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님을 놀라게 한 큰 믿음 (누가복음 7:2-10)

하나님아들 2016. 6. 30. 17:10

sg130811        주님을 놀라게 한 큰 믿음 (누가복음 7:2-10)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인 P.틸리히는 현대를 가리켜 삼무(三無)의 시대라고 진단한 바 있다. 즉 무감동, 무책임, 무관심의 시대라는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시대, 무감동의 시대요, 자기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의 시대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시대라고 말 하였듯이 현대는 이웃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무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이웃을 내 이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독일인 의사 플러챈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십 몇 년 전 북한에 많은 사람이 굶주려 죽어가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긴급의사회’의 일원으로 북한에 가서 1년 반 동안 의료 활동을 했습니다. 한 번은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 자신의 허벅지 살을 이식해서 치료를 해 주기도 하여 북한당국으로부터 친선 공로메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북한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은 북한의 불행은 김정일 체제의 잘못된 이념과 독재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서방 기자들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허가되지 않은 곳을 안내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를 비방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해서 북한에서 추방되었고, 이때부터 세계도처를 다니며 북녘 땅의 잘못된 체제를 고발하고 알리는 일을 시작했고, 중국에서는 탈북한 난민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플러첸박사는 “만약 당신의 옆집 아이가 부모에게 맞아 죽어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그 집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그 아이를 구해서 치료함이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그것은 당신의 나라이든 다른 나라이든 상관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하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인이며 돈도 잘 벌 수 있는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고국을 떠나 한국 땅에 와서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를 하는데,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정치권이나 남의 집 불구경 하는 정도로 무심하게 관심을 두지 않고 무관심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하는 사람이 플러첸 박사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로마 군인인 백부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그곳에 한 로마의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종 한 사람이 병에 들었습니다. 아무도 그 병을 고칠 수가 없어서 그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이적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부장은 유대 장로들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그의 종을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백부장의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백부장은 또 다시 벗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8절)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놀라셨습니다. 그의 믿음에 놀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부장의 벗들이 주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종은 이미 깨끗이 나아 있었습니다. 오늘 이 사건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것은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그의 믿음을 놀라워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대로 사랑하는 종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백부장이 칭찬 들어야 할 많은 덕목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독 그의 믿음만을 칭찬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고 없음”에 따라, “믿음이 크고 작음”에 따라 책망도 하시고 칭찬도 하십니다. 마17:17 보면 믿음 없는 세대를 호되게 책망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또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베드로가 바다 위로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자기도 걷다가 바다에 빠졌을 때 책망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마14:31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복음서를 보면 칭찬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이방인들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한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칭찬하셨습니까? 마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사랑이 담겨 있는 믿음

 

