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선물
(엡 4:7-16)
우리가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어떤 성공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면 어떤 실패도 성공으로 결론짓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고기 먹고 싸우는 것보다 채소 먹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사랑하지 못하고,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는 인생의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고, 맛보아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부상은 주 안에서 하나 된 부부입니다. 그가 어떤 지위이고, 어떤 집에 사느냐가 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 사랑할 수 있는가, 서로 아끼고 존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가정을 대변하는 메시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성도, 성도와 목사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과 일치가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하나 되는 방법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원리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럼,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똑같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성격도, 생각도, 취미도 모두 다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룹니다. 그러나 취미가 같다든지, 성격이나 생각이 같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살펴보아도, 남자와 여자가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성격도 생각도 많이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많이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5년, 10년, 20년 살다보면 서로 점점 비슷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로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똑같은 사람 둘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쌍둥이에게도 적용되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과 원칙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각각 다르게 만드셨을 뿐 아니라 은사도 다르게 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으므로 모든 사람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로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은 비교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용모나 체질이나 은사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경멸하거나, 무조건 남의 것만 부러워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최대한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이 주 안에서 하나 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며, 수용하며, 공존하여, 거기서 아름다운 조화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고, 모든 지체들이 그 받은 은사대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의 띠로 하나 되어서,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교회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할 때 교회는 예배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제일 화려하고 큰 데가 어디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배당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 예배당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은 강대상입니다. 대부분 강대상에는 카페트도 깔고 꽃꽂이도 해 놓고 아름답게 장식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교회라는 공동체는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가운을 입고, 찬양대가 있고, 악기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교회가 강조해 왔던 부분입니다.
반면, 이웃과의 관계에서 볼 때,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일 뿐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불이 타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면서 존재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최근에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들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선교와 구제라는 주제로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선교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조는 예배당이나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낳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중요하고 예배가 중요하다고 그 점을 강조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교회는 이웃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선교와 구제를 주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한 쪽만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곤란합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그 자체를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교회가 교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모여서 교제하고, 교육하며, 훈련과 만남을 갖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교육을 위한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가 다 중요함을 성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할 때 이러한 측면들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장소로서, 불평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는 선교와 구제의 장으로서 그것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 존재함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민족의 고통과 아픔과 가난과 어려움 속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우리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교회의 온전한 모습을 감당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교회가 온전하게 하나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11절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를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도를 세워 주시고, 선지자를 세워 주시고, 목사와 교사를 세워 주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12사도를 의미하며, 그 당시에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교회에서 덕을 세우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언했던 사람들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오늘날에는 선교사를 의미합니다. 목사와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목회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왜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필요합니까? 그 목적이 그 다음 구절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라고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 온전케 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로 하여금 봉사하게 하며, 봉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예배하는 공동체요, 선교와 구제하는 공동체요, 훈련하며 사귐을 갖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훈련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견고한 성도로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즉 철저한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과 삶의 훈련을 통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문명과 과학 문명과 우상과 철학과 휴머니즘과 많은 사상들이 있는 잡다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만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자기 만족이며, 자기 위로입니다. 자기 양심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갔다 왔으니까 하나님이 교통사고 안나게 해주실거야’ 하는 식의 자기 위로인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교회를 다니면 ‘왜 귀찮게 나한테 자꾸 요구하지? 마음 편한 설교 좀 해 주면 안되나?’ 