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예배 기타!!!

[스크랩] 敎 會 論 3/4

하나님아들 2015. 1. 1. 22:01
 
敎 會 論 3   
  
IV. 교회의 사업 (The Work of the Church) 
1.구원을 전하는 일 
만민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업이요 사명이다.(마28:19,20) 
그리고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구원의 계힉의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교회의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구원을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실제화 해야 한다. 
2. 예배의 수단을 제공하는 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예배 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들이 인생의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 때와 또한 궁핍 속에 빠졌을 때에 
저들은 이 예배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히도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이 곳에서 인간의 예배와 간증과 기도를 들으신다. 
3. 종교적 친교를 제공하는 일 
인간은 사회저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는 교제를 갈망하고 있으며 또한 우정을 나누기를 원하고 있다. 
자연히 인간은 이해 관계가 있고 같은 경험과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일을 
친교의 기반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란 결국 같은 영적 체험을 나누는 사람들이 하나의 형제로 모인 유기체이다. 
따뜻한 우정을 어디서든지 찾아 볼 수 있었던 현상이 초대 교회의 현저한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계와 같은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세계에서 개인의 인격은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고독과 절망의 의식을 망각해 버릴수 있는 정다운 교제를 갈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교회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의 힘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교의 힘이었다. 
이와 같은 교회 안에서의 친교는 세속적 사교와는 엄연히 구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 교회 안에서는 계급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모든 남녀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4. 도덕적 표준을 유지하는 일 
교회는 도덕적 無知를 추방해버리 "세상의 빛"이요, 
또한 도덕적 부패로부터 세상을 보존시키는 "세상의 소금"이다. 
교회는 인간에게 올바르게 죽는 방법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방법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는 인간의 행위와 생활의 영역에 있어서의 모든 규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는 도덕적 경고를 발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도덕적 위험 지구에 횃불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敎 會 論 4   
  
