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9-13)

하나님아들 2016. 4. 15. 11:3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은 원래 없었습니다. 세상은 어둡기만 하였고 아무 모양도 형상도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어두움뿐인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셨고 하늘에 해를 지으셨고 하루 중에 밤과 낮을 구분하여 주셨습니다.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창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어두움만 가득한 세상에 빛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 곧 빛의 근원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가리켜 빛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요일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하루해가 저물면 어두움이 찾아 들면서 멀리 있는 것들이 희미해지면서 점차 가까이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더욱 어둠이 깊어지면 심지어 발아래 있는 것조차 볼 수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때가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무엇으로 그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아무리 강한 사람도 그와 같은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짙은 어두움도 작은 촛불 빛 앞에서는 항복하며 사라져 버린다면 하물며 찬란한 태양 빛 아래 버틸 어두움은 아주 없습니다. 어두움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빛은 어두움 보다 더 강력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태양은 창세 이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도덕과 윤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배은망덕함과 패륜과 온갖 사회악이 만연해가는 세상을 보면서 흔히 탄식하기를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간다는 말을 합니다.
이는 세상에는 물리적인 어두움과 더불어 또 빛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또 하나의 어두움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인 교육과 강화된 법을 통해서 세상을 바로 잡아 어두움을 물리치려고 하지만 갈수록 세상은 더욱 악해져만 가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온통 어두움뿐이었던 세상에 찬란한 빛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새로운 빛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 어두움의 날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모든 존재는 우연히 존재하거나 저절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미신이고 비과학적인 사고입니다.
세상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과학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사람이 만들 수 없는 만물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오늘 성경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존재가 태초에 말씀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들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여기서 만물을 지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만물 가운데 생명을 지으신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며 사람들의 빛도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태양아래 사는 인간이 영적인 어두움인 죄와 고통과 죽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그 어두움에 구원하시려고 생명과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러나 어두움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은 구원이요 생명이요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영접하지 않았다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왜 인간이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해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척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화
시민의 치안을 위한 경찰이 야간에 골목을 순찰할 때 다 반기는 것이 아니라, 범죄 용의자는 전혀 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의 죄가 드러날까봐 두려워하고 오히려 경찰을 싫어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머나먼 동방에서 이를 알고 경배하기 위해 헤롯왕에게 찾아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냐? 고 물었습니다.
헤롯왕은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와 하기는커녕 오히려 소동하고 나중에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아무 죄도 없는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습니다.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헤롯왕만이 아니라 지금도 어두움에 속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에 억눌려 살아가면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싫어하고, 거부하고, 미워하고,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어 빛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성경은 전에는 우리도 그와 같은 어두움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딛 3:3) “이전에는 우리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하며 육체의 즐거움을 따라 세상 일의 노예가 되었고, 악한 일을 하며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벧전 4:3) “이전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들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방탕하고,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술 취하고, 흥청망청 떠들며, 우상에게 절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러한 삶이 결코 행복과 자유가 아니라 마치 마약처럼 반드시 물리쳐야만 하는 어두움이기에 누구든지 그와 같은 어두움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영생의 길입니다. 행복의 길입니다.
그와 같은 어두움에서 어떻게 벗어나 구원을 얻고, 행복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었는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오늘 나도 그와 같이 보배로운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와 같은 긍휼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자식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참 빛이 오셨으니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세상에 빛이 있으라고 선포하실 때 온 세상에 찬란한 빛을 쏟아 부으셨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어두운 세상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참빛이요, 또한 어두운 세상에 빛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때가 되니 그 약속이 마침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고 오늘 성경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사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눅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물론 어둠과 죽음의 그늘아래 사는 동안 사람들은 죄와 허물로 시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셔서 그 눈을 어루만져 고쳐 주심으로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여리고에 사는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막 10:46)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 디매오의 아들인 바디매오라고 하는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막 10:47)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는 소리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막 10:48)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막 10:49) “예수님께서 멈추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이리 데리고 오너라.” 사람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안심하고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자네를 부르고 계시네.””(막 10:50) “그는 겉옷을 거기에 두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습니다.”(막 10:51)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보지 못하는 자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다시 보기를 원합니다.””(막 10:52) “예수님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즉시, 그는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오늘 우리도 고침을 받아야 할 또 하나의 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영원한 세계를 보는 눈을 밝혀 주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본다고 하지만 그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도 바디매오처럼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바디매오처럼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참 빛으로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것이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께서 세상에 사시는 동안 보지 못하는 눈을 고치시고 듣지 못하는 귀를 고치시고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의 두 다리를 고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신 것처럼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우리의 눈과 귀와 다리를 고쳐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눈과 귀와 두 다리를 고침 받아야만 1) 성경말씀을 통해 천국을 보고 2) 설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3) 고침 받은 두 발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평생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3. 영접하기만 하면

기독교라고 하면 이를 갈던 사울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많은 지식을 갖고, 권력과 결탁하여 지상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문 닫게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다메섹이라는 지방까지 추격을 할 정도로 기독교를 지상에서 몰아내는 일을 역사적 사명이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행 22:3) “`나는 유대 사람입니다. 길리기아에 있는 다소시에서 태어나 여기 예루살렘에 와서 가말리엘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선생의 문하생으로서 나는 유대의 율법과 관습을 철저히 지키도록 엄격하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도 남보다 더 열성적이어서 오늘 여러분이 나타낸 그 열성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손에 장을 지질일이고 그와 같은 사람이 예수를 증거하는 사도가 된다는 것은 누구의 설득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무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사울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태양 빛보다 더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아무것도 봉지 않던 두 눈에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게 하시고 다시 눈을 밝혀 새사람이 되게 하신 후 예수를 박해했던 그 입술로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아름다운 입술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 핍박자 사울이 전도자 바울로 이름을 바꾸고
 1)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혼자서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2) 과거에 자기처럼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신 예수를 증거하고
 3) 그 때문에 배고픔과 자지 못함과 갇힘과 수많은 채찍과 마지막 순교의 죽음을 당하는 날까지 그의 소원은 모든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었습니다.
 (딤전 1:15) “여기에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도 좋은 믿을 만한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도 두목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난 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 보냈던 옛날의 삶과 빛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자기를 변화시키신 후에 새로운 세계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빌 3: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여러 교회들을  세우고, 많은 성경을 기록하고, 여러 제자를 키우는 위대한 사도로 만대에 존경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두움 속에 사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우리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빛을 증거하는 빛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마 5: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물론 나의 지난날의 어두운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내가 어두움에 포로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나를 자유케 하시고 나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빛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지금도 나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사울이 바울도 변화된 것처럼 나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비결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누구든지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처럼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기만 하면 영원한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영접하는 자’라는 말(lambavnw, 람바노)은 참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 인격적으로 마음에 받아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전인격적으로 마음에 받아드린 다는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으로 확고하게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나에게 부여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감히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를 부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부모를 나의 아버지 어머니이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확고하게 믿을 때 하나님은 나를 자녀로 삼아주신 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현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 째 그 죄 값으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 째 그 죄값을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네 번 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의 죄가 그분의 희생으로 속죄함을 받아 죄 사함 받고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다섯 번 째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온 죄,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죄와 죄인 줄 알면서도 범했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라고 신앙 고백하는데, 영접하는 것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하고, 전인격적으로 진솔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고백의 종교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 모두를 ‘이제부터 제가 참 빛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구주로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두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 아니라 그와 같은 어두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참 빛되신 예수님을 비춰주는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제부터 나는 주님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주님으로 살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의 살아가는 목적이 되었고, 내 안에 살고 계시는 분이 주님이시고, 주님이 나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 : jx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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