하는 등의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그저 위로해 주고, 그저 잘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성공한다고 말해주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 주고, 용서해 준다고 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적당히 해달라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훈련을 통해 분명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악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사탄과 싸우고, 자기 정욕과 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성도를 온전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믿음교회는 새로운 훈련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기본이 되어 있을 때 다음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 안에 “100일 성경완독표”가 다 들어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12장씩, 주어진 분량대로 읽으면 100일 만에 성경을 한번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성경은 최소한 자기 나이만큼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100일 성경완독대행진”에 모두 다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한 몸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몇 사람만 하면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모든 성도들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동참함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인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한 번 읽지만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한 번씩 읽으면 넉넉하게 100번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읍시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한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짐으로, 어떠한 상황이든지 요동치거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두 번째 훈련은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에 만납시다”라는 표어로 매월 첫날은 모든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는 날로 정했습니다. 한 달 30일 가운데 29일은 “좀더 졸자. 좀더 자자”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매월 1일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에 만납시다” 새벽에 만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멋진 인생입니다. 물론 매월 1일 하루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벽을 깨울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목회자가 가장 많이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새벽에 만나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껏 늘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한믿음 교회 새벽제단에 12명의 기도용사를 보내주시옵소서” 처음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새벽을 깨우자는 말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난 주 화요일 새벽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응답을 통하여 우리 한믿음 교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믿음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한믿음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새벽에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나와 새벽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새벽 체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왜 하필 새벽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경건생활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그것을 꼭 새벽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만나의 사건을 통해 풀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늘 떠돌아다녀야 했기에 그들에게는 안락한 집이 없었습니다. 그저 잠시 유숙할 처소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걸어야 했고, 저녁이면 텐트로 만든 간이 숙소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새벽이라는 시간은 우리만큼이나 일어나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만나를 새벽에 주셨고, 새벽에 거두게 하셨습니다. 새벽에 무슨 신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부담스럽게 새벽에 만나를 거두게 하셨을까요? 모두 깨어 있는 정오나 해 질 즈음같이 좋은 시간을 놓아 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새벽에 만나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새벽이 죽음과도 같은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날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잠 속에 빠져 의식 없이 누워 있다가 눈을 딱 뜨게 되는 것은 곧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 그 하루를 살기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에 그 만나의 사건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가 눈을 뜨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으실까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를 보면, 신령한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의 경건의 시간은 그저 기도하고 말씀 보는 일반적인 차원의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하루이기에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며,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을 기도와 말씀의 시간으로 삼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현저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다가오셔서 내 영혼을 만지고 지나가시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최고의 기적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새벽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새벽 시간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고단한 일과와 피곤해서 지친 생활 등, 새벽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몸이 약해 수면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밤잠은 없는 대신 아침잠이 많아 도저히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체질의 사람일 수도 있고, 빠듯한 일과 때문에 밤늦게 잠들 수밖에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밤 어느 때에 잠들었든지 간에 새벽에 광야로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른 새벽, 진을 나설 때에는 피곤한 몸으로 가벼운 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떠나는 발걸음이었지만, 광야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바구니에는 하루를 살아갈 생명과 같은 양식이 가득하였고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하루를 무슨 힘으로 살아갑니까? 여러분 안의 근심과 욕심을 이기고 밖의 시험과 고난을 이기며 살 힘을 어디서 공급받으십니까? 좋은 것은 항상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새벽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루를 이기며 살 힘을 주시려고 새벽에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주님을 만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을 이렇게 하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섬기러 세상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와 위치에 있든지 우리의 직업을 통해서, 우리의 건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질 때, 목사나 전도사만 섬기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가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이 주신 그 형편과 처지대로 함께 사역에 참여해서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섬기고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참여하게 되면 단순히 예배드리는 사람, 교회의 많은 사람들 중 그저 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몸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한 지체요, 구체적으로 하늘의 구역 식구, 성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찬양대, 안내, 차량 안내, 예물봉헌, 교사, 주방봉사 등 여러 가지 일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예배드리는 한 사람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예배드리는 모든 행위에 여러분의 지식과 힘과 건강과 믿음과 손과 발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십시오. 피아노 치는 사람은 피아노를 통해서, 노래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통해서, 안내하는 사람은 안내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봉사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학교 아동부에서 ‘한울 공동체’를 섬기고, 중고등부에서 ‘광명 사랑의 집’을 섬기고자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전도회와 남선교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여러 미자립교회와 단체를 섬기고 있는 것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걸인들이 왔을 때 매몰차게 내몰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교회에 수리하거나 손을 봐야 할 부분이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나오셔서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 봉사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수고하십니다”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저는 감격합니다. ‘내가 할 일은 새벽을 깨우는 것이다’라고 결단하시고, 매일 새벽을 깨우는 집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 부끄러워합니다. 