지라. 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이 없는 자는 곧 구원받지 못한 이방 백성과 같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단순히 그 날에 한 의식이나 규례를 따져 지키려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안식년과 희년이 있는데 그것이 안식일로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로 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나라 된 안식으로서 평안하고 거룩한 삶으로 실현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는 못 미쳤던 것입니다.


≼교회 된 우리에게 주어진 안식으로서 주일≽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은 주일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제 멋대로들 입니다. 다른 것은 다 개혁 한다고 떠들면서도 주일에 대한 개혁은 없습니다. 주일을 성경적으로 찾아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나 강조가 없습니다. 오히려 개혁한다는 자들로 인해 주일이 평일처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지도자들부터 주일은 희미해졌고 앞서서 주일을 지워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 같으면 율법주의자로 본다거나 구약 시대를 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일은 안식일과 같은 것입니다. 안식일이 오실 메시야 안에서 하나님 나라로 구별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원의 안식으로서 한 증거가 되는 거룩한 날이라면 주일은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로 구별되어 교회 된 자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이나 주일이나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 중에 수고와 슬픔의 날이요 헛된 날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모든 인간들 중에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구원으로 부르시고 그 구원을 기억하며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특별한 한 날인 하나님의 날을 주셨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안식일이요, 오늘날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에로 구원이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된 교회에는 주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때부터는 안식 후 첫날이 되는 여덟번째 날을 주의 날로 모여 구원을 기억하여 감사하고 그날을 온종일 교제하며 복음을 나누면서 온전히 하나님 나라 된 모습과 선한 행실로 보내었던 것입니다.


주일은 안식 후 첫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고 부활하신 날로서 구원의 완성으로 시작된 주님의 날인 것입니다. 제자들과 초대 교회는 이날 모이여 교제를 가졌고(요 20:19) 주일 온종일을 복음의 은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행 20:7).


무엇보다 히브리서 4장 6-11절을 보면 여호수아를 통해 약속의 땅으로 주어진 안식 말고 안식한 때가 하나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먼저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식인 하나님 나라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안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구원의 기업으로 시작되고 그것을 기억하며 누리도록 주어진 날이 안식일이요 이 안식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구원으로 오늘날 교회에 시작되고 누리도록 주님의 날로 주어진 날이 주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안식인 거룩한 구원의 날로서는 같으나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요, 주일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온 세상 중에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로 실현 된 교회에게 주어진 주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되고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점진 성으로 볼 때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기업의 은혜요 주일은 그리스도로 성취된 주의 나라의 은혜로 발전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이제는 온 땅으로 확장되고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안식일을 안 지키고 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안식의 본질과 의미를 담고 가르친 구약에서 안식일의 규례를 따라야 하며 또한 예수 메시야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신 입장에서 가르치신 새 계명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13절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신 일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이삭을 잘라먹은 일로 유대주의자들은 안식일을 위반했다고 정죄하고 비방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원의 안식으로 주어진 안식일을 모르고 의식적으로 또는 외식 적으로만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시면서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가 그것을 붙잡아 올리지 아니하겠느냐? 그러하거든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잘 행하는 것은 율법에 맞느니라.”고 말씀하면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볼 때 이제 우리에게 있어 주일이 어떻게 지키며 보내야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이나 오늘날 교회된 우리에게 주일이나 그날은 구원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영원한 안식을 주시려고 오셨음으로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셨는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즉 선을 행한다는 것은 그날에 주인 되신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주의 날을 세상 평일과 분명 구별하여 온전히 거룩하게 하나님 나라 된 선한 모습을 찾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욱 우리는 모든 인생의 날을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주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시작된 날로 알고 계속 우리 모든 삶이 주의 날로 실현되어 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주일에 대한 기준과 중심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주일은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의 예배로 교회들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흐름이나 여러 가지 형편이나 다수의 의도를 따라 예배가 변경되거나 줄여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거져 주신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데 있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으로 예배하는데 종일토록 전념해야 합니다.


“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으니 7.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엡1:4-7)


주일은 주님의 부활 하신 날입니다. 물론 모든 날이 다 주의 날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날에서 교회가 날마다 모여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여 온전히 한날을 성일로 주와 공적인 예배로 교통하고 하나님 나라 된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며 선을 이루도록 구별시켜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거룩함이 세상 날 중에 거룩한 한 날로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 날은 예배를 경건히 잘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예배를 통해 주님과 교통의 은혜를 더 입고 그때 주시는 구원을 이루는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 나라를 다른 모든 날에도 실현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온 하루를 복음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구원의 모습과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 된 공동체의 모습이 있고 더나가 평일의 삶에도 실현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모든 시간들을 예수님 말씀처럼 마땅히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 된 모습을 찾는 것으로 구원의 은혜를 가지고 서로 돌아보고 안위하며 구원의 유익을 위해 서로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교회가 함께 도모해야 합니다.


