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씩 주를 찬양
(시 119:163-165)
(시 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성경에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로 많이 쓰여 지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라는 말씀에 일곱 번씩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 구약 성경에서 맨 처음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복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그 일곱째 날이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는 말씀입니다.
그 외에 노아 홍수 심판 때 방주 안에 정결한 짐승을 일곱 쌍씩 들어가게 하신 일과 성막을 만들 때 성소를 밝히는 등대에 일곱 개의 등잔을 만들어 불을 밝히게 한 일과 제사장이 제단에 일곱 번 피를 뿌리려 제단을 성결케 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레 16: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가나안 정복 때 첫 성인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를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아니라 일곱 제사장, 일곱 양각 나팔, 매일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며 성이 무너지라고 외쳤을 때 여리고 성이 산산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 6: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2) 신약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일곱 번까지 용서할까요? 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일곱이라는 숫자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마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특히 요한 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 일곱 영, 일곱 금 촛대, 일곱 별, 일곱 등불,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등 일곱이라는 숫자가 가장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그렇다면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하고 강조하는 숫자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라이프 성경 사전을 보니 일곱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풀이하기를 ‘완전수. 하늘의 숫자 ‘3’(삼위 하나님에게서 유래)과 땅의 숫자 ‘4’(동서남북 땅의 네 방향에서 유래)를 합해진 것으로 보아 ‘7’은 ‘완전함’, ‘무한함’, ‘충만함’, ‘거룩함’을 상징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겠다는 말도 수학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와 같이 완전한 찬송을 드리겠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온전한 감사
다음 주일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영육 간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한 주간 앞두고 어떻게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감사 일곱 번 감사, 일곱 번 씩 감사하는 감사가 될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화
이제는 감사 운동이 교회안보다 일반 사회에서 군대 회사에서 더 뜨겁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면 전라도 순천시에서는 감사운동에서 한술 더 떠서 범시민적으로 ‘사감운동’이라는 것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데 사감 운동이라는 말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의 줄인 말로 시장이 초등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사감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교회 밖에서조차 이처럼 감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면 하물며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가 잘 안다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더욱 감사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감사를 일상화하고 습관화하고 체질화하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감사를 생활화하고, 습관화하고, 체질화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첫째, 범사에 감사하지 않으면 범사에 원망 불평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밤과 낮 둘 중에 하나에 속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 삶에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범사에 원망 불평하며 살 것인가? 둘 중에 하나밖에는 다른 선택의 폭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THANK YOY,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며 사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제일 먼저 가르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바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가장 잘하고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하며 살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사는 것이 이미 복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빈손을 태어났고 또한 빈손으로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유가 많아질 때는 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소유가 줄어들었을 때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그 믿음이 바로 고난의 사람 욥입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의 신앙은 남에 것을 도적질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는 것도 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범죄’라는 말(af;j 하타)은 ‘빗나가다, 잘못을 행하다, 죄를 짓다’라는 뜻으로 왜 원망 불평하는 것이 죄인지를 깨우쳐 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지 않고 원망 불평하는 것이 범죄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과녁을 맞추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원망하는 것은 그 과녁을 빗나가는 잘못이기 때문에 죄라는 것입니다.
셋째, 감사는 예비해 놓으신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것은 행복해야 감사가 나온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감사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그것이 바로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한 죄입니다. 에덴동산은 먹고 마실 것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전혀 없는 지상 낙원이요 행복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가 그곳에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황량한 들판에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달랑 떡과 포도주를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마 15: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눅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첫 아담이 잃어버린 낙원과 생명나무의 열매를 회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 일곱 번 감사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기 바로 ‘모든 감사, 온갖 감사, 통째 감사, 만사 감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가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하겠다는 말은 수학적인 일곱 번이라고 하기보다 완전을 뜻하는 일곱의 숫자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찬양’이라는 말(ll'h 할랄)은 ‘자랑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으로 할렐루야! 라는 말의 어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시편 기자는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결심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법과 통치가 감사하여 하나님을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정의로운 통치를 깊이 묵상하고 각자에게 베풀어 주신 자비하심을 헤아리게 되면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고, 주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은 천천만만의 수양의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좀 더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시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그 대표적인 감사의 사람을 성경에서 꼽는다면 시편 136편의 기자입니다. 시편 136편은 첫 절부터, 마지막 26절까지 매절마다 감사하였는데 그 중에 몇 절을 요약을 하면 이렇습니다. .