다른 교회를 섬김에도 불구하고 매일 우리 한믿음교회 새벽 제단을 깨워주시는 할머니 권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형편과 처지와 여건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이 세상을 향해서 힘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 자신과 사귐과 교육을 위해서는 주일예배를 포함한 모든 공예배, 제1여전도회수요성경공부, 상담학교,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교회 학교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등이 모두 활발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됩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교회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사역이란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힘을 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에 나타난 교회론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목사와 교사와 전도자와 예언자와 선지자를 세웠고, 성도들을 훈련해서 봉사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론은 무엇입니까?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시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자기가 믿는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믿는 것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소신껏 사는 사람, 그 믿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불행 중 하나는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그 신앙이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입니다. 자기 스스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자기 혼자서는 신앙생활을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런 삶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권면하십니다. 그 성숙의 목표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것이라고 제시합니다. 엄청난 목표입니다. 이것을 부정문으로 서술한 것이 그 다음 말씀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만 위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무리 고생하고 아프고 힘들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를 업어 주는 것 외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의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적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어린아이는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아린아이는 본능적이고 감정적입니다. 어린아이는 절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이 말한 대로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유혹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잘 빠집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교훈의 풍조들 즉 도교, 불교, 힌두교, 명상, 철학 등 그저 세상에서 좋다는 것들 안에서 왔다갔다 흔들흔들합니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신앙으로부터 성숙한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 결국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신실한 성도가 모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숙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서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숫자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미국인 멜랜드(Doug Meland) 선교사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브라질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그 곳 원주민 폴리오 인디언들은 선교사 부부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선교사 부부가 의료 봉사로써 헌신적인 생활을 하자 이들을 ‘존경하는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선교사 부부가 원주민들의 문화를 익히고,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자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선교사 부부가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보고는 ‘이 분들은 하늘이 보내 준 사람’이라고 하면서, 멜랜드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존경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접하면 접할수록 매력이 있고, 사귀면 사귈수록, 수준 높은 신앙 인격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처럼 ‘백인’에서 ‘존경 받는 백인’으로, 다시 ‘백인 인디언’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목표가 분명하여 졌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는 믿음의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숙한 신앙의 인격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16절 말씀대로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봉사 등 영적인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생명력이 넘치는 여러분의 풍성한 삶과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우리를 권고하시며, 축복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일으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시간과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수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엡 4:7-16)
우리가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지 못하면 어떤 성공도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면 어떤 실패도 성공으로 결론짓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고기 먹고 싸우는 것보다 채소 먹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가 사랑하지 못하고,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하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는 인생의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고, 맛보아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부상은 주 안에서 하나 된 부부입니다. 그가 어떤 지위이고, 어떤 집에 사느냐가 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하나 되어 사랑할 수 있는가, 서로 아끼고 존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가정을 대변하는 메시지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와 성도, 성도와 목사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와 사랑과 일치가 있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하나 되는 방법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원리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럼,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똑같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얼굴도, 성격도, 생각도, 취미도 모두 다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룹니다. 그러나 취미가 같다든지, 성격이나 생각이 같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만 살펴보아도, 남자와 여자가 서로 그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성격도 생각도 많이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많이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5년, 10년, 20년 살다보면 서로 점점 비슷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서로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똑같은 사람 둘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쌍둥이에게도 적용되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과 원칙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각각 다르게 만드셨을 뿐 아니라 은사도 다르게 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으므로 모든 사람은 그 나름대로 독특한 의미로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은 비교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용모나 체질이나 은사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경멸하거나, 무조건 남의 것만 부러워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최대한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이 주 안에서 하나 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며, 수용하며, 공존하여, 거기서 아름다운 조화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과 온유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하고, 모든 지체들이 그 받은 은사대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의 띠로 하나 되어서, 주님을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교회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 볼 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할 때 교회는 예배 공동체로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제일 화려하고 큰 데가 어디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예배당을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 예배당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은 강대상입니다. 대부분 강대상에는 카페트도 깔고 꽃꽂이도 해 놓고 아름답게 장식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교회라는 공동체는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가운을 입고, 찬양대가 있고, 악기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교회가 강조해 왔던 부분입니다.
