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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험한 짬뽕 혼합신앙

하나님아들 2012. 9. 4. 23:29

위험한 짬뽕 혼합신앙

글/황부일 목사.

 

지금 우리는 신앙의 혼란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기독교가 혼합주의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개신교 안에 짬뽕 신앙이 난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매우 심각하고 위험하다고 보는 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복잡다단하고 다원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잘 맞는 것으로 보는 자들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 지면서 북왕국 이스라엘 왕조는 여로보암왕 때부터 앗수르로 인해 망할 때 왕이었던 호세아 때까지 한결같이 형성되어 온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혼합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로보암은 형편과 사정에 따른 인간의 생각으로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에 우상+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혼합신앙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은 자신도 범죄하고 백성들도 실족케 하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왕상12:25-33)

 

그래서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혼합주의 신앙을 가장 잘 지적했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결국 혼합주의 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 멸망한 것입니다. 나중에 앗수르로 인해 여러 족속들이 사마리아에 들어와 살때는 혼합주의 신앙이 극치를 이루어 각 족속들은 각기 자기 신상들을 만들고 자기 민족의 풍속대로 잡신과 미신을 섬김과 동시에 여호와도 섬겼다고 했습니다.(왕하17:27-33)

 

교회 역사를 한마디로 말해 본다면 그야말로 신앙의 혼잡과 혼란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개종한 유대인들로 인해 율법주의적인 신앙이나 외식적인 표징 중심의 신앙이 요구되고 있었고 갈라디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변질시킨 다른복음이 들어와 성령으로 시작된 구원을 이루는 신앙이 육체로 끝나는 인간 중심으로 전락했고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주의 신앙까지 스며들어 바울의 증거까지 거스르면서 다시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종노릇하기까지 했으며 골로새 교회는 영지주의 자들로 인해 금욕주의 신앙이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신앙이나 천사 숭배 신앙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로마로 간 기독교는 로마 헬라주의와 문화에 뒤섞이어 교황중심의 로마 카톨릭으로 변질 되었고 중세 때는 스콜라 철학이나 산업적 시대 흐름을 따른 물질주의가 로마 기독교를 서양 종교로 확산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당시 종교개혁은 실제로 이런 혼합주의 신앙에서의 구별이었고 정통적 기독교 신앙을 순전히 찾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개신교들은 교회 역사상 가장 심한 혼잡된 신앙에 빠져 있습니다. 신앙이 마치 다양한 기호식품처럼 되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여러 가지가 다 통하는 세상처럼 그것을 좋아하고 서로 권장하며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 들이고 적절히 섞어 잘 버무리고 혼합 하는데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울 정도입니다.

 

개신교 중에 개혁파 교회로서 장로교회는 정통적 기독교 신앙을 지키며 복음에 합당한 순전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늘날 보면 간판만 장로교회이지 신앙을 보면 짬뽕입니다. 카톨릭식 십자가상이나 성상이나 그들의 영성이나 형식 양식들을 그대로 따르거나 흉내내고 장로교 교리나 신학과는 정반대되는 알미니안주의도 버젓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고 예수를 만사 해결사로 아는 오순절 계통 신앙도 잘 어울리고 있으며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박애주의자로 혁명가로 보며 지상천국을 바라는 진보주의 신앙까지 잘 통하고 어깨동무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다가 애초부터 자리하고 있는 샤머니즘에서 나온 신비주의나 기복신앙은 대다수 교회에 마치 정통신앙처럼 되어 버렸고 인본주의 사상이나 철학과 세상 유행적 문화나 풍습등은 교회 성장의 물결을 타고 들어와 어울려져 그야말로 거룩한 교회라 칭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철학의 한 부분이며 심리학이나 심령과학 정신의학에서 의식 개발이나 정신적 치료 방식으로 나온 적극적 사고방식이 교계로 들어와 유행처럼 번지고 이제는 버젓이 기독교 신앙의 좋은 중심이나 자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이념이나 민족주의 등도 들어와 접목하고 기독교 이상주의 신앙이나 또한 민족종교처럼 되어진 경향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세상의 마케팅식 수단이나 기업적인 운영이나 조직이 들어와 신앙을 경쟁적이고 상급적으로 만들었고 세상 대중문화의 여러 모습들이 들어와 흥미위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세상도 아니고 교회도 아닌 중간짜리 공연적인 열린예배 행사나 친교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현대판 축제적 성공적 신앙으로 요란합니다.