2절에 보면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었더니”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종은 주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평생 주인을 위하여 일하다가도 병들면 버림 받는 것이 종이었습니다. 백부장은 그 당시에는 재산에 일부로 취급 받았던 종을 사랑했습니다. 백부장은 한 지역을 맡아 수비하고 때로는 통치하는 직위였기에 그에겐 막강한 힘이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이 백부장에게 한 종이 있었는데 그가 중풍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인간 관심은 그가 비록 노예 같은 종의 신분이라고 해도 그 종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노예는 로마법에 따라 주인의 의지에 따라 짐승처럼 살 수도 있고 팔수도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중풍에 걸렸다고 했으니 이 종은 주인에게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입니다. 마치 고장 난 농기구를 내다 버리듯 이 종도 주인이 내다 버린다고 해도 항변할 처지도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 백부장은 중풍으로 인해 폐인이 된 그 종을 외면하거나 학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병든 하인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처럼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고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다고 할 때는 먼저 사랑할만한 조건을 따져 본 후 사귈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백부장에게 있어서 아무 쓸모없는 폐인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질만한 어떤 조건도 갖지 못한 백해무익한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은 병든 종, 폐인이 된 그의 종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백부장은 종의 병을 고침 받게 하기 위해 유대의 장로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5절에 보면 백부장의 심부름을 온 유대 장로들이 예수님께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라고 말했습니다. 백부장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의 군인입니다. 그런데 피지배국가인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사랑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 번은 외국의 봉사단체 회원들이 전라도 소록도에 있는 한센씨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간호사가 일그러진 몰골을 한 나병환자의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간호사에게 일행 중 한 사람이 나는 100만 불을 준다고 해도 그런 일을 못할 것이라고 말하니까 그 간호사 역시 나도 100만 불의 돈을 받고 하라면 못할 것입니다. 단지 주님의 은혜 때문에 이런 일을 기쁘게 한답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 준 은혜가 동기가 될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가 있고 도와줄 이유가 없는 사람도 도와주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하라’는 말이 56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인 목요일에 무려 44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전능하신 분이셨고 십자가를 지신 후에도 전능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변화시킨 것은 주님의 전능성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사랑이었습니다.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있었답니다.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남미 에콰도르의 와오다니(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간 뒤 실종된 사건입니다. 엘리엇과 친구들은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으로 아우카족 선교를 계획하고 실행했답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실종되었고 가족들은 이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으나 엘리엇과 친구들은 모두 아우카족의 창에 찔려 살해되었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을 미국 언론은 '이 무슨 낭비인가(What a waist!)'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답니다.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너무나 허망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허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대에 홀로된 아내들은 풀뿌리 캐먹는 법이나 도마뱀을 잡아먹는 법 등 정글생존훈련을 받았고, 짐 엘리어트의 부인인 엘리자벳 엘리어트는 2년 동안 간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남자는 다 죽여도 여자는 죽이지 않았답니다.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아우카족 마을로 들어가 정성껏 부족들을 섬겼답니다.

 

 

아기 날 때 아기 받아주고, 감염된 상처를 치료해주며 기생충약을 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농사법도 가르쳐주었답니다. 추장을 비롯한 모든 아우카족들이 이들의 헌신에 감동되었고 부인들이 본국으로 떠날 때에 아우카족 추장이 물었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이 고생을 하십니까?"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벳이 "남편들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죽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고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엘리자벳은 '이 무슨 낭비인가'라고 쓴 기자에게 남편이 휘튼대학에서 썼던 일기장을 보여주었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마라.' '이 쓸모없는 나뭇개비에 불과한 이 몸에 불을 붙여 주옵소서. 제 삶을 주의 영광을 위해 태워 주옵소서. 저는 오래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렀던 아우카족 전체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가운데 4명은 목사가 되었으며, 한 명은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나눌 줄 압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믿은 백부장

 

백부장은 예수님의 사랑과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특히 어려운 사람을 돌보시는 분이란 말을 듣고 자기 종의 병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방인인 자기가 감히 찾아갈 수 없어 대신 유대인의 장로들을 보내어 간청했습니다. 그에게는 신학적 지식은 없었지만 예수님에 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권세’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이 가진 권세의 배후에는 로마정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의 명령을 거역하면 로마의 권세에 항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로마의 권세가 이런 사람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 권세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권세는 명령이라는 말로써 그 위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백부장은 예수님께 “예수님, 주의 말씀 한마디면 천지만물이 다 만들어지는데 저희 집까지 오실 필요가 있습니까? 말씀만 해주시면 병이 깨끗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위대한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여기에 능력과 권세라는 말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란 ‘두나미스’라고 해서 힘을 말합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에는 두나미스가 있습니다. ‘권세’라는 것은 ‘익수지아’인데 이는 ‘두나미스’인 힘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경찰관은 힘이 없지만 힘이 있는 자동차를 호루라기 하나도 중지시킵니다. 경찰들은 힘보다 더 강한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늙어 몸이 약해졌을지라도 힘 있는 자식들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갑니다. 자식들은 ‘두나미스’즉 힘이 있지만 부모님들은 ‘익수지아’즉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늙어가는 부모에게도 자녀들을 축복하는 축복의 권세를 주셨은즉 이 권세를 우리는 자주 써 먹어야합니다. 백부장은 그리스도의 권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크게 기뻐하셔서 그의 종의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오늘 이 시간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와 “주여 말씀 한마디만 하옵소서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드려 응답받읍시다.