반면, 이웃과의 관계에서 볼 때,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일 뿐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불이 타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면서 존재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최근에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들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선교와 구제라는 주제로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선교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조는 예배당이나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낳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중요하고 예배가 중요하다고 그 점을 강조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교회는 이웃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선교와 구제를 주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한 쪽만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곤란합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그 자체를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교회가 교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모여서 교제하고, 교육하며, 훈련과 만남을 갖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교육을 위한 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가 다 중요함을 성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할 때 이러한 측면들을 다 고려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장소로서, 불평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는 선교와 구제의 장으로서 그것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 존재함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민족의 고통과 아픔과 가난과 어려움 속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우리 스스로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교회의 온전한 모습을 감당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교회가 온전하게 하나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11절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를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도를 세워 주시고, 선지자를 세워 주시고, 목사와 교사를 세워 주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12사도를 의미하며, 그 당시에 사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교회에서 덕을 세우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언했던 사람들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오늘날에는 선교사를 의미합니다. 목사와 교사는 말씀을 가르치고 목회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왜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필요합니까? 그 목적이 그 다음 구절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라고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직분을 가진 사람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 온전케 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로 하여금 봉사하게 하며, 봉사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예배하는 공동체요, 선교와 구제하는 공동체요, 훈련하며 사귐을 갖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이 지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훈련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견고한 성도로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즉 철저한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과 삶의 훈련을 통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물질문명과 과학 문명과 우상과 철학과 휴머니즘과 많은 사상들이 있는 잡다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주일에만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자기 만족이며, 자기 위로입니다. 자기 양심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갔다 왔으니까 하나님이 교통사고 안나게 해주실거야’ 하는 식의 자기 위로인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교회를 다니면 ‘왜 귀찮게 나한테 자꾸 요구하지? 마음 편한 설교 좀 해 주면 안되나?’ 하는 등의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그저 위로해 주고, 그저 잘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성공한다고 말해주고, 모든 것이 괜찮다고 말해 주고, 용서해 준다고 말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설교를 적당히 해달라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훈련을 통해 분명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악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사탄과 싸우고, 자기 정욕과 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성도를 온전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믿음교회는 새로운 훈련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기본이 되어 있을 때 다음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 안에 “100일 성경완독표”가 다 들어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12장씩, 주어진 분량대로 읽으면 100일 만에 성경을 한번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성경은 최소한 자기 나이만큼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100일 성경완독대행진”에 모두 다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한 몸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몇 사람만 하면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모든 성도들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에 동참함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인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록 한 번 읽지만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한 번씩 읽으면 넉넉하게 100번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읍시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한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짐으로, 어떠한 상황이든지 요동치거나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두 번째 훈련은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에 만납시다”라는 표어로 매월 첫날은 모든 성도들이 새벽을 깨우는 날로 정했습니다. 한 달 30일 가운데 29일은 “좀더 졸자. 좀더 자자”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매월 1일은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에 만납시다” 새벽에 만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멋진 인생입니다. 물론 매월 1일 하루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벽을 깨울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목회자가 가장 많이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가장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새벽에 만나는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껏 늘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한믿음 교회 새벽제단에 12명의 기도용사를 보내주시옵소서” 처음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새벽을 깨우자는 말도 그리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난 주 화요일 새벽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응답을 통하여 우리 한믿음 교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믿음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한믿음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새벽에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나와 새벽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새벽 체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왜 하필 새벽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경건생활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그것을 꼭 새벽에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만나의 사건을 통해 풀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생활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늘 떠돌아다녀야 했기에 그들에게는 안락한 집이 없었습니다. 그저 잠시 유숙할 처소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걸어야 했고, 저녁이면 텐트로 만든 간이 숙소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새벽이라는 시간은 우리만큼이나 일어나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만나를 새벽에 주셨고, 새벽에 거두게 하셨습니다. 새벽에 무슨 신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부담스럽게 새벽에 만나를 거두게 하셨을까요? 