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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의 중요한 사본들에 대한 이해

하나님아들 2016. 8. 7. 23:48

성경의 중요한 사본들에 대한 이해


성경의 신 · 구약 원본은 기록되어진 후 1-2세기 어간에 모두 없어졌고, 현재는 원본을 베껴 쓴 필사본만이 수천 종 전해져 오는데 이것을 통칭 '사본'(寫本, Codex)이라 합니다.


1. 구약사본

구약 사본은 1947년 사해 쿰란(Qumran) 계곡에서 발견된 '사해 문서' 중 주전 시대(B.C.)의 것으로 보이는 구약 사본 외에는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주전 시대의 것은 없으며 모두 주후(A.D.) 시대에 작성된 것들입니다. 구약 사본은 현재 약 1,000여 개에 이릅니다.

1) 사해사본

'사해 사본'은 1947년 2월 어느 한 베드윈(Bedouin) 목동에 의해 사해 서쪽 유대 광야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쿰란계곡의 여러 암혈(岩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 사본'은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에 속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일 뿐만 아니라 구약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 사본학 연구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2) 나쉬 파피루스사본

'나쉬 파피루스 (Nash Papyrus) 사본'은 1902년 이집트 파이윰(Fayyum)에서 발견된 사본으로 구약 성경 중 출 20:2-17 ; 신 15:6-21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기록 연대는 대략 A.D. 1-2세기로 추정됩니다.

3) 맛소라사본

'맛소라 사본'은 맛소라 학파라 불리우는 일단의 학자들이 구약 사본과 역본들을 참고하여 만든 사본으로, A.D. 6-7세기 경에 완료되었습니다. 이 사본은 오늘날 대부분의 역본과 미쉬나(Mishnah, 유대인들의 성경은 '쓰여진 법'(written law, 성문법)으로 부르는 모세 5경인 토라(Torah)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언서(Nebim) 그리고 성문서(Kethubim) 순으로 중요성의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입으로 전해진 법'(oral law, 구전법[전승])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수많은 말씀들을 들었으며 이것을 글로 남기어 놓은 것이 모세 5경이고 나머지는 이를 문자가 아닌 구두로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것을 계속해서 전승해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전법에는 미쉬나와 탈무드가 있는데, 미쉬나는 6권의 책으로 되어있습니다. 1권은 씨(seeds; 농사에 관하여), 2권은 절기(Festivals), 3권은 여인(Women), 4권은 손해배상(Damages), 5권은 거룩 한 일(Holy things), 6권은 정결의식(Purifications)에 관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탈무드(Talmud, 탈무드는 '위대한 연구'라는 의미로, 모두 20권의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탈무드는 미쉬나를 해석한 것들을 덧붙여서 문화, 종교, 도덕, 전통 등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랍비 문헌들에 깊은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사본입니다.

4) 사마리아오경사본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 사본'은 전통적으로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사마라인들이 자체적으로 보존해 온 것으로, 이는 맛소라 사본보다 후기에 쓰여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본은 사마리아 종파의 입장에 따라 몇가지 사실이 수정 · 첨가되었으므로 그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5) 모세 벧 아셀사본
'모세 벧 아셀(Moses ben Asher) 사본'은 구약성경 전부를 포함하고 있는 사본으로 A.D. 890-895년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본은 '키텔 히브리 성경'(Kittel's Biblia Hebraica)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2. 신약사본

신약의 모두, 혹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신약 사본은 현재 약 5,000여 개에 이르는데, 이러한 신약 사본 중에서도 A.D. 2-8세기 까지의 초기 사본이 많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1) 시내사본

'시내(Sinaiticus) 사본'은 갈색 잉크에 안샬체(Uncial, 대문자)로 씌어진 완전한 헬라어 성경 사본으로 A.D. 4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본은 1859년 티셴도르프가 시내 반도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으로, 현재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2) 알렉산드리아사본

'알렉산드리아(Alexandrinus) 사본'은 A.D. 5세기 경 애굽에서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사본은 몇몇 절단 부분을 제외하고는 신 · 구약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입니다. 이 사본은 162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영국의 찰스 왕에게 증정한 것으로서, 현재 '시내 사본'과 더불어 '대영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3) 바티칸사본

'바티칸(Vaticanus) 사본'은 A.D. 4세기 중반에 기록된 사본으로 1481년 이래 로마 대(大)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신 · 구약성경 전체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히 9:14 이하 부분이 상실되었습니다.