 

 

C. S. 루이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 의미에서의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평화와 행복은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믿을 때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우리가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련의 망명 작가인 솔제니친은 소련이 6천만 명이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붉은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하여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소련인들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이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 입니다.

 

 

백부장은 기도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백부장은 주님에 관하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들은 사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사실도 믿었고, 중풍병자를 치료한 사실도 믿었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실도 믿었습니다. 그가 믿음을 갖게 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보내서 자신의 종을 살려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가 믿는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하인의 병을 고쳐 줄줄 믿고 기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집사는 해군 사관학교 출신입니다 동기중에 박도수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장로요, 어머니가 권사요, 모태신앙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생도시절부터 술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삼사관학교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는 중인데도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운동장으로 아들을 찾아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차마 부모님께 그런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어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러면 부모는 말은 안 해도 눈치를 채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님이 강력하게 역사하니까 사람이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니까 술에 쩔어 살던 사람이 술을 딱 끊고 다른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공항에서 김기동 에게 그러더랍니다. 손을 꼭 잡더니 "기동아, 너도 언젠가는 돌아 올거야"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김기동선교사는 이 말을 들을 뒤로 늘 이 소리가 귓전에서 울렸다고 합니다. '기동아 너도 언젠가는 돌아올거야' 잠자리에 누우면 이 소리가 늘 귀에 맴돌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김기동은 주일날 가족들과 강원도로 놀러 가다가 정면충돌 자동차 사고를 냈습니다. 가족이 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김기동은 주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과천교회에 등록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중거하면서 고구마 전도법이라는 것을 개발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술에 찌들어 살던 박도수라는 사람은 미국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서 미국 해양수산부의 아시아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답니다. 박도수를 위해서 장로님 권사님 부모가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지금도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마침내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까? 기도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주님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우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조현석씨는 서울중앙침례교회의 장로님이십니다. 조 장로님이 국민일보 ‘나의 인생 나의 신앙’이라는 란에 개제한 ‘꼴찌였던 나를 하나님께서 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라는 제목의 간증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450명 중 꼴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려고 시험을 쳤는데 세 번이나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군대 가서 그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군종사병을 만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성경을 보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대 후 하나님께 대학을 가게 해달라고 날마다 새벽에 눈물로 매달려 기도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기억력도 좋아지고 공부도 아주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 국민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6년간 수업료를 전액 면제받게 되었고, 매월 20만원씩 학비 보조금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번에는 하나님 앞에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열심히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등으로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조장로님이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했더니 하나님께서 23회 기술고등고시에 수석합격하게 해주셨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수석으로 졸업을 해서 특허청 사무관으로 임용이 되었고, 서기관으로 빠른 진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특허청 일 때문에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특허청에 사표를 내고 특허법률사무소를 차렸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조장로님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무실을 차렸기 때문에 아침마다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2001년에 ‘신지식 특허인’으로 선정되어 최고로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450명 중에 꼴찌였던 그가 기도의 힘으로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기도를 만들고 기도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듭니다.

 

 

믿음은 겸손을 만듭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장교였습니다. 그는 육군 고급장교였기 때문에 식민지의 선생 정도는 우습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서 겸손합니다. 백부장은 자신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에게 친구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백부장에게 주님이 찾아가셔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자기 집에 오시는 주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높고 위대하시고 광대하시고 자신은 주님 앞에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겸손을 만들어내었던 것입니다. 겸손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면 주님 앞에서 누가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자 아이보리(Ivory)는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believing), 신뢰(trusting), 그리고 행함(doing)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온전한 신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신뢰에서 절대 믿음이 나오고, 절대 순종(doing)이 절대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부장 자신은 주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백부장이 일부러 겸손한 척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전통입니다.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이방인들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백부장은 그가 그 지역에서 대단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주님을 직접 초대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은 왕되신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벌레만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백부장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주둔군의 장교로서 교만한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자신이 겸손할 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 주시고 또 복주시려고 겸손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자꾸 고개를 치들고 올라오는 교만을 꺾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성도가 됩시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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