(시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시 136: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시 136:11)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시 136: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시 136:16)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시 136: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시 136:21)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시 136: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시 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시 136: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시 136: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기자는 천지를 만드신 시작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오늘 시편 기자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온전한 감사요, 범사에 감사요, 통 큰 감사요, 총체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국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 전반부는 1-11장까지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하는 교리적인 부문을 가르친다면, 12장 후반부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신앙의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나 중심에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과연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는 삼행시라고 할 수 있는 살전 5:16-1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범사’라는 말(pa'", 파스)은 ‘모든, 온갖, 전체, 어떤 것이든지’라는 말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qevlhma, 델레마))은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소원,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과 우리를 향하신 소원은 일 년에 한 두 차례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사라는 말이 의미하는 ‘모든 감사, 온갖 감사, 통째 감사, 만사 감사’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3. 감사의 체질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례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10: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와 같은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야 할 뿐 아니라 그 듣고 깨달은 말씀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야만 행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지키는 자’라는 말(threvw, 테레오)은 ‘보존하다, 조심하다, 주의하다, 복종하다, 따르다’라는 뜻의 현재 진행 능동태로 흔히 말하는 현재 진행형 ing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 기자가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겠다는 고백에 말씀을 우리가 지금 읽고 들었다면 우리도 마음에 간직하고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하루에 일곱 번씩 주께 감사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하루에 일곱 번씩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매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일곱가지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일주일 동안 매일 한가지 씩 차례로 감사함으로 일주간 칠일 동안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준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면 일주일이 칠일이니까 하루에 한 가지씩 집중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 저금통을 식탁에 준비하여 놓고서 그 감사의 기도를 실천한 날만 각자의 형편대로 헌금하였다가 그것을 모아서 일년 후인 내년도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드린다면 매일 감사, 매주 감사, 매달 감사, 일 년 감사를 실천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를 실천하는 동안 내 마음과 우리 가정에 찾아와서 뿌리를 내렸던 불청객인 원망과 불평이 어느 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도 바라고 원했던 기쁨과 평화가 아침에 돋는 해처럼 떠올라서 비추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일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시편 기자와 같이 일곱 번 감사 찬양에 대한 기도 제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기도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사기도입니다. 셋째 성령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입니다. 넷째 가정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다섯째 교회를 통해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섯째 건강 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일곱째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를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금번 추수감사헌금은 한 주간 동안 매일 한가지 씩 집중적으로 감사하여 한 주간 동안 일곱 가지 감사를 실천하여, 추수감사 헌금 봉투에 기록하여 오는 추수감사절이 하나님께 드리는 일부터 범사에 감사, 일상적인 감사, 습관화된 감사, 체질화된 감사의 북을 받는 금번 추수감사절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감사를 매일 어떻게 감사할 것인지 샘플로 한두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도
오늘이 주일이고 일곱 가지 감사기도 중에서 제일 첫 번째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면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나의 아버지요 나는 그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의 기도가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그 은혜에 대해서 늘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영적인 고아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와 근심 속에 살던 믿음없는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늘 동행하여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기도를 하면 됩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기도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저 감사할 것뿐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전능하심과 지혜로우심과 아름다우심과 오묘하심을 잘 드러내고 있음을 깨닫고 그 하나님께 감사만이 아니라 찬송과 영광을 돌리자는 것입니다.
찬송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에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오늘 부터는 전과 달리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기도하면 됩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여섯 번째 건강에 대한 감사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범사에 불평하는 어리석은 사람, 둘째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평범한 사람, 셋째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설령 건강이 좋지 않아도 이렇게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예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는 '지선아 사랑해'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선 씨가 출연했다. 1978년생이고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 2000년 7월 30일 오빠의 차로 귀가하던 중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40번이 넘는 대수술과 재활치료를 거치며 살아남았다. 그 후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냈지만, 정작 그녀는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2000년 가을 의로 파업으로 담당 의사가 없는 탓에 4개월 이상 치료와 수술이 늦어졌을 때 매일 진통제로 버티며 피로 흥건해진 베개를 갈아치워야 했다. 사는게 아니라고 생각될 때만큼 비참하였을 때 엄마는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원망과 불평이 없어지고 감사거리가 보이기 시작햇다는 것입니다. 제발로 화장실을 걸어가는 것도,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입에 밥을 넣을수 있게 된것도, 식구들과 눈을 맞추게 된 것도, 다 감사하는 중에 자기 입술로 감사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기에 도저히 감사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지선씨는 감사하였습니다. 마치 성경의 욥과 같이 그리고 이지선 양과 같이 고난마저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그녀는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알게되었고 1일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글을 적어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지 않기 때문에 일곱 가지를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오늘 소개한 일곱 가지 기도의 제목을 놓치지 말고 한 주일간 매일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적절한 기도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매주 감사하며 사노라면 일년 52 주 내내 감사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한 가지씩 감사를 한 주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마시고 아침에 감사하지 못했으면 점심이라도 점심에 못했으면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도 감사 기도를 계속한다면 일주간 감사가 되고, 일년 감사가 되고 평생 감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가 바로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한 하루 일곱 번 씩 주를 찬양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매주, 매년을 감사기도하고, 감사 찬송하는 성도는 오늘 시편 기자처럼 거짓된 세상에서도 거짓을 미워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시 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그러한 감사를 실천하는 성도들이 가는 앞길에 어떤 장애물도 가로 막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막아주시고 그 장애물들이 결국은 나를 보호하시는 담이 되어 주시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시 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사 57:14]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행복을 부르는 초대장이고, 이미 주신 행복이 떠나지 않도록 묶어두는 사슬입니다.
오는 추수 감사절에는 헌금이 아니라 우리도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조차 하나도 빼놓치 말고 감사의 그릇에 담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하루 일곱 번씩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겠노라고 결심 한처럼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오늘 시편 기자처럼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고 주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 일곱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감사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감사를 일상에 실천하기 위해 매일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감사하면서 하루를 살고 한 주간을 살고 일년을 살고 평생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기로 다짐합시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둘째 예수님의 은혜를 셋째 성령님의 은혜를 넷째 가정에 주신 은혜를 다섯째 교회에 주신 은혜를 여섯 번째 건강주신 은혜를 일곱 번째 감사하는 믿음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원년이 되는 한 주간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그렇게 찬송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지고 주께 감사할 때 우리의 일상에 발목을 잡고 있던 장애물들이 하나하나 제거되어지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시 119: 165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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