V. 교회의 의식 (The Ordinances of the Church) 
초대 기독교는 결코 의식 주의적 종교는 아니었다. 
언제는 초대 기독교의 중심은 성령을 통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있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딱딱하고 요지부동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 시대와 장소에 가장 적합한 예배 의식을 채욕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의식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매우 긴요한 의식이다. 
이 의식들은 성격상으로 보아 매우 신성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다. 
즉 물세례와 성찬식은 매우 긴요한 의식이다. 
이 의식들은 성격상으로 보아 매우 신성하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聖禮라고 칭한다. 
또한 이들을 가리켜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정해주신 하나의 예식이기 때문에 
물세례는 기독교에 입교하는 하나의 으식으로 영적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주의 만찬은 성찬의 의식으로 영적 생명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세례는 한번 받으면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영적 생활이 시작되는 때는 한번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찬식에는 자주 참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영적 생명은 끊임 없이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 1. 세 례 
(a) 방 법 
"세례를 주다"(Baptize)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물속에 잠기는 것을 뜻한다. 
세례는 원래 물 속에 잠기는 것을 뜻하는 말에서 왔다는 점에 대하여 
헬라어 학자들과 교회사가들은 의견을 일치하고 있다. 
약식 세례를 베푸는 교회에 속한 신학작들도 본래의 세례의 방법은 침례였다는 점을 시인하다. 
더욱이 사도 시대의 유대인들이 받은 세례가 침례였다는 점을 믿을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저들은 이미 "개종자의 세례"(Proselyte's Baptism)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이 개종자의 세례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받는 세례를 의미한다. 
이 개종자의 세례를 받을 때에 사람들은 물이 목에까지 올라오는데 서서 
율법서를 읽는 것을 듣고 있다가 그 율법서의 낭독이 끝나면 그는 물속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아빙 종교의 모든 더러운 죄로부터 깨끗이 씻음을 받고 하
나님의 언약의 백성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표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물을 찍어 베푸는 약식 세례를 어디서 유래하였는가? 
기독교가 신약의 단순성을 저버리고 
이방 사상의 영향을 받아 물세례에 대하여 비성서적인 중요성을 첨가하게 되었다. 
물세례를 중생하게 절대적으로 긴요한 조건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병자와 죽어가고 있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기에 이르렀다. 
병자와 죽어가 있는 사람에게 침례는 도저히 베풀 수 없기 때문에 
침례 대신에 약식 세례를 베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후 침례보다는 약식 세례가 베풀기에 편리함으로 약식 세례가 일반화하게 되었다. 
또한 침례를 베풀 만큼 충분한 물이 없을 때에는 
물을 머리 위에 부어서 세례를 베푸는 것도 허용되었던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제 2세기 사람의 글인데 세례에 관한 것이므로 잘 참고하기 바란다. 
" 세례에 관하여 논할 것 같으면 세례는 이렇게 베풀라. 
세례를 베풀때에 흐르는 물 속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만일 흐르는 물이 없으면 괴어 있는 물에서 세례를 베풀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찬물로 세례를 베풀수 없을 때에는 더운 물로 세례를 베풀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만일 찬물이나 더운 물 속에서 침례를 베풀수 없는 경우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이름도 세례를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물을 세 번 붓도 세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들은 세례의 본래의 방법은 침례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침례를 통해서만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에 대한 세례의 상징적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롬6:1-4) 
(b) 형 식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라는 말씀과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베드로의 명령과 어떻게 원만한 조화를 이룰수 있을가?(행2:38). 
베드로가 명령한 말씀은 세례의 형식에 관계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말씀은 세례를 받는 자들은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시인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주후 190년경에 기록된 어떤 글에서 볼 것 같으면 기
독 교인의 세례를 말할 때는 주 예수의 세례라고 언급되어 있으나 
세례의 형식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는 성부,성자,성신 삼위의 이름이 다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세를 하나님의 보내 준 인도자와 교사로 받아 드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을 예수에게 의탁하고 그는 하늘이 보내주신 구세주로 받아 드리며 
그의 인도하심에 따르겠다는 결의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세례의 형식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친히 말씀해 주신 것을 마태복음 28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행2:38,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으라"이다. 
데이어의 레시콘(Thayer's Lexicon)에 의할 것 같으면 
이는 유대인들이 그의 메시야의 권위에 대하여 신뢰심을 갖고 또한 소망을 두었던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삼위 일체의 형식은 하나의 체험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것에 의하여 
저들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게 있을지어다"(고후13:13)라고 말할 수 있다. 
(c) 세례를 받는다. 
참으로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산 신앙을 갖게 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사도 시대의 교회내에서 세례식을 베풀 때는 다음과 같은 외적 표현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1) 신앙 고백 (행8:37) 
(2) 기도 (행22 :16) 
(3) 헌신의 서약 (벧전3:21) 
유아들은 회개할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신앙 고백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물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을 결코 금하는 것은 아니다. (마19:13,14) 
왜 그러냐 하면 공중 집회시에 하나님께 어린이들을 바치는 헌아식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 효 험 
물세례 그 자체는 구원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요 구원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물세례가 구원에 절대적으로 긴요한 요소하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세례가 완전한 순종을 나타내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여 그의 취임식을 갖임으로써 
그가 대통령으로 온전히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개종자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택함에 있서 공적으로 이 사실을 나타냄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지체로서 온전히 인정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e) 의 미 
물세례는 다음과 같은 개념들을 나타내 주고 있다. 
(1) 구원, 
물세례는 복음의 근본적인 진리를 나타내 주는 성스러운 극이다 
(만일 물세례를 가리켜 성스러운 극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개종자를 물 속에 잠그기 위하여 눕히는 행동은 성취된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요 
물 속에 개종자를 잠그는 행동자체는 그리스도의 장사지내신 바 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자가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2) 체험, 
개종자가 세례를 받았는 사실은 그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물속에 잠긴다는 것은 "이 사람을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으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죽는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종자가 물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의 새 생명으로 다시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게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다. 
(3) 중생.
중생의 체험을 가리켜 씻음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딛3:5) 
왜 그러냐 하면 이 중생의 씻음을 통하여 옛 생활의 온갖 더러움과 조기 씻음을 받기 때문이다. 
마치 물로써 인간의 몸을 씻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성경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영혼을 씻으신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이와 같은 중생의 씻음을 나타내 준다.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22:16)
 (4) 간증.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3:27) 
물세례를 개종자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을 뜻한다. 
즉 군인들이 군복을 입으면 군인인 줄을 사람들이 보아 알듯이 
개종자들이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옷입을 것 같으면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개종자가 세례의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의 제복을 입게 되는 것이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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