모두 깨어 있는 정오나 해 질 즈음같이 좋은 시간을 놓아 두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새벽에 만나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새벽이 죽음과도 같은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날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잠 속에 빠져 의식 없이 누워 있다가 눈을 딱 뜨게 되는 것은 곧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 그 하루를 살기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에 그 만나의 사건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가 눈을 뜨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으실까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사를 보면, 신령한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의 경건의 시간은 그저 기도하고 말씀 보는 일반적인 차원의 시간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하루이기에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며,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을 기도와 말씀의 시간으로 삼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현저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다가오셔서 내 영혼을 만지고 지나가시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최고의 기적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새벽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새벽 시간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고단한 일과와 피곤해서 지친 생활 등, 새벽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몸이 약해 수면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하는 사람일수도 있고, 밤잠은 없는 대신 아침잠이 많아 도저히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체질의 사람일 수도 있고, 빠듯한 일과 때문에 밤늦게 잠들 수밖에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밤 어느 때에 잠들었든지 간에 새벽에 광야로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른 새벽, 진을 나설 때에는 피곤한 몸으로 가벼운 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떠나는 발걸음이었지만, 광야에서 돌아오는 그들의 바구니에는 하루를 살아갈 생명과 같은 양식이 가득하였고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하루를 무슨 힘으로 살아갑니까? 여러분 안의 근심과 욕심을 이기고 밖의 시험과 고난을 이기며 살 힘을 어디서 공급받으십니까? 좋은 것은 항상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새벽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루를 이기며 살 힘을 주시려고 새벽에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주님을 만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을 이렇게 하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섬기러 세상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와 위치에 있든지 우리의 직업을 통해서, 우리의 건강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질 때, 목사나 전도사만 섬기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가 받은 은사대로 하나님이 주신 그 형편과 처지대로 함께 사역에 참여해서 다른 사람을 말씀으로 섬기고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참여하게 되면 단순히 예배드리는 사람, 교회의 많은 사람들 중 그저 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몸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한 지체요, 구체적으로 하늘의 구역 식구, 성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찬양대, 안내, 차량 안내, 예물봉헌, 교사, 주방봉사 등 여러 가지 일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예배드리는 한 사람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예배드리는 모든 행위에 여러분의 지식과 힘과 건강과 믿음과 손과 발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십시오. 피아노 치는 사람은 피아노를 통해서, 노래하는 사람은 목소리를 통해서, 안내하는 사람은 안내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봉사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학교 아동부에서 ‘한울 공동체’를 섬기고, 중고등부에서 ‘광명 사랑의 집’을 섬기고자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여전도회와 남선교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여러 미자립교회와 단체를 섬기고 있는 것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걸인들이 왔을 때 매몰차게 내몰지 않고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교회에 수리하거나 손을 봐야 할 부분이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나오셔서 시간과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 봉사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수고하십니다”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저는 감격합니다. ‘내가 할 일은 새벽을 깨우는 것이다’라고 결단하시고, 매일 새벽을 깨우는 집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 부끄러워합니다. 다른 교회를 섬김에도 불구하고 매일 우리 한믿음교회 새벽 제단을 깨워주시는 할머니 권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형편과 처지와 여건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이 세상을 향해서 힘있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 자신과 사귐과 교육을 위해서는 주일예배를 포함한 모든 공예배, 제1여전도회수요성경공부, 상담학교,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교회 학교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등이 모두 활발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됩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교회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사역이란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힘을 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4장에 나타난 교회론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목사와 교사와 전도자와 예언자와 선지자를 세웠고, 성도들을 훈련해서 봉사하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론은 무엇입니까?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시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합니까? 자기가 믿는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믿는 것과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소신껏 사는 사람, 그 믿는 것과 사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불행 중 하나는 예수를 오래 믿었어도 그 신앙이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입니다. 자기 스스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자기 혼자서는 신앙생활을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런 삶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권면하십니다. 그 성숙의 목표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것이라고 제시합니다. 엄청난 목표입니다. 이것을 부정문으로 서술한 것이 그 다음 말씀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만 위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무리 고생하고 아프고 힘들어도 이해를 못합니다. 자기를 업어 주는 것 외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의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적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만 아는 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어린아이는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아린아이는 본능적이고 감정적입니다. 어린아이는 절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본문이 말한 대로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유혹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잘 빠집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교훈의 풍조들 즉 도교, 불교, 힌두교, 명상, 철학 등 그저 세상에서 좋다는 것들 안에서 왔다갔다 흔들흔들합니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신앙으로부터 성숙한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 결국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신실한 성도가 모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성숙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서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숫자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거하고,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에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미국인 멜랜드(Doug Meland) 선교사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브라질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 그 곳 원주민 폴리오 인디언들은 선교사 부부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선교사 부부가 의료 봉사로써 헌신적인 생활을 하자 이들을 ‘존경하는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선교사 부부가 원주민들의 문화를 익히고,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자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선교사 부부가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보고는 ‘이 분들은 하늘이 보내 준 사람’이라고 하면서, 멜랜드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존경 받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접하면 접할수록 매력이 있고, 사귀면 사귈수록, 수준 높은 신앙 인격으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처럼 ‘백인’에서 ‘존경 받는 백인’으로, 다시 ‘백인 인디언’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목표가 분명하여 졌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입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는 믿음의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숙한 신앙의 인격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16절 말씀대로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봉사 등 영적인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함으로써, 생명력이 넘치는 여러분의 풍성한 삶과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우리를 권고하시며, 축복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일으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시간과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수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설교와 예화나라 3
글쓴이 : 희&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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