주일에는 평일처럼 사사로운 말이나 사적인 일들과 육신의 흥과 기분을 위한 오락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주님 안에서 더 기쁨을 얻고 존귀해 짐을 얻고 약속된 하나님 나라로 자라간다고 이사야는 증거 했습니다(사 58:13-14). 물론 평일처럼 사적인 일을 위해 상거래도 해서는 안 됩니다. 포로 된 생활로 세상처럼 살았던 유대백성이 해방되어 돌아와서도 안식일에 상거래를 하자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하는 악을 행하여 망한 조상들같이 한다며 강하게 책망합니다.


15. 그때에 내가 보니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에 포도즙 틀을 밟고 곡식 단을 가져와 나귀에 실으며 또 그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여온 포도즙과 포도와 무화과와 온갖 종류의 짐을 실으므로 이에 내가 그들이 양식을 팔던 그 날에 그들에게 증언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들이 그 안에 거하며 물고기와 온갖 종류의 제품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 유다 자손에게 팔기에 17. 그때에 내가 유다의 고귀한 자들을 꾸짖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한 일을 행하여 안식일을 더럽히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도시에 내리지 아니하셨느냐? 그런데도 너희가 안식일을 더럽혀서 더 많은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임하게 하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에 예루살렘 성문들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할 때에 내가 명령하여 성문들을 닫게 하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그것들을 열지 못하게 하며 또 내 종들 중에서 몇 사람을 성문들에 세워 안식일에 어떤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라. (느13:15-18).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도 또한 그 무엇을 위해서 주일을 할애해 주거나 양보해 줄 수 없습니다. 주일은 분명히 주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새로운 날로 실현되어 가기 위해 내려 주신 축복의 날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일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 아닙니다. 교회 된 성도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주의 날로 거룩히 잘 지켜야 할 가장 중심된 이유는 주일을 통해 모든 날을 구원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여 올바로 경배하며 하나님과 성령의 교통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은혜를 입고 이제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가 되도록 이제 세상의 날과 세상의 일과 그리고 사사로운 인간 중심의 시간과 형편과 유익과 세속의 문화와 향락으로 빠지는 육신의 즐김과 믿음이 부족한 자들의 요구로부터 주일은 거룩히 지켜져야 합니다.


어떤 자들은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인데 주일만 지키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요, 하나님 나라 된 모습과 삶으로 이루어가기 위해서 주일은 더욱 성수돼야 하는 것이며 구원이 시작된 날로 구원을 찾아가며 실현시켜가는 날로 온종일 거룩히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일은 그날만을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삶이 하나님 나라로 발전 실현되어 가도록 위해 복음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세상에서 삶의 예배를 하고 무엇보다 교회가 모여 주님께 예배하는 성일인데 주께 올바른 예배를 바르게 구별해야하며 우리들의 모습이 사사롭거나 내 기분이나 형편 중심이 되서는 안 됩니다.


지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 많은 손해도 감수했고 핍박도 당했으며 순교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들은 믿음의 지조 없이 주일을 사정 따라 세상 물결 따라 지워가는 세대가 된 것입니다. 교회가 구원을 감격을 기억하고 이루어 감과 연결된 주일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자기 날처럼 세상의 평일처럼 맘대로 형편 따라 점점 지워 없애가는 어리석고 악한 이 세대 교회들은 이 점을 깨닫고 주일을 성령 안에서 구원의 교통을 가지며 복음 안에서 구원의 은혜와 유익된 날이 되도록 찾아가며 온전히 채워가는 참 개혁적인 변화가 오길 힘쓰며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된 우리에게 있어 구원을 올바로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것보다 더 보배롭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존귀한 주일을 지워 가야겠습니까? 교회는 교회된 자들이 모두모여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함께 신령한 공예배로 하나님께 감사 영광 돌리며 신령한 은혜를 입어 교회모습을 제대로 찾으며 거룩함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정녕 필요한 특별한 날 입니다. 세상은 가질 수 없는 그래서 성일인 것입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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