4) 베자사본

'베자(Bezae) 사본'은 대략 A.D. 5-6세기 경 프랑스 남부 혹은 이탈리아 서부 지방에서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 3서 단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은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가 1562년 프랑스 리용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으로, 그가 이 사본을 영국의 케임브리지(켄터브리지언)대학교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Codex Bezae Cantabrigiensis)이라고 부릅니다.

                

타르굼의 기원


느헤미야기 8장을 읽어보자. 이 성경 본문은 율법학자이며 사제인 에즈라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율법을 낭독한 일을 전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BC 597-538)를 끝내고 되돌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세우고 성벽 공사도 끝낸 상황이었다(BC 445). 에즈라가 율법을 읽고 난 후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느헤 8,7-8). 여기서 에즈라는 히브리어로 된 율법을 읽었고 레위인들은 그것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하였을 것이다(→아람어와 히브리어 아래 참고). 백성이 율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이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이미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로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 아람어와 히브리어. 아람어 Aramaic language는 셈족 언어로서 BC 8세기에 아람인이 상업민족으로 서아시아 각지에서 활약한 후부터 국제통상어가 되었고, 아시리아나 신바빌로니아에서는 외교용어가 되어 고대 페르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까지 퍼졌다. 그러나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 이후 그리스어의 공용어화에 따라 아람어는 동방파와 서방파로 분열되었다. 서방파西方派에는 구약성서에서 쓰이는 아람어, 사마리아어, 그리스도께서 사용하던 팔레스티나 아람어 등이 있는데 시리아 일부에서는 오늘날도 쓰이고 있다. 동방파에는 바빌로니아 탈무드, 거기서 파생한 시리아어, 만데아어 등이 있고 현재도 아르메니아나 메소포타미아의 일부에서 쓰인다. 히브리어 Hebrew language는 BC 2000년대 중엽 북동에서 가나안에 칩입한 집단의 언어인 고대 아람어와 가나안어의 혼합언어이다. 고대 히브리어 자료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 헤브라이어Biblical Hebrew인데, 그 원자료는 부분적으로 이스라엘이 에집트 탈출 후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BC 13세기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그러나 후기 자료는 사해문서死海文書(BC 2∼BC 1세기)나 다수의 유대교 문헌과 같이 아람어의 영향 하에 있어서 중기 헤브라이어에 속한다. BC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 히브리어는 아람어화로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으며, 문자 언어로는 중근동中近東 지역에 산재한 유다교인들에 의하여 지켜졌다. 19세기 말에는 일상어로 부활하여 1948년 이스라엘이 재건되자 현대 히브리어는 아람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되었다.


다음으로 루가복음 4장을 읽어보자. 이 본문은 예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61,1-2; 58,2절을 읽는 장면을 전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시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4,16-17). 이사야서 본문을 읽은 후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4,20-21). 이 장면은 예수시대, 즉 서기 1세기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행하여진 안식일 예식의 모습을 잘 전하고 있다. 당시 팔레스티나 유다인들의 공통된 언어는 아람어였다. 즉 아람어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사용하였던 언어이다. 물론 당시 팔레스티나(舊 가나안)에서는 지역이나 사람들에 따라 그리스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루가복음 4장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예수는 먼저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로 읽고 곧이어 아람어로 번역하며 가르쳤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다인들의 회당 예식에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되었으며, 이로부터 오랫동안 이 아람어 번역과 해석이 구두전승으로 전해졌다.


고대 근동의 공용어 아람어와 타르굼


사실 아람어는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BC 332년) 이전의 수세기 동안 고대 근동지역의 공용어였다. 특히 바빌론 유배 이후 제2차 성전시기 팔레스티나의 유다인들에게 있어 아람어는 일상적 구어였다. 히브리어가 더 이상 구어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시기에 아람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인들을 위하여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에 따라 나오게 된 것이 아람어 번역 주석 성경인 타르굼Targum이다. 타르굼이란 원래 '번역'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팔레스티나 혹은 바빌로니아의 유다인들이 회당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놓은 성경을 가리킨다. 이 타르굼은 BC 3세기경부터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 Septuaginta(일명 LXX) 성경과 함께 그리스도교 이전에 생겨난 대표적인 번역 성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