 

이로 보건대 오늘날 혼잡된 신앙은 그야말로 국제적이고 초교파적이고 유행적이며 공통적으로 탈성경적이며 인본주의 적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신앙이 아닌 것들이 판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는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예고 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봉착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기독교 신앙이 점점 짬뽕되어져 가는가에 대한 요인을 찾아 볼것 같으면 정통성 있는 기독교 신앙의 흐름보다 곁가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다단계의 번짐처럼 복음에 합당한 신앙이 안된 자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되어 어떻게 해서라도 크게 성장 하는데만 목적을 두고 그 성공을 위해 유익되고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끌어 들이고 답습하면서 또 그 제자에 그 제자를 갖가지로 산실시켜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신학의 부재와 복잡 다원화된 시대적 조류의 요구등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가칭 교회들이 많고 교회 사업주의자들이 많으며 또한 이들의 번성으로 인해 도전받고 미지근해 지는 라오디게아 교회같은 복음 중심이 없는 기성교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잘못됨을 모르고 이들 서로가 그것을 용인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째든 다원주의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기독교 이름안에 있고 많은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다 해도 혼합주의 신앙은 현대판 이교도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신앙이 이방종교화 내지는 세속화 되어가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신 적이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해 혼합을 금하고 순전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녀의 의복을 바꾸어 입지말라 하셨고 포도원에 두 종자의 씨를 섞어 뿌리지 말라 하셨고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 시키지 말며 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게 말라하셨고 양털과 베실로 섞어짠 것을 입지말라 하셨습니다.(레19:19, 신22:5,9-11) 이것은 창조의 질서를 잘 지키라는 의미도 되지만 거룩한 하나님 백성된 자들은 모든 삶속에서 혼합을 금지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라 순수함을 이루어 가야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이방을 따르고 그들과 혼합하고 그들의 헛된 신앙을 본받고 스스로도 자기 중심의 신앙을 만들어 혼잡해 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경고 하셨고 또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 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18: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말년에 다른 신앙은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했고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않게 보이거든 너희 좋은대로 섬길자를 택하라(수24:15)며 분명한 신앙을 요구했습니다.

 

마지막 때 교회로 예고되는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중에 책망만 받은 라오디게아교회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교회였는데 주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심으로 토하여 내치신다면서 차든지 덥든지 분명하게 하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형편대로 좋은 대로 만들어 가는 신앙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마6:7)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한말을 반복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신앙은 저마다 숭배하는 대상에게 자기들의 기대나 형편적 소원성취를 위해 주문으로 빌고 하는 신앙을 경계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보면 떡을 먹고 더 배부르기 위해 또 병들고 죽어 썩을 육신의 치유를 위해 불안과 압박과 지배에서 벗어나 좋은 세상 실현의 해결을 위해 각자의 소원과 목적을 가지고 예수께 찾아온 무리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처럼 각자 기대에 맞게 기복적으로 감정적으로 이적주의로 사회구원으로 모두에게 맞추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썩을것을 구하지 마라 하셨고 이방인처럼 구하지 말라 하셨고 그런 인간중심의 것들을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고 메시야를 통해 이상적인 유대나라로 회복을 꿈꾸는 유대주의 신앙을 꾸짖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본주의가 들어온 골로새교회를 향해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고 증거했고”“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 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오직 진리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되신 그리스도의 터위에 세워진 것이 맞다면 그 위로 나타나지는 모습도 오직 진리와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다양한 재료로 조리된 여러 가지 음식이나 취미에 따른 분야별 의식이나 문화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부르심의 원리에 따라 한가지 구원의 신앙으로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또한 계속적으로 구원을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기에 그 어떤것도 혼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교회 구원을 이루어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복음의 신앙을 위해 일심으로 협력하라(골1:27)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맞다면 뒤섞여 있는 잘못된 신앙이나 인간적인 것들을 진리로 분별하고 미련 없이 개혁하고 순전한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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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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